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가스 안전점검 부적합 통보…사진 한 장으로 바꿔준다고?

입력 2019.02.10 (07:02) 수정 2019.02.1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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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연결부 접속 불량’ 사진 한 장으로 적합 판정이 가능하다고?

최근 가스안전 점검 받은 분들 계신가요? 일상적인 가스 점검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전과 달리 부적합 시설 통보를 받고 놀라지는 않으셨는지요?

실제로 최근 가스안전 점검 부적합 사례는 늘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부적합 판정' 점검 결과에 당황한 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부적합을 적합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문의에서 미심쩍은 점이 발견됐습니다.

부적합 판정된 연통을 사진찍어 문자로 보내면 '적합'으로 바꿔 준다는 겁니다. 사진으로 판독이 가능한 걸까요?

부적합 판정을 받는 이유는 대부분 보일러 배기관의 '연결부 접속 불량'입니다. 지난해 12월 강릉 펜션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연통이 바로 연결부 접속 불량의 사례죠.

보일러 폐가스는 연통을 통해 빠져나가는데 연결 부분 마디 틈새로 일산화탄소 등 가스가 유출될 수 있습니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선 고온에 강한 내열 실리콘을 발라야 합니다. 노후 보일러는 대부분 연통 연결부에 실리콘 작업을 하지 않았거나 오래되면 떨어지거나 부식이 되는 석고붕대로만 감겨 있는 경우가 많아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부적합 판정이 아니라 엉터리 ‘적합’ 판정이 문제다

보일러 연통 부적합 처리를 받은 A 씨는 점검원에게 "내열 실리콘을 바른 뒤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적합으로 바꿔주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점검원에게 전화를 걸어 "보일러 연통을 사진만으로 확인하실 수 있냐?"라고 물었고 점검원은 "그럼요! 확대해서 보면 다 보여요."라고 답했습니다.

취재진은 내열 실리콘을 연통 앞면에만 바르고, 연결부위가 아닌 엉뚱한 곳에 대충 바른 뒤 사진 한 장을 찍어 점검원에게 보내봤습니다.
몇 시간 뒤 띵동~ 날아온 문자는 "수고하셨어요, 적합 처리 하겠습니다." 였습니다.


물론, 자기 집 보일러 연통에 내열 실리콘을 일부러 엉뚱한 곳에 바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실리콘을 정확하게 제대로 바를 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겁니다.

우선 좁은 보일러실에 의자를 밟고 올라가 일정한 간격으로 정확한 위치에 실리콘을 바르는 건 남자인 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실리콘을 힘껏 누르기 전까진 반응이 없었고 그 이후 감당할 수 없이 쏟아져 제 손은 새빨간 실리콘으로 범벅됐습니다. 특히 보이지 않고 좁은 연통 뒷부분에 실리콘을 바르는 작업은 제대로 조준하기가 쉽지 않아 손의 감각만으로 펴 발라야 했습니다.

이렇게 제대로 바르지 않은 실리콘 처리 사진 한 장이 손쉽게 '적합'(이라고 쓰고 '안전'이라고 읽는다)으로 바뀌는 가스 점검 시스템을 과연 우리는 믿고 맡겨도 되는 걸까요?


점검원 개인의 잘못이 아니야, 문제는 ‘형식적인’ 가스 안전점검 시스템

기사가 나간 뒤 누리꾼과 가스 점검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가스 점검원한테 수리까지 해 달라는 거냐?'며 보일러 시공업체가 제대로 하지 않은 걸 왜 점검원들의 잘못처럼 말하느냐는 겁니다. 심지어 연통을 '셀프수리' 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셀프수리는 본인의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리콘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이나 여성 1인 가구 등에서 직접수리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열 실리콘은 정확한 위치에 두툼하게 발라줘야 하는데 일반인이 직접 실리콘 작업을 했다가 틈이 생기면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 등으로 이어져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연통을 직접 수리해 사진으로만 적합처리를 해준다는 건 그저 안전점검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례일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도시가스 안전점검은 관련 법규에 의해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아닌 가스 공급업체에서 6개월에 한 번 실시하는 게 전부입니다. 가스를 판매할 수 있는 사업권을 얻었으니 공급업체는 안전 점검이란 의무가 생긴 겁니다. 가스 공급업체에서 가스 점검을 하는 인력은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기도 하지만 관리 지역이 넓고 가구 수도 많아 용역 업체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스 점검원 B 씨는 "도시가스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한 달 평균 가스점검을 나가는 곳이 6천~8천 세대가 넘고, 도시가스 하청 업체로 일하며 세전 월 170만 원 식대 없이 급여를 받고 일한다.”며 가스 점검원들이 얼마나 열악하게 일하는지 알아달라고 하셨습니다.

가스 안전 점검원은 한국가스안전공사 교육기관인 가스안전교육원에서 특별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5시간짜리 특별교육은 신규 종사 시 1개월 이내 신청해 받아야 하고 도시가스 공급업체에서도 자체 교육을 해야지만 교육기관에서 하는 정식 교육은 최초 1회만, 주기적인 교육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가스 안전점검은 가스 누출 여부만 보는 게 아니라 사용자 시설인 가스레인지나 보일러 연통등도 점검 대상에 포함되어 있어서 보일러 비전문가인 점검원들은 연통이 제대로 연결됐는지 찌그러지지는 않았는지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점검원들에게 도시가스 안전점검이란 무거운 짐에 이어 수리까지 맡기자는 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의약분업처럼 점검원은 보일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춰 연통 상태 이상 유무를 정확하게 진단 내려주고, 부적합 받은 연통 수리는 보일러 설비 전문가에게 맡겨 가스 안전사고 점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합니다.

문제가 됐던 해당 가스 공급업체는 기사가 나가자 부적합 받은 가정을 다시 방문해 연통 재점검을 꼼꼼히 했습니다.

늘 사고가 터진 뒤에 쏟아지는 형식적인 점검, 그리고 바로 잊히는 사고의 기억들…
소중한 학생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강릉 펜션 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가스 안전사고는 철저한 점검으로 미리 예방한다면 막을 수 있습니다.

[연관 기사] [못참겠다] “보일러 연통 알아서 고치고 사진 찍어 보내세요”…‘엉터리’ 가스 안전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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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가스 안전점검 부적합 통보…사진 한 장으로 바꿔준다고?
    • 입력 2019-02-10 07:02:11
    • 수정2019-02-10 08:29:32
    취재후·사건후
‘보일러 연결부 접속 불량’ 사진 한 장으로 적합 판정이 가능하다고?

최근 가스안전 점검 받은 분들 계신가요? 일상적인 가스 점검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전과 달리 부적합 시설 통보를 받고 놀라지는 않으셨는지요?

실제로 최근 가스안전 점검 부적합 사례는 늘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부적합 판정' 점검 결과에 당황한 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부적합을 적합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문의에서 미심쩍은 점이 발견됐습니다.

부적합 판정된 연통을 사진찍어 문자로 보내면 '적합'으로 바꿔 준다는 겁니다. 사진으로 판독이 가능한 걸까요?

부적합 판정을 받는 이유는 대부분 보일러 배기관의 '연결부 접속 불량'입니다. 지난해 12월 강릉 펜션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연통이 바로 연결부 접속 불량의 사례죠.

보일러 폐가스는 연통을 통해 빠져나가는데 연결 부분 마디 틈새로 일산화탄소 등 가스가 유출될 수 있습니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선 고온에 강한 내열 실리콘을 발라야 합니다. 노후 보일러는 대부분 연통 연결부에 실리콘 작업을 하지 않았거나 오래되면 떨어지거나 부식이 되는 석고붕대로만 감겨 있는 경우가 많아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부적합 판정이 아니라 엉터리 ‘적합’ 판정이 문제다

보일러 연통 부적합 처리를 받은 A 씨는 점검원에게 "내열 실리콘을 바른 뒤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적합으로 바꿔주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점검원에게 전화를 걸어 "보일러 연통을 사진만으로 확인하실 수 있냐?"라고 물었고 점검원은 "그럼요! 확대해서 보면 다 보여요."라고 답했습니다.

취재진은 내열 실리콘을 연통 앞면에만 바르고, 연결부위가 아닌 엉뚱한 곳에 대충 바른 뒤 사진 한 장을 찍어 점검원에게 보내봤습니다.
몇 시간 뒤 띵동~ 날아온 문자는 "수고하셨어요, 적합 처리 하겠습니다." 였습니다.


물론, 자기 집 보일러 연통에 내열 실리콘을 일부러 엉뚱한 곳에 바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실리콘을 정확하게 제대로 바를 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겁니다.

우선 좁은 보일러실에 의자를 밟고 올라가 일정한 간격으로 정확한 위치에 실리콘을 바르는 건 남자인 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실리콘을 힘껏 누르기 전까진 반응이 없었고 그 이후 감당할 수 없이 쏟아져 제 손은 새빨간 실리콘으로 범벅됐습니다. 특히 보이지 않고 좁은 연통 뒷부분에 실리콘을 바르는 작업은 제대로 조준하기가 쉽지 않아 손의 감각만으로 펴 발라야 했습니다.

이렇게 제대로 바르지 않은 실리콘 처리 사진 한 장이 손쉽게 '적합'(이라고 쓰고 '안전'이라고 읽는다)으로 바뀌는 가스 점검 시스템을 과연 우리는 믿고 맡겨도 되는 걸까요?


점검원 개인의 잘못이 아니야, 문제는 ‘형식적인’ 가스 안전점검 시스템

기사가 나간 뒤 누리꾼과 가스 점검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가스 점검원한테 수리까지 해 달라는 거냐?'며 보일러 시공업체가 제대로 하지 않은 걸 왜 점검원들의 잘못처럼 말하느냐는 겁니다. 심지어 연통을 '셀프수리' 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셀프수리는 본인의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리콘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이나 여성 1인 가구 등에서 직접수리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열 실리콘은 정확한 위치에 두툼하게 발라줘야 하는데 일반인이 직접 실리콘 작업을 했다가 틈이 생기면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 등으로 이어져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연통을 직접 수리해 사진으로만 적합처리를 해준다는 건 그저 안전점검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례일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도시가스 안전점검은 관련 법규에 의해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아닌 가스 공급업체에서 6개월에 한 번 실시하는 게 전부입니다. 가스를 판매할 수 있는 사업권을 얻었으니 공급업체는 안전 점검이란 의무가 생긴 겁니다. 가스 공급업체에서 가스 점검을 하는 인력은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기도 하지만 관리 지역이 넓고 가구 수도 많아 용역 업체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스 점검원 B 씨는 "도시가스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한 달 평균 가스점검을 나가는 곳이 6천~8천 세대가 넘고, 도시가스 하청 업체로 일하며 세전 월 170만 원 식대 없이 급여를 받고 일한다.”며 가스 점검원들이 얼마나 열악하게 일하는지 알아달라고 하셨습니다.

가스 안전 점검원은 한국가스안전공사 교육기관인 가스안전교육원에서 특별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5시간짜리 특별교육은 신규 종사 시 1개월 이내 신청해 받아야 하고 도시가스 공급업체에서도 자체 교육을 해야지만 교육기관에서 하는 정식 교육은 최초 1회만, 주기적인 교육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가스 안전점검은 가스 누출 여부만 보는 게 아니라 사용자 시설인 가스레인지나 보일러 연통등도 점검 대상에 포함되어 있어서 보일러 비전문가인 점검원들은 연통이 제대로 연결됐는지 찌그러지지는 않았는지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점검원들에게 도시가스 안전점검이란 무거운 짐에 이어 수리까지 맡기자는 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의약분업처럼 점검원은 보일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춰 연통 상태 이상 유무를 정확하게 진단 내려주고, 부적합 받은 연통 수리는 보일러 설비 전문가에게 맡겨 가스 안전사고 점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합니다.

문제가 됐던 해당 가스 공급업체는 기사가 나가자 부적합 받은 가정을 다시 방문해 연통 재점검을 꼼꼼히 했습니다.

늘 사고가 터진 뒤에 쏟아지는 형식적인 점검, 그리고 바로 잊히는 사고의 기억들…
소중한 학생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강릉 펜션 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가스 안전사고는 철저한 점검으로 미리 예방한다면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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