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경로당수당, 해녀수당, 독서수당…“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입력 2019.05.28 (11:50) 수정 2019.05.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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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경로당수당' '해녀수당' '독서수당' '농민수당' 종류도 가지가지
재정 악화, 지역 간 격차 심화…'공로수당' 놓고 서울 중구-성동구 갈등
청와대-복지부 관계자 등 참석한 2차례 비공개 간담회
지방 스스로 복지 대타협 기구 설치 결실
"복지 줄이자는 게 아니라 '질서 있는 복지' 늘리자는 것"

'정성'보단 '현금'…복지정책에서도 같은 양상

한 통신회사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부모들을 대상으로 '어버이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을 조사했더니 '현금'이 늘 1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고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굳이 없습니다. '정성'보다는 '현금'입니다. 이런 상황은 복지정책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고 합니다.


새로 생긴 복지정책 3개 중 2개는 '현금성 복지'

지난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새롭게 만든 복지정책이 668건입니다. 이 가운데 현금성 복지정책이 446건(66.7%), 3개 중 2개입니다. 2,278억 원의 예산이 주민들에게 직접 돈(또는 현물)으로 뿌려졌습니다. 종류도 다양합니다. '경로당수당' '해녀수당' '농민수당' '독서수당' '공로수당'….
강원도의 한 자치단체는 관내 거주 주민의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 재학 기간 등록금을 모두 지급합니다. 중고생들의 수학여행비를 지원하는 곳도 있고, 전입신고를 하면 학자금과 주거비를 지원하는 곳도 있습니다. 자치단체의 재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단체장 바뀌면 현금 복지 중단…안정성 떨어져"

이런 현금 복지는 사실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방정부 차원의 복지 정책들이 많이 도입되고 있는데 일회적인, 단체장의 공약으로 추진되다 보니 갑자기 지원이 끊기면서 주민들이 더 고통을 받을 수 있다."면서 "현 단계에서 기초자치단체의 현금 복지는 '양날의 칼'같은 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테면 A 단체장이 선거에서 내세워 당선되면서 도입된 제도가 다음 B 단체장 때는 없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 중구와 성동구 경계에 걸쳐 있는 아파트. 중구가 도입한 ‘공로수당’을 101동 노인들만 못 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서울 중구와 성동구 경계에 걸쳐 있는 아파트. 중구가 도입한 ‘공로수당’을 101동 노인들만 못 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같은 아파트인데…101동만 못 받는 '공로수당'"

현금 복지는 전염성도 강합니다. 옆 자치구에서 하면 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자치단체장들은 "이웃 구에서는 얼마를 주는 데 우리는 왜 안 주느냐?"는 압박에 시달립니다. 지역 간 갈등을 유발합니다.

대표적인 게 올해 초 불거진 서울 중구와 성동구의 사례입니다. 2월부터 중구가 기초연금 대상 노인들에게 정부 차원의 기초연금 외에 월 10만 원, '공로수당'을 지급했습니다. 한 아파트 내에서도 성동구에 속한 101동 주민은 못 받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저출산 여파로 이제는 시행하지 않는 자치단체가 없을 정도인 '출산장려금'도 지역 간 격차가 큽니다. 서울 안에서만 자치구 간 3배 정도 금액 차이가 납니다.

KBS와 인터뷰 중인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왼쪽)KBS와 인터뷰 중인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왼쪽)

선거 의식한 단체장들 욕심이 현금 복지 부추겨

현금 복지에 대비되는 개념은 서비스 복지입니다. 보육시설을 서비스 복지라고 한다면 아동수당이 현금복지입니다. 노인 돌봄시설이 서비스 복지라면 기초연금은 현금 복지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대상과 상황 등을 고려해 적절하게 시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지역 단위, 특히 기초자치단체에서 남발되는 현금 복지입니다. 선거에서 이기려는 자치단체장들의 욕심과 맞물리면서 서비스 복지보다 쉽고, 반응은 더 빨리 나타나는 현금 복지를 선택하는 경우가 점점 늘었고, 경쟁적인 현금 복지가 남발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이 깃발을 들었습니다. 바로 옆 중구가 도입한 '공로수당'에 대한 성동구민의 항의와 민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실은 다른 자치단체장들도 그동안 말은 안 했지 이렇게 가다간 '제 살 깎아 먹기'가 되고 말 거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청와대도 참여한 두 차례 간담회…대타협 기구 윤곽

올해 3월 13일 1차 비공개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공로수당'을 두고 갈등을 빚었던 서울 성동구청장과 서울 중구청장이 만났습니다.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과 보건복지부 관계자, 그리고 민간 전문가 4명까지 8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복지정책 역할 분담 필요성' 등을 논의했습니다. 4주 뒤 4월 1일에는 두 번째 비공개 간담회. 참석자가 조금 더 늘었습니다. 자치단체장으로는 서울 성동구청장과 경기 수원시장, 충남 논산시장과 충북 증평군수가 참석했고,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과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나왔습니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분담에 대한 논의가 오갔고, 복지대타협을 추진하자는 논의가 본격화됐습니다.

여기서부터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논의에서 빠지기로 합니다. 중앙정부 차원의 '톱-다운(Top-Down)' 방식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무엇보다 지방정부 주도의 대타협이 더욱 의미가 크다는 인식에 자치단체들이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이어 4월 12일 2019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총회에서 협의회 산하에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안이 상정, 의결됐고 어제(27일) 충남 아산시 KTX 천안아산역 회의실에서 역사적인 준비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습니다.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이 준비위원장으로,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이 간사로 선출됐습니다.

어제(27일) KTX 천안아산역에서 열린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 첫 회의어제(27일) KTX 천안아산역에서 열린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 첫 회의

"복지 줄이는 게 아니라 '질서 있는 복지' 늘리자는 것"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는 준비위원회를 거쳐 다음 달부터 우선 지방정부가 시행 중인 현금 복지 실태조사를 합니다. 시행되고 있거나 준비 중인 현금 복지 정책을 '시범사업'으로 규정해 1~2년간 시행 후 평가를 한 뒤 폐기할 정책과 유지할 정책을 선별하게 됩니다. 유지하기로 한 정책은 중앙정부에 건의해 전국에 적용되는 보편복지로 확대한다는 구상입니다. 지역 간 재정 상황에 따른 격차, 차별을 없애겠다는 의도입니다. 이주하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 차원의 복지 제공은 아직 우리 사회의 복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걸 메워주고, 복지 수준을 두껍게 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현금으로 주는 소득 재배분을 위한 정책은 중앙정부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가 복지 자체를 줄이겠다는 뜻에서 출범한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원회를 제안한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은 "대타협위원회를 구성하는 건 복지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질서 있는 복지'를 더욱 늘려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복지 수준은 여전히 OECD 가입국 중 최하위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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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경로당수당, 해녀수당, 독서수당…“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 입력 2019-05-28 11:50:15
    • 수정2019-05-28 11:53:53
    취재후·사건후
'경로당수당' '해녀수당' '독서수당' '농민수당' 종류도 가지가지 <br />재정 악화, 지역 간 격차 심화…'공로수당' 놓고 서울 중구-성동구 갈등 <br />청와대-복지부 관계자 등 참석한 2차례 비공개 간담회<br />지방 스스로 복지 대타협 기구 설치 결실<br />"복지 줄이자는 게 아니라 '질서 있는 복지' 늘리자는 것"
'정성'보단 '현금'…복지정책에서도 같은 양상

한 통신회사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부모들을 대상으로 '어버이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을 조사했더니 '현금'이 늘 1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고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굳이 없습니다. '정성'보다는 '현금'입니다. 이런 상황은 복지정책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고 합니다.


새로 생긴 복지정책 3개 중 2개는 '현금성 복지'

지난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새롭게 만든 복지정책이 668건입니다. 이 가운데 현금성 복지정책이 446건(66.7%), 3개 중 2개입니다. 2,278억 원의 예산이 주민들에게 직접 돈(또는 현물)으로 뿌려졌습니다. 종류도 다양합니다. '경로당수당' '해녀수당' '농민수당' '독서수당' '공로수당'….
강원도의 한 자치단체는 관내 거주 주민의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 재학 기간 등록금을 모두 지급합니다. 중고생들의 수학여행비를 지원하는 곳도 있고, 전입신고를 하면 학자금과 주거비를 지원하는 곳도 있습니다. 자치단체의 재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단체장 바뀌면 현금 복지 중단…안정성 떨어져"

이런 현금 복지는 사실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방정부 차원의 복지 정책들이 많이 도입되고 있는데 일회적인, 단체장의 공약으로 추진되다 보니 갑자기 지원이 끊기면서 주민들이 더 고통을 받을 수 있다."면서 "현 단계에서 기초자치단체의 현금 복지는 '양날의 칼'같은 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테면 A 단체장이 선거에서 내세워 당선되면서 도입된 제도가 다음 B 단체장 때는 없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 중구와 성동구 경계에 걸쳐 있는 아파트. 중구가 도입한 ‘공로수당’을 101동 노인들만 못 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같은 아파트인데…101동만 못 받는 '공로수당'"

현금 복지는 전염성도 강합니다. 옆 자치구에서 하면 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자치단체장들은 "이웃 구에서는 얼마를 주는 데 우리는 왜 안 주느냐?"는 압박에 시달립니다. 지역 간 갈등을 유발합니다.

대표적인 게 올해 초 불거진 서울 중구와 성동구의 사례입니다. 2월부터 중구가 기초연금 대상 노인들에게 정부 차원의 기초연금 외에 월 10만 원, '공로수당'을 지급했습니다. 한 아파트 내에서도 성동구에 속한 101동 주민은 못 받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저출산 여파로 이제는 시행하지 않는 자치단체가 없을 정도인 '출산장려금'도 지역 간 격차가 큽니다. 서울 안에서만 자치구 간 3배 정도 금액 차이가 납니다.

KBS와 인터뷰 중인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왼쪽)
선거 의식한 단체장들 욕심이 현금 복지 부추겨

현금 복지에 대비되는 개념은 서비스 복지입니다. 보육시설을 서비스 복지라고 한다면 아동수당이 현금복지입니다. 노인 돌봄시설이 서비스 복지라면 기초연금은 현금 복지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대상과 상황 등을 고려해 적절하게 시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지역 단위, 특히 기초자치단체에서 남발되는 현금 복지입니다. 선거에서 이기려는 자치단체장들의 욕심과 맞물리면서 서비스 복지보다 쉽고, 반응은 더 빨리 나타나는 현금 복지를 선택하는 경우가 점점 늘었고, 경쟁적인 현금 복지가 남발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이 깃발을 들었습니다. 바로 옆 중구가 도입한 '공로수당'에 대한 성동구민의 항의와 민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실은 다른 자치단체장들도 그동안 말은 안 했지 이렇게 가다간 '제 살 깎아 먹기'가 되고 말 거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청와대도 참여한 두 차례 간담회…대타협 기구 윤곽

올해 3월 13일 1차 비공개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공로수당'을 두고 갈등을 빚었던 서울 성동구청장과 서울 중구청장이 만났습니다.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과 보건복지부 관계자, 그리고 민간 전문가 4명까지 8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복지정책 역할 분담 필요성' 등을 논의했습니다. 4주 뒤 4월 1일에는 두 번째 비공개 간담회. 참석자가 조금 더 늘었습니다. 자치단체장으로는 서울 성동구청장과 경기 수원시장, 충남 논산시장과 충북 증평군수가 참석했고,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과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나왔습니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분담에 대한 논의가 오갔고, 복지대타협을 추진하자는 논의가 본격화됐습니다.

여기서부터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논의에서 빠지기로 합니다. 중앙정부 차원의 '톱-다운(Top-Down)' 방식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무엇보다 지방정부 주도의 대타협이 더욱 의미가 크다는 인식에 자치단체들이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이어 4월 12일 2019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총회에서 협의회 산하에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안이 상정, 의결됐고 어제(27일) 충남 아산시 KTX 천안아산역 회의실에서 역사적인 준비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습니다.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이 준비위원장으로,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이 간사로 선출됐습니다.

어제(27일) KTX 천안아산역에서 열린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 첫 회의
"복지 줄이는 게 아니라 '질서 있는 복지' 늘리자는 것"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는 준비위원회를 거쳐 다음 달부터 우선 지방정부가 시행 중인 현금 복지 실태조사를 합니다. 시행되고 있거나 준비 중인 현금 복지 정책을 '시범사업'으로 규정해 1~2년간 시행 후 평가를 한 뒤 폐기할 정책과 유지할 정책을 선별하게 됩니다. 유지하기로 한 정책은 중앙정부에 건의해 전국에 적용되는 보편복지로 확대한다는 구상입니다. 지역 간 재정 상황에 따른 격차, 차별을 없애겠다는 의도입니다. 이주하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 차원의 복지 제공은 아직 우리 사회의 복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걸 메워주고, 복지 수준을 두껍게 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현금으로 주는 소득 재배분을 위한 정책은 중앙정부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가 복지 자체를 줄이겠다는 뜻에서 출범한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원회를 제안한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은 "대타협위원회를 구성하는 건 복지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질서 있는 복지'를 더욱 늘려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복지 수준은 여전히 OECD 가입국 중 최하위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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