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업주가 억울한 것도 뻔히 보이지만…”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고백

입력 2019.02.20 (07:00) 수정 2019.02.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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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하라고 넘긴 고용노동청이나 무죄가 나왔는데도 항소한 검사나 나쁘긴 마찬가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 안 당해보면 모릅니다. 무조건 고용주를 겁박하고 위압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천지입니다."

"저도 동일한 일로 노동청에 갔었는데 자기들 골치 아픈 일은 빨리 해결하려고 너무 대충대충…. 자영업자를 무슨 악덕 업자로 만들고, 검찰에 넘어간다며 협박하더라고요."

일방적으로 일 그만둔 아르바이트생의 임금체불 신고로 벌금 처분받았다가 정식 재판에서 무죄가 된 학원 원장의 사연([못참겠다]맘대로 관둔 건 알바인데 업주에 벌금형…“제가 악덕 업주인가요?")에 달린 댓글들.

알바생의 처신을 비난하는 의견 이상으로 많았던 건 고용노동부 소속으로 노동법 관련 사법경찰권을 행사하는 '근로감독관'에 대한 성토였습니다. 사건을 검찰에 넘길지 말지를 판단하는 '처벌 여부 결정자'로서 권한이 막강한데, 그 권한을 너무 편파적으로 행사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알바생으로서야 일한 대가를 받는 게 급선무인 만큼 얼마든지 신고할 수 있다 치더라도 근로감독관은 양쪽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데, 업주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무작정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 범법자로 만들더라는 경험담이 쏟아졌습니다.

처벌 의견 안 넘기면 우리가 욕먹어요”

정말 근로감독관은 '반(反)업주 편향성'을 보이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일까. 학원 원장을 조사한 당사자인 근로감독관 A 씨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의외의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A 씨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소회"라면서 속내를 꺼내놨습니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원래 취지와 다르게 근로기준법을 악용하는 근로자도 꽤 많습니다. 사전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그만둬버리면 사업주 입장에서는 난감한 게 맞아요. 임금체불 사건에서는 실제 우리 감독관들이 사건을 하다 보면 피해자가 가해자 같고, 가해자가 피해자 같은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갑자기 일 그만두고 안 나오다가 (근로기준법상 임금 지급 기한인) 14일 지나서 돈 달라고 신고하곤 하거든요."

하지만 A 씨는 "업주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좋게 끝내라고 합의를 유도한 뒤 검찰에 안 넘기고 끝낼 수도 있는데, 그럼 또 '근로감독관이 사업주 편을 든다'고 항의하는 근로자들이 있어요. 서로 자발적 합의가 안 되면 우리로서는 업주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처벌밖엔 방법이 없을까. 과태료처럼 형벌이 아닌 조치는 없을까. A 씨는 "근로기준법 제36조(퇴직 뒤 14일 이내 임금 지급 규정)는 벌칙이 처벌밖에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근로기준법은 36조 위반에 대한 벌칙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도 노동청 의견대로 처리”

이처럼 현행 규정을 이유로 "우리는 법 위반 여부만 판단해서 검찰에 넘기는 수밖에 없다. 기소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검사가 판단할 부분"이라는 A 씨. 검찰 단계에서 추가 검토가 이뤄진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그럴까요?

"그렇지 않다"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임금체불 같은 사건들은 검찰이 노동청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합니다. 처벌 의견으로 사건이 넘어오면 추가적인 검토 없이 곧바로 약식기소를 해 벌금형이 나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근로감독관인 A 씨도 '검찰은 노동청 의견을 거의 그냥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렇다. 수사기관은 임금체불 사건을 통상 형식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기소 의견으로 넘긴 사건이 검찰에서 불기소로 뒤집히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는 것입니다.

■ ‘업주 처벌 만능주의’ 벗어나야

근로감독관 한 명이 다루는 임금체불 사건만 수백 건. 대부분 처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져 벌금형 전과자 업주만 양산되는 현실.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요?

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는 "노동청에서 어느 정도 최소한의 제3자적 시각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형식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임금체불 분쟁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검찰 송치 여부를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노동법 전문 조석영 변호사(공인노무사 겸임)도 "임금체불 사건을 모조리 형사 처분으로 걸고 넘어가서 처벌로 끝내는 건 과잉 조치"라면서 "유죄 증거가 확실하지 않을 때는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형사 재판 원칙을 감안할 때, 책임 소재가 엇갈리는 임금체불 사건에선 업주 입장을 우선 고려해 줄 필요도 있다"고 말합니다.

즉, 임금체불 신고에 대한 노동청의 '업주 처벌 만능주의'를 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입니다. "근로자와 사업주가 함께 행복해지도록 근로감독권을 공평하게 행사해 달라"는 학원 원장의 호소가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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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업주가 억울한 것도 뻔히 보이지만…”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고백
    • 입력 2019-02-20 07:00:46
    • 수정2019-02-20 09:19:21
    취재후·사건후
"기소하라고 넘긴 고용노동청이나 무죄가 나왔는데도 항소한 검사나 나쁘긴 마찬가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 안 당해보면 모릅니다. 무조건 고용주를 겁박하고 위압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천지입니다."

"저도 동일한 일로 노동청에 갔었는데 자기들 골치 아픈 일은 빨리 해결하려고 너무 대충대충…. 자영업자를 무슨 악덕 업자로 만들고, 검찰에 넘어간다며 협박하더라고요."

일방적으로 일 그만둔 아르바이트생의 임금체불 신고로 벌금 처분받았다가 정식 재판에서 무죄가 된 학원 원장의 사연([못참겠다]맘대로 관둔 건 알바인데 업주에 벌금형…“제가 악덕 업주인가요?")에 달린 댓글들.

알바생의 처신을 비난하는 의견 이상으로 많았던 건 고용노동부 소속으로 노동법 관련 사법경찰권을 행사하는 '근로감독관'에 대한 성토였습니다. 사건을 검찰에 넘길지 말지를 판단하는 '처벌 여부 결정자'로서 권한이 막강한데, 그 권한을 너무 편파적으로 행사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알바생으로서야 일한 대가를 받는 게 급선무인 만큼 얼마든지 신고할 수 있다 치더라도 근로감독관은 양쪽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데, 업주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무작정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 범법자로 만들더라는 경험담이 쏟아졌습니다.

처벌 의견 안 넘기면 우리가 욕먹어요”

정말 근로감독관은 '반(反)업주 편향성'을 보이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일까. 학원 원장을 조사한 당사자인 근로감독관 A 씨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의외의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A 씨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소회"라면서 속내를 꺼내놨습니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원래 취지와 다르게 근로기준법을 악용하는 근로자도 꽤 많습니다. 사전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그만둬버리면 사업주 입장에서는 난감한 게 맞아요. 임금체불 사건에서는 실제 우리 감독관들이 사건을 하다 보면 피해자가 가해자 같고, 가해자가 피해자 같은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갑자기 일 그만두고 안 나오다가 (근로기준법상 임금 지급 기한인) 14일 지나서 돈 달라고 신고하곤 하거든요."

하지만 A 씨는 "업주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좋게 끝내라고 합의를 유도한 뒤 검찰에 안 넘기고 끝낼 수도 있는데, 그럼 또 '근로감독관이 사업주 편을 든다'고 항의하는 근로자들이 있어요. 서로 자발적 합의가 안 되면 우리로서는 업주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처벌밖엔 방법이 없을까. 과태료처럼 형벌이 아닌 조치는 없을까. A 씨는 "근로기준법 제36조(퇴직 뒤 14일 이내 임금 지급 규정)는 벌칙이 처벌밖에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근로기준법은 36조 위반에 대한 벌칙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도 노동청 의견대로 처리”

이처럼 현행 규정을 이유로 "우리는 법 위반 여부만 판단해서 검찰에 넘기는 수밖에 없다. 기소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검사가 판단할 부분"이라는 A 씨. 검찰 단계에서 추가 검토가 이뤄진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그럴까요?

"그렇지 않다"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임금체불 같은 사건들은 검찰이 노동청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합니다. 처벌 의견으로 사건이 넘어오면 추가적인 검토 없이 곧바로 약식기소를 해 벌금형이 나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근로감독관인 A 씨도 '검찰은 노동청 의견을 거의 그냥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렇다. 수사기관은 임금체불 사건을 통상 형식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기소 의견으로 넘긴 사건이 검찰에서 불기소로 뒤집히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는 것입니다.

■ ‘업주 처벌 만능주의’ 벗어나야

근로감독관 한 명이 다루는 임금체불 사건만 수백 건. 대부분 처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져 벌금형 전과자 업주만 양산되는 현실.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요?

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는 "노동청에서 어느 정도 최소한의 제3자적 시각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형식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임금체불 분쟁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검찰 송치 여부를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노동법 전문 조석영 변호사(공인노무사 겸임)도 "임금체불 사건을 모조리 형사 처분으로 걸고 넘어가서 처벌로 끝내는 건 과잉 조치"라면서 "유죄 증거가 확실하지 않을 때는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형사 재판 원칙을 감안할 때, 책임 소재가 엇갈리는 임금체불 사건에선 업주 입장을 우선 고려해 줄 필요도 있다"고 말합니다.

즉, 임금체불 신고에 대한 노동청의 '업주 처벌 만능주의'를 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입니다. "근로자와 사업주가 함께 행복해지도록 근로감독권을 공평하게 행사해 달라"는 학원 원장의 호소가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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