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장 보내는 학부모 ‘당신도 당했다?’…승품단 심사비 피해자 14만명

입력 2019.03.18 (19:51) 수정 2019.04.03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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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대구, 부산, 강원도 태권도협회가 무단으로 승품단 심사비를 올려 받은 사실이 KBS 취재 결과 드러났다. 기간은 지난해부터 올해 2월 중순까지, 피해자만 무려 14만 명이 넘는다. 정작 피해자들은 돈을 떼인 사실조차 알 수 없다. 태권도 단체들이 심사비 내역을 일반 응시자들에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임과 재위임…복잡한 승품단 심사비 구조

응시생 한 명이 태권도 승품단 심사를 받을 때 내는 돈은 보통 15만 원에서 많게는 20만 원 안팎이다. 자신의 소속 도장에 일괄적으로 납부한다.

하지만 승품단 심사비 구조는 꽤나 복잡하다. 우선 ①발급수수료(국기원 몫) ②위임수수료(대한태권도협회 몫) ③심사 시행수수료(17개 시도 태권도협회 몫)가 있다. 발급수수료와 위임수수료는 전국 모든 응시생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단, 심사 시행수수료는 지역별로 다르다. 그리고 위 세 가지 수수료는 국기원이 결정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④소속 도장에 내는 돈도 있다. 보통 특별수련비 등의 명목으로 받는 이 돈은 심사 당일 수련생들의 이동과 안내 등을 도와주는 관장들을 위한 인건비다. ④는 국기원 승인 사항이 아니며 도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결국,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상 네 가지 항목을 합한 금액이 총 심사비가 된다.

승품단 심사는 국기원 고유의 사업이다. 그런데 국기원은 대한태권도협회(이하 대태협)에 심사 시행을 위임했다. 대태협은 다시 전국 17개 시도 태권도협회에 이를 재위임한다. 심사비 구조가 복잡한 이유다.

[다운로드] 서울/부산/대구/강원도 태권도협회 미승인 인상 현황-출처:국기원(XLS)

승인 없이 올린 심사 시행 수수료...피해자만 무려 14만여 명

서울, 대구, 부산, 강원도 태권도협회는 지난해부터 자기들 몫인 심사 시행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올려 받았다. 인상 근거에 대한 자료 제출 미비로 승인이 해를 넘길 정도로 늦어지자, 이들은 국기원에 소급적용을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기원은 지난달 14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시행수수료 인상을 승인했다. 하지만 법률 검토 끝에 소급적용은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지난해부터 올해 2월 13일 사이 서울/대구/부산/강원도 태권도협회가 인상해 받은 심사 시행수수료는 미승인 상태가 된 것이다. 강원도 태권도협회의 한 관계자는 "심사 시행수수료를 먼저 올리고 후에 승인받는 건 관행이다. 국기원이나 대태협이 지시하면 응시자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미승인 기간 해당 협회에서 승품단 심사를 받은 인원은 전국적으로 14만 4천 3백 72명이다. 여기에 무단으로 인상한 금액을 곱하면 총 피해 금액이 나온다. 서울은 4억 2천 8백여 만원(8만 2천 백 66명), 부산은 3천 4백여만 원(2만 6천 2백 88명), 대구는 1억 5천 5백여 만원(2만 5천 40명), 강원도는 1천 2백여 만원(1만 8백 78명)이다.

이른바 '선 인상, 후 승인' 관행을 모두가 따른 것도 아니다. 경남 태권도협회도 지난해 위 네 곳 협회들과 함께 시행수수료 인상을 국기원에 요청했다. 하지만 실제 올려받지는 않았다. 경남 태권도협회 전일병 전무는 "협회 살림이 많이 어렵지만 국기원으로부터 승인받지 못했기 때문에 시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태권도협회 심사비 징수 현황 자료서울시 태권도협회 심사비 징수 현황 자료

대한태권도협회가 먼저 제멋대로 심사비 인상

산하 협회를 관리해야 하는 대한태권도협회(이하 대태협)마저 국기원 승인 없이 심사비를 올려 받았던 사실도 취재과정에서 드러났다.

대태협은 2016년 8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서울 지역 승품단 심사를 직접 시행했다. 서울시 체육회가 임원 비리 혐의를 이유로 서울시 태권도협회(이하 서태협)를 관리 단체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대태협이 서태협의 심사권을 회수한 것이다.

대태협은 이 기간에 시행수수료로 3만 8천 원(1~4품 기준)을 받았다. 이는 서태협의 <심사비 징수 현황 자료>에 잘 나와 있다. 하지만 최종 승인권을 가진 국기원으로부터 승인 인상을 받지도 않았다. 1인당 3천 원 씩을 1년 넘게 제멋대로 받아온 것이다. 이종천 대태협 도장사업부장은 "인상된 3천 원은 심사비가 아니고 서태협을 대신해 심사를 진행하기 위한 운영비"라고 해명했다.


제멋대로 인상이 가능한 이유는? 심사비 비공개 때문

문제는 내지 않아도 될 돈을 낸 일반 응시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서울/대구/부산/강원도 태권도협회 모두 심사비 내역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대태협과 국기원도 마찬가지다.

국기원은 지난 2016년 5월 <태권도 심사 규정>을 개정했다. 국기원과 대태협, 17개 시도협회가 받는 각각의 몫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국기원은 3년 가까이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승품단 심사비는 태권도 단체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올해 국기원 예산 258억 원 가운데 절반 가까운 130억 원이 심사비다. 대태협도 1년 수입의 30~40%를 심사비에 의존하고 있다.

사정이 더 열악한 전국 17개 시도 협회는 의존 비율이 더 높다. 국기원의 한 관계자는 "심사비가 왜 이렇게 비싼 거냐는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면서도 "각 지역협회의 공공연한 반대로 심사비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투명한 심사비 공개...'국기' 태권도가 살 길

승품단 심사비를 둘러싼 부정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9년 경기도 태권도협회는 심사와 무관한 건립기금, 복지기금, 장학기금까지 승품단 심사비에 포함해 받다가 공정위원회에 적발됐다. 이듬해 서울시 태권도협회는 경조사비까지 심사비로 함께 걷다 과징금 5천 7백만 원 징계를 받았다. 2015년 울산시 태권도협회는 선수 육성비, 사범 복지비를 응시자들에게 징수해 역시 공정위에 적발됐다.

관장들이 협회에 내야 하는 회비를 심사비와 함께 걷는 관행도 문제다. 2010년 공정위의 시정 명령을 받고도 입금 계좌만 분리했을 뿐 응시생이 부담하는 건 여전하다. 서울시 태권도협회는 2018년 한 해 동안 승품단 심사 응시자 7만 5천2백 37명에게 1인당 1만 8백 원씩을 받았다. 무려 8억 원이 훌쩍 넘는 돈이다.

<태권도 심사 규칙>은 1972년 제정됐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위임-재위임 구조 등 여전히 손봐야 할 부분이 많다. 또, 부정 방지를 위해 국기원은 심사비 내역 공개도 즉시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개입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김성은 문체부 스포츠 유산과장은 "태권도 승품단 심사비는 국기원의 자체 수입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관여하기가 조심스럽다. 다만 심사비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평소 해당 단체들에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체부 도종환 장관은 지난해 6월 <태권도 미래 발전 전략과 정책 과제>를 발표하면서 10개 핵심 과제 중 하나로 태권도 심사 및 단증 발급 체계 개선안을 내세웠다.

태권도는 지난해 여, 야 국회의원 225명이 공동 발의한 '태권도 국기지정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법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기(國技)'로 지정된 바 있다. 

관련 리포트(2019년 3월 16일, KBS 뉴스9)
태권도 승단 심사비는 고무줄?…멋대로 걷고 멋대로 올리고
피해자만 14만여 명…승품단 심사비 비공개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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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장 보내는 학부모 ‘당신도 당했다?’…승품단 심사비 피해자 14만명
    • 입력 2019-03-18 19:51:23
    • 수정2019-04-03 07: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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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대구, 부산, 강원도 태권도협회가 무단으로 승품단 심사비를 올려 받은 사실이 KBS 취재 결과 드러났다. 기간은 지난해부터 올해 2월 중순까지, 피해자만 무려 14만 명이 넘는다. 정작 피해자들은 돈을 떼인 사실조차 알 수 없다. 태권도 단체들이 심사비 내역을 일반 응시자들에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임과 재위임…복잡한 승품단 심사비 구조 응시생 한 명이 태권도 승품단 심사를 받을 때 내는 돈은 보통 15만 원에서 많게는 20만 원 안팎이다. 자신의 소속 도장에 일괄적으로 납부한다. 하지만 승품단 심사비 구조는 꽤나 복잡하다. 우선 ①발급수수료(국기원 몫) ②위임수수료(대한태권도협회 몫) ③심사 시행수수료(17개 시도 태권도협회 몫)가 있다. 발급수수료와 위임수수료는 전국 모든 응시생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단, 심사 시행수수료는 지역별로 다르다. 그리고 위 세 가지 수수료는 국기원이 결정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④소속 도장에 내는 돈도 있다. 보통 특별수련비 등의 명목으로 받는 이 돈은 심사 당일 수련생들의 이동과 안내 등을 도와주는 관장들을 위한 인건비다. ④는 국기원 승인 사항이 아니며 도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결국,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상 네 가지 항목을 합한 금액이 총 심사비가 된다. 승품단 심사는 국기원 고유의 사업이다. 그런데 국기원은 대한태권도협회(이하 대태협)에 심사 시행을 위임했다. 대태협은 다시 전국 17개 시도 태권도협회에 이를 재위임한다. 심사비 구조가 복잡한 이유다. [다운로드] 서울/부산/대구/강원도 태권도협회 미승인 인상 현황-출처:국기원(XLS) 승인 없이 올린 심사 시행 수수료...피해자만 무려 14만여 명 서울, 대구, 부산, 강원도 태권도협회는 지난해부터 자기들 몫인 심사 시행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올려 받았다. 인상 근거에 대한 자료 제출 미비로 승인이 해를 넘길 정도로 늦어지자, 이들은 국기원에 소급적용을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기원은 지난달 14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시행수수료 인상을 승인했다. 하지만 법률 검토 끝에 소급적용은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지난해부터 올해 2월 13일 사이 서울/대구/부산/강원도 태권도협회가 인상해 받은 심사 시행수수료는 미승인 상태가 된 것이다. 강원도 태권도협회의 한 관계자는 "심사 시행수수료를 먼저 올리고 후에 승인받는 건 관행이다. 국기원이나 대태협이 지시하면 응시자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미승인 기간 해당 협회에서 승품단 심사를 받은 인원은 전국적으로 14만 4천 3백 72명이다. 여기에 무단으로 인상한 금액을 곱하면 총 피해 금액이 나온다. 서울은 4억 2천 8백여 만원(8만 2천 백 66명), 부산은 3천 4백여만 원(2만 6천 2백 88명), 대구는 1억 5천 5백여 만원(2만 5천 40명), 강원도는 1천 2백여 만원(1만 8백 78명)이다. 이른바 '선 인상, 후 승인' 관행을 모두가 따른 것도 아니다. 경남 태권도협회도 지난해 위 네 곳 협회들과 함께 시행수수료 인상을 국기원에 요청했다. 하지만 실제 올려받지는 않았다. 경남 태권도협회 전일병 전무는 "협회 살림이 많이 어렵지만 국기원으로부터 승인받지 못했기 때문에 시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태권도협회 심사비 징수 현황 자료 대한태권도협회가 먼저 제멋대로 심사비 인상 산하 협회를 관리해야 하는 대한태권도협회(이하 대태협)마저 국기원 승인 없이 심사비를 올려 받았던 사실도 취재과정에서 드러났다. 대태협은 2016년 8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서울 지역 승품단 심사를 직접 시행했다. 서울시 체육회가 임원 비리 혐의를 이유로 서울시 태권도협회(이하 서태협)를 관리 단체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대태협이 서태협의 심사권을 회수한 것이다. 대태협은 이 기간에 시행수수료로 3만 8천 원(1~4품 기준)을 받았다. 이는 서태협의 <심사비 징수 현황 자료>에 잘 나와 있다. 하지만 최종 승인권을 가진 국기원으로부터 승인 인상을 받지도 않았다. 1인당 3천 원 씩을 1년 넘게 제멋대로 받아온 것이다. 이종천 대태협 도장사업부장은 "인상된 3천 원은 심사비가 아니고 서태협을 대신해 심사를 진행하기 위한 운영비"라고 해명했다. 제멋대로 인상이 가능한 이유는? 심사비 비공개 때문 문제는 내지 않아도 될 돈을 낸 일반 응시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서울/대구/부산/강원도 태권도협회 모두 심사비 내역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대태협과 국기원도 마찬가지다. 국기원은 지난 2016년 5월 <태권도 심사 규정>을 개정했다. 국기원과 대태협, 17개 시도협회가 받는 각각의 몫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국기원은 3년 가까이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승품단 심사비는 태권도 단체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올해 국기원 예산 258억 원 가운데 절반 가까운 130억 원이 심사비다. 대태협도 1년 수입의 30~40%를 심사비에 의존하고 있다. 사정이 더 열악한 전국 17개 시도 협회는 의존 비율이 더 높다. 국기원의 한 관계자는 "심사비가 왜 이렇게 비싼 거냐는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면서도 "각 지역협회의 공공연한 반대로 심사비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투명한 심사비 공개...'국기' 태권도가 살 길 승품단 심사비를 둘러싼 부정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9년 경기도 태권도협회는 심사와 무관한 건립기금, 복지기금, 장학기금까지 승품단 심사비에 포함해 받다가 공정위원회에 적발됐다. 이듬해 서울시 태권도협회는 경조사비까지 심사비로 함께 걷다 과징금 5천 7백만 원 징계를 받았다. 2015년 울산시 태권도협회는 선수 육성비, 사범 복지비를 응시자들에게 징수해 역시 공정위에 적발됐다. 관장들이 협회에 내야 하는 회비를 심사비와 함께 걷는 관행도 문제다. 2010년 공정위의 시정 명령을 받고도 입금 계좌만 분리했을 뿐 응시생이 부담하는 건 여전하다. 서울시 태권도협회는 2018년 한 해 동안 승품단 심사 응시자 7만 5천2백 37명에게 1인당 1만 8백 원씩을 받았다. 무려 8억 원이 훌쩍 넘는 돈이다. <태권도 심사 규칙>은 1972년 제정됐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위임-재위임 구조 등 여전히 손봐야 할 부분이 많다. 또, 부정 방지를 위해 국기원은 심사비 내역 공개도 즉시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개입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김성은 문체부 스포츠 유산과장은 "태권도 승품단 심사비는 국기원의 자체 수입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관여하기가 조심스럽다. 다만 심사비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평소 해당 단체들에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체부 도종환 장관은 지난해 6월 <태권도 미래 발전 전략과 정책 과제>를 발표하면서 10개 핵심 과제 중 하나로 태권도 심사 및 단증 발급 체계 개선안을 내세웠다. 태권도는 지난해 여, 야 국회의원 225명이 공동 발의한 '태권도 국기지정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법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기(國技)'로 지정된 바 있다.  관련 리포트(2019년 3월 16일, KBS 뉴스9) 태권도 승단 심사비는 고무줄?…멋대로 걷고 멋대로 올리고 피해자만 14만여 명…승품단 심사비 비공개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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