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수록 人災 ③] 첫 퍼즐부터 풀어야 한다…평가단에 지진전문가 없다?

입력 2019.04.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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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은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인공지진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이 지난달 정부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습니다. KBS 특별취재팀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불러온 민관 합동 포항 지열발전소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중단까지 의혹과 과제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평가표 보니…'지진'·'안전' 평가 안 해

포항 지열발전소는 2010년 정부의 '㎿(메가와트)급 지열발전 기술개발 사업' 공모를 통해 건설됐습니다. 정부의 공모인 만큼 모집 과정을 거쳐 넥스지오와 한국동서발전 컨소시엄이 응모했고 익명의 심사위원들이 평가해 넥스지오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했습니다. KBS가 당시 평가표를 단독 입수해 제대로 심사가 된 것인지 분석했습니다.


당시 평가표는 기술성 70점과 경제성 및 사업화 가능성이 30점으로 돼 있습니다. 기술성 평가는 다시 7가지 세부 항목이 있어 '준비성'과 '기술의 혁신성', '파급 효과' 등을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지진'이나 '안전' 및 '환경 영향'에 관한 평가 항목은 없었습니다.

이미 심사가 시작되기 4년 전에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가 인공 지진을 유발해 중단됐습니다. 개발에 참여한 업체들도 지진 가능성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젤발전소 개발 총책임자인 마커스 해링 박사까지 자문으로 이름을 올려놓을 정도였습니다.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촉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업계 상식으로 통용되는 상황에서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따로 평가하지 않은 것입니다.

심사위원이 지열발전 사업 독력…"공격적으로 진행할 필요성"

일부 심사위원들은 '기술 확보와 경제성 분석이 필요하다'며 상세한 내용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안전과 지진 가능성에 대한 자료 요구는 없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오히려 "시추경험이 있으니 공격적으로 앞당겨 진행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사업을 독려했습니다.


안전은 무시된 평가가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보통 정부가 발주하는 연구개발 공모에 쓰인 평가표를 그대로 쓴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진을 유발할 수 있는 이 사업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평가위원 전원 넥스지오측에 높은 점수
넉 줄짜리 의견 쓰고 '최고점'…두 줄은 같은 경쟁업체엔 '낮은 점수'

평가표를 더 들여다볼까요? 넥스지오 컨소시엄은 종합 점수 82.2점을 얻어 11점 차로 동서발전을 따돌리고 여유있게 사업자로 선정됩니다. 평가위원은 모두 7명이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넥스지오측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동서발전측에 높은 점수를 준 심사위원은 한 명도 없는 겁니다.
의심스러운 평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7명의 심사위원 중에 최고점인 93점을 넥스지오에 준 한 심사위원의 평가표입니다.


이 심사위원은 평가의견을 단 넉 줄만 썼습니다. 게다가 그중 두 줄은 경쟁업체인 동서발전을 평가한 의견에도 똑같이 썼습니다. 그래놓고 동서발전에 부여한 점수는 넥스지오보다 15점 낮은 78점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평가한 것일까요? 470억 원대 국책사업인 포항 지열발전 심사 평으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평가위원 중에 지진 전문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평가한 것일까요? KBS가 단독 입수한 평가위원 명단을 보면, 4명은 연구기관, 3명은 학계 인사입니다. 연구 분야는 지열을 활용한 냉난방과 에너지 인프라 개발 등 기술 분야에 집중돼 있습니다. 지진 관련 전문가는 없습니다.


한 평가위원은 "지진 연구 경험은 전혀 없다"면서 "평가위원들 사이에서 지진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외국의 지진 유발 사례 등 관련 정보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평가위원 "지진 위험성 몰랐다"

심사위원들은 반대로, 2000년대 초중반부터 계속되어 온 포항 지열 연구에 대한 성과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평가위원은 "선행 연구들이 많이 돼 있던 것 같고, 지질자원연구원에서도 그런 걸 많이 파봤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평가위원은 "에너지기술평가원 인력풀 중에 연락받고 심사에 참가했다"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평가 책임기관인 에너지기술평가원의 인력풀이 궁금합니다. 평가원은 개발의 위험성을 지적할 지진 전문가를 심사위원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김광희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지하에 물을 넣으면 지진이 난다는 사실이 알려진 상황이었으니까 억지로라도 지진 전문가를 찾아서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고 지적합니다.

평가 작업을 진행한 에너지기술평가원과 감독권이 있는 산업부(당시 지식경제부)에 평가의 적절성을 문의했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사업진행 전반에 대해서 진행 중인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서도 평가 과정의 의혹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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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수록 人災 ③] 첫 퍼즐부터 풀어야 한다…평가단에 지진전문가 없다?
    • 입력 2019-04-17 07:01:22
    취재K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은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인공지진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이 지난달 정부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습니다. KBS 특별취재팀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불러온 민관 합동 포항 지열발전소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중단까지 의혹과 과제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평가표 보니…'지진'·'안전' 평가 안 해

포항 지열발전소는 2010년 정부의 '㎿(메가와트)급 지열발전 기술개발 사업' 공모를 통해 건설됐습니다. 정부의 공모인 만큼 모집 과정을 거쳐 넥스지오와 한국동서발전 컨소시엄이 응모했고 익명의 심사위원들이 평가해 넥스지오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했습니다. KBS가 당시 평가표를 단독 입수해 제대로 심사가 된 것인지 분석했습니다.


당시 평가표는 기술성 70점과 경제성 및 사업화 가능성이 30점으로 돼 있습니다. 기술성 평가는 다시 7가지 세부 항목이 있어 '준비성'과 '기술의 혁신성', '파급 효과' 등을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지진'이나 '안전' 및 '환경 영향'에 관한 평가 항목은 없었습니다.

이미 심사가 시작되기 4년 전에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가 인공 지진을 유발해 중단됐습니다. 개발에 참여한 업체들도 지진 가능성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젤발전소 개발 총책임자인 마커스 해링 박사까지 자문으로 이름을 올려놓을 정도였습니다.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촉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업계 상식으로 통용되는 상황에서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따로 평가하지 않은 것입니다.

심사위원이 지열발전 사업 독력…"공격적으로 진행할 필요성"

일부 심사위원들은 '기술 확보와 경제성 분석이 필요하다'며 상세한 내용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안전과 지진 가능성에 대한 자료 요구는 없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오히려 "시추경험이 있으니 공격적으로 앞당겨 진행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사업을 독려했습니다.


안전은 무시된 평가가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보통 정부가 발주하는 연구개발 공모에 쓰인 평가표를 그대로 쓴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진을 유발할 수 있는 이 사업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평가위원 전원 넥스지오측에 높은 점수
넉 줄짜리 의견 쓰고 '최고점'…두 줄은 같은 경쟁업체엔 '낮은 점수'

평가표를 더 들여다볼까요? 넥스지오 컨소시엄은 종합 점수 82.2점을 얻어 11점 차로 동서발전을 따돌리고 여유있게 사업자로 선정됩니다. 평가위원은 모두 7명이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넥스지오측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동서발전측에 높은 점수를 준 심사위원은 한 명도 없는 겁니다.
의심스러운 평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7명의 심사위원 중에 최고점인 93점을 넥스지오에 준 한 심사위원의 평가표입니다.


이 심사위원은 평가의견을 단 넉 줄만 썼습니다. 게다가 그중 두 줄은 경쟁업체인 동서발전을 평가한 의견에도 똑같이 썼습니다. 그래놓고 동서발전에 부여한 점수는 넥스지오보다 15점 낮은 78점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평가한 것일까요? 470억 원대 국책사업인 포항 지열발전 심사 평으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평가위원 중에 지진 전문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평가한 것일까요? KBS가 단독 입수한 평가위원 명단을 보면, 4명은 연구기관, 3명은 학계 인사입니다. 연구 분야는 지열을 활용한 냉난방과 에너지 인프라 개발 등 기술 분야에 집중돼 있습니다. 지진 관련 전문가는 없습니다.


한 평가위원은 "지진 연구 경험은 전혀 없다"면서 "평가위원들 사이에서 지진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외국의 지진 유발 사례 등 관련 정보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평가위원 "지진 위험성 몰랐다"

심사위원들은 반대로, 2000년대 초중반부터 계속되어 온 포항 지열 연구에 대한 성과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평가위원은 "선행 연구들이 많이 돼 있던 것 같고, 지질자원연구원에서도 그런 걸 많이 파봤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평가위원은 "에너지기술평가원 인력풀 중에 연락받고 심사에 참가했다"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평가 책임기관인 에너지기술평가원의 인력풀이 궁금합니다. 평가원은 개발의 위험성을 지적할 지진 전문가를 심사위원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김광희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지하에 물을 넣으면 지진이 난다는 사실이 알려진 상황이었으니까 억지로라도 지진 전문가를 찾아서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고 지적합니다.

평가 작업을 진행한 에너지기술평가원과 감독권이 있는 산업부(당시 지식경제부)에 평가의 적절성을 문의했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사업진행 전반에 대해서 진행 중인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서도 평가 과정의 의혹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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