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100만 ‘자유’ 물결에 긴장한 중국…시진핑의 선택은?

입력 2019.06.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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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넘는 홍콩인들이 홍콩 도심을 메웠다. 홍콩 전체 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인파다. '홍콩 자유(Free Hong Kong)',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Hong Kong is not China)' 등의 팻말을 들고 있었다. 30도가 넘는 더위에 습도까지 높았던 날씨 속에 '홍콩의 중국화'를 온몸으로 거부하기 위해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거리로 나온 것이다.

거대한 반중 시위를 불러일으킨 건 친중파가 다수를 장악한 홍콩 의회, 입법회가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 법안'이다. 법안 추진은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쳐온 20대 홍콩인 찬퉁카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내용인데, 문제는 범죄인 송환 국가에 '중국'까지 포함했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친퉁카이 사건은 핑계에 불과하고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 활동 중인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 등 눈엣가시인 사람들을 모조리 본토로 송환하는 데 법을 악용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세계가 놀란 시위 규모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홍콩 행정수반)은 법안 심의를 연기했다. 중국도 적지않이 당황한 눈치다. 시위대는 '법안 철회'를 목표로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지만 홍콩 정부는 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고, 중국 중앙 정부도 법안 지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홍콩과 중국은 더 나아가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며 강경 진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가고 있다.

■ '중국인'이길 거부하는 홍콩인들..."사법체계까지 넘어가면 끝"

"법안이 통과되면 홍콩의 기본 구조가 무너지고, 홍콩이 지닌 자유가 사라질 것이다" 100만 집회가 있기 나흘 전인 지난 5일, 중국 민주화 운동인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아 홍콩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여한 한 대학생이 현지 매체에 한 말이다. '범죄인 인도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몇 달 째 이어진 가운데 천안문 사태 추모 촛불집회에도 사상 최대 인원(주최 측 추산 18만, 경찰 추산 3만7천 명)이 모였다.

중국은 이때부터 한국의 네이버 등 외국 사이트의 중국 내 접속을 차단하는 등 인터넷 통제에 나섰다. 홍콩과 중국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상황에서 법안 심의를 앞두고 100만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시위 참가자 면면을 보면 교사부터 사회복지사, 예술가,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을 망라한다. 대학생들도 동맹 휴업에 들어갔고, 72개 고등학교 학생들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내일(16일)도 송환법 저지 100만 시위를 예고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NO EXTRADITION(송환 반대)’ 팻말을 들고 있다시위 참가자들이 ‘NO EXTRADITION(송환 반대)’ 팻말을 들고 있다

법안 하나로 촉발됐지만, 이번 시위의 본질은 중국으로부터 홍콩의 자주권을 얼마나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다. 시위대는 체포영장도 없이 사람을 구금하거나 가택 연금하는 것이 다반사인 중국 사법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다며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 정부가 온갖 혐의를 적용해 시진핑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본토로 송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들이 반송중(反送中: 중국 송환 반대)을 외치는 이유다.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을 당시 중국은 하나의 국가지만 두 개의 체제로 운영되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약속했다.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누려온 홍콩이 '사회주의', '공산당 일당 체제'의 중국과 양립할 수 있겠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홍콩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갔다. 특히, 시진핑 체제 들어 홍콩 내 반중 인사가 실종되는 사건도 잇따랐다. 급기야 지난해 9월에는 홍콩 정부가 홍콩 독립을 주장한 홍콩 민족당을 강제 해산하고 독립 성향을 가진 야당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일까지 벌어져 홍콩인들의 실망감을 키웠다.

경찰이 쏜 최루탄 연기를 뚫고 시위 참가자들이 달리고 있다경찰이 쏜 최루탄 연기를 뚫고 시위 참가자들이 달리고 있다

이번 100만 시위는 언론에 이어 사법까지 중국의 통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로 보인다. '사법체계의 중국화는 곧 일국양제의 붕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홍콩 시민들은 단순히 중국 본토의 사법 체계로 넘겨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홍콩의 핵심 가치와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고 거리로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 "민주주의 지키기 위한 싸움" ...타이완 매체, '중국 공안 동원' 의혹 제기

중국은 삼권분립이 인정되지 않는 나라다. 중국공산당 이론잡지 구시(求是)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2017년 한 연설에서 "중국은 앞으로도 서방국가의 헌정과 삼권분립, 사법권 독립의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홍콩인들이 요구하는 '가치'는 홍콩이 수십 년 간 지켜온 '사법부의 독립', '삼권분립'이라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인 것이다. 홍콩의 중국 반환 뒤 많은 홍콩인이 이민을 떠났다. 90년대 매년 6만 명대를 기록한 이민자 수는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다 2017년 24,300명으로 다시 늘었다. 전년도(2016년) 6,100명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올해 초, 홍콩 중문대학 홍콩 아태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18~30살 젊은 층의 51%가 '기회가 되면 해외 이주를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그 중 26%가 '정치적인 논쟁이 너무 많고, 사회분열이 심각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가 민주적이지 않다(17.4%)'는 이유가 다음으로 많았고, '중앙(중국) 정부에 불만"이 14·9%로 뒤를 이었다. 2014년 홍콩 도심에서 벌어진 민주화 요구 시위인 '우산 혁명'이 강제 진압되고 이후 거세진 중국 입김에 대한 불만이 기저에 깔린 것으로 보였다.

외신 기사를 보면 "다음 세대에도 민주주의 국가를 넘겨주고 싶어서"라는 시위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유독 눈에 띈다. 이번 100만 시위는, 홍콩이 중국 아래로 조금씩 끌려들어 가는 상황을 더는 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타이완 삼립방송이 행방불명 가능성을 제기한 중학교 교사타이완 삼립방송이 행방불명 가능성을 제기한 중학교 교사


<타이완 삼립방송 링크>
[바로가기] https://youtu.be/uttdAblq7dk
[바로가기] https://youtu.be/2aI03uIYa30

이런 홍콩인들에게 경찰은 해산 과정에서 물대포와 최루탄, 고무탄을 장착한 공기총까지 동원했다. 타이완 매체인 삼립방송은 시위 참가자를 곤봉으로 때리는 경찰들을 보여주면서 "홍콩 경찰은 외국 언론이 보는 앞에서 저항할 능력이 없는 시민을 무자비하게 때리지 않는다. 중국 공안일 가능성이 있다"는 네티즌의 주장을 전했다. 또,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을 검문할 때 홍콩인들이 주로 쓰는 '광둥어'가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쓰는 '보통화'를 구사하는 경찰을 봤다는 목격담과 화면에 잡힌 남자 경찰관의 신분을 추적해보니 여성 경찰관으로 나왔다면서 '중국 공안 투입 의혹을 제기했다.

삼립방송은 "비록 확인된 내용은 아니다"라면서도 "만약 중국 공안이 파견됐다면 중국 남부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에게 맞아 다친 부상자들의 사진도 SNS를 통해 전해진 가운데 삼립방송은 시위 도중 오른쪽 눈에 부상을 당한 중학교 교사가 병원에 이송된 뒤 경찰에 붙잡혔는데 가족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고 보도했다.

■ 시위대 '폭도'로 규정한 중국 ... '인민해방군' 투입설까지

현지인들 사이에 홍콩 인근에 중국군이 집결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가운데 라이칭더 중화민국의 행정원장은 타이완 중앙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주석은 이미 공개적으로 중국인민해방군에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이 홍콩 사태 진압에 군대를 투입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과 중국 정부는 100만 시위 이후 법안 강행 의지를 밝히면서 홍콩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앙정부는 폭력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우리는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가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움직임을 두고 향후 송환법안 통과 시 대규모 홍콩 시위가 발생하면 강력 진압을 위한 명분 쌓기 수순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연관기사] [글로벌 돋보기] 40년 만에 금간 미중 관계…“진짜 전쟁은 지금부터”

당사자 격인 타이완과 미국, 영국까지 '홍콩의 법치와 일국양제가 위협받고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면서 홍콩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에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타이완은 물론 홍콩 문제에도 개입해 무역과 기술, 군사 분야를 넘어 중국의 영토와 체제까지 정조준하고 나서면서 홍콩 사태가 미·중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시진핑 주석. 캐리 람은 홍콩의 대표적인 친중파 정치인이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시진핑 주석. 캐리 람은 홍콩의 대표적인 친중파 정치인이다

홍콩 시민들은 의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사흘째 입법회 건물로 통하는 입구를 지키며 막고 있다. 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체포된 가운데 내일 시위 때는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한다는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홍콩 시가지를 행진한다고 한다. 주최 측은 "경찰에 분노해 더 많은 시민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홍콩 사태를 놓고 가장 고민하고 있을 사람은 시진핑 주석일 것이다. '제2의 천안문 사태'를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여론도 살펴야 하지만, 미국의 전방위적 봉쇄로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홍콩 송환법을 없던 일로 한다면 중국의 '역린'으로 여겨지는 '하나의 중국' 원칙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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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넘는 홍콩인들이 홍콩 도심을 메웠다. 홍콩 전체 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인파다. '홍콩 자유(Free Hong Kong)',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Hong Kong is not China)' 등의 팻말을 들고 있었다. 30도가 넘는 더위에 습도까지 높았던 날씨 속에 '홍콩의 중국화'를 온몸으로 거부하기 위해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거리로 나온 것이다.

거대한 반중 시위를 불러일으킨 건 친중파가 다수를 장악한 홍콩 의회, 입법회가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 법안'이다. 법안 추진은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쳐온 20대 홍콩인 찬퉁카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내용인데, 문제는 범죄인 송환 국가에 '중국'까지 포함했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친퉁카이 사건은 핑계에 불과하고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 활동 중인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 등 눈엣가시인 사람들을 모조리 본토로 송환하는 데 법을 악용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세계가 놀란 시위 규모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홍콩 행정수반)은 법안 심의를 연기했다. 중국도 적지않이 당황한 눈치다. 시위대는 '법안 철회'를 목표로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지만 홍콩 정부는 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고, 중국 중앙 정부도 법안 지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홍콩과 중국은 더 나아가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며 강경 진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가고 있다.

■ '중국인'이길 거부하는 홍콩인들..."사법체계까지 넘어가면 끝"

"법안이 통과되면 홍콩의 기본 구조가 무너지고, 홍콩이 지닌 자유가 사라질 것이다" 100만 집회가 있기 나흘 전인 지난 5일, 중국 민주화 운동인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아 홍콩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여한 한 대학생이 현지 매체에 한 말이다. '범죄인 인도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몇 달 째 이어진 가운데 천안문 사태 추모 촛불집회에도 사상 최대 인원(주최 측 추산 18만, 경찰 추산 3만7천 명)이 모였다.

중국은 이때부터 한국의 네이버 등 외국 사이트의 중국 내 접속을 차단하는 등 인터넷 통제에 나섰다. 홍콩과 중국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상황에서 법안 심의를 앞두고 100만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시위 참가자 면면을 보면 교사부터 사회복지사, 예술가,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을 망라한다. 대학생들도 동맹 휴업에 들어갔고, 72개 고등학교 학생들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내일(16일)도 송환법 저지 100만 시위를 예고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NO EXTRADITION(송환 반대)’ 팻말을 들고 있다
법안 하나로 촉발됐지만, 이번 시위의 본질은 중국으로부터 홍콩의 자주권을 얼마나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다. 시위대는 체포영장도 없이 사람을 구금하거나 가택 연금하는 것이 다반사인 중국 사법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다며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 정부가 온갖 혐의를 적용해 시진핑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본토로 송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들이 반송중(反送中: 중국 송환 반대)을 외치는 이유다.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을 당시 중국은 하나의 국가지만 두 개의 체제로 운영되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약속했다.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누려온 홍콩이 '사회주의', '공산당 일당 체제'의 중국과 양립할 수 있겠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홍콩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갔다. 특히, 시진핑 체제 들어 홍콩 내 반중 인사가 실종되는 사건도 잇따랐다. 급기야 지난해 9월에는 홍콩 정부가 홍콩 독립을 주장한 홍콩 민족당을 강제 해산하고 독립 성향을 가진 야당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일까지 벌어져 홍콩인들의 실망감을 키웠다.

경찰이 쏜 최루탄 연기를 뚫고 시위 참가자들이 달리고 있다
이번 100만 시위는 언론에 이어 사법까지 중국의 통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로 보인다. '사법체계의 중국화는 곧 일국양제의 붕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홍콩 시민들은 단순히 중국 본토의 사법 체계로 넘겨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홍콩의 핵심 가치와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고 거리로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 "민주주의 지키기 위한 싸움" ...타이완 매체, '중국 공안 동원' 의혹 제기

중국은 삼권분립이 인정되지 않는 나라다. 중국공산당 이론잡지 구시(求是)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2017년 한 연설에서 "중국은 앞으로도 서방국가의 헌정과 삼권분립, 사법권 독립의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홍콩인들이 요구하는 '가치'는 홍콩이 수십 년 간 지켜온 '사법부의 독립', '삼권분립'이라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인 것이다. 홍콩의 중국 반환 뒤 많은 홍콩인이 이민을 떠났다. 90년대 매년 6만 명대를 기록한 이민자 수는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다 2017년 24,300명으로 다시 늘었다. 전년도(2016년) 6,100명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올해 초, 홍콩 중문대학 홍콩 아태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18~30살 젊은 층의 51%가 '기회가 되면 해외 이주를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그 중 26%가 '정치적인 논쟁이 너무 많고, 사회분열이 심각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가 민주적이지 않다(17.4%)'는 이유가 다음으로 많았고, '중앙(중국) 정부에 불만"이 14·9%로 뒤를 이었다. 2014년 홍콩 도심에서 벌어진 민주화 요구 시위인 '우산 혁명'이 강제 진압되고 이후 거세진 중국 입김에 대한 불만이 기저에 깔린 것으로 보였다.

외신 기사를 보면 "다음 세대에도 민주주의 국가를 넘겨주고 싶어서"라는 시위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유독 눈에 띈다. 이번 100만 시위는, 홍콩이 중국 아래로 조금씩 끌려들어 가는 상황을 더는 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타이완 삼립방송이 행방불명 가능성을 제기한 중학교 교사

<타이완 삼립방송 링크>
[바로가기] https://youtu.be/uttdAblq7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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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홍콩인들에게 경찰은 해산 과정에서 물대포와 최루탄, 고무탄을 장착한 공기총까지 동원했다. 타이완 매체인 삼립방송은 시위 참가자를 곤봉으로 때리는 경찰들을 보여주면서 "홍콩 경찰은 외국 언론이 보는 앞에서 저항할 능력이 없는 시민을 무자비하게 때리지 않는다. 중국 공안일 가능성이 있다"는 네티즌의 주장을 전했다. 또,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을 검문할 때 홍콩인들이 주로 쓰는 '광둥어'가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쓰는 '보통화'를 구사하는 경찰을 봤다는 목격담과 화면에 잡힌 남자 경찰관의 신분을 추적해보니 여성 경찰관으로 나왔다면서 '중국 공안 투입 의혹을 제기했다.

삼립방송은 "비록 확인된 내용은 아니다"라면서도 "만약 중국 공안이 파견됐다면 중국 남부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에게 맞아 다친 부상자들의 사진도 SNS를 통해 전해진 가운데 삼립방송은 시위 도중 오른쪽 눈에 부상을 당한 중학교 교사가 병원에 이송된 뒤 경찰에 붙잡혔는데 가족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고 보도했다.

■ 시위대 '폭도'로 규정한 중국 ... '인민해방군' 투입설까지

현지인들 사이에 홍콩 인근에 중국군이 집결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가운데 라이칭더 중화민국의 행정원장은 타이완 중앙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주석은 이미 공개적으로 중국인민해방군에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이 홍콩 사태 진압에 군대를 투입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과 중국 정부는 100만 시위 이후 법안 강행 의지를 밝히면서 홍콩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앙정부는 폭력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우리는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가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움직임을 두고 향후 송환법안 통과 시 대규모 홍콩 시위가 발생하면 강력 진압을 위한 명분 쌓기 수순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연관기사] [글로벌 돋보기] 40년 만에 금간 미중 관계…“진짜 전쟁은 지금부터”

당사자 격인 타이완과 미국, 영국까지 '홍콩의 법치와 일국양제가 위협받고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면서 홍콩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에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타이완은 물론 홍콩 문제에도 개입해 무역과 기술, 군사 분야를 넘어 중국의 영토와 체제까지 정조준하고 나서면서 홍콩 사태가 미·중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시진핑 주석. 캐리 람은 홍콩의 대표적인 친중파 정치인이다
홍콩 시민들은 의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사흘째 입법회 건물로 통하는 입구를 지키며 막고 있다. 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체포된 가운데 내일 시위 때는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한다는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홍콩 시가지를 행진한다고 한다. 주최 측은 "경찰에 분노해 더 많은 시민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홍콩 사태를 놓고 가장 고민하고 있을 사람은 시진핑 주석일 것이다. '제2의 천안문 사태'를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여론도 살펴야 하지만, 미국의 전방위적 봉쇄로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홍콩 송환법을 없던 일로 한다면 중국의 '역린'으로 여겨지는 '하나의 중국' 원칙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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