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교실 가보셨습니까]③ 돈은 많이 쓰지만 “다시는 맡고 싶지 않아요”

입력 2018.12.12 (11:00) 수정 2018.12.1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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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인천의 한 중학생이 또래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뒤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피해자는 러시아 국적 어머니를 둔 다문화 학생 A군입니다.

다문화 학생 5%는 학교폭력 희생자

A군이 다문화 학생이라서 피해를 봤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다문화 학생들이 학교폭력에 노출돼 있는 건 사실입니다. 2015년 여성가족부 조사에서는 다문화 학생 5%가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대략 4천 명 정도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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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교실 가보셨습니까]④ 포기와 좌절 사이 “저도 대학가고 싶어요”


두루뭉술 전수조사, 정확한 집계 못 해

교육부는 2012년부터 1년에 2차례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전수조사지만 다문화 학생 관련 항목은 아예 없습니다. 교육부 조사인데도 다문화 '학생' 관련 내용을 알 수 없는 겁니다. 그나마 실태를 보려면 여가부가 3년마다 하는 조사를 참고해야 합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관련 법상 다문화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고 학교폭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따로 항목을 두진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 과목 10점대”

학교폭력보다 더 큰 문제는 학교수업입니다.

서울 구로지역 중학교에서 다문화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K선생님의 얘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문화 학생, 그중에서도 외국에서 나고 자라다 취학연령에 한국에 온 중도입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매우 낮다는 겁니다.

K 선생님은 "중도입국 학생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 공부가 어려워져 대부분 과목이 100점 만점에 10점대"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학업에 흥미를 잃고 학교를 겉돌게 된다고 조심스레 얘기했습니다.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외국인 가정 학생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건 다문화 학생들의 학업중단율이 한국 학생들보다 늘 높은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무너지는 교실은 한국 학생에게도 다문화 학생에게도 좋을게 없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책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요?

구글 번역기 켜놓고 상담하기도

학업 성취도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언어장벽입니다. 이에 따라 다문화 학생의 한국어 집중 교육을 위해 전국 197개 학교에서 '예비학교'가 운영 중입니다. 정규교원이 수업을 이끌면 통역강사(이중언어 강사)가 실시간으로 통역해줍니다.

그런데 2만 명 훌쩍 넘는 중도입국학생·외국인 가정 학생을 위한 통역강사는 전국에 650명 뿐입니다.

게다가 학생들 국적이 다양하다 보니 학교에 상주하는 통역강사와 학생들의 '미스매치' 현상도 생깁니다. 그래서 담임교사가 구글 번역기를 켜놓고 상담을 진행하는 웃지 못할 풍경도 연출됩니다.

lost in translation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있는 예비학교도 문제입니다.감사원이 전국의 예비학교 운영실태를 들여다봤습니다.

서울만 놓고 봐도 중도입국 학생이 10명이 넘는데도 예비학교를 운영하지 않는 학교가 93개나 됐습니다. 인천도 25개 학교가 이런 상황입니다. 이렇게 예비학교가 필요한데도 설치되지 않은 학교가 전국에 269개나 있었습니다.

없어도 될 예비학교를 설치한 곳도 있습니다. 인천에는 중도입국 학생이 5명도 안 되는데 예비학교를 두고 있는 학교가 네 군데나 됐습니다. 강원 지역 예비학교 8곳은 전부 중도입국 학생 10명 이하인 학교에 설치돼있습니다.

다른 부처와 정책이 중복되기도 합니다. 교육부는 2009년부터 대학생 멘토링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대학생이 다문화 학생을 찾아가 공부를 가르쳐 주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도 방문교육지도사가 다문화 가정을 방문해 1:1로 개별수업을 하는 자녀생활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사실상 똑같죠?

10년간 1,200억 투입…역차별 논란도

어쨌거나 다문화 학생을 위한 예산은 크게 늘고 있습니다. 2008년 39억 원이었던 교육부 다문화 사업 예산은 2018년 172억여 원으로 늘었습니다. 10년 새 4.4배나 커졌습니다.

예산이 늘다 보니 역차별 논란도 벌어집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무분별한 혜택을 중단해 달라는 글이 120여 개에 달합니다.


세금은 똑같이 내는데 혜택은 다문화 가정이 먼저라는 겁니다. 보육료 지원, 국공립 어린이집 0순위, 다문화 대입 전형 전부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합니다.

교사마저 “다문화학교 다신 오고 싶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 교원들마저 다문화 학생 비율 높은 지역에 부임하길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다문화 비율이 높은 학교에서 근무 중인 서울 한 초등학교의 C 선생님. "중도입국학생이 한 명 전입을 오면 학교생활이 서툰 1학년을 담임교사가 1대 1로 지도해야 하는 식"이라며 "다문화 업무를 다시는 맡고 싶지 않아 하는 분위기"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C선생님은 "다문화 정책학교로 지정되면 입소문이 나 한두 달에 한 명꼴로 추가되다 보니 일선 교사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돈은 많이 쓰지만 생활지도와 학업지도 모두 힘에 부치고 있는 상황. 힘들게 중고등학교를 통과한 다문화 학생들의 대학가는 길은 과연 순탄할까요? 다음 기사에서 다문화 학생들의 솔직한 경험담을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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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문화 교실 가보셨습니까]③ 돈은 많이 쓰지만 “다시는 맡고 싶지 않아요”
    • 입력 2018-12-12 11:00:03
    • 수정2018-12-13 15:07:12
    취재K
지난달 인천의 한 중학생이 또래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뒤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피해자는 러시아 국적 어머니를 둔 다문화 학생 A군입니다.

다문화 학생 5%는 학교폭력 희생자

A군이 다문화 학생이라서 피해를 봤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다문화 학생들이 학교폭력에 노출돼 있는 건 사실입니다. 2015년 여성가족부 조사에서는 다문화 학생 5%가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대략 4천 명 정도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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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교실 가보셨습니까]② 학생 없어 폐교? 다문화 학생만 6년 연속 증가
[다문화 교실 가보셨습니까]④ 포기와 좌절 사이 “저도 대학가고 싶어요”


두루뭉술 전수조사, 정확한 집계 못 해

교육부는 2012년부터 1년에 2차례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전수조사지만 다문화 학생 관련 항목은 아예 없습니다. 교육부 조사인데도 다문화 '학생' 관련 내용을 알 수 없는 겁니다. 그나마 실태를 보려면 여가부가 3년마다 하는 조사를 참고해야 합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관련 법상 다문화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고 학교폭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따로 항목을 두진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 과목 10점대”

학교폭력보다 더 큰 문제는 학교수업입니다.

서울 구로지역 중학교에서 다문화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K선생님의 얘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문화 학생, 그중에서도 외국에서 나고 자라다 취학연령에 한국에 온 중도입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매우 낮다는 겁니다.

K 선생님은 "중도입국 학생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 공부가 어려워져 대부분 과목이 100점 만점에 10점대"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학업에 흥미를 잃고 학교를 겉돌게 된다고 조심스레 얘기했습니다.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외국인 가정 학생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건 다문화 학생들의 학업중단율이 한국 학생들보다 늘 높은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무너지는 교실은 한국 학생에게도 다문화 학생에게도 좋을게 없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책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요?

구글 번역기 켜놓고 상담하기도

학업 성취도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언어장벽입니다. 이에 따라 다문화 학생의 한국어 집중 교육을 위해 전국 197개 학교에서 '예비학교'가 운영 중입니다. 정규교원이 수업을 이끌면 통역강사(이중언어 강사)가 실시간으로 통역해줍니다.

그런데 2만 명 훌쩍 넘는 중도입국학생·외국인 가정 학생을 위한 통역강사는 전국에 650명 뿐입니다.

게다가 학생들 국적이 다양하다 보니 학교에 상주하는 통역강사와 학생들의 '미스매치' 현상도 생깁니다. 그래서 담임교사가 구글 번역기를 켜놓고 상담을 진행하는 웃지 못할 풍경도 연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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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있는 예비학교도 문제입니다.감사원이 전국의 예비학교 운영실태를 들여다봤습니다.

서울만 놓고 봐도 중도입국 학생이 10명이 넘는데도 예비학교를 운영하지 않는 학교가 93개나 됐습니다. 인천도 25개 학교가 이런 상황입니다. 이렇게 예비학교가 필요한데도 설치되지 않은 학교가 전국에 269개나 있었습니다.

없어도 될 예비학교를 설치한 곳도 있습니다. 인천에는 중도입국 학생이 5명도 안 되는데 예비학교를 두고 있는 학교가 네 군데나 됐습니다. 강원 지역 예비학교 8곳은 전부 중도입국 학생 10명 이하인 학교에 설치돼있습니다.

다른 부처와 정책이 중복되기도 합니다. 교육부는 2009년부터 대학생 멘토링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대학생이 다문화 학생을 찾아가 공부를 가르쳐 주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도 방문교육지도사가 다문화 가정을 방문해 1:1로 개별수업을 하는 자녀생활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사실상 똑같죠?

10년간 1,200억 투입…역차별 논란도

어쨌거나 다문화 학생을 위한 예산은 크게 늘고 있습니다. 2008년 39억 원이었던 교육부 다문화 사업 예산은 2018년 172억여 원으로 늘었습니다. 10년 새 4.4배나 커졌습니다.

예산이 늘다 보니 역차별 논란도 벌어집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무분별한 혜택을 중단해 달라는 글이 120여 개에 달합니다.


세금은 똑같이 내는데 혜택은 다문화 가정이 먼저라는 겁니다. 보육료 지원, 국공립 어린이집 0순위, 다문화 대입 전형 전부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합니다.

교사마저 “다문화학교 다신 오고 싶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 교원들마저 다문화 학생 비율 높은 지역에 부임하길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다문화 비율이 높은 학교에서 근무 중인 서울 한 초등학교의 C 선생님. "중도입국학생이 한 명 전입을 오면 학교생활이 서툰 1학년을 담임교사가 1대 1로 지도해야 하는 식"이라며 "다문화 업무를 다시는 맡고 싶지 않아 하는 분위기"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C선생님은 "다문화 정책학교로 지정되면 입소문이 나 한두 달에 한 명꼴로 추가되다 보니 일선 교사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돈은 많이 쓰지만 생활지도와 학업지도 모두 힘에 부치고 있는 상황. 힘들게 중고등학교를 통과한 다문화 학생들의 대학가는 길은 과연 순탄할까요? 다음 기사에서 다문화 학생들의 솔직한 경험담을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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