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시진핑과 일전 앞둔 트럼프…일본에 ‘군사대국’ 선물 안기나

입력 2019.06.28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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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전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 안보조약 개정 필요성을 공식 언급했다. 50년대, 태평양 전쟁 종전과 함께 전범 국가 일본의 손발을 묶는 대신 미국이 일본을 보호하도록 한 조약인데, '일본도 미국이 공격을 받으면 도울 수 있게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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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반중국 자유화 시위와 시진핑 주석의 북핵 문제 개입 선언, 중국의 상업은행까지 정조준한 미국의 제재 움직임, 중동을 일촉즉발 정세로 몰아넣은 미국-이란 대치 등 얽히고설킨 굵직한 국제 이슈가 산적한 가운데 열리는 이번 G20 회의는 '협상장'보다는 한편의 '체스 게임' 같은 치열한 외교 전장(戰場)이 될 전망이다.

그 중심에는 물론 미국과 중국이 있다. '공산당 중심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라'는 미국과 '대미항전'을 외치는 중국 간 대결은 무역 분야 분쟁을 넘어 정상 간 담판 한 번으로 끝낼 수 없을 만큼 확전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공격받으면 보호할 것이라며 '3차 세계대전'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중국에 맞서기 위해 일본과의 공조를 강화해온 그가 오사카 전장으로 가기 전 일본에 '군사 대국'이라는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카드를 꺼내 보인 것이다.

■ "미·일 안보조약 불평등" ... 트럼프, '개정' 필요성 공개적으로 밝혀

'미·일 안보조약'과 관련해 미국과 일본 사이에 논의가 오가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 것은 최근 한 외신 보도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사석에서 측근들에게 '미국이 공격받을 때 일본 자위대가 도울 수 있게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해) 의무화해야 한다'는 구상을 피력했다"고 보도했다.

미·일 안보조약은 일본이 외세의 공격을 받으면 미군이 개입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미국이 공격을 받아도 지원할 의무가 없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이 같은 내용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보도를 두고 국내 일부 언론은 '미국이 최대 우방국인 일본과의 안보 조약 폐기를 검토하는 것으로 한미 방위조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태평양전쟁 종전을 공식 선언한 샌프란시스코 조약 서명식 (1951년)태평양전쟁 종전을 공식 선언한 샌프란시스코 조약 서명식 (1951년)

하지만 이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미·일 안보조약이 일본이 미국을 돕지 못하도록 해놓은 이유는 일본이 전범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일 안보조약은 같은 날(1951.9.8)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거해 미군의 일본 내 주둔과 함께 일본이 외부로부터 공격받는 경우는 물론 내란이나 소요 사태가 발생해도 미군이 개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미·일 안보조약을 바꾼다는 것은 '전쟁 가능 국가로의 변신'을 꿈꾸는 아베 총리가 원하는 대로 일본 헌법 개정에도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내용이다.

블룸버그의 보도가 나오자 일본 정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또 뒤집었다. 사석에서 한 것으로 보도된 말을 정식 인터뷰에서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각 26일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공격받으면 우리는 3차 세계대전을 맞아 싸우게 될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생명과 자산을 걸고 일본을 보호하고 싸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이 공격받아도 전혀 우리를 도울 필요가 없다. 일본은 소니 텔레비전으로 미국이 공격받는 걸 지켜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조약의 불평등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불평등하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런 그의 발언은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자 여론용으로 보인다. CNBC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 안보 조약 관련 발언을 G20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일본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 일본, 미국 믿고 중국 앞바다 호령 ... '찰떡 공조' 과시

무역과 5G, 군사 분야 등 전방위적으로 중국 고립 작전을 펴고 있는 미국과 가장 잘 보조를 맞추는 동맹은 단연 일본이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는 일본은 미국이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며 중국과 군사적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남중국해 등 중국 인근 바다에서의 훈련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영국과 인도, 호주 등도 참여하는 중국 포위 작전을 미국과 함께 주도하면서 '대륙세력 VS 해양세력' 구도를 만드는 형국이다.

 ‘이즈모함’을 비롯해 일본과 미국, 필리핀 인도 등 4개국 군함이 남중국해를 항해하고 있다 (지난달) ‘이즈모함’을 비롯해 일본과 미국, 필리핀 인도 등 4개국 군함이 남중국해를 항해하고 있다 (지난달)
 

[연관기사] [글로벌 돋보기] 한국과 척지고 영국과 손잡는 日…열강의 추억인가?

G20 회의를 앞두고 일본 해상보안청과 해상자위대가 지난 26일 남중국해에서 처음 공동훈련을 했다는 아사히신문 보도가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이 사실상 항공모함으로 만들 계획인 경항모급 헬기탑재형 호위함인) 이즈모도 훈련에 참가했으며, 영해 경비를 맡는 해안보안청이 자국이 아닌 해외에서 자위대와 훈련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의 훈련 참여는 미국 해안경비대의 남중국해 경비함 파견을 연상시킨다. 이 같은 미·일의 협공이 중국에는 '남중국해 앞까지 미국과 일본의 영해'라는 압박임이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일본 방문 때, 군국주의 시절 일본군의 주력 항공모함과 이름이 같은 일본 항공모함에 승선한 상징적인 장면을 차치하고라도 국방과 외교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은 '찰떡 공조'를 과시해왔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의 외교·국방장관이 지난 4월 '2+2 회담'을 통해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와 '대북제재 전면 이행'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제시했다.

미국 국무부에서 ‘2+2 안전보장협의위원회(SCC)’를 마친 미국과 일본의 외교·국방장관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국무부에서 ‘2+2 안전보장협의위원회(SCC)’를 마친 미국과 일본의 외교·국방장관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미·일 양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공조에 공을 들여왔다. 북핵 대응도 큰 틀에서 이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2+2 회담 때도 미·일 안보조약이 거론됐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시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일본이 무력 공격을 받으면 양국이 공동 대처한다는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대상"이라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불평등'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이 지금의 일본을 지켜주는 데 있어 양국 간 안보조약은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일 양국이 양국의 안보조약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짚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불평등 발언이 일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는 해석도 가능케 한다.

■ 일본 "한·미·일 긴밀 협력" ... 미국 "한일 갈등이 3국 공조 방해"

미·일 양국이 공조를 과시할 때마다 꺼낸 화두가 있다. 바로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이다. 2+2 회담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라는 임무는 그대로이고 미국과 일본은 깊이 연결돼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말한 바 있다. 고노 외무상도 "우리는 미·일 간, 그리고 한·미·일 간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었다.

 한·미·일 안보회의를 앞두고 주한미국대사관에 일본 측 관계자들이 미일 양자 대화를 위해 들어가고 있다 (지난달) 한·미·일 안보회의를 앞두고 주한미국대사관에 일본 측 관계자들이 미일 양자 대화를 위해 들어가고 있다 (지난달)

그러나 지난달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개최된 한·미·일 안보회의 때 미·일 양자 대화가 국방부 청사가 아닌 별도의 장소(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열려 논란이 됐었다. 당시 국내 매체들은 이런 일이 한국 정부가 대북 정책을 놓고 미국과 미묘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고, 일본과 초계기 갈등을 겪는 와중에 발생한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 정부 간 파열음이 계속되고 있다. G20 회의 기간 한일 정상회담뿐 아니라 외교장관 회담도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한일 갈등을 몹시 우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지난 13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영토적 갈등으로 인해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과 한국, 일본의 삼각 공조가 방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미·일 3국이 과거 안보 분야만큼은 단합된 목소리를 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외교를 시작하면서 미국, 한국, 일본 3국이 서로 다른 대북 접근법을 드러냈다. 미국과 한국 간 갈등이 빚어진다면 일본의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어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이게 만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 "한국 편도 일본 편도 들 수 없다"지만 ... 한·미도 '삐걱'

이런 가운데 지난 24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전략포럼에서 미국 국무부의 조이 야마모토 한국과장이 "한·일 관계가 좋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현시점에서 두 나라의 관계가 좋지 않다"며 미국은 한·일 갈등 해소에 관여하길 원하지만, 자칫 다른 한쪽에 의해 상대방 편을 드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 뒤 환담을 나누고 있다 (지난달, 도쿄)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 뒤 환담을 나누고 있다 (지난달, 도쿄)

하지만 지금 미국의 마음은 한국과 일본 중 어느 쪽에 가 있을까? 한·일 관계를 걱정하는 미국이지만 한·미 간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국내 한 언론은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대뜸 "한국의 대통령은 한·미·일 공조에 왜 그렇게 소극적이냐?"고 물었다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이 최근 남중국해로 한국에 군함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한국 정부가 거절했다'는 외신 보도,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외교 관례를 깨고 청와대 입장에 반기를 들면서까지 화웨이에 대한 보이콧 동참을 한국 정부에 대놓고 요구한 것도 어느 때보다 한미 공조가 절실한 지금 보여서는 안 될 장면이다.


"영변 핵 시설 전면폐기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로 평가가 가능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는 '미국의 소리방송(VOA)'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전체 핵시설 신고가 필수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로 규정하는 건 오히려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셈이다"라는 등의 현지 전문가들의 반박 인터뷰를 모아 즉각 보도한 것도 좋지 않은 신호다.

[연관기사] [글로벌 돋보기] 트럼프는 아베를 믿을까?…미국에 ‘올인’하는 일본을 경계하는 이유

블룸버그는 "(이번 G20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미·일 안보조약을 논의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일 안보조약이 '일본도 미국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뀐다면 이는 곧 '미국의 일본 군사 대국화 용인'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1년 전 아베 총리 얼굴 앞에서 "나는 진주만을 기억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미국에 원자폭탄 공격을 당한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그래서 미·일 정상 간 밀월 과시를 세계가 더 주목하는지도 모른다. 양국 모두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국제 정세에 맞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 맞서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당장 강력한 우군이 필요하다. 이 같은 역학관계를 얄미울 만큼 잘 활용하고 있는 일본을 한국은 감정이 아닌 전략적 차원에서 견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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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반중국 자유화 시위와 시진핑 주석의 북핵 문제 개입 선언, 중국의 상업은행까지 정조준한 미국의 제재 움직임, 중동을 일촉즉발 정세로 몰아넣은 미국-이란 대치 등 얽히고설킨 굵직한 국제 이슈가 산적한 가운데 열리는 이번 G20 회의는 '협상장'보다는 한편의 '체스 게임' 같은 치열한 외교 전장(戰場)이 될 전망이다.

그 중심에는 물론 미국과 중국이 있다. '공산당 중심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라'는 미국과 '대미항전'을 외치는 중국 간 대결은 무역 분야 분쟁을 넘어 정상 간 담판 한 번으로 끝낼 수 없을 만큼 확전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공격받으면 보호할 것이라며 '3차 세계대전'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중국에 맞서기 위해 일본과의 공조를 강화해온 그가 오사카 전장으로 가기 전 일본에 '군사 대국'이라는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카드를 꺼내 보인 것이다.

■ "미·일 안보조약 불평등" ... 트럼프, '개정' 필요성 공개적으로 밝혀

'미·일 안보조약'과 관련해 미국과 일본 사이에 논의가 오가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 것은 최근 한 외신 보도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사석에서 측근들에게 '미국이 공격받을 때 일본 자위대가 도울 수 있게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해) 의무화해야 한다'는 구상을 피력했다"고 보도했다.

미·일 안보조약은 일본이 외세의 공격을 받으면 미군이 개입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미국이 공격을 받아도 지원할 의무가 없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이 같은 내용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보도를 두고 국내 일부 언론은 '미국이 최대 우방국인 일본과의 안보 조약 폐기를 검토하는 것으로 한미 방위조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태평양전쟁 종전을 공식 선언한 샌프란시스코 조약 서명식 (1951년)
하지만 이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미·일 안보조약이 일본이 미국을 돕지 못하도록 해놓은 이유는 일본이 전범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일 안보조약은 같은 날(1951.9.8)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거해 미군의 일본 내 주둔과 함께 일본이 외부로부터 공격받는 경우는 물론 내란이나 소요 사태가 발생해도 미군이 개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미·일 안보조약을 바꾼다는 것은 '전쟁 가능 국가로의 변신'을 꿈꾸는 아베 총리가 원하는 대로 일본 헌법 개정에도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내용이다.

블룸버그의 보도가 나오자 일본 정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또 뒤집었다. 사석에서 한 것으로 보도된 말을 정식 인터뷰에서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각 26일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공격받으면 우리는 3차 세계대전을 맞아 싸우게 될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생명과 자산을 걸고 일본을 보호하고 싸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이 공격받아도 전혀 우리를 도울 필요가 없다. 일본은 소니 텔레비전으로 미국이 공격받는 걸 지켜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조약의 불평등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불평등하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런 그의 발언은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자 여론용으로 보인다. CNBC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 안보 조약 관련 발언을 G20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일본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 일본, 미국 믿고 중국 앞바다 호령 ... '찰떡 공조' 과시

무역과 5G, 군사 분야 등 전방위적으로 중국 고립 작전을 펴고 있는 미국과 가장 잘 보조를 맞추는 동맹은 단연 일본이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는 일본은 미국이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며 중국과 군사적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남중국해 등 중국 인근 바다에서의 훈련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영국과 인도, 호주 등도 참여하는 중국 포위 작전을 미국과 함께 주도하면서 '대륙세력 VS 해양세력' 구도를 만드는 형국이다.

 ‘이즈모함’을 비롯해 일본과 미국, 필리핀 인도 등 4개국 군함이 남중국해를 항해하고 있다 (지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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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회의를 앞두고 일본 해상보안청과 해상자위대가 지난 26일 남중국해에서 처음 공동훈련을 했다는 아사히신문 보도가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이 사실상 항공모함으로 만들 계획인 경항모급 헬기탑재형 호위함인) 이즈모도 훈련에 참가했으며, 영해 경비를 맡는 해안보안청이 자국이 아닌 해외에서 자위대와 훈련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의 훈련 참여는 미국 해안경비대의 남중국해 경비함 파견을 연상시킨다. 이 같은 미·일의 협공이 중국에는 '남중국해 앞까지 미국과 일본의 영해'라는 압박임이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일본 방문 때, 군국주의 시절 일본군의 주력 항공모함과 이름이 같은 일본 항공모함에 승선한 상징적인 장면을 차치하고라도 국방과 외교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은 '찰떡 공조'를 과시해왔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의 외교·국방장관이 지난 4월 '2+2 회담'을 통해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와 '대북제재 전면 이행'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제시했다.

미국 국무부에서 ‘2+2 안전보장협의위원회(SCC)’를 마친 미국과 일본의 외교·국방장관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미·일 양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공조에 공을 들여왔다. 북핵 대응도 큰 틀에서 이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2+2 회담 때도 미·일 안보조약이 거론됐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시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일본이 무력 공격을 받으면 양국이 공동 대처한다는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대상"이라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불평등'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이 지금의 일본을 지켜주는 데 있어 양국 간 안보조약은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일 양국이 양국의 안보조약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짚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불평등 발언이 일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는 해석도 가능케 한다.

■ 일본 "한·미·일 긴밀 협력" ... 미국 "한일 갈등이 3국 공조 방해"

미·일 양국이 공조를 과시할 때마다 꺼낸 화두가 있다. 바로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이다. 2+2 회담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라는 임무는 그대로이고 미국과 일본은 깊이 연결돼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말한 바 있다. 고노 외무상도 "우리는 미·일 간, 그리고 한·미·일 간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었다.

 한·미·일 안보회의를 앞두고 주한미국대사관에 일본 측 관계자들이 미일 양자 대화를 위해 들어가고 있다 (지난달)
그러나 지난달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개최된 한·미·일 안보회의 때 미·일 양자 대화가 국방부 청사가 아닌 별도의 장소(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열려 논란이 됐었다. 당시 국내 매체들은 이런 일이 한국 정부가 대북 정책을 놓고 미국과 미묘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고, 일본과 초계기 갈등을 겪는 와중에 발생한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 정부 간 파열음이 계속되고 있다. G20 회의 기간 한일 정상회담뿐 아니라 외교장관 회담도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한일 갈등을 몹시 우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지난 13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영토적 갈등으로 인해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과 한국, 일본의 삼각 공조가 방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미·일 3국이 과거 안보 분야만큼은 단합된 목소리를 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외교를 시작하면서 미국, 한국, 일본 3국이 서로 다른 대북 접근법을 드러냈다. 미국과 한국 간 갈등이 빚어진다면 일본의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어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이게 만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 "한국 편도 일본 편도 들 수 없다"지만 ... 한·미도 '삐걱'

이런 가운데 지난 24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전략포럼에서 미국 국무부의 조이 야마모토 한국과장이 "한·일 관계가 좋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현시점에서 두 나라의 관계가 좋지 않다"며 미국은 한·일 갈등 해소에 관여하길 원하지만, 자칫 다른 한쪽에 의해 상대방 편을 드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 뒤 환담을 나누고 있다 (지난달, 도쿄)
하지만 지금 미국의 마음은 한국과 일본 중 어느 쪽에 가 있을까? 한·일 관계를 걱정하는 미국이지만 한·미 간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국내 한 언론은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대뜸 "한국의 대통령은 한·미·일 공조에 왜 그렇게 소극적이냐?"고 물었다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이 최근 남중국해로 한국에 군함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한국 정부가 거절했다'는 외신 보도,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외교 관례를 깨고 청와대 입장에 반기를 들면서까지 화웨이에 대한 보이콧 동참을 한국 정부에 대놓고 요구한 것도 어느 때보다 한미 공조가 절실한 지금 보여서는 안 될 장면이다.


"영변 핵 시설 전면폐기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로 평가가 가능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는 '미국의 소리방송(VOA)'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전체 핵시설 신고가 필수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로 규정하는 건 오히려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셈이다"라는 등의 현지 전문가들의 반박 인터뷰를 모아 즉각 보도한 것도 좋지 않은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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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는 "(이번 G20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미·일 안보조약을 논의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일 안보조약이 '일본도 미국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뀐다면 이는 곧 '미국의 일본 군사 대국화 용인'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1년 전 아베 총리 얼굴 앞에서 "나는 진주만을 기억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미국에 원자폭탄 공격을 당한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그래서 미·일 정상 간 밀월 과시를 세계가 더 주목하는지도 모른다. 양국 모두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국제 정세에 맞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 맞서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당장 강력한 우군이 필요하다. 이 같은 역학관계를 얄미울 만큼 잘 활용하고 있는 일본을 한국은 감정이 아닌 전략적 차원에서 견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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