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북미 고위급회담 연기…남북 협력도 ‘빨간 불’

입력 2018.11.10 (07:50) 수정 2018.11.10 (08:5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북미 고위급 회담이 돌연 연기됐습니다.

북측의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도와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되는데요.

단순한 일정 문제다, 아니다 비핵화와 제재 완화 사이에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는 등의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북측의 호응을 촉구하며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습니다.

한반도 주요 일정까지 차질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묘수를 찾아야 하는 우리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다솜 리포터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미국 중간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지난 7일. 미 국무부는 네 문장짜리 짧은 성명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다음날로 예정됐던 북미 고위급회담을 연기하기로 했다는 것.

회담을 불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이례적으로 심야에 발표됐고, 왜 연기하는지, 언제 다시 회담이 열릴지 언급도 없었습니다.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별일 아니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11월 7일 : "다른 날로 옮기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북한과 현재까지 밟아 온 과정들에 대해서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급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북 제재는 유효합니다."]

하지만 회담 취소 바로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습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직접 나서 회담에 대한 자신감을 여러 차례 드러냈습니다.

[폼페이오/미국 국무장관 :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상당한 비핵화 조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실질적 진전을 이뤄 내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함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명시했던 4대 합의, 이른바 ‘4개의 기둥’모두를 회담 주제로 삼겠다고 밝힌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4대 합의 가운데, 3,4번 항목인 비핵화에 대한 노력과 유해 발굴 협조 등은 현재 진행중이지만, 더 초점이 맞춰졌던 1,2번 항목, 즉 새로운 북미관계 형성과 평화체제 구축은 아무 진전이 없는 상황.

북한의 꾸준한 요구사항이었던 북미관계 진전과 평화체제 문제까지 미국이 다루겠다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북핵 협상의 교착상태를 뚫을만한 논의가 오가지 않겠느냐는 장밋빛 해석이 나왔습니다.

청와대도 이번엔 북미 협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나올 수도 있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회담이 돌연 연기되자 정부는 대화 동력은 유지되고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내심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깁니다.

이번 북미 고위급 회담은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고 열린다는 점에서 선거용이 아닌,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의 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습니다.

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회담에 동행한다고 밝혀지면서 고위급회담 이후 곧바로 실무협상이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높았는데요.

때문에 북미가 고위급 회담을 공식 발표한 지 하루 만에 회담을 전격 연기할 수밖에 없던 배경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고위급 회담을 둘러싼 이상 기류는 연기 발표 전부터 이미 포착됐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회담 예정일 전날 베이징발 뉴욕행 비행 편을 예약했지만, 전날 갑자기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비행 편 예약과 취소가 여러 번 반복됐고, 김영철 부위원장은 끝내 베이징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막판까지 회담 개최와 의제를 두고 북미 간 조율이 진행됐음을 짐작케 합니다.

결국 회담 연기를 먼저 요청한 것은 북한이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11월 8일/국회 외통위 전체회의 : "미국 측으로부터 (고위급회담 연기 이유에 대해) 통보를 받기를 ‘북측으로부터 서로 일정이 분주하니까 연기를 하자’..."]

미국은 검증을 양보할 수 없다는 완고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 전에도 후에도 대북 제재의 끈을 늦추지 않을 것임을 지속적으로 확인했습니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11월 7일 : "나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북한도 또한 그에 호응해야 합니다."]

제재 완화를 위해서는 핵 사찰과 검증, 핵무기나 핵물질 등의 신고 등이 우선 전제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폼페이오/미국 국무장관 : "완전한 비핵화 뿐 아니라 미국이 이를 검증할 능력을 갖추는 것도 경제 제재를 완화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북한은 지난달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당시 제시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엔진실험장에 대한 사찰이면 제재 완화에 충분하지 않느냐는 입장.

회담을 코앞에 두고도 제재 완화와 핵시설 검증 등에 대한 조율이 이뤄지지 못하자, 북한이 회담에 대한 부담으로 연기를 청했고, 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미국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회담에서 성과가 없을 경우, 북미 양측 모두 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최강/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 "사실 김영철 부위원장의 뉴욕 방문 이전에 미국 내에서 북한 인권을 거론하기 시작을 했고 좀 더 강력한 제재 얘기가 나오니까 북한으로선 상당히 거북한 분위기에서 이 대화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북한 내부적으로는 지금 시점은 대화하기 부적절한 시점이 아닌가 좀 더 뒤로 연기해보자라고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외적변수들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6일 치른 미국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은 8년 만에 민주당에 하원을 내줬습니다.

[낸시 펠로시/미국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 "오늘은 민주당과 공화당을 넘어서 트럼프 정부에 대한 헌법적 견제와 균형을 복원하는 날입니다."]

미국 민주당은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이라는 기본적 원칙에는 동조하지만, 인권 등의 문제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 비핵화 협상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주문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회담을 하는 것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이 의회 구도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지켜보는 쪽을 택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미국 국무부의 회담 연기 발표문이나 이후의 태도가 북한에 대해 강경하진 않다는 점은, 북한도 미국도 현재 북핵 협상의 판을 깨려는 의도는 없음을 짐작케 합니다.

[최강/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 "이번 국무장관과 부위원장 간의 회담을 연기하고 나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초에 김정은 위원장과 2차 정상회담을 기대한다, 하겠다 이런 의지를 보였거든요. 따라서 급격한 국면의 전환보다는 당분간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물밑접촉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이제 관심은 고위급이든 실무급이든 북미 대화가 언제 재개될 것인가입니다.

지난 8월 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발표됐다 취소된 후 다시 성사되기까지는 한 달 이상이 걸렸습니다.

이번에도 협상 지연이 장기화될 경우 북핵 협상의 동력이 줄어들 위험은 물론, 종전선언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연동된 남북 간의 일정도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소나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등 남북이 추진하는 각종 사업들의 차질도 불가피해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체제 유지에 힘을 쏟는 한편, 비핵화 협상에서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전에도 본격 나서는 모습니다.

최근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다지는 데 이어, 지난 4월 취임한 쿠바의 새 지도자를 평양으로 불러 극진히 대접한 모습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내외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직접 영접을 나옵니다.

환영 군중 사이로 김 위원장과 디아스카넬 의장을 그린 대형 초상화가 눈에 띕니다.

활짝 웃고 있는 김 위원장, 서구식 양복에 넥타이, 안경도 착용했습니다.

지난 4월,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방북했을 때 목격된 뒤 두 번째로 공개된 초상홥니다.

북한 체제가 김 위원장의 개인숭배 단계에 들어갔다는 해석과, 비핵화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는 가운데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 동시에 나옵니다.

[조선중앙TV/11월 5일 : "적대 세력들의 온갖 도전을 물리치고 두 나라 사이의 전통적인 친선 협조 관계를 변함없이 계승 발전시켜 나갈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디아스카넬 의장과 단독회담을 가진건 물론 카퍼레이드를 열고 집단체조를 보여주는 등 극진히 예우했습니다.

쿠바 같은 전통의 우방들과의 관계강화를 통해 미국과의 비핵화협상에서 우군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재 완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미국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띕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경제 시찰에서 대북제재에 대한 불만을 직접 노골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뒤를 이어 북한 매체도 대북제재 완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핵 경제 병진 노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조선중앙TV/11월 1일 : "적대세력들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굴복시켜 보려고 악랄한 제재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하고 있지만..."]

북한이 지난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보다는 경제건설에만 집중하겠다는 경제건설총집중 노선을 채택한 이래 핵개발로 선회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건 처음입니다.

최근에는 북한이 노동당에 개혁개방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중국에 인력 지원을 요청한 사실까지 확인됐습니다.

중국식 시장경제 모델을 배워 북한식 개혁개방 전략을 짜려는 행보로 해석되는데, 한편으로는 미국과 경쟁관계인 중국의 영향력을 통해 미국의 제재공세를 견제하려는 의도로도 읽힙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제재완화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우회적으로 개혁개방과 관련된 다양한 북한의 접근법, 노력들을 하겠다는 그런 의지로 읽을 수가 있겠고, 사회주의 우방 국가들과의 연대를 보다 강화하면서 그러면서도 비핵화 평화체제 논의의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좀 더 적극적인 개혁개방에 나서겠다 그런 차원에서의 다양한 준비 작업을 북한이 하고 있다고 봅니다."]

북미 간 고위급 회담이 돌연 연기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여정의 험난함이 또 한 번 확인됐습니다.

협상이 무기한 연기되며 북미 대화의 유동성은 더 커진 상황, 접점을 찾는데 난관을 겪고 있는 비핵화 협상이 새로운 추동력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슈&한반도] 북미 고위급회담 연기…남북 협력도 ‘빨간 불’
    • 입력 2018-11-10 08:33:07
    • 수정2018-11-10 08:52:32
    남북의 창
[앵커]

북미 고위급 회담이 돌연 연기됐습니다.

북측의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도와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되는데요.

단순한 일정 문제다, 아니다 비핵화와 제재 완화 사이에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는 등의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북측의 호응을 촉구하며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습니다.

한반도 주요 일정까지 차질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묘수를 찾아야 하는 우리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다솜 리포터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미국 중간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지난 7일. 미 국무부는 네 문장짜리 짧은 성명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다음날로 예정됐던 북미 고위급회담을 연기하기로 했다는 것.

회담을 불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이례적으로 심야에 발표됐고, 왜 연기하는지, 언제 다시 회담이 열릴지 언급도 없었습니다.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별일 아니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11월 7일 : "다른 날로 옮기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북한과 현재까지 밟아 온 과정들에 대해서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급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북 제재는 유효합니다."]

하지만 회담 취소 바로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습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직접 나서 회담에 대한 자신감을 여러 차례 드러냈습니다.

[폼페이오/미국 국무장관 :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상당한 비핵화 조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실질적 진전을 이뤄 내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함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명시했던 4대 합의, 이른바 ‘4개의 기둥’모두를 회담 주제로 삼겠다고 밝힌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4대 합의 가운데, 3,4번 항목인 비핵화에 대한 노력과 유해 발굴 협조 등은 현재 진행중이지만, 더 초점이 맞춰졌던 1,2번 항목, 즉 새로운 북미관계 형성과 평화체제 구축은 아무 진전이 없는 상황.

북한의 꾸준한 요구사항이었던 북미관계 진전과 평화체제 문제까지 미국이 다루겠다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북핵 협상의 교착상태를 뚫을만한 논의가 오가지 않겠느냐는 장밋빛 해석이 나왔습니다.

청와대도 이번엔 북미 협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나올 수도 있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회담이 돌연 연기되자 정부는 대화 동력은 유지되고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내심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깁니다.

이번 북미 고위급 회담은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고 열린다는 점에서 선거용이 아닌,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의 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습니다.

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회담에 동행한다고 밝혀지면서 고위급회담 이후 곧바로 실무협상이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높았는데요.

때문에 북미가 고위급 회담을 공식 발표한 지 하루 만에 회담을 전격 연기할 수밖에 없던 배경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고위급 회담을 둘러싼 이상 기류는 연기 발표 전부터 이미 포착됐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회담 예정일 전날 베이징발 뉴욕행 비행 편을 예약했지만, 전날 갑자기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비행 편 예약과 취소가 여러 번 반복됐고, 김영철 부위원장은 끝내 베이징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막판까지 회담 개최와 의제를 두고 북미 간 조율이 진행됐음을 짐작케 합니다.

결국 회담 연기를 먼저 요청한 것은 북한이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11월 8일/국회 외통위 전체회의 : "미국 측으로부터 (고위급회담 연기 이유에 대해) 통보를 받기를 ‘북측으로부터 서로 일정이 분주하니까 연기를 하자’..."]

미국은 검증을 양보할 수 없다는 완고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 전에도 후에도 대북 제재의 끈을 늦추지 않을 것임을 지속적으로 확인했습니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11월 7일 : "나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북한도 또한 그에 호응해야 합니다."]

제재 완화를 위해서는 핵 사찰과 검증, 핵무기나 핵물질 등의 신고 등이 우선 전제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폼페이오/미국 국무장관 : "완전한 비핵화 뿐 아니라 미국이 이를 검증할 능력을 갖추는 것도 경제 제재를 완화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북한은 지난달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당시 제시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엔진실험장에 대한 사찰이면 제재 완화에 충분하지 않느냐는 입장.

회담을 코앞에 두고도 제재 완화와 핵시설 검증 등에 대한 조율이 이뤄지지 못하자, 북한이 회담에 대한 부담으로 연기를 청했고, 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미국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회담에서 성과가 없을 경우, 북미 양측 모두 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최강/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 "사실 김영철 부위원장의 뉴욕 방문 이전에 미국 내에서 북한 인권을 거론하기 시작을 했고 좀 더 강력한 제재 얘기가 나오니까 북한으로선 상당히 거북한 분위기에서 이 대화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북한 내부적으로는 지금 시점은 대화하기 부적절한 시점이 아닌가 좀 더 뒤로 연기해보자라고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외적변수들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6일 치른 미국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은 8년 만에 민주당에 하원을 내줬습니다.

[낸시 펠로시/미국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 "오늘은 민주당과 공화당을 넘어서 트럼프 정부에 대한 헌법적 견제와 균형을 복원하는 날입니다."]

미국 민주당은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이라는 기본적 원칙에는 동조하지만, 인권 등의 문제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 비핵화 협상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주문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회담을 하는 것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이 의회 구도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지켜보는 쪽을 택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미국 국무부의 회담 연기 발표문이나 이후의 태도가 북한에 대해 강경하진 않다는 점은, 북한도 미국도 현재 북핵 협상의 판을 깨려는 의도는 없음을 짐작케 합니다.

[최강/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 "이번 국무장관과 부위원장 간의 회담을 연기하고 나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초에 김정은 위원장과 2차 정상회담을 기대한다, 하겠다 이런 의지를 보였거든요. 따라서 급격한 국면의 전환보다는 당분간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물밑접촉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이제 관심은 고위급이든 실무급이든 북미 대화가 언제 재개될 것인가입니다.

지난 8월 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발표됐다 취소된 후 다시 성사되기까지는 한 달 이상이 걸렸습니다.

이번에도 협상 지연이 장기화될 경우 북핵 협상의 동력이 줄어들 위험은 물론, 종전선언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연동된 남북 간의 일정도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소나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등 남북이 추진하는 각종 사업들의 차질도 불가피해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체제 유지에 힘을 쏟는 한편, 비핵화 협상에서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전에도 본격 나서는 모습니다.

최근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다지는 데 이어, 지난 4월 취임한 쿠바의 새 지도자를 평양으로 불러 극진히 대접한 모습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내외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직접 영접을 나옵니다.

환영 군중 사이로 김 위원장과 디아스카넬 의장을 그린 대형 초상화가 눈에 띕니다.

활짝 웃고 있는 김 위원장, 서구식 양복에 넥타이, 안경도 착용했습니다.

지난 4월,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방북했을 때 목격된 뒤 두 번째로 공개된 초상홥니다.

북한 체제가 김 위원장의 개인숭배 단계에 들어갔다는 해석과, 비핵화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는 가운데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 동시에 나옵니다.

[조선중앙TV/11월 5일 : "적대 세력들의 온갖 도전을 물리치고 두 나라 사이의 전통적인 친선 협조 관계를 변함없이 계승 발전시켜 나갈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디아스카넬 의장과 단독회담을 가진건 물론 카퍼레이드를 열고 집단체조를 보여주는 등 극진히 예우했습니다.

쿠바 같은 전통의 우방들과의 관계강화를 통해 미국과의 비핵화협상에서 우군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재 완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미국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띕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경제 시찰에서 대북제재에 대한 불만을 직접 노골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뒤를 이어 북한 매체도 대북제재 완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핵 경제 병진 노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조선중앙TV/11월 1일 : "적대세력들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굴복시켜 보려고 악랄한 제재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하고 있지만..."]

북한이 지난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보다는 경제건설에만 집중하겠다는 경제건설총집중 노선을 채택한 이래 핵개발로 선회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건 처음입니다.

최근에는 북한이 노동당에 개혁개방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중국에 인력 지원을 요청한 사실까지 확인됐습니다.

중국식 시장경제 모델을 배워 북한식 개혁개방 전략을 짜려는 행보로 해석되는데, 한편으로는 미국과 경쟁관계인 중국의 영향력을 통해 미국의 제재공세를 견제하려는 의도로도 읽힙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제재완화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우회적으로 개혁개방과 관련된 다양한 북한의 접근법, 노력들을 하겠다는 그런 의지로 읽을 수가 있겠고, 사회주의 우방 국가들과의 연대를 보다 강화하면서 그러면서도 비핵화 평화체제 논의의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좀 더 적극적인 개혁개방에 나서겠다 그런 차원에서의 다양한 준비 작업을 북한이 하고 있다고 봅니다."]

북미 간 고위급 회담이 돌연 연기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여정의 험난함이 또 한 번 확인됐습니다.

협상이 무기한 연기되며 북미 대화의 유동성은 더 커진 상황, 접점을 찾는데 난관을 겪고 있는 비핵화 협상이 새로운 추동력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