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군대 안 가는 태국 남자들, 왜 승려는 되려고 할까?

입력 2018.10.21 (09:20) 수정 2018.10.21 (09:2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태국은 전 국민의 95% 정도가 불교를 믿고 전국에 3만 5천여 개의 사원이 있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불교 국가이다. 대부분의 태국 사람들에게 있어 불교는 단순히 종교의 차원을 넘어 생활 그 자체이다. 일반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모든 생활 양식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태국에서는 불교를 믿는 다른 국가들과 다른 특이한 것이 있는데 바로 일반인들의 출가(出家)다. 태국의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일생에 한 번 이상 머리를 깎고 사원에 들어가 승려가 된다. 기간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3달 정도이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출가하는 직원들에게는 유급휴가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관 기사] [KBS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태국 남자들의 승려 되기 (2018. 10. 20)

'상좌부 불교'의 특성...출가는 최고의 공덕 쌓기

태국 남자들은 추첨으로 군대에 간다. 운이 좋으면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태국 사람들은 남자라면 군대는 안 가도 되지만 승려는 꼭 되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태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소승불교라 알려져 있는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敎)를 믿는다. 부처의 계율을 원칙대로 받아들이며 도덕적 수행과 개인적 구원을 강조한다. 상좌부 불교를 믿는 태국 사람들은 개인이 공덕(功德)을 쌓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최고의 공덕은 출가해 승려가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출가는 부모에 대한 보은이자 최대의 효도

중고생들의 출가의식 (태국 나콘라차시마주 왓프라차니밋 중고교)중고생들의 출가의식 (태국 나콘라차시마주 왓프라차니밋 중고교)

태국 어머니날을 맞아 나콘라차시마주의 한 지역 중고등학교에서는 특이한 행사가 열렸다. 남학생 지원자 60명이 단체로 승려가 되는 행사이다. 보통 태국에서는 20살이 넘어 정식 승려가 되지만 학생들도 단기 출가를 통해 '넨'이라는 초심자 단계에 오른다. 학생이지만 머리와 눈썹을 밀고 승려로서 법명도 부여받는다. 머리를 깎을 때는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데 자른 머리카락은 따로 보관하거나 나중에 강에 띄워 보내기도 한다.

삭발의식은 출가자가 가게 될 사원의 승려가 가장 먼저 머리를 자르고 이어 부모와 지인들이 돌아가며 머리카락을 잘라준다.삭발의식은 출가자가 가게 될 사원의 승려가 가장 먼저 머리를 자르고 이어 부모와 지인들이 돌아가며 머리카락을 잘라준다.

공덕은 해당 행위를 하는 사람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돌아간다. 따라서 태국에서 출가는 부모에 대한 최대의 보은이자 효도로 받아들여진다. 어머니날을 맞아 출가한 아이들의 공덕은 본인은 물론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태국 동굴 소년들도 숨진 구조대원 위해 단기 출가

태국 치앙라이 탐루엉 동굴에 갇혔다가 극적으로 구조됐던 지역 유소년 축구팀원들과 코치 등 13명 가운데 기독교 신자 1명을 제외한 12명도 지난 7월 24일 삭발 후 9일 동안 승려 생활을 했다.

무빠(야생 멧돼지) 축구팀 코치와 선수들이 출가의식을 치르고 있다. (2018.7.24. 출처 : 방콕 포스트)무빠(야생 멧돼지) 축구팀 코치와 선수들이 출가의식을 치르고 있다. (2018.7.24. 출처 : 방콕 포스트)

이들이 출가한 것은 수색 작업 중 숨진 구조대원 사만 쿠난(37)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고인의 명복을 위한 출가로 이때의 공덕은 고인에게 돌아간다고 믿는다.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사람에게 사후 공덕을 쌓아주는 것이다.

출가의식은 마을 전체의 축제

출가는 개인과 가족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축제이기도 하다. 출가의식에 참여하는 것 자체도 공덕을 쌓은 것으로 간주된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 가족들과 마을 주민들은 마을 축제를 벌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국 전통음악을 틀어놓고 차를 타고 마을을 돌며 행진을 한다. 사원 앞에 도착해서는 춤을 추며 사원을 세 바퀴 돈다.

227개 계율을 지켜야 하는 엄격한 승려생활

하지만 일단 사원에 들어가 승려가 되면 엄격한 승려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출가자는 새벽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엄격하고 까다로운 227개의 규율을 지켜야 한다. 태국의 상좌부 불교는 승려의 경제생활이나 생산활동을 금지하기 때문에 음식은 모두 신도들이 바치는 공양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새벽 일찍 일어나 탁발을 나가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탁발로 얻은 음식을 다 함께 나눠 먹으면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낮 12시 이후에 식사는 일절 금지되어 있다.

승려들은 대부분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드린 뒤 탁발을 나가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승려들은 대부분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드린 뒤 탁발을 나가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승려 생활 안 해 본 사람은 아직 덜된 사람"

짧은 기간이라 하더라도 일반인이 승려의 모든 계율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승려 경험을 하면 말씨나 태도가 훨씬 성숙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이 군대 갔다 오면 철이 든다는 말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태국에서는 승려 경험이 없는 사람을 '콘딥'이라고 해서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승려 경험이 없는 사람은 태국에서 '푸 야이'라고 불리는 마을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승려 경험'은 신랑감으로의 주요 조건

태국에서 승려는 언제든지 될 수 있지만 대부분 결혼하기 전에 출가한다. 청혼할 때 남성의 승려 경험이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승려 경험은 자신의 아내를 잘 보살필 수 있는 사려 깊은 남편이 될 수 있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여성 측 부모들은 승려 경험이 없는 사윗감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못한다.

왕정 국가인 태국에서 국왕도 승려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그만큼 승려는 태국 사회에서 특별한 존경과 대우를 받는다. 물론 이런 지위를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승려도 있고, 심지여 가짜 승려 노릇을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하지만 국왕도 예외 없이 출가해 승려수업을 받을 정도로 태국에서 출가는 여전히 모든 남자의 통과의례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군대 안 가는 태국 남자들, 왜 승려는 되려고 할까?
    • 입력 2018-10-21 09:20:03
    • 수정2018-10-21 09:20:52
    특파원 리포트
태국은 전 국민의 95% 정도가 불교를 믿고 전국에 3만 5천여 개의 사원이 있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불교 국가이다. 대부분의 태국 사람들에게 있어 불교는 단순히 종교의 차원을 넘어 생활 그 자체이다. 일반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모든 생활 양식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태국에서는 불교를 믿는 다른 국가들과 다른 특이한 것이 있는데 바로 일반인들의 출가(出家)다. 태국의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일생에 한 번 이상 머리를 깎고 사원에 들어가 승려가 된다. 기간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3달 정도이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출가하는 직원들에게는 유급휴가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관 기사] [KBS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태국 남자들의 승려 되기 (2018. 10. 20)

'상좌부 불교'의 특성...출가는 최고의 공덕 쌓기

태국 남자들은 추첨으로 군대에 간다. 운이 좋으면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태국 사람들은 남자라면 군대는 안 가도 되지만 승려는 꼭 되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태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소승불교라 알려져 있는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敎)를 믿는다. 부처의 계율을 원칙대로 받아들이며 도덕적 수행과 개인적 구원을 강조한다. 상좌부 불교를 믿는 태국 사람들은 개인이 공덕(功德)을 쌓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최고의 공덕은 출가해 승려가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출가는 부모에 대한 보은이자 최대의 효도

중고생들의 출가의식 (태국 나콘라차시마주 왓프라차니밋 중고교)
태국 어머니날을 맞아 나콘라차시마주의 한 지역 중고등학교에서는 특이한 행사가 열렸다. 남학생 지원자 60명이 단체로 승려가 되는 행사이다. 보통 태국에서는 20살이 넘어 정식 승려가 되지만 학생들도 단기 출가를 통해 '넨'이라는 초심자 단계에 오른다. 학생이지만 머리와 눈썹을 밀고 승려로서 법명도 부여받는다. 머리를 깎을 때는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데 자른 머리카락은 따로 보관하거나 나중에 강에 띄워 보내기도 한다.

삭발의식은 출가자가 가게 될 사원의 승려가 가장 먼저 머리를 자르고 이어 부모와 지인들이 돌아가며 머리카락을 잘라준다.
공덕은 해당 행위를 하는 사람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돌아간다. 따라서 태국에서 출가는 부모에 대한 최대의 보은이자 효도로 받아들여진다. 어머니날을 맞아 출가한 아이들의 공덕은 본인은 물론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태국 동굴 소년들도 숨진 구조대원 위해 단기 출가

태국 치앙라이 탐루엉 동굴에 갇혔다가 극적으로 구조됐던 지역 유소년 축구팀원들과 코치 등 13명 가운데 기독교 신자 1명을 제외한 12명도 지난 7월 24일 삭발 후 9일 동안 승려 생활을 했다.

무빠(야생 멧돼지) 축구팀 코치와 선수들이 출가의식을 치르고 있다. (2018.7.24. 출처 : 방콕 포스트)
이들이 출가한 것은 수색 작업 중 숨진 구조대원 사만 쿠난(37)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고인의 명복을 위한 출가로 이때의 공덕은 고인에게 돌아간다고 믿는다.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사람에게 사후 공덕을 쌓아주는 것이다.

출가의식은 마을 전체의 축제

출가는 개인과 가족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축제이기도 하다. 출가의식에 참여하는 것 자체도 공덕을 쌓은 것으로 간주된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 가족들과 마을 주민들은 마을 축제를 벌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국 전통음악을 틀어놓고 차를 타고 마을을 돌며 행진을 한다. 사원 앞에 도착해서는 춤을 추며 사원을 세 바퀴 돈다.

227개 계율을 지켜야 하는 엄격한 승려생활

하지만 일단 사원에 들어가 승려가 되면 엄격한 승려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출가자는 새벽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엄격하고 까다로운 227개의 규율을 지켜야 한다. 태국의 상좌부 불교는 승려의 경제생활이나 생산활동을 금지하기 때문에 음식은 모두 신도들이 바치는 공양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새벽 일찍 일어나 탁발을 나가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탁발로 얻은 음식을 다 함께 나눠 먹으면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낮 12시 이후에 식사는 일절 금지되어 있다.

승려들은 대부분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드린 뒤 탁발을 나가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승려 생활 안 해 본 사람은 아직 덜된 사람"

짧은 기간이라 하더라도 일반인이 승려의 모든 계율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승려 경험을 하면 말씨나 태도가 훨씬 성숙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이 군대 갔다 오면 철이 든다는 말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태국에서는 승려 경험이 없는 사람을 '콘딥'이라고 해서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승려 경험이 없는 사람은 태국에서 '푸 야이'라고 불리는 마을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승려 경험'은 신랑감으로의 주요 조건

태국에서 승려는 언제든지 될 수 있지만 대부분 결혼하기 전에 출가한다. 청혼할 때 남성의 승려 경험이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승려 경험은 자신의 아내를 잘 보살필 수 있는 사려 깊은 남편이 될 수 있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여성 측 부모들은 승려 경험이 없는 사윗감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못한다.

왕정 국가인 태국에서 국왕도 승려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그만큼 승려는 태국 사회에서 특별한 존경과 대우를 받는다. 물론 이런 지위를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승려도 있고, 심지여 가짜 승려 노릇을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하지만 국왕도 예외 없이 출가해 승려수업을 받을 정도로 태국에서 출가는 여전히 모든 남자의 통과의례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