[여의도 책방] 올여름 휴가는 ‘수학 바캉스’ 어떠세요?

입력 2018.08.04 (13:13) 수정 2018.08.0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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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는 순간 '이언 스튜어트'의 신작이어서 일단 반가웠다. 동시에 '보통사람을 위한 현대수학'이라는 제목에 '과연'이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언 스튜어트는 영국 출신의 수학자로 '가디언'지가 선정한 최고의 수학 저술가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나 역시 '눈송이는 어떤 모양일까' '자연의 패턴'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을 읽었기에 이번 책에 더욱 관심이 갔다.

■ '폭염 진정제'로 수학책을 꺼내들다

폭염은 나날이 심해지고 뭔가 머리를 차갑게 식힐 책이 없을까 하며 여의도책방을 기웃거리던 나에게 이 책은 그렇게 왔다. 사실 마리 퀴리도 머리가 복잡할 때 고차 방정식을 풀었다지 않았나. 더욱이 최근 2021학년도 수능 출제 범위안에서 '기하'를 빼는 것을 놓고 교육계와 수학계가 날카롭게 대립하기도 해서 공부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논쟁의 핵심은 아무리 이과 학생이라고 해도 기하학은 난이도가 높아서 과중한 학습 부담을 준다는 입장과 수학의 기본이자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필수 영역이라는 주장의 대립이었다.

사실 이러한 논쟁은 기하의 문제를 넘어 수학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수포자'들이 있고 수학은 사교육만 양산하는 '필요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공계에 진학할 일부 학생에게만 필요한 교육을 왜 전체가 받아야 하느냐는 주장도 그럴 듯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수학이 도대체 먹고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나도 수없이 들어온 얘기들이다. (사실 기자들 중에 수학과 출신은 드물 것이다.)


■ "풍경화가 유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언 스튜어트는 책의 시작 부분에 이렇게 답한다.

"순수 수학은 실질적 응용보다 '지적 만족'을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순수 수학은 순수 미술과 비슷하다. 풍경화가 실생활에 유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순수 미술과 달리 순수 수학에는 확고한 기준이 존재하며 원래의 의도와 상관 없이 다양한 분야에 응용된다."

수학자들은 실제로 지적인 만족을 위해 어려운 난제 방정식을 풀고 필즈상 수상이 결정되어도 수상을 거부하며 숲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들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만든 방정식이 인류의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온 게 사실이다.

■ 맥스웰 '파동 방정식'이 '무선통신'으로

1800년대 수학자들은 '파동 방정식'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진동하는 유체의 운동은 편미분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1864년 영국의 물리학자인 제임스 맥스웰이 전기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일련의 방정식을 유도했다. 이 방정식이 바로 맥스웰의 파동 방정식으로 전자기파의 존재를 예견한 최초의 발견이었다. 훗날 1888년 독일의 물리학자인 하인리히 헤르츠가 맥스웰의 방정식으로 실험하던 중 라디오파를 발견했다.


순수 수학이 실생활에 적용될 때까지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파동 방정식이 탄생한 후 마르코니의 무선 통신장치가 발명되기까지 150년이 걸렸다. 미분기하학에서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기까지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서 케일리의 행렬 이론은 100년 뒤 경제학 이론에 적용되기 시작했고 적분 방정식은 30년 뒤에 양자역학에 활용됐다.

수학자는 자신의 이론이 어떻게 실생활에 활용되고 막대한 효용을 낳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관심이 없다. 그냥 방정식이 거기에 있으니까 풀고 난제일수록 증명에 매달리는 것이다. 과거의 수학자들은 자신이 만든 미분 방정식이 아이들이 아직도 열광하는 '겨울왕국'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활용될 줄은 꿈에도 예측하지 못 했을 거다.


■ [연관 기사] ‘난제’ 수학 방정식이 애니메이션으로…영화가 된 과학

이언 스튜어트는 책의 첫장에 "인간이 개발한 사고 체계 중 가장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단연 기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처음 접한 기하학은 이등변삼각형과 피타고라스 정리, 도형의 합동, 좌표계 정도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식을 사용해 증명할 수도 있지만 직각삼각형과 직사각형 등 단순한 도형만 사용해도 직관적으로 풀 수 있다. 기하학의 강점은 바로 문장이나 기호 없이 시각에 의존한 그림으로 증명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학의 힘은 바로 이러한 직관에서 기인한다. 온 가족이 휴가를 떠날 때 그 많은 짐을 트렁크에 효율적으로 우겨넣을 수 있는 것도 수학적 직관 덕분이다. 정확히는 공간기하학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책은 말한다. 우리는 수학 없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늘 수학적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에서 논리력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제목을 보고 처음 예상한 대로 각 장에 실려있는 수학적인 내용들은 결코 보통 사람을 위한 수준이라고 보기 힘들다. 많은 수식과 기호들이 쏟아져나온다. 초보적인 기하학과 함수뿐만 아니라 대학시절 배우는 위상수학과 정수론, 선형대수 등 다양한 분야의 현대수학을 고루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연필을 들고 직접 그리고 풀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따분하고 하품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굳어있는 두뇌를 재부팅하는 데 수학만한 것이 없다. 잠시 어린 시절 배웠던 피타고라스 정리나 클라인의 병, 근의 공식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수학 혐오를 좀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책을 읽은 뒤라면 휴가를 떠나며 트렁크에 짐을 배열하는 자신의 솜씨에 '내가 수학적 재능이 있었구나'하고 감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 한권을 다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라도 새롭게 느끼는 것이라고 믿으며 오늘의 진도는 여기까지.

『보통 사람을 위한 현대수학』이언 스튜어트 지음, 박병철 번역, 휴머니스트,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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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책방] 올여름 휴가는 ‘수학 바캉스’ 어떠세요?
    • 입력 2018-08-04 13:13:09
    • 수정2018-08-04 13:14:02
    여의도책방
책을 보는 순간 '이언 스튜어트'의 신작이어서 일단 반가웠다. 동시에 '보통사람을 위한 현대수학'이라는 제목에 '과연'이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언 스튜어트는 영국 출신의 수학자로 '가디언'지가 선정한 최고의 수학 저술가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나 역시 '눈송이는 어떤 모양일까' '자연의 패턴'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을 읽었기에 이번 책에 더욱 관심이 갔다.

■ '폭염 진정제'로 수학책을 꺼내들다

폭염은 나날이 심해지고 뭔가 머리를 차갑게 식힐 책이 없을까 하며 여의도책방을 기웃거리던 나에게 이 책은 그렇게 왔다. 사실 마리 퀴리도 머리가 복잡할 때 고차 방정식을 풀었다지 않았나. 더욱이 최근 2021학년도 수능 출제 범위안에서 '기하'를 빼는 것을 놓고 교육계와 수학계가 날카롭게 대립하기도 해서 공부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논쟁의 핵심은 아무리 이과 학생이라고 해도 기하학은 난이도가 높아서 과중한 학습 부담을 준다는 입장과 수학의 기본이자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필수 영역이라는 주장의 대립이었다.

사실 이러한 논쟁은 기하의 문제를 넘어 수학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수포자'들이 있고 수학은 사교육만 양산하는 '필요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공계에 진학할 일부 학생에게만 필요한 교육을 왜 전체가 받아야 하느냐는 주장도 그럴 듯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수학이 도대체 먹고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나도 수없이 들어온 얘기들이다. (사실 기자들 중에 수학과 출신은 드물 것이다.)


■ "풍경화가 유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언 스튜어트는 책의 시작 부분에 이렇게 답한다.

"순수 수학은 실질적 응용보다 '지적 만족'을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순수 수학은 순수 미술과 비슷하다. 풍경화가 실생활에 유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순수 미술과 달리 순수 수학에는 확고한 기준이 존재하며 원래의 의도와 상관 없이 다양한 분야에 응용된다."

수학자들은 실제로 지적인 만족을 위해 어려운 난제 방정식을 풀고 필즈상 수상이 결정되어도 수상을 거부하며 숲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들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만든 방정식이 인류의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온 게 사실이다.

■ 맥스웰 '파동 방정식'이 '무선통신'으로

1800년대 수학자들은 '파동 방정식'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진동하는 유체의 운동은 편미분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1864년 영국의 물리학자인 제임스 맥스웰이 전기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일련의 방정식을 유도했다. 이 방정식이 바로 맥스웰의 파동 방정식으로 전자기파의 존재를 예견한 최초의 발견이었다. 훗날 1888년 독일의 물리학자인 하인리히 헤르츠가 맥스웰의 방정식으로 실험하던 중 라디오파를 발견했다.


순수 수학이 실생활에 적용될 때까지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파동 방정식이 탄생한 후 마르코니의 무선 통신장치가 발명되기까지 150년이 걸렸다. 미분기하학에서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기까지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서 케일리의 행렬 이론은 100년 뒤 경제학 이론에 적용되기 시작했고 적분 방정식은 30년 뒤에 양자역학에 활용됐다.

수학자는 자신의 이론이 어떻게 실생활에 활용되고 막대한 효용을 낳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관심이 없다. 그냥 방정식이 거기에 있으니까 풀고 난제일수록 증명에 매달리는 것이다. 과거의 수학자들은 자신이 만든 미분 방정식이 아이들이 아직도 열광하는 '겨울왕국'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활용될 줄은 꿈에도 예측하지 못 했을 거다.


■ [연관 기사] ‘난제’ 수학 방정식이 애니메이션으로…영화가 된 과학

이언 스튜어트는 책의 첫장에 "인간이 개발한 사고 체계 중 가장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단연 기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처음 접한 기하학은 이등변삼각형과 피타고라스 정리, 도형의 합동, 좌표계 정도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식을 사용해 증명할 수도 있지만 직각삼각형과 직사각형 등 단순한 도형만 사용해도 직관적으로 풀 수 있다. 기하학의 강점은 바로 문장이나 기호 없이 시각에 의존한 그림으로 증명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학의 힘은 바로 이러한 직관에서 기인한다. 온 가족이 휴가를 떠날 때 그 많은 짐을 트렁크에 효율적으로 우겨넣을 수 있는 것도 수학적 직관 덕분이다. 정확히는 공간기하학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책은 말한다. 우리는 수학 없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늘 수학적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에서 논리력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제목을 보고 처음 예상한 대로 각 장에 실려있는 수학적인 내용들은 결코 보통 사람을 위한 수준이라고 보기 힘들다. 많은 수식과 기호들이 쏟아져나온다. 초보적인 기하학과 함수뿐만 아니라 대학시절 배우는 위상수학과 정수론, 선형대수 등 다양한 분야의 현대수학을 고루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연필을 들고 직접 그리고 풀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따분하고 하품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굳어있는 두뇌를 재부팅하는 데 수학만한 것이 없다. 잠시 어린 시절 배웠던 피타고라스 정리나 클라인의 병, 근의 공식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수학 혐오를 좀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책을 읽은 뒤라면 휴가를 떠나며 트렁크에 짐을 배열하는 자신의 솜씨에 '내가 수학적 재능이 있었구나'하고 감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 한권을 다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라도 새롭게 느끼는 것이라고 믿으며 오늘의 진도는 여기까지.

『보통 사람을 위한 현대수학』이언 스튜어트 지음, 박병철 번역, 휴머니스트,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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