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징용’ 끌려간 남편 기다리며 한평생…99살 할머니의 소원

입력 2018.11.07 (21:36) 수정 2018.11.0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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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한국인 강제징용자 김모 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품이 발굴됐다고 얼마 전 전해드렸는데요.

타라와섬에서 숨진 590여명의 징용자 유가족들은 혹시나 가족의 유품이 아닐지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이 중에는 평생을 징용 피해자들을 위해 살아온 이금주 할머니도 있습니다.

김민정 기자가 이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시골길을 따라 닿은 외딴 요양병원.

이곳에 99살 이금주 할머니가 있습니다.

치매로 기억을 잃은 할머니,

[간호사 : "일본말 이런건 하셨어요, 저희들한테. 근데 기력이 안좋아지시고 나서는..."]

하지만, 아직 놓지 못하는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이금주 할머니 : "(무슨 사진 같으세요?) 내 결혼식..."]

신랑 김도민, 1942년 늦가을 여덟 달 된 아들을 두고 강제 징용됐습니다.

[이금주 할머니 육성/2003년 :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갓난아기 이불을 젖혀 놓고 이렇게 재보곤 했습니다. 징용 통지를 받고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해방을 몇달 앞두고 받은 남편의 전사 통지서.

[이금주 할머니 : "유골을 받을래야 받을 길이 없습니다. 타라와섬에서 전사를 했기 때문에..."]

할머니는 남편을 가슴에 묻지 않았습니다.

남편 이야길 세상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김보나/이금주 할머니 손녀 : "끊임없이 계속 오셨어요. 새벽에도 오고 오밤중에도 오고."]

[이국언/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 "한쪽으로는 사전 놓고. 한쪽으로는 각종 서류를 쌓아놓고. 열번 찾아가면 여덟 번은 책상 앞에 앉아계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강제징용자 1273명의 사연을 손수 꾹꾹 눌러쓴 게 바로 천인소송이었습니다.

바다에 수장된 우키시마마루 희생자들의 역사도 바로 이 할머니를 거쳐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이금주 할머니 : "계속 더 찾는다면 좀 더 앞으로 사망자 명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강인했지만, 누구보다 따뜻했습니다.

[양금덕/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 : "영리하고 차분하시고, 꼭 남이 아니고 친 언니마냥 좋았어..."]

애타게 남편의 유해를 찾아 헤맨지 30년, 김모 씨라고 적힌 유품이 타라와섬에서 나왔습니다.

[김보나/이금주 할머니 손녀 : "이건 분명히 할아버지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이건 꼭 우리가 되돌려 받아야 된다."]

하지만 할머니에겐 더 이상 소식이 닿지 못합니다.

아흔 아홉번 째 맞는 가을, 이제 할머니의 기억은 점점 흐려져만 갑니다.

[이금주 할머니 : "(김도민 씨(남편) 기억 안 나세요?) 무슨 소린지 모르겄어..."]

그 많던 기억들은 어디로 흩어지는 걸까요?

할머니의 한 많은 삶도, 할머니가 간직했던 1273명의 기억도 이젠 남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KBS 뉴스 김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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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 징용’ 끌려간 남편 기다리며 한평생…99살 할머니의 소원
    • 입력 2018-11-07 21:41:37
    • 수정2018-11-07 21: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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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한국인 강제징용자 김모 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품이 발굴됐다고 얼마 전 전해드렸는데요.

타라와섬에서 숨진 590여명의 징용자 유가족들은 혹시나 가족의 유품이 아닐지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이 중에는 평생을 징용 피해자들을 위해 살아온 이금주 할머니도 있습니다.

김민정 기자가 이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시골길을 따라 닿은 외딴 요양병원.

이곳에 99살 이금주 할머니가 있습니다.

치매로 기억을 잃은 할머니,

[간호사 : "일본말 이런건 하셨어요, 저희들한테. 근데 기력이 안좋아지시고 나서는..."]

하지만, 아직 놓지 못하는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이금주 할머니 : "(무슨 사진 같으세요?) 내 결혼식..."]

신랑 김도민, 1942년 늦가을 여덟 달 된 아들을 두고 강제 징용됐습니다.

[이금주 할머니 육성/2003년 :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갓난아기 이불을 젖혀 놓고 이렇게 재보곤 했습니다. 징용 통지를 받고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해방을 몇달 앞두고 받은 남편의 전사 통지서.

[이금주 할머니 : "유골을 받을래야 받을 길이 없습니다. 타라와섬에서 전사를 했기 때문에..."]

할머니는 남편을 가슴에 묻지 않았습니다.

남편 이야길 세상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김보나/이금주 할머니 손녀 : "끊임없이 계속 오셨어요. 새벽에도 오고 오밤중에도 오고."]

[이국언/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 "한쪽으로는 사전 놓고. 한쪽으로는 각종 서류를 쌓아놓고. 열번 찾아가면 여덟 번은 책상 앞에 앉아계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강제징용자 1273명의 사연을 손수 꾹꾹 눌러쓴 게 바로 천인소송이었습니다.

바다에 수장된 우키시마마루 희생자들의 역사도 바로 이 할머니를 거쳐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이금주 할머니 : "계속 더 찾는다면 좀 더 앞으로 사망자 명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강인했지만, 누구보다 따뜻했습니다.

[양금덕/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 : "영리하고 차분하시고, 꼭 남이 아니고 친 언니마냥 좋았어..."]

애타게 남편의 유해를 찾아 헤맨지 30년, 김모 씨라고 적힌 유품이 타라와섬에서 나왔습니다.

[김보나/이금주 할머니 손녀 : "이건 분명히 할아버지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이건 꼭 우리가 되돌려 받아야 된다."]

하지만 할머니에겐 더 이상 소식이 닿지 못합니다.

아흔 아홉번 째 맞는 가을, 이제 할머니의 기억은 점점 흐려져만 갑니다.

[이금주 할머니 : "(김도민 씨(남편) 기억 안 나세요?) 무슨 소린지 모르겄어..."]

그 많던 기억들은 어디로 흩어지는 걸까요?

할머니의 한 많은 삶도, 할머니가 간직했던 1273명의 기억도 이젠 남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KBS 뉴스 김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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