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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망언’ 릴레이…“할 수는 있으나 하여서는 안 된다”
입력 2019.03.21 (15:08) 수정 2019.03.21 (16:13) 취재K
대학가 ‘망언’ 릴레이…“할 수는 있으나 하여서는 안 된다”
"정준영 동영상을 구해서 보려 했는데 못 구했다."

"공인이 일하는 게 힘들면 그런 게(불법촬영) 분출구가 될 수도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도 이른바 '갑분싸'가 될 수 있는 발언입니다. 이같은 발언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대학 강단에 선 교수와 강사들입니다. 각 대학 익명게시판에는 피해여성에 대한 '2차 가해'를 고려하지 않은 '망언'들을 공론화하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페이스북 한국외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제보글. 페이스북 캡처지난 19일 페이스북 한국외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제보글. 페이스북 캡처

‘성(性)인지 감수성’ 떨어지는 교단…잇단 ‘망언’ 릴레이

지난 15일,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의 한 외래강사는 수업을 진행하던 도중 "정준영 동영상을 구해서 보려 했는데 못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올린 당시 강의 녹취록에는 이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A 강사는 "1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토론과 질의를 다 할 수 없어서 앞으로 많으면 6번 정도 영화와 시사프로그램을 본다"며 "1시간 20분짜리 하나, 1시간 30분짜리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억수로 야한 걸로. '정준영 동영상'을 구해 가지고 한 번 보려고 했는데 그건 못 구하겠더라"고 웃습니다. 강의실에는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한숨 소리가 교차합니다. 그러자 A 강사는 "그게 무슨 사건이 돼서"라며 말끝을 흐립니다.

[연관기사] “정준영 동영상 못 구해 아쉽다” 대학강단서 ‘성범죄 희화화’ 논란

지난 19일에는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건물에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자신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乙(을)'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대학원 수업에서 나온 교수의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B 교수가 "버닝썬 무삭제 영상이 잘리기 전에 빨리 보라고 친구가 보낸다"면서 "평소에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날은 택시를 타고 가며 영상이 잘릴까 봐 빨리 틀어봤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같은 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도 최근 강의 도중 한 교수가 승리와 정준영을 언급하며 "이들은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라고 말했다는 익명 제보가 올라왔습니다.

제보자는 "해당 교수가 공인이 일하는 게 힘들면 그런 게(불법촬영) 분출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며 "도덕관념이 저 수준인 교수에게 강의를 들어야 한다니 기분이 나쁘다"고 밝혔습니다.

잇따르는 망언에 각 대학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동국대는 홈페이지에 올린 공식 입장을 통해 "해당 강사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며 해당 교수를 해촉했습니다. 서강대도 대자보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징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페이스북 경인교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제보글. 페이스북 캡처페이스북 경인교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제보글. 페이스북 캡처

“삼일한”…교대생도 단톡방서 여학생 성희롱 의혹

예비 교사인 교육대학교 학생들도 여론의 뭇매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교육대학교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외모를 평가하는 책자를 만들어 돌려봤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오늘(21일)은 경인교육대학교에서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성희롱이 있었다는 제보가 등장했습니다.

페이스북 경인교육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공개된 카톡 캡처사진를 보면, 15학번으로 명시된 한 남학생이 "휴가 때마다 XX랑 성관계하면서 군대 한 번 더 vs 대학 내내 성관계 안 하기"라며 특정 여학생을 성희롱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단체 카톡방에선 또 다른 남학생이 여자친구와 싸웠다고 말하자 한국 여성은 3일에 한 번씩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의미인 '삼일한'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해당 학과 남학생들은 '체육교육과 15학번 남학생 일동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올리고 해명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여성은 단순한 성적인 존재가 아닌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이지만 저희는 그것을 망각했다"며 "저희의 명백한 잘못이며 성적 발언의 대상이 되었던 피해 학우에게 꼭 사과의 표현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 14일 서울교대에서는 이 학교 국어교육과 13~18학번 남학생이 가입된 축구 소모임에서 같은 과 여학생 사진과 개인정보가 담긴 책자를 만들었다는 고충 사건이 접수됐습니다. 제보자는 책자를 가지고 신입생과 졸업생이 만나는 대면식 때 얼굴·몸매에 등급을 매기고 성희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들은 교내에 붙인 입장문을 통해 "얼굴 평가, 성희롱은 전혀 없었다"며 반박에 나섰고, 학교 측은 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등 사실관계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할 수는 있으나 하여서는 안 된다”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대자보를 붙인 작성자는 양창수 전 대법관의 교과서 일부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누구나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을 쳐다볼 수 있습니다. 위아래로 훑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선이 머무르는 곳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라면, 이로 인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자유로 인해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강의실에서 "동영상을 못 구해 아쉽다"거나 "영상이 잘리기 전에 서둘러 보려고 했다"며 농담을 던진 일부 교수와 강사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단체 카톡방에서 여학생들을 소재로 성희롱하는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입니다.
  • 대학가 ‘망언’ 릴레이…“할 수는 있으나 하여서는 안 된다”
    • 입력 2019.03.21 (15:08)
    • 수정 2019.03.21 (16:13)
    취재K
대학가 ‘망언’ 릴레이…“할 수는 있으나 하여서는 안 된다”
"정준영 동영상을 구해서 보려 했는데 못 구했다."

"공인이 일하는 게 힘들면 그런 게(불법촬영) 분출구가 될 수도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도 이른바 '갑분싸'가 될 수 있는 발언입니다. 이같은 발언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대학 강단에 선 교수와 강사들입니다. 각 대학 익명게시판에는 피해여성에 대한 '2차 가해'를 고려하지 않은 '망언'들을 공론화하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페이스북 한국외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제보글. 페이스북 캡처지난 19일 페이스북 한국외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제보글. 페이스북 캡처

‘성(性)인지 감수성’ 떨어지는 교단…잇단 ‘망언’ 릴레이

지난 15일,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의 한 외래강사는 수업을 진행하던 도중 "정준영 동영상을 구해서 보려 했는데 못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올린 당시 강의 녹취록에는 이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A 강사는 "1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토론과 질의를 다 할 수 없어서 앞으로 많으면 6번 정도 영화와 시사프로그램을 본다"며 "1시간 20분짜리 하나, 1시간 30분짜리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억수로 야한 걸로. '정준영 동영상'을 구해 가지고 한 번 보려고 했는데 그건 못 구하겠더라"고 웃습니다. 강의실에는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한숨 소리가 교차합니다. 그러자 A 강사는 "그게 무슨 사건이 돼서"라며 말끝을 흐립니다.

[연관기사] “정준영 동영상 못 구해 아쉽다” 대학강단서 ‘성범죄 희화화’ 논란

지난 19일에는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건물에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자신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乙(을)'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대학원 수업에서 나온 교수의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B 교수가 "버닝썬 무삭제 영상이 잘리기 전에 빨리 보라고 친구가 보낸다"면서 "평소에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날은 택시를 타고 가며 영상이 잘릴까 봐 빨리 틀어봤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같은 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도 최근 강의 도중 한 교수가 승리와 정준영을 언급하며 "이들은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라고 말했다는 익명 제보가 올라왔습니다.

제보자는 "해당 교수가 공인이 일하는 게 힘들면 그런 게(불법촬영) 분출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며 "도덕관념이 저 수준인 교수에게 강의를 들어야 한다니 기분이 나쁘다"고 밝혔습니다.

잇따르는 망언에 각 대학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동국대는 홈페이지에 올린 공식 입장을 통해 "해당 강사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며 해당 교수를 해촉했습니다. 서강대도 대자보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징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페이스북 경인교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제보글. 페이스북 캡처페이스북 경인교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제보글. 페이스북 캡처

“삼일한”…교대생도 단톡방서 여학생 성희롱 의혹

예비 교사인 교육대학교 학생들도 여론의 뭇매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교육대학교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외모를 평가하는 책자를 만들어 돌려봤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오늘(21일)은 경인교육대학교에서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성희롱이 있었다는 제보가 등장했습니다.

페이스북 경인교육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공개된 카톡 캡처사진를 보면, 15학번으로 명시된 한 남학생이 "휴가 때마다 XX랑 성관계하면서 군대 한 번 더 vs 대학 내내 성관계 안 하기"라며 특정 여학생을 성희롱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단체 카톡방에선 또 다른 남학생이 여자친구와 싸웠다고 말하자 한국 여성은 3일에 한 번씩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의미인 '삼일한'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해당 학과 남학생들은 '체육교육과 15학번 남학생 일동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올리고 해명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여성은 단순한 성적인 존재가 아닌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이지만 저희는 그것을 망각했다"며 "저희의 명백한 잘못이며 성적 발언의 대상이 되었던 피해 학우에게 꼭 사과의 표현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 14일 서울교대에서는 이 학교 국어교육과 13~18학번 남학생이 가입된 축구 소모임에서 같은 과 여학생 사진과 개인정보가 담긴 책자를 만들었다는 고충 사건이 접수됐습니다. 제보자는 책자를 가지고 신입생과 졸업생이 만나는 대면식 때 얼굴·몸매에 등급을 매기고 성희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들은 교내에 붙인 입장문을 통해 "얼굴 평가, 성희롱은 전혀 없었다"며 반박에 나섰고, 학교 측은 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등 사실관계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할 수는 있으나 하여서는 안 된다”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대자보를 붙인 작성자는 양창수 전 대법관의 교과서 일부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누구나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을 쳐다볼 수 있습니다. 위아래로 훑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선이 머무르는 곳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라면, 이로 인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자유로 인해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강의실에서 "동영상을 못 구해 아쉽다"거나 "영상이 잘리기 전에 서둘러 보려고 했다"며 농담을 던진 일부 교수와 강사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단체 카톡방에서 여학생들을 소재로 성희롱하는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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