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재구성②] 트럼프는 럭비공일까?

입력 2019.03.25 (07:03) 수정 2019.03.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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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지난 2번의 북미정상회담을 한마디로 말하면?

그럴듯한 답 중의 하나는 '비정상회담'일 것이다. 정상적인 정상회담처럼 예상대로 순조롭게 굴러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싱가포르 회담은 직전에 취소되는 난리를 쳤다가 우여곡절 끝에 겨우 봉합됐고, 하노이 회담은 대부분 합의서가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노딜'로 끝나고 말았다.

이 모든 야단법석의 중심에 ‘비정상의 정상’ 트럼프가 있었다. 트럼프는 마치 럭비공 같았다. 어디로 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트럼프는 정말로 럭비공일까?

이 말에 찬성할 만한 사람이 있다. 트럼프의 자서전 ‘협상의 기술’을 쓴 대필작가 토니 슈워츠다. 지난번 기사에서도 얘기했지만, 슈워츠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8개월 동안이나 트럼프를 인터뷰하고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트럼프의 재구성①] 트럼프는 정말로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을까?

트럼프 취임 첫해인 2017년 8월 슈워츠는 이런 트윗을 날렸다.


“트럼프의 대통령직은 사실상 끝났다. 그가 올해 말까지 살아남는다면 놀랄 일이다. 아마 늦어도 가을쯤엔 사임할 것이다.”

슈워츠의 논거 중 하나는 트럼프가 주의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짧은 ‘주의집중시간(short attention span)’이 트럼프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한다. 슈워츠는 트럼프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트럼프를 인터뷰했는데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트럼프를 집중하도록 유지시키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자기 자랑을 할 때만 빼고요. 2분 정도가 최대한입니다.”

그 결과가 ‘무식’이라고 슈워츠는 단언한다. 어떤 사안이든 수박 겉핥기식의 이해밖에 못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트럼프의 말은 이랬다저랬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돼 핵단추를 쥐게 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게 슈워츠의 입장이었다. 이런 트럼프에게 특검 수사가 숨통을 죄어오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처럼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는 게 슈워츠의 이른바 ‘예언’이었다. 정말로 그럴까?

트럼프는 위태위태하기는 해도 취임 2년이 넘도록 잘 버티고 있다. 자리를 보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년 재선을 노리고 있다.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미국 민주당에는 트럼프에 맞설만한 경쟁자가 별로 안 보인다.

슈워츠가 놓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우리한테는 아주 중요할 수도 있다.

슈워츠의 주장처럼 최대 2분 정도만 주의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사업가로서 성공하고(물론 힐러리 클린턴이 TV 토론에서 공격했듯이, 트럼프가 타지마할 카지노를 비롯해 무려 6번이나 부도를 낸 경력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트럼프가 성공한 사업가라는 것을 뒤집지는 못한다), TV 리얼리티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성공하고, 별 볼일 없는 군소경선후보로 출발해 마침내 미국 대통령 자리를 꿰찰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트럼프는 때로는 집요하다 싶을 정도의 집중력과 일관성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북한 문제이다. 지난해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가시화되고 있을 무렵, CNN은 20년 전 트럼프와 했던 인터뷰를 찾아내 다시 틀어주었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앵커 울프 블리처가 직접 했던 인터뷰였다. 블리처는 이 옛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지금 19년 전 트럼프와 했던 인터뷰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CNN 인터뷰에서 저한테 했던 말들을 들어보시죠. 왜냐하면, 트럼프가 그때 했던 말들은 지금 하는 말과 놀랍도록 비슷하니까요.”


1999년 11월, 50대 초반의 사업가 트럼프는 CNN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완전히 통제불능입니다. 북한과 아주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 그러고 나서 필요하다면 상당히 극단적인(drastic) 무언가를 해야 될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5년 뒤에 북한이 미국보다 많은 핵탄두와 미사일을 가지고 난 뒤에 북한 꽁무니를 쫓아다녀야 될 겁니다.”


트럼프는 이 논지를 반복했다.

“지금 개입해서 협상을 해야 하는 거죠. 지금 북한을 막지 않으면 훨씬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북한을 지금 잡지 않으면 지금부터 5년 뒤엔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될 테니까요. 그때쯤이면 북한이 미국보다 더 많은 미사일을 갖게 될 걸요. 우리(미국)는 멍청이입니다.”


북한 핵문제는 내버려두면 악화되기만 할 뿐이야, 그러니까 지금 문제를 해결해야 돼, 아무 것도 안 하고 멍때리는 게 답이냐? 북한이 핵을 더 가지고 나서 대화하자고 할래? 지금 가서 대화해, 이 바보들아! 이게 트럼프의 말이었다.

CNN 울프 블리처가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이 일방적인 행동을 취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제대로 제의를 한다면, ‘제대로’ 말입니다, 북한은 대화에 응할 겁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볼까요. 클린턴 대통령이 이른바 미국의' 무역 파트너'들한테 대화를 하자고 했어요. 무역적자가 공정한지를 놓고 재협상하자고요. 그 무역파트너들은 협상 테이블에 안 나왔어요. 안 나오겠대요.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이 뭐하러 협상 테이블에 나오겠어요? 매년 미국을 잘 뜯어먹고 있는데, 협상테이블에 왜 나오겠어요? 웃기는 일이죠.”


말로만 협상하자고 제의하는 건 제대로 제의한 게 아니다, 상대가 꼼짝 못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만들어야지, 이 바보들아! 이게 트럼프의 말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지금 우리는 북한 핵문제가 트럼프가 예상했던 대로 악화일로를 걸었다는 걸 알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압박했다. 이른바 ‘최대압박’으로 불리는 초고강도 대북제재였다. 그리고 북한은 대화 테이블로 나왔다.

여기서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트럼프는 럭비공인가? 트럼프의 말에는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가? 20년 전 인터뷰를 보여주고 나서 CNN 울프 블리처는 말했다.

“1999년 11월에 했던 말인데, 꼭 어제 한 말 같네요.”


트럼프의 주의집중시간은 최대 2분인가? 적어도 북한 핵문제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트럼프의 주의집중시간은 최소 20년이다.

그렇다면 슈워츠가 30여 년 전에 봤다는, 2분 이상 집중도 못하고, 도무지 일관성이 없는 트럼프는?


어쩌면 슈워츠의 말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슈워츠는 트럼프가 화를 낼 때조차 계산적으로 화를 냈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집중력이 없고 일관성이 없어보였다면, 이것도 계산적으로, 즉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16년 7월, 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한창 달아올랐을 때 슈워츠는 ‘뉴요커’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트럼프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뉴요커’지 기사 중 몇 대목 옮겨보자.

“방금 ‘뉴요커’지 기자랑 통화했어. 아무도 안 읽어보는 그 한심한 잡지 있잖아. 그런데 당신이 나한테 비판적이라고 하더군.”

슈워츠는 슈워츠답게 대답했다.

“당신은 대통령이 되려는 거잖아요? ... 저는 당신이 말하고 있는 많은 부분들에 대해 동의할 수가 없어요.”

트럼프는 트럼프답게 말했다.

“그건 당신 권리야. 하지만 당신은 좀 조용히 있어야 돼. 난 그냥 당신이 아주 불충하다(disloyal)는 걸 말해주고 싶어. 나 아니었으면 당신은 지금 그 자리에 없었을 거야. 그 책을 쓰겠다는 사람들은 많았어. 그런데 내가 당신을 고른 거야. 난 당신한테 너그럽게 대해준 거라고. 당신이 ‘협상의 기술’ 책을 이용해서 연설도 하고 강연도 많이 한 거 다 알아. 당신을 고소할 수도 있었지만 난 안 그랬어.”

30년 전 트럼프가 슈워츠에게 보여준 태도는 이랬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내가 당신한테 돈 줬으니까 책은 당신이 알아서 써. 인터뷰가 필요하면 응해주겠지만, 너무 귀찮게 하지는 마.’

지금으로선 이게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 같다. 슈워츠가 봤던 트럼프는 물론 진짜 트럼프의 일면이었겠지만 트럼프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트럼프는 럭비공일 때가 있고, 럭비공이 아닐 때가 있다. 트럼프가 하는 말에는 그냥 하는 소리도 있지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일관성 있는 말들이 있다. 어렵겠지만 트럼프의 말과 행동에서 일관성을 찾아내는 일이 오늘날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그게 왜 그리 중요할까? 20년 전 트럼프가 했던 말들을 다시 떠올려 보자. 트럼프가 대통령도 아니고 공직자도 아닐 때에 순수한 민간인으로서 내뱉었던 말들이다. 감출 것도 없었고, 숨길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그 말들이 실현되었다. 딱 하나만 빼고.....

“북한과 아주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 그러고 나서 필요하다면 상당히 극단적인(drastic) 무언가를 해야 될 겁니다.”

‘상당히 극단적인 무언가’, 이게 무슨 뜻인가? 상당히 무서운 말이다.

20년 전 이 말이 지금도 유효할까? 미국과 북한 사이에 험악한 말들이 오가던 시절 트럼프가 날렸던 트위터를 보면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나한테도 핵단추가 있다. 그러나 훨씬 크고 강력하다.”

비핵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핵공격까지는 아니겠지만, 다음 수순은 극단적일 가능성이 있다. 절대 남의 얘기로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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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재구성②] 트럼프는 럭비공일까?
    • 입력 2019-03-25 07:03:15
    • 수정2019-03-25 07:05:13
    취재K
퀴즈! 지난 2번의 북미정상회담을 한마디로 말하면? 그럴듯한 답 중의 하나는 '비정상회담'일 것이다. 정상적인 정상회담처럼 예상대로 순조롭게 굴러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싱가포르 회담은 직전에 취소되는 난리를 쳤다가 우여곡절 끝에 겨우 봉합됐고, 하노이 회담은 대부분 합의서가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노딜'로 끝나고 말았다. 이 모든 야단법석의 중심에 ‘비정상의 정상’ 트럼프가 있었다. 트럼프는 마치 럭비공 같았다. 어디로 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트럼프는 정말로 럭비공일까? 이 말에 찬성할 만한 사람이 있다. 트럼프의 자서전 ‘협상의 기술’을 쓴 대필작가 토니 슈워츠다. 지난번 기사에서도 얘기했지만, 슈워츠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8개월 동안이나 트럼프를 인터뷰하고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트럼프의 재구성①] 트럼프는 정말로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을까? 트럼프 취임 첫해인 2017년 8월 슈워츠는 이런 트윗을 날렸다. “트럼프의 대통령직은 사실상 끝났다. 그가 올해 말까지 살아남는다면 놀랄 일이다. 아마 늦어도 가을쯤엔 사임할 것이다.” 슈워츠의 논거 중 하나는 트럼프가 주의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짧은 ‘주의집중시간(short attention span)’이 트럼프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한다. 슈워츠는 트럼프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트럼프를 인터뷰했는데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트럼프를 집중하도록 유지시키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자기 자랑을 할 때만 빼고요. 2분 정도가 최대한입니다.” 그 결과가 ‘무식’이라고 슈워츠는 단언한다. 어떤 사안이든 수박 겉핥기식의 이해밖에 못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트럼프의 말은 이랬다저랬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돼 핵단추를 쥐게 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게 슈워츠의 입장이었다. 이런 트럼프에게 특검 수사가 숨통을 죄어오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처럼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는 게 슈워츠의 이른바 ‘예언’이었다. 정말로 그럴까? 트럼프는 위태위태하기는 해도 취임 2년이 넘도록 잘 버티고 있다. 자리를 보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년 재선을 노리고 있다.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미국 민주당에는 트럼프에 맞설만한 경쟁자가 별로 안 보인다. 슈워츠가 놓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우리한테는 아주 중요할 수도 있다. 슈워츠의 주장처럼 최대 2분 정도만 주의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사업가로서 성공하고(물론 힐러리 클린턴이 TV 토론에서 공격했듯이, 트럼프가 타지마할 카지노를 비롯해 무려 6번이나 부도를 낸 경력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트럼프가 성공한 사업가라는 것을 뒤집지는 못한다), TV 리얼리티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성공하고, 별 볼일 없는 군소경선후보로 출발해 마침내 미국 대통령 자리를 꿰찰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트럼프는 때로는 집요하다 싶을 정도의 집중력과 일관성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북한 문제이다. 지난해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가시화되고 있을 무렵, CNN은 20년 전 트럼프와 했던 인터뷰를 찾아내 다시 틀어주었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앵커 울프 블리처가 직접 했던 인터뷰였다. 블리처는 이 옛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지금 19년 전 트럼프와 했던 인터뷰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CNN 인터뷰에서 저한테 했던 말들을 들어보시죠. 왜냐하면, 트럼프가 그때 했던 말들은 지금 하는 말과 놀랍도록 비슷하니까요.” 1999년 11월, 50대 초반의 사업가 트럼프는 CNN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완전히 통제불능입니다. 북한과 아주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 그러고 나서 필요하다면 상당히 극단적인(drastic) 무언가를 해야 될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5년 뒤에 북한이 미국보다 많은 핵탄두와 미사일을 가지고 난 뒤에 북한 꽁무니를 쫓아다녀야 될 겁니다.” 트럼프는 이 논지를 반복했다. “지금 개입해서 협상을 해야 하는 거죠. 지금 북한을 막지 않으면 훨씬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북한을 지금 잡지 않으면 지금부터 5년 뒤엔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될 테니까요. 그때쯤이면 북한이 미국보다 더 많은 미사일을 갖게 될 걸요. 우리(미국)는 멍청이입니다.” 북한 핵문제는 내버려두면 악화되기만 할 뿐이야, 그러니까 지금 문제를 해결해야 돼, 아무 것도 안 하고 멍때리는 게 답이냐? 북한이 핵을 더 가지고 나서 대화하자고 할래? 지금 가서 대화해, 이 바보들아! 이게 트럼프의 말이었다. CNN 울프 블리처가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이 일방적인 행동을 취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제대로 제의를 한다면, ‘제대로’ 말입니다, 북한은 대화에 응할 겁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볼까요. 클린턴 대통령이 이른바 미국의' 무역 파트너'들한테 대화를 하자고 했어요. 무역적자가 공정한지를 놓고 재협상하자고요. 그 무역파트너들은 협상 테이블에 안 나왔어요. 안 나오겠대요.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이 뭐하러 협상 테이블에 나오겠어요? 매년 미국을 잘 뜯어먹고 있는데, 협상테이블에 왜 나오겠어요? 웃기는 일이죠.” 말로만 협상하자고 제의하는 건 제대로 제의한 게 아니다, 상대가 꼼짝 못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만들어야지, 이 바보들아! 이게 트럼프의 말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지금 우리는 북한 핵문제가 트럼프가 예상했던 대로 악화일로를 걸었다는 걸 알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압박했다. 이른바 ‘최대압박’으로 불리는 초고강도 대북제재였다. 그리고 북한은 대화 테이블로 나왔다. 여기서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트럼프는 럭비공인가? 트럼프의 말에는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가? 20년 전 인터뷰를 보여주고 나서 CNN 울프 블리처는 말했다. “1999년 11월에 했던 말인데, 꼭 어제 한 말 같네요.” 트럼프의 주의집중시간은 최대 2분인가? 적어도 북한 핵문제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트럼프의 주의집중시간은 최소 20년이다. 그렇다면 슈워츠가 30여 년 전에 봤다는, 2분 이상 집중도 못하고, 도무지 일관성이 없는 트럼프는? 어쩌면 슈워츠의 말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슈워츠는 트럼프가 화를 낼 때조차 계산적으로 화를 냈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집중력이 없고 일관성이 없어보였다면, 이것도 계산적으로, 즉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16년 7월, 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한창 달아올랐을 때 슈워츠는 ‘뉴요커’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트럼프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뉴요커’지 기사 중 몇 대목 옮겨보자. “방금 ‘뉴요커’지 기자랑 통화했어. 아무도 안 읽어보는 그 한심한 잡지 있잖아. 그런데 당신이 나한테 비판적이라고 하더군.” 슈워츠는 슈워츠답게 대답했다. “당신은 대통령이 되려는 거잖아요? ... 저는 당신이 말하고 있는 많은 부분들에 대해 동의할 수가 없어요.” 트럼프는 트럼프답게 말했다. “그건 당신 권리야. 하지만 당신은 좀 조용히 있어야 돼. 난 그냥 당신이 아주 불충하다(disloyal)는 걸 말해주고 싶어. 나 아니었으면 당신은 지금 그 자리에 없었을 거야. 그 책을 쓰겠다는 사람들은 많았어. 그런데 내가 당신을 고른 거야. 난 당신한테 너그럽게 대해준 거라고. 당신이 ‘협상의 기술’ 책을 이용해서 연설도 하고 강연도 많이 한 거 다 알아. 당신을 고소할 수도 있었지만 난 안 그랬어.” 30년 전 트럼프가 슈워츠에게 보여준 태도는 이랬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내가 당신한테 돈 줬으니까 책은 당신이 알아서 써. 인터뷰가 필요하면 응해주겠지만, 너무 귀찮게 하지는 마.’ 지금으로선 이게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 같다. 슈워츠가 봤던 트럼프는 물론 진짜 트럼프의 일면이었겠지만 트럼프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트럼프는 럭비공일 때가 있고, 럭비공이 아닐 때가 있다. 트럼프가 하는 말에는 그냥 하는 소리도 있지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일관성 있는 말들이 있다. 어렵겠지만 트럼프의 말과 행동에서 일관성을 찾아내는 일이 오늘날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그게 왜 그리 중요할까? 20년 전 트럼프가 했던 말들을 다시 떠올려 보자. 트럼프가 대통령도 아니고 공직자도 아닐 때에 순수한 민간인으로서 내뱉었던 말들이다. 감출 것도 없었고, 숨길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그 말들이 실현되었다. 딱 하나만 빼고..... “북한과 아주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 그러고 나서 필요하다면 상당히 극단적인(drastic) 무언가를 해야 될 겁니다.” ‘상당히 극단적인 무언가’, 이게 무슨 뜻인가? 상당히 무서운 말이다. 20년 전 이 말이 지금도 유효할까? 미국과 북한 사이에 험악한 말들이 오가던 시절 트럼프가 날렸던 트위터를 보면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나한테도 핵단추가 있다. 그러나 훨씬 크고 강력하다.” 비핵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핵공격까지는 아니겠지만, 다음 수순은 극단적일 가능성이 있다. 절대 남의 얘기로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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