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권리금 법 조항’, 판사마다 해석 제각각…“세입자는 어쩌라고요”

입력 2019.04.17 (07:01) 수정 2019.04.17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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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1

2012년 12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상가를 빌려서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5년이던 계약갱신요구 가능 기간, 이른바 '임대차 보호기간'이 끝나게 되자, 건물주는 임대차계약 갱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입자는 권리금 회수를 위해 두 명의 세입자를 구해 주선했지만, 건물주는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한다는 뜻과 함께 상가를 인도해달라고 통지했습니다.

세입자는 건물주의 권리금 회수기회 방해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 사건 2

2012년 5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상가를 빌려서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5년이던 임대차 보호기간이 끝나게 되자, 건물주는 임대차계약 갱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입자는 권리금 회수를 위해 새로운 세입자를 주선하겠으니 원하는 보증금과 임대료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건물주는 임대차계약을 갱신할 의사가 없다면서 상가를 인도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세입자는 건물주의 권리금 회수기회 방해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판박이 같은 두 사건 승패 가른 건, '판사가 누구냐'

권리금을 둘러싼 두 개의 소송. 사실상 판박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사한 사건인데, <사건1>에서는 세입자가 졌고 <사건2>에서는 세입자가 이겼습니다.

승패를 가른 차이는 단 하나였습니다. 요약하면 '판사가 누구냐'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판사가 법 조항을 다른 조항과 엮어서 유추 해석했느냐, 아니면 문구 그대로 봤느냐'였습니다.

이기고 지고가 '판사 뽑기'에 달린 권리금 소송의 불편한 진실, 이제부터 자세히 짚어볼까 합니다.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규정한 상가임대차법 10조의4

<사건1>은 전남 순천에서 5년여간 카페 운영하다가 그만 나가라는 건물주 요구의 요구를 받은 46살 이종찬 씨의 상황입니다. 지난 3월 보도된 <[못참겠다] 스타벅스 입점에 억대 권리금 날릴 위기…"이게 상생인가요?">의 주인공입니다.

임대차 보호기간 5년이 지났다며 건물주가 나가 달라고 요구하자, 이 씨는 권리금 주고 들어오겠다는 두 명의 세입자를 구해 건물주에게 주선했습니다. (※임대차 보호기간은 2018년 10월 16일 법 개정 뒤부터는 10년으로 연장됐습니다. 다만, 법 개정 이전의 임대차 계약은 5년까지만 보호됩니다. 여기서 다루는 사건들은 모두 법 개정 이전 사건들입니다.)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를 명시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10조의4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이 주선한 새 임차인과의 계약을 거절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해선 안 된다는 규정입니다.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등)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등)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은 2015년 5월, 치열한 사회적 논의 끝에 신설된 조항입니다. 건물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용산 참사 등 권리금을 둘러싸고 비극적인 사건마저 끊이지 않는 현실을 고려한 정부와 국회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이 씨는 이렇게 법에 따라 새 세입자를 두 번이나 구해 주선한 것이었는데, 건물주는 모두 거절했습니다. '권리금 불인정'이 확고한 방침이라는 스타벅스와 임대차 계약을 이미 체결해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권리금 못 받고 나온 이 씨는 건물주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이 또한 법에 따른 조치입니다. 임대인이 권리금 회수기회 방해로 임차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규정(상가임대차법 10조4의 3항)이 근거입니다.

■법대로 다 했는데도 패소 판결한 판사, 왜?

그런데 사건을 맡은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지난 10일, 이 씨에게 '원고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법에 따라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왜 이런 결론을 내린 걸까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판결문을 봤습니다. 선고를 한 김 모 판사는 사실관계에 대해선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단 한 가지만 판단했습니다.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이 없는 경우에도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1항 제4호가 적용되는지에 관하여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임대차 보호기간 5년을 넘겨 계약 갱신을 더 이상 요구할 수 없게 됐을 때, 임차인이 주선한 새 임차인을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는 것을 금지한 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느냐를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김 판사는 이와 관련해 이 법의 다른 조항인 제10조의 제2항을 끌고 와 준용했습니다.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5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입니다.

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2항(2018년 10월 16일 개정 전)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2항(2018년 10월 16일 개정 전)

또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이 없는 경우에도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1항 제4호가 적용된다고 해석하면, 임대인은 (중략) 상대방 선택의 자유, 상가의 업종을 변경할 자유, 임대를 중단하고 직접 사용할 자유 등을 상실하게 되는바 이는 임대인의 재산권과 계약 체결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보인다"는 개인적 판단까지 담았습니다.

그러면서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권리금 회수 방해금지의무에 관한 상가임대차법 규정은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하여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이 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씨의 임대차기간이 5년을 넘어서 계약갱신을 더 이상 요구할 수 없게 됐으니,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도 적용이 안 된다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판사는 "5년 지나도 권리금 회수 보호" 판결

이 씨의 패소 소식을 전해 들은 취재진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상가임대차법을 살펴보고 살펴봐도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이 임대차 보호기간 안에만 적용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는데, 왜 판사는 그 기간에만 된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었습니다.

의문 해소를 위해 변호사들에게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씨와 내용도 구조도 똑같은 사건에서 다른 판사는 "5년의 임대차 기간이 경과하더라도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규정은 적용된다"며 세입자 손을 들어준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사건2>의 사례입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서울동부지방법원

서울 강동구의 상가 세입자가 건물주를 상대로 제기한 이 소송에서, 건물주는 "5년의 임대차 기간이 경과하면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고 임대인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장할 의무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을 맡은 서울동부지방법원 임 모 판사는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를 규정한 상가임대차법 10조의4는 임차인의 계약요구권 행사의 시적(時的) 한계를 규정한 제10조 제2항을 준용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또 "계약갱신요구권 규정은 최소한의 영업기간을 보장하려는 것이고,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규정은 임대차 기간 중 형성된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임차인이 권리금 형태로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입법 취지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임 판사는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세입자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인정하면서 건물주가 일정 금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법률 해석이란 외피 두른 법 창조" 일갈한 2심 판례

법 조항을 '있는 그대로' 적용한 <사건2>의 판결은 <사건1> 판결에 더욱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특정 법 조항에 그 조항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다른 조항을 '유추해서' 적용하는 게 타당한 것일까요?

답을 찾는 과정에 매우 중요한 판결을 발견했습니다. <사건1> <사건2>에 앞서 내려진 대전지법의 2017년 2심 판결로, 5년이 경과해도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은 적용된다는 것을 법원이 명시적으로 밝힌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20년 넘게 떡집을 운영하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권리금 받지 못하고 상가를 비운 세입자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1심은 <사건1>과 마찬가지로 임대차 기간이 5년을 넘긴 경우엔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세입자에게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2심을 맡은 대전지법 민사1부(재판장 이영화 부장판사)는 "상가건물은 상인이 영업을 위해 투입한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가 축적돼 가치가 상승하는데,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면 임차인은 자신의 노력으로 상승한 가치를 상가건물에 온전히 놓아두고 나올 수밖에 없고 임대인은 이를 독식해 일종의 불로소득을 취하게 된다. 이 같은 배분 상황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이를 교정하기 위해 상가임대차법에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계약갱신요구권 조항을 유추 적용해 보호 범위를 5년으로 축소하는 것은 법률 조항의 신설에 담긴 입법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는 '법률의 해석'이라는 외피를 두른 '법 창조'이며, 헌법이 부여한 법원의 법률 해석 권한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1심이 법 해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새로 법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월권행위를 했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전문가들 "판사는 법대로만 하면 됩니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같습니다. 부동산 전문 김광호 변호사(법무법인 자연수)는 '5년 지나면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 미적용'이라는 판사들의 판단에 대해 "권리금 회수기회보호 조항의 취지와 임대차계약갱신 조항의 취지가 다른 것을 곡해했다"고 지적합니다.

또 '계약갱신요구권이 없는 경우에도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이 적용된다고 해석하면 임대인의 재산권과 계약 체결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보인다'고 한 <사건1>의 순천지법 판결에 대해서도 "법원이 법률 해석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본다. 현재 법률에 따르면 대전지법 판결이 타당하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부동산 전문 이승주 변호사(티에스법률사무소)도 "법 조항에 문제가 있다면 법원이 위헌제청 등을 통해 헌법적 판단을 받으면 된다. 그 조문을 고치는 것은 입법부가 할 일"이라면서 "판사는 법대로만 하면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법률 전문가들의 인식은 권리금 분쟁 관련 상담을 해주는 행정관청도 공유하는 대목입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상가임대차상담센터는 취재진 문의에 "권리금 회수기회에는 기간 제한이 없다. 법에는 계약갱신만 5년(개정 뒤엔 10년) 안에 하라는 내용만 있지, 권리금 회수기회와 관련해서는 기간에 대한 내용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권리금 소송은 판사에 따라 제각각 결과가 나오는 실정입니다. 세입자들이 변호사들에게 수임을 의뢰하면 "판사 뽑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부터 들을 정도입니다.

<사건1>의 패소 판결에 항소 여부를 고심 중인 이 씨의 바람은 단 한 가지입니다. "법에 정해진 그대로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재판은 당연히 법대로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게 소송 당사자의 희망 사항이 되는 현실, 이해가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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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권리금 법 조항’, 판사마다 해석 제각각…“세입자는 어쩌라고요”
    • 입력 2019-04-17 07:01:22
    • 수정2019-04-17 07:22:55
    취재후·사건후
# 사건 1

2012년 12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상가를 빌려서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5년이던 계약갱신요구 가능 기간, 이른바 '임대차 보호기간'이 끝나게 되자, 건물주는 임대차계약 갱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입자는 권리금 회수를 위해 두 명의 세입자를 구해 주선했지만, 건물주는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한다는 뜻과 함께 상가를 인도해달라고 통지했습니다.

세입자는 건물주의 권리금 회수기회 방해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 사건 2

2012년 5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상가를 빌려서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5년이던 임대차 보호기간이 끝나게 되자, 건물주는 임대차계약 갱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입자는 권리금 회수를 위해 새로운 세입자를 주선하겠으니 원하는 보증금과 임대료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건물주는 임대차계약을 갱신할 의사가 없다면서 상가를 인도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세입자는 건물주의 권리금 회수기회 방해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판박이 같은 두 사건 승패 가른 건, '판사가 누구냐'

권리금을 둘러싼 두 개의 소송. 사실상 판박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사한 사건인데, <사건1>에서는 세입자가 졌고 <사건2>에서는 세입자가 이겼습니다.

승패를 가른 차이는 단 하나였습니다. 요약하면 '판사가 누구냐'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판사가 법 조항을 다른 조항과 엮어서 유추 해석했느냐, 아니면 문구 그대로 봤느냐'였습니다.

이기고 지고가 '판사 뽑기'에 달린 권리금 소송의 불편한 진실, 이제부터 자세히 짚어볼까 합니다.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규정한 상가임대차법 10조의4

<사건1>은 전남 순천에서 5년여간 카페 운영하다가 그만 나가라는 건물주 요구의 요구를 받은 46살 이종찬 씨의 상황입니다. 지난 3월 보도된 <[못참겠다] 스타벅스 입점에 억대 권리금 날릴 위기…"이게 상생인가요?">의 주인공입니다.

임대차 보호기간 5년이 지났다며 건물주가 나가 달라고 요구하자, 이 씨는 권리금 주고 들어오겠다는 두 명의 세입자를 구해 건물주에게 주선했습니다. (※임대차 보호기간은 2018년 10월 16일 법 개정 뒤부터는 10년으로 연장됐습니다. 다만, 법 개정 이전의 임대차 계약은 5년까지만 보호됩니다. 여기서 다루는 사건들은 모두 법 개정 이전 사건들입니다.)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를 명시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10조의4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이 주선한 새 임차인과의 계약을 거절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해선 안 된다는 규정입니다.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등)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은 2015년 5월, 치열한 사회적 논의 끝에 신설된 조항입니다. 건물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용산 참사 등 권리금을 둘러싸고 비극적인 사건마저 끊이지 않는 현실을 고려한 정부와 국회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이 씨는 이렇게 법에 따라 새 세입자를 두 번이나 구해 주선한 것이었는데, 건물주는 모두 거절했습니다. '권리금 불인정'이 확고한 방침이라는 스타벅스와 임대차 계약을 이미 체결해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권리금 못 받고 나온 이 씨는 건물주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이 또한 법에 따른 조치입니다. 임대인이 권리금 회수기회 방해로 임차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규정(상가임대차법 10조4의 3항)이 근거입니다.

■법대로 다 했는데도 패소 판결한 판사, 왜?

그런데 사건을 맡은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지난 10일, 이 씨에게 '원고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법에 따라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왜 이런 결론을 내린 걸까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판결문을 봤습니다. 선고를 한 김 모 판사는 사실관계에 대해선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단 한 가지만 판단했습니다.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이 없는 경우에도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1항 제4호가 적용되는지에 관하여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임대차 보호기간 5년을 넘겨 계약 갱신을 더 이상 요구할 수 없게 됐을 때, 임차인이 주선한 새 임차인을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는 것을 금지한 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느냐를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김 판사는 이와 관련해 이 법의 다른 조항인 제10조의 제2항을 끌고 와 준용했습니다.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5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입니다.

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2항(2018년 10월 16일 개정 전)
또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이 없는 경우에도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1항 제4호가 적용된다고 해석하면, 임대인은 (중략) 상대방 선택의 자유, 상가의 업종을 변경할 자유, 임대를 중단하고 직접 사용할 자유 등을 상실하게 되는바 이는 임대인의 재산권과 계약 체결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보인다"는 개인적 판단까지 담았습니다.

그러면서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권리금 회수 방해금지의무에 관한 상가임대차법 규정은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하여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이 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씨의 임대차기간이 5년을 넘어서 계약갱신을 더 이상 요구할 수 없게 됐으니,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도 적용이 안 된다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판사는 "5년 지나도 권리금 회수 보호" 판결

이 씨의 패소 소식을 전해 들은 취재진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상가임대차법을 살펴보고 살펴봐도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이 임대차 보호기간 안에만 적용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는데, 왜 판사는 그 기간에만 된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었습니다.

의문 해소를 위해 변호사들에게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씨와 내용도 구조도 똑같은 사건에서 다른 판사는 "5년의 임대차 기간이 경과하더라도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규정은 적용된다"며 세입자 손을 들어준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사건2>의 사례입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서울 강동구의 상가 세입자가 건물주를 상대로 제기한 이 소송에서, 건물주는 "5년의 임대차 기간이 경과하면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고 임대인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장할 의무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을 맡은 서울동부지방법원 임 모 판사는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를 규정한 상가임대차법 10조의4는 임차인의 계약요구권 행사의 시적(時的) 한계를 규정한 제10조 제2항을 준용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또 "계약갱신요구권 규정은 최소한의 영업기간을 보장하려는 것이고,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규정은 임대차 기간 중 형성된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임차인이 권리금 형태로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입법 취지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임 판사는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세입자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인정하면서 건물주가 일정 금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법률 해석이란 외피 두른 법 창조" 일갈한 2심 판례

법 조항을 '있는 그대로' 적용한 <사건2>의 판결은 <사건1> 판결에 더욱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특정 법 조항에 그 조항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다른 조항을 '유추해서' 적용하는 게 타당한 것일까요?

답을 찾는 과정에 매우 중요한 판결을 발견했습니다. <사건1> <사건2>에 앞서 내려진 대전지법의 2017년 2심 판결로, 5년이 경과해도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은 적용된다는 것을 법원이 명시적으로 밝힌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20년 넘게 떡집을 운영하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권리금 받지 못하고 상가를 비운 세입자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1심은 <사건1>과 마찬가지로 임대차 기간이 5년을 넘긴 경우엔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세입자에게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2심을 맡은 대전지법 민사1부(재판장 이영화 부장판사)는 "상가건물은 상인이 영업을 위해 투입한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가 축적돼 가치가 상승하는데,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면 임차인은 자신의 노력으로 상승한 가치를 상가건물에 온전히 놓아두고 나올 수밖에 없고 임대인은 이를 독식해 일종의 불로소득을 취하게 된다. 이 같은 배분 상황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이를 교정하기 위해 상가임대차법에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계약갱신요구권 조항을 유추 적용해 보호 범위를 5년으로 축소하는 것은 법률 조항의 신설에 담긴 입법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는 '법률의 해석'이라는 외피를 두른 '법 창조'이며, 헌법이 부여한 법원의 법률 해석 권한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1심이 법 해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새로 법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월권행위를 했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전문가들 "판사는 법대로만 하면 됩니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같습니다. 부동산 전문 김광호 변호사(법무법인 자연수)는 '5년 지나면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 미적용'이라는 판사들의 판단에 대해 "권리금 회수기회보호 조항의 취지와 임대차계약갱신 조항의 취지가 다른 것을 곡해했다"고 지적합니다.

또 '계약갱신요구권이 없는 경우에도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이 적용된다고 해석하면 임대인의 재산권과 계약 체결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보인다'고 한 <사건1>의 순천지법 판결에 대해서도 "법원이 법률 해석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본다. 현재 법률에 따르면 대전지법 판결이 타당하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부동산 전문 이승주 변호사(티에스법률사무소)도 "법 조항에 문제가 있다면 법원이 위헌제청 등을 통해 헌법적 판단을 받으면 된다. 그 조문을 고치는 것은 입법부가 할 일"이라면서 "판사는 법대로만 하면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법률 전문가들의 인식은 권리금 분쟁 관련 상담을 해주는 행정관청도 공유하는 대목입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상가임대차상담센터는 취재진 문의에 "권리금 회수기회에는 기간 제한이 없다. 법에는 계약갱신만 5년(개정 뒤엔 10년) 안에 하라는 내용만 있지, 권리금 회수기회와 관련해서는 기간에 대한 내용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권리금 소송은 판사에 따라 제각각 결과가 나오는 실정입니다. 세입자들이 변호사들에게 수임을 의뢰하면 "판사 뽑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부터 들을 정도입니다.

<사건1>의 패소 판결에 항소 여부를 고심 중인 이 씨의 바람은 단 한 가지입니다. "법에 정해진 그대로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재판은 당연히 법대로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게 소송 당사자의 희망 사항이 되는 현실, 이해가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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