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세습 금지” 명성교회는 어떻게 피해갔나

입력 2018.08.12 (09:10) 수정 2018.08.1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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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의 부자간 목사직 승계가 적법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지난 7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재판국은 명성교회 담임목사직을 김삼환 원로목사에서 아들 김하나 목사로 승계한 것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그간 논란이 돼 온 명성교회의 부자간 대물림이 정당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교단의 인정에도 비난의 목소리는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 “적법한 승계” 명성교회 손들어준 교단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와 김하나 담임목사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와 김하나 담임목사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명성교회는 등록 교인 10만 명의 대표적인 대형교회다. 교회에 잡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교회를 세운 김삼환 목사가 은퇴하면서다.

2015년 김 목사가 은퇴하자, 교회는 새로운 담임목사 청빙 계획을 밝힌다. 세습 의혹을 받아온 아들 김하나 목사는 다른 지역에 교회를 세워 독립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공석으로 있던 담임목사 자리에 부임한 것은 결국 아들 김하나 목사였다.

은퇴한 원로목사의 아들이 담임 목사로 부임하자 교회 안팎에서는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 무효 소송’으로 이어졌다.

재판 결과는 아슬아슬했다. 재판국원 15의 무기명 투표 결과 8명이 김하나 목사의 승계를 찬성, 7명이 반대했다. 한 표가 재판 결과를 가른 것이다.

◆ 은퇴한 목사는 가능? 무색해진 ‘세습금지법’

비난의 목소리는 거셌다. 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이하 예장통합)’는 교단법으로 세습을 금지하고 있다.


해당 교회에서 사임하거나 은퇴하는 목사의 배우자와 직계비속 및 그 배우자는 목사로 부임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3년 예장통합 정기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통과한 법안이다.

명성교회는 어떻게 이 조항을 피해갔을까?

교회 측은 원로목사인 김삼환 목사가 이미 ‘은퇴한’ 목사이므로 ‘은퇴하는’ 목사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원로목사가 이미 2년 전에 은퇴했기 때문에 김하나 목사의 부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현재의 ‘교회세습(목회 대물림) 금지법’이 교회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교단 헌법위원회의 해석이 영향을 줬다는 의견도 있다.

교단이 결국 교회의 주장을 인정해준 것인데, 이에 대해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이하 세반연)는 “예장 통합총회의 ‘세습 금지법’은 유명무실한 법이 되었다”며 “총회 재판국은 명성교회의 부와 권력에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세반연 김애희 사무국장은 “세습을 하지 말라는 조항은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처벌한다는 ‘처벌 조항’이 없다”며 “(세습 금지법은) 상징적 의미가 있었지만, 이번 판결로 그마저도 없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로써는 징검다리 세습이나 우회 세습 등 편법 세습을 막을 길도 없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세반연이 확보한 한국 교회 세습 현황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확인된 세습 교회는 총 364곳이다. 그중 219곳에서 자식이나 사위 등 가족에게 승계를 했고, 145곳에서 합병 또는 손자에게 바로 물려주는 징검다리 승계 등 변칙으로 승계한 정황이 드러났다.

◆ 한국 대형교회 세습의 역사

한국 사회에 교회의 ‘부자 세습’을 알린 첫 사례는 1997년 충현교회 사건이다. 1997년,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였던 충현교회는 김창인 원로목사가 아들 김성관 목사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교회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자 세습을 감행했고, 이는 교회 세습의 물꼬를 터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이후 광림교회, 소망교회, 임마누엘 교회 등 여러 교회가 세습하거나, 시도하다 많은 잡음을 일으켰다.

대형 교회들의 세습이 사회 문제로 번지자, 교회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줬던 충현교회 김창인 원로목사는 “자질 없는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했다”며 공개적으로 참회한 바 있다.

2012년 감리교에서 처음으로 ‘세습금지법’을 마련했고, 이듬해 예장 통합과 기독교장로회에서도 세습을 금지한다고 교단 헌법에 명기했다.
[연관기사
[집중진단] 교회 대물림 ‘회개’…세습 고리 끊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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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격 있으면 돼” vs “반신앙적 행동”

교회의 세습, 반대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 우리 세습이다. 뭐 어쩌라고?”
이번 명성교회 세습 사태에서 화제가 된 말이다. 지난달 29일 명성교회 주일예배에서 설교자로 나선 고세진 목사는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이 승계했다. 하나님이 하는 일을 예수님이 받아서 했다”며 “왜 원로목사하고 담임목사를 갈라놓으려고 하느냐”고 했다.

과거 보수성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는 “‘교회 세습’ 또는 ‘교회 승계’는 잘못된 용어”라며 “자격이 된다면 직계 자손이라도 청빙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교회의 후임자는 그가 비록 직계 자손이라고 할지라도 부모의 재산이나 신분 등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므로 재산과 신분을 물려받는 ‘세습’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세반연은 “세습은 교회가 권력집단화되었을 때 생기는 전형적인 문제”라고 꼬집는다. 이어 “교회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갖는 담임 목사가 전횡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며 “이런 권한을 특정한 집안이 대물림한다는 것은 교회라는 자산을 개인이 사유화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명성교회세습철회를위한 예장 연대 장병기 목사는 “대형교회일수록 목사가 권력의 중심이 되기 쉽다”며 “돈과 권력을 대물림하려는 것 자체가 반(反) 신앙적인 행동”이라며 반대 이유를 전했다.

◆ 명성교회의 앞날은?

재판부의 판결에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명성교회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청빙 결의 무효 소송을 제기했던 동남노회정상화를위한비대위는 재심 청구를 고려하고 있다.

다만, 9월 예정된 교단의 가을 총회에서 한 차례 논의 과정이 남아있는 만큼 그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총회에서 이번 재판 결과를 뒤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재적인원의 과반이 출석한 가운데,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 특별 재심을 결정할 수 있다.

비대위 측은 “이번 판결은 한국 교회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라며 “재심 청구는 법리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만큼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교회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명성교회 측은 “세간에 다른 주장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면서도 “총회 재판국의 판결을 존중하며 모두 승복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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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세습 금지” 명성교회는 어떻게 피해갔나
    • 입력 2018-08-12 09:10:02
    • 수정2018-08-12 14:20:53
    취재K
명성교회의 부자간 목사직 승계가 적법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지난 7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재판국은 명성교회 담임목사직을 김삼환 원로목사에서 아들 김하나 목사로 승계한 것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그간 논란이 돼 온 명성교회의 부자간 대물림이 정당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교단의 인정에도 비난의 목소리는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 “적법한 승계” 명성교회 손들어준 교단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와 김하나 담임목사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명성교회는 등록 교인 10만 명의 대표적인 대형교회다. 교회에 잡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교회를 세운 김삼환 목사가 은퇴하면서다.

2015년 김 목사가 은퇴하자, 교회는 새로운 담임목사 청빙 계획을 밝힌다. 세습 의혹을 받아온 아들 김하나 목사는 다른 지역에 교회를 세워 독립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공석으로 있던 담임목사 자리에 부임한 것은 결국 아들 김하나 목사였다.

은퇴한 원로목사의 아들이 담임 목사로 부임하자 교회 안팎에서는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 무효 소송’으로 이어졌다.

재판 결과는 아슬아슬했다. 재판국원 15의 무기명 투표 결과 8명이 김하나 목사의 승계를 찬성, 7명이 반대했다. 한 표가 재판 결과를 가른 것이다.

◆ 은퇴한 목사는 가능? 무색해진 ‘세습금지법’

비난의 목소리는 거셌다. 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이하 예장통합)’는 교단법으로 세습을 금지하고 있다.


해당 교회에서 사임하거나 은퇴하는 목사의 배우자와 직계비속 및 그 배우자는 목사로 부임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3년 예장통합 정기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통과한 법안이다.

명성교회는 어떻게 이 조항을 피해갔을까?

교회 측은 원로목사인 김삼환 목사가 이미 ‘은퇴한’ 목사이므로 ‘은퇴하는’ 목사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원로목사가 이미 2년 전에 은퇴했기 때문에 김하나 목사의 부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현재의 ‘교회세습(목회 대물림) 금지법’이 교회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교단 헌법위원회의 해석이 영향을 줬다는 의견도 있다.

교단이 결국 교회의 주장을 인정해준 것인데, 이에 대해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이하 세반연)는 “예장 통합총회의 ‘세습 금지법’은 유명무실한 법이 되었다”며 “총회 재판국은 명성교회의 부와 권력에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세반연 김애희 사무국장은 “세습을 하지 말라는 조항은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처벌한다는 ‘처벌 조항’이 없다”며 “(세습 금지법은) 상징적 의미가 있었지만, 이번 판결로 그마저도 없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로써는 징검다리 세습이나 우회 세습 등 편법 세습을 막을 길도 없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세반연이 확보한 한국 교회 세습 현황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확인된 세습 교회는 총 364곳이다. 그중 219곳에서 자식이나 사위 등 가족에게 승계를 했고, 145곳에서 합병 또는 손자에게 바로 물려주는 징검다리 승계 등 변칙으로 승계한 정황이 드러났다.

◆ 한국 대형교회 세습의 역사

한국 사회에 교회의 ‘부자 세습’을 알린 첫 사례는 1997년 충현교회 사건이다. 1997년,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였던 충현교회는 김창인 원로목사가 아들 김성관 목사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교회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자 세습을 감행했고, 이는 교회 세습의 물꼬를 터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이후 광림교회, 소망교회, 임마누엘 교회 등 여러 교회가 세습하거나, 시도하다 많은 잡음을 일으켰다.

대형 교회들의 세습이 사회 문제로 번지자, 교회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줬던 충현교회 김창인 원로목사는 “자질 없는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했다”며 공개적으로 참회한 바 있다.

2012년 감리교에서 처음으로 ‘세습금지법’을 마련했고, 이듬해 예장 통합과 기독교장로회에서도 세습을 금지한다고 교단 헌법에 명기했다.
[연관기사
[집중진단] 교회 대물림 ‘회개’…세습 고리 끊길까?
감리교, 국내 개신교단 첫 담임목사직 세습 금지


◆ “자격 있으면 돼” vs “반신앙적 행동”

교회의 세습, 반대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 우리 세습이다. 뭐 어쩌라고?”
이번 명성교회 세습 사태에서 화제가 된 말이다. 지난달 29일 명성교회 주일예배에서 설교자로 나선 고세진 목사는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이 승계했다. 하나님이 하는 일을 예수님이 받아서 했다”며 “왜 원로목사하고 담임목사를 갈라놓으려고 하느냐”고 했다.

과거 보수성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는 “‘교회 세습’ 또는 ‘교회 승계’는 잘못된 용어”라며 “자격이 된다면 직계 자손이라도 청빙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교회의 후임자는 그가 비록 직계 자손이라고 할지라도 부모의 재산이나 신분 등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므로 재산과 신분을 물려받는 ‘세습’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세반연은 “세습은 교회가 권력집단화되었을 때 생기는 전형적인 문제”라고 꼬집는다. 이어 “교회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갖는 담임 목사가 전횡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며 “이런 권한을 특정한 집안이 대물림한다는 것은 교회라는 자산을 개인이 사유화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명성교회세습철회를위한 예장 연대 장병기 목사는 “대형교회일수록 목사가 권력의 중심이 되기 쉽다”며 “돈과 권력을 대물림하려는 것 자체가 반(反) 신앙적인 행동”이라며 반대 이유를 전했다.

◆ 명성교회의 앞날은?

재판부의 판결에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명성교회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청빙 결의 무효 소송을 제기했던 동남노회정상화를위한비대위는 재심 청구를 고려하고 있다.

다만, 9월 예정된 교단의 가을 총회에서 한 차례 논의 과정이 남아있는 만큼 그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총회에서 이번 재판 결과를 뒤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재적인원의 과반이 출석한 가운데,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 특별 재심을 결정할 수 있다.

비대위 측은 “이번 판결은 한국 교회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라며 “재심 청구는 법리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만큼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교회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명성교회 측은 “세간에 다른 주장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면서도 “총회 재판국의 판결을 존중하며 모두 승복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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