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을지로의 공장들, 없애도 되는 걸까

입력 2019.05.25 (14:08) 수정 2019.05.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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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전문가들 "소규모 제조업은 도심 입지가 적합"
미국 뉴욕시, 산업지구 지정으로 제조업 보호
공공임대 산업공간·용적률 인센티브 등 대안 거론
"서울시, 개발 주체와 원주민 갈등 적극 조정해야"

메이커시티⑤ 공존의 도시

'청계천에서 인공위성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세계 최초로 개인 인공위성을 띄운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 작가를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만났다. 그의 손에는 6년 전 발사한 인공위성과 똑같은 인공위성이 들려있었다. 송 작가는 당시 도움을 받은 정밀기계 공장을 방문해 다음 작품에서 개선할 점을 논의했다.

송 작가는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인공위성을 만들었다. 하지만 청계천 공구상가가 있어서 "'나도 하겠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청계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자, 전기와 달리, 기계나 제조는 인터넷을 통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 작가는 "청계천에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전문가는 현장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송 작가가 다음 인공위성을 띄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새로운 설계가 나오기 전에 재개발이 시작되면 공장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 송 작가와 작업해 온 정연정 사장은 "솔직히 더 이상 갈 데가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송호준 작가(왼쪽)가 정밀기계 공장을 방문해 정연정 사장과 인공위성의 개선할 점을 논의하는 모습.송호준 작가(왼쪽)가 정밀기계 공장을 방문해 정연정 사장과 인공위성의 개선할 점을 논의하는 모습.

전문가들 "특화되고 전문화된 도심 제조업 경쟁력 있어"

도심 산업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을지로 일대 도심 제조업이 업무 기능을 뒷받침하고, 시대 변화에 매우 잘 적응한다는 점에서 미래 가치가 높다고 평가한다. 공장이 위치한 을지로 일대가 물리적으로는 노후되었지만, 기능적으로는 활성화되어 있어 기능 보존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희윤 서울연구원 초빙 선임 연구위원은 "현재 도심에 남아있는 제조업은 도심의 업무 기능을 지원하는 고부가가치 업종이거나, 특화되고 전문화된 산업들"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수요가 있는 도심에 입지하는 것이 합리적이어서, 점점 더 집적되어 왔다"면서 "서울시가 대체 입지를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심한별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연구원은 "도심 제조업의 영세한 규모는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도심에 큰 비용을 들여 큰 규모를 유지하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접점만 두었다가 대량으로 생산할 일이 있으면 시 외곽에 있는 더 큰 제조업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4차 산업으로 일컬어지는 기술변화 시대에는 기업의 규모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소규모 제조업은 사람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고 상호소통의 밀도가 아주 높은 도심에 있는 것이 더 유리한 입지"라고 말했다.

해외 대도시 "도시의 소규모 제조업은 혁신 공간"

도심 제조업에 대한 인식 변화는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지난 10일 열린 세운 글로벌 포럼에 참석한 아담 프리드먼 미국 프랫 지역개발센터장은 "제조업이 도시에 도움이 되고, 제조업도 도시에 입지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과 연계된 제품을 만들려면 도시가 유리하다"면서 "숙련공, 디자이너, 제조업자가 함께 하면서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특히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소규모 제조업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이 과거에는 소음과 오염을 유발해 구역이 구분되었지만, 갈수록 유해하지 않게 되어 도시 안에 공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의 이스트 뉴욕에 지정된 산업지구. 출처 : 미국 뉴욕시 도시계획국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의 이스트 뉴욕에 지정된 산업지구. 출처 : 미국 뉴욕시 도시계획국

프리드먼 센터장은 미국 뉴욕시가 2005년 도심 제조업을 보호하는 산업지구(Industrial Business Zones)를 도입하는 데 역할을 했다. 산업지구는 기존 제조업이 밀집한 지역 가운데 지정되며,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혜택과 지원 정책이 시행된다.

특히 지방정부는 산업지구가 주거 용도로 전환되지 않도록 보증한다. 또 시유지를 산업용도로 제공하거나 낮은 임대료로 지원한다.

그는 "미국 도시 정부가 생산 공간을 보존하는 이유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혁신 경제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도시 내 업종의 균형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임대 주택처럼 공공임대 산업공간 공급해야"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자연 발생적으로 도심 제조업의 중심이 된 을지로의 장소 가치를 서울시가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방법으로 원래 있던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 산업공간을 제공하는 방안이 집중 거론된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주택 재개발을 할 때 공공임대 주택을 조성하는 것은 이제 정착이 되었다"면서 "산업시설에 대해서도 도심 지역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기존에 있는 업종의 장인들이 머물고 청년들도 새롭게 입주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 산업공간을 조성하거나, 민간이 개발하는 부분의 일정 공간을 제공하는 방안이 함께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희윤 연구위원은 공공임대 산업공간을 조성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함께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산업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특화된 지역을 개발할 때는 산업공간을 조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반복되는 갈등에 뒷짐 진 서울시

아울러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재개발 계획 수립 과정에서 단순 인허가 업무에 그친 채 세입자와 지주의 대립을 방치하고 있다면서 적극적 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한별 연구원은 "과거 청계천 복원 때 상인 조직과 서울시가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경로로 나아가는 교훈을 학습하지 못했다"면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와 제조업 경영자 등 이해관계자를 모아서 대안을 만드는 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희윤 연구위원은 사업시행자가 내놓는 단일 계획이 아니라, 전문가가 복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장단점을 이해관계자에게 설명한 뒤 계획하는 방식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정확한 사실을 두고 장단점을 인지한 다음, 논의를 통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미래를 결정하도록 유도하면 조정된 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절차를 서울시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백인길 대진대 도시부동산공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 도심 재개발을 할 때는 주민 설득과 조정 계획에 20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하고, 개발은 3년 정도 되는 게 보통인데 우리는 계획 과정이 1년 이상 넘어가지 않는다"면서 서울시가 인허가를 내주기 전에 주도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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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계천 을지로의 공장들, 없애도 되는 걸까
    • 입력 2019-05-25 14:08:55
    • 수정2019-05-25 14:50:11
    취재K
전문가들 "소규모 제조업은 도심 입지가 적합" <br />미국 뉴욕시, 산업지구 지정으로 제조업 보호 <br />공공임대 산업공간·용적률 인센티브 등 대안 거론 <br />"서울시, 개발 주체와 원주민 갈등 적극 조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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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서 인공위성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세계 최초로 개인 인공위성을 띄운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 작가를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만났다. 그의 손에는 6년 전 발사한 인공위성과 똑같은 인공위성이 들려있었다. 송 작가는 당시 도움을 받은 정밀기계 공장을 방문해 다음 작품에서 개선할 점을 논의했다.

송 작가는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인공위성을 만들었다. 하지만 청계천 공구상가가 있어서 "'나도 하겠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청계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자, 전기와 달리, 기계나 제조는 인터넷을 통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 작가는 "청계천에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전문가는 현장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송 작가가 다음 인공위성을 띄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새로운 설계가 나오기 전에 재개발이 시작되면 공장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 송 작가와 작업해 온 정연정 사장은 "솔직히 더 이상 갈 데가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송호준 작가(왼쪽)가 정밀기계 공장을 방문해 정연정 사장과 인공위성의 개선할 점을 논의하는 모습.
전문가들 "특화되고 전문화된 도심 제조업 경쟁력 있어"

도심 산업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을지로 일대 도심 제조업이 업무 기능을 뒷받침하고, 시대 변화에 매우 잘 적응한다는 점에서 미래 가치가 높다고 평가한다. 공장이 위치한 을지로 일대가 물리적으로는 노후되었지만, 기능적으로는 활성화되어 있어 기능 보존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희윤 서울연구원 초빙 선임 연구위원은 "현재 도심에 남아있는 제조업은 도심의 업무 기능을 지원하는 고부가가치 업종이거나, 특화되고 전문화된 산업들"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수요가 있는 도심에 입지하는 것이 합리적이어서, 점점 더 집적되어 왔다"면서 "서울시가 대체 입지를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심한별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연구원은 "도심 제조업의 영세한 규모는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도심에 큰 비용을 들여 큰 규모를 유지하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접점만 두었다가 대량으로 생산할 일이 있으면 시 외곽에 있는 더 큰 제조업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4차 산업으로 일컬어지는 기술변화 시대에는 기업의 규모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소규모 제조업은 사람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고 상호소통의 밀도가 아주 높은 도심에 있는 것이 더 유리한 입지"라고 말했다.

해외 대도시 "도시의 소규모 제조업은 혁신 공간"

도심 제조업에 대한 인식 변화는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지난 10일 열린 세운 글로벌 포럼에 참석한 아담 프리드먼 미국 프랫 지역개발센터장은 "제조업이 도시에 도움이 되고, 제조업도 도시에 입지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과 연계된 제품을 만들려면 도시가 유리하다"면서 "숙련공, 디자이너, 제조업자가 함께 하면서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특히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소규모 제조업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이 과거에는 소음과 오염을 유발해 구역이 구분되었지만, 갈수록 유해하지 않게 되어 도시 안에 공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의 이스트 뉴욕에 지정된 산업지구. 출처 : 미국 뉴욕시 도시계획국
프리드먼 센터장은 미국 뉴욕시가 2005년 도심 제조업을 보호하는 산업지구(Industrial Business Zones)를 도입하는 데 역할을 했다. 산업지구는 기존 제조업이 밀집한 지역 가운데 지정되며,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혜택과 지원 정책이 시행된다.

특히 지방정부는 산업지구가 주거 용도로 전환되지 않도록 보증한다. 또 시유지를 산업용도로 제공하거나 낮은 임대료로 지원한다.

그는 "미국 도시 정부가 생산 공간을 보존하는 이유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혁신 경제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도시 내 업종의 균형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임대 주택처럼 공공임대 산업공간 공급해야"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자연 발생적으로 도심 제조업의 중심이 된 을지로의 장소 가치를 서울시가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방법으로 원래 있던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 산업공간을 제공하는 방안이 집중 거론된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주택 재개발을 할 때 공공임대 주택을 조성하는 것은 이제 정착이 되었다"면서 "산업시설에 대해서도 도심 지역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기존에 있는 업종의 장인들이 머물고 청년들도 새롭게 입주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 산업공간을 조성하거나, 민간이 개발하는 부분의 일정 공간을 제공하는 방안이 함께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희윤 연구위원은 공공임대 산업공간을 조성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함께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산업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특화된 지역을 개발할 때는 산업공간을 조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반복되는 갈등에 뒷짐 진 서울시

아울러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재개발 계획 수립 과정에서 단순 인허가 업무에 그친 채 세입자와 지주의 대립을 방치하고 있다면서 적극적 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한별 연구원은 "과거 청계천 복원 때 상인 조직과 서울시가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경로로 나아가는 교훈을 학습하지 못했다"면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와 제조업 경영자 등 이해관계자를 모아서 대안을 만드는 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희윤 연구위원은 사업시행자가 내놓는 단일 계획이 아니라, 전문가가 복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장단점을 이해관계자에게 설명한 뒤 계획하는 방식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정확한 사실을 두고 장단점을 인지한 다음, 논의를 통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미래를 결정하도록 유도하면 조정된 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절차를 서울시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백인길 대진대 도시부동산공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 도심 재개발을 할 때는 주민 설득과 조정 계획에 20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하고, 개발은 3년 정도 되는 게 보통인데 우리는 계획 과정이 1년 이상 넘어가지 않는다"면서 서울시가 인허가를 내주기 전에 주도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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