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K/단독] 200억 경복궁 복원에 ‘시멘트’…주먹구구 문화재 복원

입력 2019.01.08 (21:21) 수정 2019.01.09 (10:3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조선시대 외국 사신을 맞던 경복궁 흥복전입니다.

조선의 얼을 말살하려 한 일제가 헐고, 일본식 정원을 만들었는데, 우리 정부가 4년 전부터 복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결과 복원 과정에 시멘트를 써서 물의를 빚는가 하면, 전통기법을 곳곳에서 무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문화재 '복원'의 원칙이 무엇인지 묻게 합니다.

현장취재 K, 장혁진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4월 경복궁 흥복전 복원 공사 현장입니다.

벽체 바깥쪽에 흰 반점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시멘트가 배어 나온 것입니다.

지붕 서까래 사이사이는 아예 시멘트로 채워놓았습니다.

[흥복전 공사현장소장/지난해 4월 : "이왕에 저질러진 거는 어떻게 합니까. 감쌀 건 좀 감싸고 그렇게 합시다. 내가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사신 접견 장소였던 흥복전은 일제 강점기, 강제 철거됐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복원에 208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일제가 훼손한 경복궁의 원형을 되살린다면서, 일제가 도입한 건축재료인 시멘트를 쓴 겁니다.

복원 기준 위반입니다.

문화재표준시방서에는 벽체와 지붕에 진흙과 여물, 석회 등 천연 재료만 사용하게 돼 있습니다.

장인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문화재청은 부랴부랴 재공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시멘트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여전합니다.

[흥복전 공사 참여 장인/음성변조 : "인원이 얼마나 됐는지는 몰라도 (시멘트 완전 제거는) 어려운 얘기죠. 그게 한 두 칸도 아니고 엄청 큰 건물인데.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봐야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제보자들과 찾은 흥복전.

취재진의 거듭된 요청에 문화재청도 시료 검사에 동의했습니다.

"시멘트가 나오지 않았지만, 소량이 섞였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문주혁/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 "문화재 보수·복원에서 많이 사용하는 소석회는 일반 시멘트의 수화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멘트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에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공사 과정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다면 완공 뒤에는 부실시공을 사실상 밝히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문화재 복원 공사의 관리·감독 부실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벽에는 예정에 없던 모래가 들어갔습니다.

원래 설계에선 '회벽'으로 벽체를 마감하도록 했지만, 실제론 석회죽에 모래를 섞는 '회사벽'으로 시공한 겁니다.

회벽에 비해, 회사벽은 비교적 공정이 간단해 공사 업체 입장에선 공사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공사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문헌 자료나 의궤나 이런 것들, 자료들 보면 (벽체) 마감에 모래가 들어가 있는 걸로 나와 있거든요."]

문화재청도 공사업체 말이 맞다며, 그 근거로 논문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논문의 저자는 문화재청 해석이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이권영/동명대 건축학부 교수: "회사벽이라는 것도 그렇고 조선시대에는 실제로 사용되던 방식이 아니에요. (회사벽은) 어떤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문화재청에 다시 물었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 : "(문화재청에서 잘못 해석한 것 같다라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학계에서도 명확하게 뭐가 맞다 이렇게 아직까지 결론이 안 난 걸로 알고 있어요."]

명백한 근거가 있다고 하다가 학술적 논란이 있다고 말을 바꾼 겁니다.

시공 과정에서 벽 내부 뼈대도 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표준시방서대로 하면 세로 뼈대인 힘살과 가로 뼈대인 가시새가 들어가야 하는데 흥복전 공사 과정에선 둘 다 빠졌습니다.

[공사 감리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잘못된 건지 저희가 자문위원님들께 여쭤보고 자문을 받아서 진행을 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이제 물론 시방서대로 똑같이 하면 좋겠지만..."]

자문회의를 거쳐 설계를 변경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자문회의 참석자를 선정한 것은 공사 감리업체. 자문료도 감리업체가 지불했습니다.

[김왕직/명지대 건축학부 교수/흥복전 자문위원 : "(업체와 교수님이 연관된 사업이 있지 않습니까?) 전혀 없어요."]

하지만 취재 결과 김 교수는 이 감리업체와 수십억 원 규모의 한옥마을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김왕직/명지대 건축학부 교수/흥복전 자문위원 : "(한옥마을 사업이라고 감리업체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흥복전 복원 감리업체가) 설계했죠. (외부에서 봤을 때는 자문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 식으로. 감리업체하고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잘 아는 사무실이에요."]

공정성에 의심이 가도 별다른 제재 방법이 없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 : "하나씩 엮기 시작하면 문화재에서 관계 안 되는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겠습니까. 제척 규정 같은 건 없어요, 임의의 자문위원회예요."]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복원 관련 업체들과 자문위원 사이에 유착이 가능한 구조라고 말합니다.

[이희봉/중앙대 명예교수 : "관-학이 결합이 되어 있는 거죠. 근데 문화재 쪽이 워낙 좁다 보니까는 결국 내부자가형성이 되고… 피해자는 누구냐, 전 국민인 거죠."]

2045년까지 3천억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되는 경복궁 복원 사업.

원칙 없는 복원으로 600년 궁궐의 위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KBS 뉴스 장혁진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현장K/단독] 200억 경복궁 복원에 ‘시멘트’…주먹구구 문화재 복원
    • 입력 2019-01-08 21:31:36
    • 수정2019-01-09 10:31:34
    뉴스 9
[앵커]

조선시대 외국 사신을 맞던 경복궁 흥복전입니다.

조선의 얼을 말살하려 한 일제가 헐고, 일본식 정원을 만들었는데, 우리 정부가 4년 전부터 복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결과 복원 과정에 시멘트를 써서 물의를 빚는가 하면, 전통기법을 곳곳에서 무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문화재 '복원'의 원칙이 무엇인지 묻게 합니다.

현장취재 K, 장혁진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4월 경복궁 흥복전 복원 공사 현장입니다.

벽체 바깥쪽에 흰 반점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시멘트가 배어 나온 것입니다.

지붕 서까래 사이사이는 아예 시멘트로 채워놓았습니다.

[흥복전 공사현장소장/지난해 4월 : "이왕에 저질러진 거는 어떻게 합니까. 감쌀 건 좀 감싸고 그렇게 합시다. 내가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사신 접견 장소였던 흥복전은 일제 강점기, 강제 철거됐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복원에 208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일제가 훼손한 경복궁의 원형을 되살린다면서, 일제가 도입한 건축재료인 시멘트를 쓴 겁니다.

복원 기준 위반입니다.

문화재표준시방서에는 벽체와 지붕에 진흙과 여물, 석회 등 천연 재료만 사용하게 돼 있습니다.

장인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문화재청은 부랴부랴 재공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시멘트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여전합니다.

[흥복전 공사 참여 장인/음성변조 : "인원이 얼마나 됐는지는 몰라도 (시멘트 완전 제거는) 어려운 얘기죠. 그게 한 두 칸도 아니고 엄청 큰 건물인데.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봐야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제보자들과 찾은 흥복전.

취재진의 거듭된 요청에 문화재청도 시료 검사에 동의했습니다.

"시멘트가 나오지 않았지만, 소량이 섞였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문주혁/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 "문화재 보수·복원에서 많이 사용하는 소석회는 일반 시멘트의 수화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멘트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에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공사 과정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다면 완공 뒤에는 부실시공을 사실상 밝히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문화재 복원 공사의 관리·감독 부실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벽에는 예정에 없던 모래가 들어갔습니다.

원래 설계에선 '회벽'으로 벽체를 마감하도록 했지만, 실제론 석회죽에 모래를 섞는 '회사벽'으로 시공한 겁니다.

회벽에 비해, 회사벽은 비교적 공정이 간단해 공사 업체 입장에선 공사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공사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문헌 자료나 의궤나 이런 것들, 자료들 보면 (벽체) 마감에 모래가 들어가 있는 걸로 나와 있거든요."]

문화재청도 공사업체 말이 맞다며, 그 근거로 논문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논문의 저자는 문화재청 해석이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이권영/동명대 건축학부 교수: "회사벽이라는 것도 그렇고 조선시대에는 실제로 사용되던 방식이 아니에요. (회사벽은) 어떤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문화재청에 다시 물었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 : "(문화재청에서 잘못 해석한 것 같다라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학계에서도 명확하게 뭐가 맞다 이렇게 아직까지 결론이 안 난 걸로 알고 있어요."]

명백한 근거가 있다고 하다가 학술적 논란이 있다고 말을 바꾼 겁니다.

시공 과정에서 벽 내부 뼈대도 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표준시방서대로 하면 세로 뼈대인 힘살과 가로 뼈대인 가시새가 들어가야 하는데 흥복전 공사 과정에선 둘 다 빠졌습니다.

[공사 감리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잘못된 건지 저희가 자문위원님들께 여쭤보고 자문을 받아서 진행을 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이제 물론 시방서대로 똑같이 하면 좋겠지만..."]

자문회의를 거쳐 설계를 변경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자문회의 참석자를 선정한 것은 공사 감리업체. 자문료도 감리업체가 지불했습니다.

[김왕직/명지대 건축학부 교수/흥복전 자문위원 : "(업체와 교수님이 연관된 사업이 있지 않습니까?) 전혀 없어요."]

하지만 취재 결과 김 교수는 이 감리업체와 수십억 원 규모의 한옥마을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김왕직/명지대 건축학부 교수/흥복전 자문위원 : "(한옥마을 사업이라고 감리업체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흥복전 복원 감리업체가) 설계했죠. (외부에서 봤을 때는 자문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 식으로. 감리업체하고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잘 아는 사무실이에요."]

공정성에 의심이 가도 별다른 제재 방법이 없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 : "하나씩 엮기 시작하면 문화재에서 관계 안 되는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겠습니까. 제척 규정 같은 건 없어요, 임의의 자문위원회예요."]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복원 관련 업체들과 자문위원 사이에 유착이 가능한 구조라고 말합니다.

[이희봉/중앙대 명예교수 : "관-학이 결합이 되어 있는 거죠. 근데 문화재 쪽이 워낙 좁다 보니까는 결국 내부자가형성이 되고… 피해자는 누구냐, 전 국민인 거죠."]

2045년까지 3천억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되는 경복궁 복원 사업.

원칙 없는 복원으로 600년 궁궐의 위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KBS 뉴스 장혁진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