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처럼 달라진 검찰 해명…비아이 부실 수사 논란 자초

입력 2019.06.21 (14:13) 수정 2019.06.2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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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기자, 수사는 생물이야"

검찰 출입 때 만난 검사들은 항상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수사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다음 소환자는 누구냐?" 검찰 수사 상황을 묻는 여러 질문에 돌아온 답도 하나였다. "수사는 생물이다". 수사가 증언과 증거 확보 상황에 맞춰 변화무쌍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런데 가수 비아이의 마약 투약 혐의 수사 무마 의혹 취재 과정에서 들은 검찰의 해명도 '생물'과 같았다. 관련 수사는 이미 3년 전에 끝났는데 검찰 해명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단 검찰 해명이 달라진 건 새로운 증거도 새로운 증언 때문도 아니었다. 검찰 해명은 취재와 보도 내용에 맞춰 달라졌다.

Y 검사 "비아이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요"

KBS 취재진은 2016년 8월 비아이 마약 혐의를 진술한 제보자 A씨 사건을 직접 지휘했던 Y검사에게 지난 13일 직접 연락했다. 왜 비아이 관련 의혹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Y검사는 "수원지검에서 1년 동안 제가 처리한 마약 사건이 1천 건이에요. 어떤 구체적인 제보가 있었다면 수사 기관에서는 연예계 관련된 내용은 굉장히 고급 정보이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매달렸을 거 같은데, 특별한 제보나 내용은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라고 말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해 재차 확인했을 때도 Y검사의 답은 같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6월 16일 KBS의 단독보도가 나갔다. 경찰이 검찰로 보낸 송치 서류에 '비아이' 내용을 별도로 담은 이른바 '비아이 수사보고서'가 있었다는 보도였다. 비아이 내용을 특정해 작성된 수사보고서를 검찰이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연관기사] [단독] 검찰, ‘비아이 마약 수사보고서’ 받고도 뭉갰다

검찰 "비아이를 경찰이 수사할 걸로 알았다"

KBS 보도 바로 다음 날인 6월 17일 검찰의 해명은 달라졌다. 우선 2016년 당시 경찰로부터 가수 '비아이'의 마약 투약 의혹이 담긴 별도의 수사보고서를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비아이를 수사하지 않은 건 경찰이 수사할 거로 알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Y검사는 18일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공보관인 수원지검 2차장님을 통해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먼저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았다"

검찰 해명이 달라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비아이 마약 혐의를 진술한 제보자 A씨 사건을 송치받고도 왜 처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해명도 KBS 취재에 맞춰 달라졌다.

검찰은 2016년 8월 31일 제보자 A씨 사건을 경찰로부터 송치받는다. A씨가 바로 전날인 30일 비아이의 마약 혐의 진술을 번복한 상황에서 추가 수사가 필요한데도 사건은 곧장 검찰로 넘어갔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A씨를 단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에 대해 "먼저 처리할 다른 사건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해명 역시 KBS 취재에 맞춰 달라졌다.

[연관기사] [단독] 마약 피의자 중 ‘비아이 제보자’만 조사 안 한 검찰

취재진은 정말 검찰이 다른 사건이 많아 A씨 사건을 처리하지 못했는지 확인해봤다.

우선 A씨는 2016년 8월 혼자 적발된 게 아니다. A씨 이전에 A씨에게 마약을 판 마약상이 경찰에 체포됐고, 이 마약상이 고객 명단을 경찰에 털어놓으면서 A씨를 포함해 모두 8명이 사나흘 간격으로 마약 구매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의 체포 날짜와 송치 시기, 검찰 처리 시기를 비교해봤다.


여기서 타관 이송은 피의자의 주거지를 관할하는 검찰청으로 사건을 넘겼다는 의미다. 송치도 늦은 사건들을 10여 일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한 것이다. A씨 사건은 한 달 이상 빠르게 가장 먼저 송치됐음에도 검찰은 A씨 사건만 처리하지 않고 놔뒀다. A씨의 주거지도 서울이라 다른 사건처럼 서울로 타관 이송이 가능했다.

취재 결과를 검찰에 제시하니 검찰의 해명이 또 달라졌다. "당시 YG 관련 내사가 진행 중이라 A씨 사건만 따로 놔뒀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검찰의 해명에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도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이첩받은 비아이 사건 무마 의혹 공익신고 건을 어제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과연 검찰이 자초한 부실수사 의혹을 검찰 스스로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지, 국민들은 불신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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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1 1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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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K
"유 기자, 수사는 생물이야"

검찰 출입 때 만난 검사들은 항상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수사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다음 소환자는 누구냐?" 검찰 수사 상황을 묻는 여러 질문에 돌아온 답도 하나였다. "수사는 생물이다". 수사가 증언과 증거 확보 상황에 맞춰 변화무쌍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런데 가수 비아이의 마약 투약 혐의 수사 무마 의혹 취재 과정에서 들은 검찰의 해명도 '생물'과 같았다. 관련 수사는 이미 3년 전에 끝났는데 검찰 해명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단 검찰 해명이 달라진 건 새로운 증거도 새로운 증언 때문도 아니었다. 검찰 해명은 취재와 보도 내용에 맞춰 달라졌다.

Y 검사 "비아이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요"

KBS 취재진은 2016년 8월 비아이 마약 혐의를 진술한 제보자 A씨 사건을 직접 지휘했던 Y검사에게 지난 13일 직접 연락했다. 왜 비아이 관련 의혹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Y검사는 "수원지검에서 1년 동안 제가 처리한 마약 사건이 1천 건이에요. 어떤 구체적인 제보가 있었다면 수사 기관에서는 연예계 관련된 내용은 굉장히 고급 정보이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매달렸을 거 같은데, 특별한 제보나 내용은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라고 말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해 재차 확인했을 때도 Y검사의 답은 같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6월 16일 KBS의 단독보도가 나갔다. 경찰이 검찰로 보낸 송치 서류에 '비아이' 내용을 별도로 담은 이른바 '비아이 수사보고서'가 있었다는 보도였다. 비아이 내용을 특정해 작성된 수사보고서를 검찰이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연관기사] [단독] 검찰, ‘비아이 마약 수사보고서’ 받고도 뭉갰다

검찰 "비아이를 경찰이 수사할 걸로 알았다"

KBS 보도 바로 다음 날인 6월 17일 검찰의 해명은 달라졌다. 우선 2016년 당시 경찰로부터 가수 '비아이'의 마약 투약 의혹이 담긴 별도의 수사보고서를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비아이를 수사하지 않은 건 경찰이 수사할 거로 알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Y검사는 18일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공보관인 수원지검 2차장님을 통해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먼저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았다"

검찰 해명이 달라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비아이 마약 혐의를 진술한 제보자 A씨 사건을 송치받고도 왜 처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해명도 KBS 취재에 맞춰 달라졌다.

검찰은 2016년 8월 31일 제보자 A씨 사건을 경찰로부터 송치받는다. A씨가 바로 전날인 30일 비아이의 마약 혐의 진술을 번복한 상황에서 추가 수사가 필요한데도 사건은 곧장 검찰로 넘어갔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A씨를 단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에 대해 "먼저 처리할 다른 사건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해명 역시 KBS 취재에 맞춰 달라졌다.

[연관기사] [단독] 마약 피의자 중 ‘비아이 제보자’만 조사 안 한 검찰

취재진은 정말 검찰이 다른 사건이 많아 A씨 사건을 처리하지 못했는지 확인해봤다.

우선 A씨는 2016년 8월 혼자 적발된 게 아니다. A씨 이전에 A씨에게 마약을 판 마약상이 경찰에 체포됐고, 이 마약상이 고객 명단을 경찰에 털어놓으면서 A씨를 포함해 모두 8명이 사나흘 간격으로 마약 구매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의 체포 날짜와 송치 시기, 검찰 처리 시기를 비교해봤다.


여기서 타관 이송은 피의자의 주거지를 관할하는 검찰청으로 사건을 넘겼다는 의미다. 송치도 늦은 사건들을 10여 일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한 것이다. A씨 사건은 한 달 이상 빠르게 가장 먼저 송치됐음에도 검찰은 A씨 사건만 처리하지 않고 놔뒀다. A씨의 주거지도 서울이라 다른 사건처럼 서울로 타관 이송이 가능했다.

취재 결과를 검찰에 제시하니 검찰의 해명이 또 달라졌다. "당시 YG 관련 내사가 진행 중이라 A씨 사건만 따로 놔뒀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검찰의 해명에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도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이첩받은 비아이 사건 무마 의혹 공익신고 건을 어제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과연 검찰이 자초한 부실수사 의혹을 검찰 스스로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지, 국민들은 불신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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