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재구성③] 볼턴, 이 남자가 사는 법

입력 2019.04.03 (16:57) 수정 2019.04.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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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 이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오늘따라 콧수염이 유난히 작아 보이는 저 사람이?

트럼프를 움직일 시도를 하려면, 이 정도 비주얼은 돼줘야 한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전임자였던 맥마스터 장군은 콜린 파월 이후 현직 군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은 인물이다. 경험이면 경험, 학식이면 학식, 신망이면 신망, 거의 콜린 파월급이다. 트럼프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맥마스터가 ‘트럼프 백악관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맥마스터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같은 험지에서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며 전투지휘관으로서, 전략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동시에 문무를 겸비한 ‘군인 학자(warrior-scholar)’로도 불린다.

소령 시절인 1999년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베트남전의 실패를 분석한 베스트셀러를 썼는데 그 제목이 ‘직무유기’였다. 유명한 대목을 옮겨보면,

“베트남전은 전쟁터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 베트남전은 워싱턴 D.C.에서 패배했다. ...... 그것은 순전히 인재였는데, 그 책임은 존슨 대통령과 그의 주요 보좌관들이 나눠져야 한다.”

존슨 대통령과 그의 보좌진들에겐 직격탄이었다. 오만과 나약함, 사리사욕 때문에 미국을 잘못된 전쟁으로 몰아넣은 대통령과 그 보좌진들의 ‘직무유기’를 질타했다.

이런 사람이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됐다. 썼던 책으로 보나 강골 기질로 보나, 직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예상했던 대로, 맥마스터가 러시아와 북한, 이란 문제에서 트럼프와 이견을 보인다는 뉴스들이 흘러나왔다. 우파 싱크탱크들이 가세해 맥마스터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런 트윗을 날렸다.


“2018년 4월 9일부로 존 볼턴이 새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거라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동안 훌륭하게 일해온 맥마스터 장군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언제나 제 친구로 남을 겁니다. 공식 인수인계 일자는 4월 9일입니다.”

트럼프는 트윗 한 방을 날리면서 맥마스터를 날렸다.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일주일쯤 전에는 같은 방식으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날렸다.


국무장관이 어떤 자리인가? 미국엔 따로 권력서열이란 게 없지만, 대통령 승계서열은 있다. 국무장관은 대통령 승계서열 4위다.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승계하고, 부통령도 유고가 되면 하원의장이, 하원의장마저 유고가 되면 국무장관이 대통령을 승계한다. 대통령 승계서열 4위를 트윗 한 방으로 날리는 트럼프는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t)’이다.

강골들은 트럼프 옆에 오래 붙어있기 어렵다. 그렇다면 볼턴은? 소신으로 말하자면 볼턴도 맥마스터 못지않다. 맥마스터의 자리를 물려받기 한 달 전, 민간인 볼턴은 폭스 뉴스에 출연해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을 드러냈다.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질문, ‘북한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정답, ‘입술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 북한은 시간을 벌려고 하고 있어요. 석 달이건, 여섯 달이건, 열두 달이건 최종 결승점을 통과할 때까지 필요한 시간 말입니다.”

딱 한 마디, ‘거짓말’로 북한을 낙인 찍어버린다.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후에도 이런 소신을 이어갔다.

“(김정은이 무기들을 포기해야 미국이 모종의 양보를 할 수 있나요?) 맞습니다. 우리는 2003년, 2004년 리비아 모델을 검토중입니다.”


리비아 모델이란 모든 핵물질을 미국에 넘기고 제재완화를 얻는 것이다. 리비아는 미국에 핵물질을 넘기고 제재완화를 얻었지만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카다피는 반군을 피해 달아났다가 살해당했다. 그 과정에서 다국적군의 공습이 있었고 그 배후에 미국이 있었다.

한 달 뒤면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데, 북한 입장에선 체제보장이 제일 중요한데, 미국의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이 핏빛 리비아 모델을 말하고 있었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1부상은 성명을 내고 ‘망발’이라며 반발했다.

그리고 며칠 뒤 트럼프는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했다. 어느 기자가 물었다.

“북한은 볼턴의 리비아식 비핵화 발언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죠. 네, 리비아 모델은 북한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모델이 아닙니다. 우리는 리비아에서 내전상황을 유도했어요. 그 나라는 내전으로 붕괴됐어요(decimated). 카다피를 지켜주겠다는 합의는 없었죠. 리비아 모델은 아주 다른 협상이었습니다. 김정은의 경우는 그 자리에 있을 거고, 자기 나라에 있게 될 거고, 그 나라를 운영하게 될 겁니다. 그의 나라는 아주 부유해질 겁니다.”


‘decimate’의 앞부분 ‘decem’은 라틴어로 ‘10’을 의미한다. 로마 규율에 따르면, 반란 같은 중대범죄 참가한 군대가 있으면 병사들 전원을 처형하는 게 아니라 추첨으로 10분의 1을 뽑아서 나머지 병사들이 이들의 처형을 집행하게 한다. 트럼프는 이 후덜덜한 단어를 앉은 자리에서 7~8번이나 썼다.

그러니까 트럼프의 말은 미국이 리비아 반군을 지원했고, 그 반군들이 카다피를 제거했다는 말이다. 다만, 리비아의 경우 미국이 카다피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이 없었지만, 김정은의 경우는 그것과 정반대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반대입니다. 제 생각에 존 볼턴의 발언은 문제가 생겼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내버려둘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게 볼턴 발언의 의도였습니다. 그것과 정반대죠.”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볼턴을 묵살(rebuff)했다고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가 이 말을 할 때, 바로 뒤에 볼턴이 서 있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이 사람의 기분이 좋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기자들과 카메라들 앞에서, 나토 사무총장도 보고 있는데,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 그리고 당사자인 자신이 뒤에서 빤히 보고 있는데, 보스가 자신의 발언을 180도 뒤집었다.

그렇다면 볼턴의 선택은? 맥마스터처럼?

볼턴은 그냥 그대로 있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익명의 백악관 참모들을 취재해 쓴 기사의 한 대목은 이렇다.

“대통령보다 몇 시간 일찍 출근해, 보통 사무실 문을 닫아놓은 채 그날 신문과 일일 정보보고를 탐독한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출이 있으면 대통령 집무실까지 전력 질주하곤 했다.” (3.4자 워싱턴포스트)

볼턴은 물론 소신 발언을 잘하는 사람이지만, 맥마스터 같은 강골은 못 된다.

그리고 9달이 흘러,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났다. 언론들은 또 볼턴을 지목했다. 마지막 확대회담에 볼턴이 끼어들어 판을 깼다는 것이었다. 볼턴이 트럼프를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들이 다시 흘러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이런 추측을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어준 게 있다. 하노이 회담 직후 볼턴이 TV에 잇따라 출연해 마치 트럼프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볼턴이 지난 몇 달 동안 트럼프를 움직이는 위치로 올라선 것일까?

볼턴은 하노이 회담 직후인 지난달 초 CBS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전에도 말했는데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저는 국가안보 ‘보좌관(adviser)’이지 국가안보 ‘의사결정자(decision maker)’가 아닙니다.”

앵커 마가렛 브레넌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볼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과거의 소신 발언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는 듯이 물었다.

“당신의 과거 견해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요.”

“보통은 제가 쓴 거죠. 저는 과거에 쓴 글들이 많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당신은 회의적이지 않았나요?”

“말씀드린 것처럼 제 견해는 다 공개돼 있고 누구나 찾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저의 일은 대통령을 돕고 조언하는 겁니다. 제가 조언을 하면 대통령이 결정을 하는 거죠.”

“분명히 하고 싶은데요,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더 이상 ‘정권교체’를 지지하지 않나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그게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정권교체’는 볼턴이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꺼냈다가 트럼프에게 혼났던 리비아 모델과 직결된다. 북한 ‘정권교체’는 볼턴의 오랜 소신이었다. 그런데 볼턴은 그 소신을 접은 사람처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보좌관(advisor)’일뿐 ‘의사결정자(decision maker)’가 아니라는 이유를 댄다.

맥마스터라면 이걸 ‘직무유기’라고 불렀을 것이다. 보좌진들의 직무유기로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했고, 그것이 베트남전이라는 재앙을 불렀다는 것이 맥마스터의 소신이었다.

볼턴의 말은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해서 재앙이 일어나도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미꾸라지 비린내가 확 풍긴다. 볼턴이 트럼프를 움직이는 걸까? 이것은 차라리 ‘이 남자가 사는 법’에 가깝다.


적어도 북한 문제에서 볼턴은 ‘의사결정자’와 거리가 멀다. 하노이 회담 직후에 나온 워싱턴 포스트 기사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볼턴이 부임한 지 1년이 돼 가고 있는데, 볼턴이 재임 기간에 대한 평가는 그의 영향력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북한 정책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사례에서는 한계(its limits)를 보여준다.”

볼턴이 입김이 커진 건 맞다. 그러나 볼턴의 영향력은 시리아 문제 같은 중동문제에서 두드러졌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는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나 매티스 국방장관처럼 트럼프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던 인물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볼턴의 영향력이 증대되었다고 분석한다. 이것은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들보다 목소리가 크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번 기사에서 다뤘지만, 북한 이슈는 트럼프가 20년 전부터 구상해온 전형적인‘트럼프의 의제’이다.

[연관기사] [트럼프의 재구성②] 트럼프는 럭비공일까?

여기에 볼턴이 끼어들 여지는 많지 않다. 그것이 볼턴 영향력의 ‘한계(its limits)’이다. ‘트럼프의 의제’를 ‘자신들의 의제’로 바꿔보려 했던 틸러슨 국무장관이나 매티스 국방장관은 그 자리에 붙어있질 못했다. 트럼프가 자주 쓰는 말은 ‘충성심(loyalty)’이니까. 볼턴은 보스가 그어놓은 한계선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볼턴이 하노이 회담 직후, TV에 잇따라 출연해 했던 말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인터뷰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반복되는 말들이 있다. FOX TV 앵커의 첫 질문은 이랬다.

“실패한 베트남 정상회담 이후에 미국과 북한의 외교는 어디에 와 있는 겁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겁니까?”

“저는 실패한 정상회담이라는 것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의무는 미국의 국익을 지키고 증진시키는 것인데, 대통령은 바로 그걸 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쁜 딜(Bad Deal)을 거부하고 김정은에게 빅딜(Big Deal)을 받아들이라고 거듭 설득했습니다. 그러면 북한이 변화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대통령은 때로는 협상장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게 또 그와 협상하는 다른 나라들에게 자신은 Deal을 성사시키려고 안달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거죠. 북한이든 누구든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반한다면 말입니다.”

볼턴은 이 이야기를 하느라 정작 앵커의 질문에는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앵커는 1분쯤 지나서야 이걸 알아차렸다며 멋쩍게 웃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당신은 제 첫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요, 허허허”


볼턴은 트럼프를 어떤 상황에서도 국익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국익의 수호신’으로 묘사한다. ABC, CBS, CNN 등 다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질문을 해도 볼턴은 이 대답부터 말한다. 마치 이 이야기를 하려고 작심하고 TV에 나온 사람처럼.

당시는 미국 뉴스의 초점이 온통 ‘러시아 내통 의혹’에 쏠려 있었다. 뮬러 특검의 수사보고서가 법무부로 넘어간 상태였고, 법무부가 이를 공개하느냐 마느냐가 초미의 관심이었다. 게다가 트럼프의 개인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청문회에 나와 트럼프의 약점을 폭로하고 있었다.

볼턴은 국가안보보좌관이니까 그의 발언은 물론 외교정책에 관한 발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볼턴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트럼프는 국익을 해치면서 러시아와 내통할 사람이 아니다’였을 수도 있다. 이렇게 국익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대통령을 헐뜯는 사람들은 정말 몹쓸 사람들이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이 민주당이라는 말은 안 했지만......

공교롭게도 이런 메시지는 하노이 회담 직후 트럼프가 견지해온 태도와 일치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트럼프는 이런 트윗을 날렸다.


“북한과 아주 중요한 핵협상이 벌어지고 있을 때, 유죄판결을 받은 뻥쟁이 사기꾼을 공개 청문회에서 불러놓고 증언을 시킨 민주당은 저질 정치의 신기원을 열었다. 아마 이게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는데 기여했을 수도 있지. 대통령이 해외에 나간 동안 이런 적은 없었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코언 청문회 때문에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트윗은 트럼프의 머릿속에서 북한과의 협상이 국내정치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렇지 않겠는가? 원래부터 외교정책은 국내정치의 연장이다. 트럼프의 경우는 그게 훨씬 노골적이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예측하기 위해서 우리는 볼턴의 입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가? 많은 증거들이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대신, 트럼프의 국내 정치를 보라고 말한다. 트럼프의 '표'를 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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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재구성③] 볼턴, 이 남자가 사는 법
    • 입력 2019-04-03 16:57:24
    • 수정2019-04-03 17:40:24
    취재K
저 사람이 이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오늘따라 콧수염이 유난히 작아 보이는 저 사람이? 트럼프를 움직일 시도를 하려면, 이 정도 비주얼은 돼줘야 한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전임자였던 맥마스터 장군은 콜린 파월 이후 현직 군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은 인물이다. 경험이면 경험, 학식이면 학식, 신망이면 신망, 거의 콜린 파월급이다. 트럼프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맥마스터가 ‘트럼프 백악관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맥마스터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같은 험지에서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며 전투지휘관으로서, 전략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동시에 문무를 겸비한 ‘군인 학자(warrior-scholar)’로도 불린다. 소령 시절인 1999년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베트남전의 실패를 분석한 베스트셀러를 썼는데 그 제목이 ‘직무유기’였다. 유명한 대목을 옮겨보면, “베트남전은 전쟁터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 베트남전은 워싱턴 D.C.에서 패배했다. ...... 그것은 순전히 인재였는데, 그 책임은 존슨 대통령과 그의 주요 보좌관들이 나눠져야 한다.” 존슨 대통령과 그의 보좌진들에겐 직격탄이었다. 오만과 나약함, 사리사욕 때문에 미국을 잘못된 전쟁으로 몰아넣은 대통령과 그 보좌진들의 ‘직무유기’를 질타했다. 이런 사람이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됐다. 썼던 책으로 보나 강골 기질로 보나, 직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예상했던 대로, 맥마스터가 러시아와 북한, 이란 문제에서 트럼프와 이견을 보인다는 뉴스들이 흘러나왔다. 우파 싱크탱크들이 가세해 맥마스터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런 트윗을 날렸다. “2018년 4월 9일부로 존 볼턴이 새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거라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동안 훌륭하게 일해온 맥마스터 장군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언제나 제 친구로 남을 겁니다. 공식 인수인계 일자는 4월 9일입니다.” 트럼프는 트윗 한 방을 날리면서 맥마스터를 날렸다.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일주일쯤 전에는 같은 방식으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날렸다. 국무장관이 어떤 자리인가? 미국엔 따로 권력서열이란 게 없지만, 대통령 승계서열은 있다. 국무장관은 대통령 승계서열 4위다.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승계하고, 부통령도 유고가 되면 하원의장이, 하원의장마저 유고가 되면 국무장관이 대통령을 승계한다. 대통령 승계서열 4위를 트윗 한 방으로 날리는 트럼프는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t)’이다. 강골들은 트럼프 옆에 오래 붙어있기 어렵다. 그렇다면 볼턴은? 소신으로 말하자면 볼턴도 맥마스터 못지않다. 맥마스터의 자리를 물려받기 한 달 전, 민간인 볼턴은 폭스 뉴스에 출연해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을 드러냈다.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질문, ‘북한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정답, ‘입술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 북한은 시간을 벌려고 하고 있어요. 석 달이건, 여섯 달이건, 열두 달이건 최종 결승점을 통과할 때까지 필요한 시간 말입니다.” 딱 한 마디, ‘거짓말’로 북한을 낙인 찍어버린다.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후에도 이런 소신을 이어갔다. “(김정은이 무기들을 포기해야 미국이 모종의 양보를 할 수 있나요?) 맞습니다. 우리는 2003년, 2004년 리비아 모델을 검토중입니다.” 리비아 모델이란 모든 핵물질을 미국에 넘기고 제재완화를 얻는 것이다. 리비아는 미국에 핵물질을 넘기고 제재완화를 얻었지만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카다피는 반군을 피해 달아났다가 살해당했다. 그 과정에서 다국적군의 공습이 있었고 그 배후에 미국이 있었다. 한 달 뒤면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데, 북한 입장에선 체제보장이 제일 중요한데, 미국의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이 핏빛 리비아 모델을 말하고 있었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1부상은 성명을 내고 ‘망발’이라며 반발했다. 그리고 며칠 뒤 트럼프는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했다. 어느 기자가 물었다. “북한은 볼턴의 리비아식 비핵화 발언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죠. 네, 리비아 모델은 북한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모델이 아닙니다. 우리는 리비아에서 내전상황을 유도했어요. 그 나라는 내전으로 붕괴됐어요(decimated). 카다피를 지켜주겠다는 합의는 없었죠. 리비아 모델은 아주 다른 협상이었습니다. 김정은의 경우는 그 자리에 있을 거고, 자기 나라에 있게 될 거고, 그 나라를 운영하게 될 겁니다. 그의 나라는 아주 부유해질 겁니다.” ‘decimate’의 앞부분 ‘decem’은 라틴어로 ‘10’을 의미한다. 로마 규율에 따르면, 반란 같은 중대범죄 참가한 군대가 있으면 병사들 전원을 처형하는 게 아니라 추첨으로 10분의 1을 뽑아서 나머지 병사들이 이들의 처형을 집행하게 한다. 트럼프는 이 후덜덜한 단어를 앉은 자리에서 7~8번이나 썼다. 그러니까 트럼프의 말은 미국이 리비아 반군을 지원했고, 그 반군들이 카다피를 제거했다는 말이다. 다만, 리비아의 경우 미국이 카다피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이 없었지만, 김정은의 경우는 그것과 정반대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반대입니다. 제 생각에 존 볼턴의 발언은 문제가 생겼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내버려둘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게 볼턴 발언의 의도였습니다. 그것과 정반대죠.”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볼턴을 묵살(rebuff)했다고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가 이 말을 할 때, 바로 뒤에 볼턴이 서 있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이 사람의 기분이 좋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기자들과 카메라들 앞에서, 나토 사무총장도 보고 있는데,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 그리고 당사자인 자신이 뒤에서 빤히 보고 있는데, 보스가 자신의 발언을 180도 뒤집었다. 그렇다면 볼턴의 선택은? 맥마스터처럼? 볼턴은 그냥 그대로 있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익명의 백악관 참모들을 취재해 쓴 기사의 한 대목은 이렇다. “대통령보다 몇 시간 일찍 출근해, 보통 사무실 문을 닫아놓은 채 그날 신문과 일일 정보보고를 탐독한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출이 있으면 대통령 집무실까지 전력 질주하곤 했다.” (3.4자 워싱턴포스트) 볼턴은 물론 소신 발언을 잘하는 사람이지만, 맥마스터 같은 강골은 못 된다. 그리고 9달이 흘러,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났다. 언론들은 또 볼턴을 지목했다. 마지막 확대회담에 볼턴이 끼어들어 판을 깼다는 것이었다. 볼턴이 트럼프를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들이 다시 흘러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이런 추측을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어준 게 있다. 하노이 회담 직후 볼턴이 TV에 잇따라 출연해 마치 트럼프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볼턴이 지난 몇 달 동안 트럼프를 움직이는 위치로 올라선 것일까? 볼턴은 하노이 회담 직후인 지난달 초 CBS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전에도 말했는데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저는 국가안보 ‘보좌관(adviser)’이지 국가안보 ‘의사결정자(decision maker)’가 아닙니다.” 앵커 마가렛 브레넌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볼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과거의 소신 발언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는 듯이 물었다. “당신의 과거 견해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요.” “보통은 제가 쓴 거죠. 저는 과거에 쓴 글들이 많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당신은 회의적이지 않았나요?” “말씀드린 것처럼 제 견해는 다 공개돼 있고 누구나 찾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저의 일은 대통령을 돕고 조언하는 겁니다. 제가 조언을 하면 대통령이 결정을 하는 거죠.” “분명히 하고 싶은데요,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더 이상 ‘정권교체’를 지지하지 않나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그게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정권교체’는 볼턴이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꺼냈다가 트럼프에게 혼났던 리비아 모델과 직결된다. 북한 ‘정권교체’는 볼턴의 오랜 소신이었다. 그런데 볼턴은 그 소신을 접은 사람처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보좌관(advisor)’일뿐 ‘의사결정자(decision maker)’가 아니라는 이유를 댄다. 맥마스터라면 이걸 ‘직무유기’라고 불렀을 것이다. 보좌진들의 직무유기로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했고, 그것이 베트남전이라는 재앙을 불렀다는 것이 맥마스터의 소신이었다. 볼턴의 말은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해서 재앙이 일어나도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미꾸라지 비린내가 확 풍긴다. 볼턴이 트럼프를 움직이는 걸까? 이것은 차라리 ‘이 남자가 사는 법’에 가깝다. 적어도 북한 문제에서 볼턴은 ‘의사결정자’와 거리가 멀다. 하노이 회담 직후에 나온 워싱턴 포스트 기사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볼턴이 부임한 지 1년이 돼 가고 있는데, 볼턴이 재임 기간에 대한 평가는 그의 영향력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북한 정책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사례에서는 한계(its limits)를 보여준다.” 볼턴이 입김이 커진 건 맞다. 그러나 볼턴의 영향력은 시리아 문제 같은 중동문제에서 두드러졌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는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나 매티스 국방장관처럼 트럼프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던 인물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볼턴의 영향력이 증대되었다고 분석한다. 이것은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들보다 목소리가 크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번 기사에서 다뤘지만, 북한 이슈는 트럼프가 20년 전부터 구상해온 전형적인‘트럼프의 의제’이다. [연관기사] [트럼프의 재구성②] 트럼프는 럭비공일까? 여기에 볼턴이 끼어들 여지는 많지 않다. 그것이 볼턴 영향력의 ‘한계(its limits)’이다. ‘트럼프의 의제’를 ‘자신들의 의제’로 바꿔보려 했던 틸러슨 국무장관이나 매티스 국방장관은 그 자리에 붙어있질 못했다. 트럼프가 자주 쓰는 말은 ‘충성심(loyalty)’이니까. 볼턴은 보스가 그어놓은 한계선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볼턴이 하노이 회담 직후, TV에 잇따라 출연해 했던 말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인터뷰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반복되는 말들이 있다. FOX TV 앵커의 첫 질문은 이랬다. “실패한 베트남 정상회담 이후에 미국과 북한의 외교는 어디에 와 있는 겁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겁니까?” “저는 실패한 정상회담이라는 것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의무는 미국의 국익을 지키고 증진시키는 것인데, 대통령은 바로 그걸 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쁜 딜(Bad Deal)을 거부하고 김정은에게 빅딜(Big Deal)을 받아들이라고 거듭 설득했습니다. 그러면 북한이 변화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대통령은 때로는 협상장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게 또 그와 협상하는 다른 나라들에게 자신은 Deal을 성사시키려고 안달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거죠. 북한이든 누구든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반한다면 말입니다.” 볼턴은 이 이야기를 하느라 정작 앵커의 질문에는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앵커는 1분쯤 지나서야 이걸 알아차렸다며 멋쩍게 웃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당신은 제 첫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요, 허허허” 볼턴은 트럼프를 어떤 상황에서도 국익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국익의 수호신’으로 묘사한다. ABC, CBS, CNN 등 다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질문을 해도 볼턴은 이 대답부터 말한다. 마치 이 이야기를 하려고 작심하고 TV에 나온 사람처럼. 당시는 미국 뉴스의 초점이 온통 ‘러시아 내통 의혹’에 쏠려 있었다. 뮬러 특검의 수사보고서가 법무부로 넘어간 상태였고, 법무부가 이를 공개하느냐 마느냐가 초미의 관심이었다. 게다가 트럼프의 개인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청문회에 나와 트럼프의 약점을 폭로하고 있었다. 볼턴은 국가안보보좌관이니까 그의 발언은 물론 외교정책에 관한 발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볼턴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트럼프는 국익을 해치면서 러시아와 내통할 사람이 아니다’였을 수도 있다. 이렇게 국익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대통령을 헐뜯는 사람들은 정말 몹쓸 사람들이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이 민주당이라는 말은 안 했지만...... 공교롭게도 이런 메시지는 하노이 회담 직후 트럼프가 견지해온 태도와 일치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트럼프는 이런 트윗을 날렸다. “북한과 아주 중요한 핵협상이 벌어지고 있을 때, 유죄판결을 받은 뻥쟁이 사기꾼을 공개 청문회에서 불러놓고 증언을 시킨 민주당은 저질 정치의 신기원을 열었다. 아마 이게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는데 기여했을 수도 있지. 대통령이 해외에 나간 동안 이런 적은 없었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코언 청문회 때문에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트윗은 트럼프의 머릿속에서 북한과의 협상이 국내정치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렇지 않겠는가? 원래부터 외교정책은 국내정치의 연장이다. 트럼프의 경우는 그게 훨씬 노골적이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예측하기 위해서 우리는 볼턴의 입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가? 많은 증거들이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대신, 트럼프의 국내 정치를 보라고 말한다. 트럼프의 '표'를 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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