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쳤던 ‘깜짝 회동’의 예고편 3장면

입력 2019.07.03 (06:17) 수정 2019.07.0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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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판문점 남북미 회동의 놀라움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흥분과 감격을 느꼈습니다.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이뤄진 지 66년 만에, 남북미 세 나라가 바로 그 장소, 판문점에 다시 모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토요일(29일) 아침에 트럼프 대통령이 날린 트위터 새 한 마리(트윗 메시지)가 32시간 만에 세 나라의 정상을 한 데 불러 모았다는 사실은 신기하게까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사실, 남북미 정상들의 '깜작' 판문점 회동을 예고하는 장면들은 예전부터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조각조각 나뉘어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놓쳤던, 예고편 3장면을 다시 틀어보겠습니다.

<# SCENE No.1> 45일 전 트럼프 방한 발표…北에 쏘아 올린 신호탄

지난 5월 16일 오전 4시, 청와대는 새벽부터 분주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확정됐다는 알림 전화를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 단체 공지문자를 발송하지만, 새벽이어서 혹시 못 보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5/16(목) 6월 한미 정상회담 개최 관련 서면 브리핑>>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트럼프 미 대통령은 6월 하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 참석 계기에 방한할 예정이며, 구체적인 일정은 추후 외교 경로를 통해 협의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4.11 워싱턴 정상회담 이후 약 두 달 만에 개최되는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여덟 번째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 방안에 대해 협의할 예정입니다.

2019년 5월 16일 청와대 대변인 고민정


새벽에 급히 브리핑하게 된 것에 대해 청와대는 "미국 백악관 발표와 동시에 발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새벽이라는 시간보다, 바로 날짜입니다.


위 표에서 보듯, 보통 정상회담 브리핑은 짧게는 4일 전, 길게는 약 20일 전에 발표합니다. 보통은 일주일에서 열흘 전에 발표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경우는 무려 45일 전, 그러니까 한 달 반 전에 발표를 한 겁니다.

이례적인 45일 전 브리핑을 두고 여러 말들이 나왔습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정부가 조급함에 빠져 외교적 성과 도출에 치중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런 면도 아예 틀리다고 볼 순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와대는 바로 "6월 말 트럼프가 한국에 온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일찍 알려줬던 겁니다. 그래야 하노이 이후 고민에 빠진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처음 방한 당시, 판문점을 가려다 기상 악화로 가지 못했던 적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다 아는 북한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방한해 판문점에 올 수 있다는 메시지는 북한에게 어떤 행동을 취할 여지를 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례적으로 앞당겨 발표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G20을 전후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외교전이 숨가쁘게 돌아갈 것이란 정도의 예측이었을 뿐, 어느 누구도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3자 회동을 예측하지는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45일 전 한미정상회담 발표는 북한을 바라보고 쏘아올린 신호탄이 된 셈입니다.

[KBS뉴스7] 트럼프, 다음 달 방한…한미 정상 ‘비핵화·동맹 논의’

<# SCENE No.2> 순방 6일 동안 5번 ‘평화 메시지’ 발신…“대화의 힘을 믿어라”

6월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9일부터 16일까지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3개국 순방길에 오릅니다. 당초 청와대는 핵심 메시지를 3개 준비해 순방 일정을 짰습니다. 노키아의 나라 핀란드는 '혁신', 노벨평화상 시상국 노르웨이는 '평화', 노사간 사회대타협을 이룬 스웨덴은 '포용'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 스타트업 단지를 방문하고, 노르웨이에선 한반도평화 관련 연설을, 스웨덴에선 노사 대타협의 장소인 쌀트쉐바덴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식이었죠. 그러나 정작 순방에서 대통령이 내놓은 메시지는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로 '평화'였습니다. 다음은 문 대통령이 북유럽 순방 때 내놓은 핵심메시지들입니다.


{"남북 간, 북미 간 대화의 계속을 위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남북 간, 그리고 또 북미 간 대화가 재개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6월 10일, 한-핀란드 정상 공동기자회견)

"저는 김정은 위원장과 언제든지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만날지 여부, 만나는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월 12일, 노르웨이 오슬로포럼 질의응답)

"6월 중 가능한지 여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남북 간에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연락과 협의로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경험도 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6월 13일, 한-노르웨이 공동기자회견)

"미국과 한국은 언제든지 대화할 어떤 자세가 되어 있다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습니다. 거기에, 그 시기를 이렇게 결정하는 것은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언제 호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북미 간, 또 남북 간의 대화가 너무 늦지 않게 재개되기를 바랍니다." (6월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 질의응답)

"북미 간에 구체적인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사전에 실무 협상이 먼저 열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실무협상을 토대로 양 정상 간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져야 지난번 하노이 2차 정상회담처럼 합의를 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그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6월 15일, 한-스웨덴 정상 공동기자회견)


문 대통령은 북유럽 순방 내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역설했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다시 북한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습니다. 북한의 가장 민감한 문제인 '체제와 안전 보장' 얘기도 꺼냈습니다. 핵심은 "대화의 힘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평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화입니다.
북한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도 핵무기가 아닌 대화입니다.(중략)
북한이 대화의 길을 걸어간다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북한의 체제와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신뢰하고,
대화 상대방을 신뢰해야 합니다." (6월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


내용도 내용이지만 중요한 건 또, 횟수입니다. 문 대통령의 순방 기간은 6박 8일입니다. 오고가는 비행기 시간을 하루씩 빼면 6일을 북유럽에 머물렀는데, 그중 5일 내내 '평화 메시지'를 발신했습니다. 이를 두고 또 갖가지 해석이 나왔습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진정성이 엿보인다는 해석부터, 선전매체를 동원해 우리 정부까지 비난하고 있는 북한에 너무 목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도 나왔습니다. 순방 동행 기자들 사이에선 '남과 북, 그리고 미국 사이에 뭔가 진행되고 있는 것 아냐?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대통령이 계속 쏟아낼 수는 없다'라는 해석도 퍼졌습니다. 그러나 역시, 어느 누구도 6월 30일의 판문점 남북미 3자회동을 상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 SCENE No.3> 시진핑 방북…김정은·트럼프를 움직이다.

지난달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 14년 만의 방북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직접 공항에 나와, 시 주석을 맞았습니다. 성대한 영접행사와 카퍼레이드 등 역대 최고 수준의 예우로, 시 주석을 환영했습니다. 시 주석은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안전과 발전, 비핵화 협상 지원 등 세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북한의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겁니다. 중국의 후원을 확인한 김 위원장은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성과가 나오길 희망한다"면서 "인내심을 유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대화를 다시 시작할 기미가 안 보이던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입을 통해 입장 변화 가능성을 나타낸 겁니다. 북한은 중국의 후원을 재확인하고 이를 전세계에 과시하는 효과도 거둔 것이죠. 김 위원장으로선 '이제 나갈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합니다.


시진핑 방북을 바라보는 트럼프의 머릿속은 무척 복잡했을 거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입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의 시진핑이 북한에 다가가는 걸 보고 트럼프가 여러 생각을 했을 것이다. 비핵화 협상 주도권을 시 주석에게 뺏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조금 다른 얘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강대국이더라도 두 가지 다른 싸움을 동시에 할 순 없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고 있는데, 북한과 핵을 놓고 다툴 수는 없다. 한 가지 싸움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하나에 대해선 대화와 타협을 모색할 것이다."

시 주석의 방북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방북 사흘 전인 6월 17일 밤 8시 무렵이었습니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시 주석의 방북을 사전에 협의했다"라는 것과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길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청와대는 무척 분주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 주석의 방북이 구체적으로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야말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외교전문가들도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시진핑 주석의 움직임이 김정은과 트럼프, 두 사람을 다 움직이게 한 동력이 됐다고 해석이 가능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에겐 든든한 '뒷배'로, 트럼프 대통령에겐 일종의 '메기 효과'가 된 셈이죠. 그러나 시 주석의 방북을 지켜본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6월 30일의 판문점 남북미 3자회동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예고편이 모두 끝났는데도 말이죠.

“휴가 가도 되나요?”…“글쎄요...”

북유럽 순방에 따라간 청와대 기자들은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이 거듭 남북, 북미 간 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는 그 배후에는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가 있는 것 같고, 뭔가가 있다면 그것을 취재해서 기사로 써야 했기 때문이죠. 또 작년 5월 26일 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때처럼 주말에 중요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휴일을 모두 반납해야 함을 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청와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북한과의 접촉 여부와 내용을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청와대에선 어느 누구도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 남북, 북미 간 물밑 접촉은 이뤄지고 있지만, 내용은 밝힐 수 없다." 마치 복사한 것처럼 똑같은 답이었습니다. 답답했던 어느 기자가 돌려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만큼은 답을 해달라고 미리 요청하고 '답을 해주겠다'는 답도 미리 받아놓은 뒤였습니다

"귀국한 주, 주말에 휴가를 가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글쎄요..."


판문점 남북미 회동이 열리기 전날인 지난 토요일(29일), 기자들은 G20 정상회의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주말 이틀을 꼬박 일해야 했습니다. 모두 피곤함에 지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들 기사를 썼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힘들긴 한데, 그래도 일하는 보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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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놓쳤던 ‘깜짝 회동’의 예고편 3장면
    • 입력 2019-07-03 06:17:46
    • 수정2019-07-03 13:21:25
    취재K
'깜짝' 판문점 남북미 회동의 놀라움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흥분과 감격을 느꼈습니다.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이뤄진 지 66년 만에, 남북미 세 나라가 바로 그 장소, 판문점에 다시 모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토요일(29일) 아침에 트럼프 대통령이 날린 트위터 새 한 마리(트윗 메시지)가 32시간 만에 세 나라의 정상을 한 데 불러 모았다는 사실은 신기하게까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사실, 남북미 정상들의 '깜작' 판문점 회동을 예고하는 장면들은 예전부터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조각조각 나뉘어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놓쳤던, 예고편 3장면을 다시 틀어보겠습니다.

<# SCENE No.1> 45일 전 트럼프 방한 발표…北에 쏘아 올린 신호탄

지난 5월 16일 오전 4시, 청와대는 새벽부터 분주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확정됐다는 알림 전화를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 단체 공지문자를 발송하지만, 새벽이어서 혹시 못 보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5/16(목) 6월 한미 정상회담 개최 관련 서면 브리핑>>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트럼프 미 대통령은 6월 하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 참석 계기에 방한할 예정이며, 구체적인 일정은 추후 외교 경로를 통해 협의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4.11 워싱턴 정상회담 이후 약 두 달 만에 개최되는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여덟 번째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 방안에 대해 협의할 예정입니다.

2019년 5월 16일 청와대 대변인 고민정


새벽에 급히 브리핑하게 된 것에 대해 청와대는 "미국 백악관 발표와 동시에 발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새벽이라는 시간보다, 바로 날짜입니다.


위 표에서 보듯, 보통 정상회담 브리핑은 짧게는 4일 전, 길게는 약 20일 전에 발표합니다. 보통은 일주일에서 열흘 전에 발표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경우는 무려 45일 전, 그러니까 한 달 반 전에 발표를 한 겁니다.

이례적인 45일 전 브리핑을 두고 여러 말들이 나왔습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정부가 조급함에 빠져 외교적 성과 도출에 치중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런 면도 아예 틀리다고 볼 순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와대는 바로 "6월 말 트럼프가 한국에 온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일찍 알려줬던 겁니다. 그래야 하노이 이후 고민에 빠진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처음 방한 당시, 판문점을 가려다 기상 악화로 가지 못했던 적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다 아는 북한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방한해 판문점에 올 수 있다는 메시지는 북한에게 어떤 행동을 취할 여지를 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례적으로 앞당겨 발표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G20을 전후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외교전이 숨가쁘게 돌아갈 것이란 정도의 예측이었을 뿐, 어느 누구도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3자 회동을 예측하지는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45일 전 한미정상회담 발표는 북한을 바라보고 쏘아올린 신호탄이 된 셈입니다.

[KBS뉴스7] 트럼프, 다음 달 방한…한미 정상 ‘비핵화·동맹 논의’

<# SCENE No.2> 순방 6일 동안 5번 ‘평화 메시지’ 발신…“대화의 힘을 믿어라”

6월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9일부터 16일까지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3개국 순방길에 오릅니다. 당초 청와대는 핵심 메시지를 3개 준비해 순방 일정을 짰습니다. 노키아의 나라 핀란드는 '혁신', 노벨평화상 시상국 노르웨이는 '평화', 노사간 사회대타협을 이룬 스웨덴은 '포용'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 스타트업 단지를 방문하고, 노르웨이에선 한반도평화 관련 연설을, 스웨덴에선 노사 대타협의 장소인 쌀트쉐바덴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식이었죠. 그러나 정작 순방에서 대통령이 내놓은 메시지는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로 '평화'였습니다. 다음은 문 대통령이 북유럽 순방 때 내놓은 핵심메시지들입니다.


{"남북 간, 북미 간 대화의 계속을 위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남북 간, 그리고 또 북미 간 대화가 재개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6월 10일, 한-핀란드 정상 공동기자회견)

"저는 김정은 위원장과 언제든지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만날지 여부, 만나는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월 12일, 노르웨이 오슬로포럼 질의응답)

"6월 중 가능한지 여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남북 간에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연락과 협의로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경험도 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6월 13일, 한-노르웨이 공동기자회견)

"미국과 한국은 언제든지 대화할 어떤 자세가 되어 있다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습니다. 거기에, 그 시기를 이렇게 결정하는 것은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언제 호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북미 간, 또 남북 간의 대화가 너무 늦지 않게 재개되기를 바랍니다." (6월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 질의응답)

"북미 간에 구체적인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사전에 실무 협상이 먼저 열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실무협상을 토대로 양 정상 간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져야 지난번 하노이 2차 정상회담처럼 합의를 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그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6월 15일, 한-스웨덴 정상 공동기자회견)


문 대통령은 북유럽 순방 내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역설했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다시 북한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습니다. 북한의 가장 민감한 문제인 '체제와 안전 보장' 얘기도 꺼냈습니다. 핵심은 "대화의 힘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평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화입니다.
북한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도 핵무기가 아닌 대화입니다.(중략)
북한이 대화의 길을 걸어간다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북한의 체제와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신뢰하고,
대화 상대방을 신뢰해야 합니다." (6월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


내용도 내용이지만 중요한 건 또, 횟수입니다. 문 대통령의 순방 기간은 6박 8일입니다. 오고가는 비행기 시간을 하루씩 빼면 6일을 북유럽에 머물렀는데, 그중 5일 내내 '평화 메시지'를 발신했습니다. 이를 두고 또 갖가지 해석이 나왔습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진정성이 엿보인다는 해석부터, 선전매체를 동원해 우리 정부까지 비난하고 있는 북한에 너무 목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도 나왔습니다. 순방 동행 기자들 사이에선 '남과 북, 그리고 미국 사이에 뭔가 진행되고 있는 것 아냐?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대통령이 계속 쏟아낼 수는 없다'라는 해석도 퍼졌습니다. 그러나 역시, 어느 누구도 6월 30일의 판문점 남북미 3자회동을 상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 SCENE No.3> 시진핑 방북…김정은·트럼프를 움직이다.

지난달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 14년 만의 방북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직접 공항에 나와, 시 주석을 맞았습니다. 성대한 영접행사와 카퍼레이드 등 역대 최고 수준의 예우로, 시 주석을 환영했습니다. 시 주석은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안전과 발전, 비핵화 협상 지원 등 세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북한의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겁니다. 중국의 후원을 확인한 김 위원장은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성과가 나오길 희망한다"면서 "인내심을 유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대화를 다시 시작할 기미가 안 보이던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입을 통해 입장 변화 가능성을 나타낸 겁니다. 북한은 중국의 후원을 재확인하고 이를 전세계에 과시하는 효과도 거둔 것이죠. 김 위원장으로선 '이제 나갈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합니다.


시진핑 방북을 바라보는 트럼프의 머릿속은 무척 복잡했을 거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입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의 시진핑이 북한에 다가가는 걸 보고 트럼프가 여러 생각을 했을 것이다. 비핵화 협상 주도권을 시 주석에게 뺏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조금 다른 얘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강대국이더라도 두 가지 다른 싸움을 동시에 할 순 없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고 있는데, 북한과 핵을 놓고 다툴 수는 없다. 한 가지 싸움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하나에 대해선 대화와 타협을 모색할 것이다."

시 주석의 방북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방북 사흘 전인 6월 17일 밤 8시 무렵이었습니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시 주석의 방북을 사전에 협의했다"라는 것과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길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청와대는 무척 분주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 주석의 방북이 구체적으로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야말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외교전문가들도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시진핑 주석의 움직임이 김정은과 트럼프, 두 사람을 다 움직이게 한 동력이 됐다고 해석이 가능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에겐 든든한 '뒷배'로, 트럼프 대통령에겐 일종의 '메기 효과'가 된 셈이죠. 그러나 시 주석의 방북을 지켜본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6월 30일의 판문점 남북미 3자회동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예고편이 모두 끝났는데도 말이죠.

“휴가 가도 되나요?”…“글쎄요...”

북유럽 순방에 따라간 청와대 기자들은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이 거듭 남북, 북미 간 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는 그 배후에는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가 있는 것 같고, 뭔가가 있다면 그것을 취재해서 기사로 써야 했기 때문이죠. 또 작년 5월 26일 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때처럼 주말에 중요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휴일을 모두 반납해야 함을 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청와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북한과의 접촉 여부와 내용을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청와대에선 어느 누구도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 남북, 북미 간 물밑 접촉은 이뤄지고 있지만, 내용은 밝힐 수 없다." 마치 복사한 것처럼 똑같은 답이었습니다. 답답했던 어느 기자가 돌려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만큼은 답을 해달라고 미리 요청하고 '답을 해주겠다'는 답도 미리 받아놓은 뒤였습니다

"귀국한 주, 주말에 휴가를 가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글쎄요..."


판문점 남북미 회동이 열리기 전날인 지난 토요일(29일), 기자들은 G20 정상회의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주말 이틀을 꼬박 일해야 했습니다. 모두 피곤함에 지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들 기사를 썼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힘들긴 한데, 그래도 일하는 보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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