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선’ 조사 결과 나왔지만…가시지 않은 의문 왜?

입력 2019.07.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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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부터 이 사진 한 장이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KBS 취재진이 입수한 사진입니다.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정박해 있는 모습과 선원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삼척항 인근'에서 목선이 발견됐다는 군 당국의 발표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머쓱해지게 됐습니다.

이후 국방부가 부랴부랴 합동조사단을 꾸려서 목선 경계 태세 과정과 은폐·축소 의혹을 조사했고, 13일 동안 조사한 뒤 "경계에는 실패했지만, 은폐나 축소 의도는 없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짚어봤습니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

1. '삼척항 인근' 표현 누가 지시했나?

은폐와 축소 의혹의 발단이 된 건 '삼척항 인근'이라는 이 표현입니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목선 발견 이틀 뒤인 지난달 17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소형선박 1척이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된 경위를 조사하였습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KBS는 9시 뉴스에서 북한 선박을 목격한 어민들이 "배가 항구 방파제 안쪽까지 진입했고, 사실상 부두에 정박한 상태였다"고 증언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군 당국은 이튿날인 18일 오전 "군이 해경으로부터 목선의 발견 지점을 '삼척항 방파제'로 상황을 전파받았고 어제(17일) 설명 때 '삼척항 인근'으로 말씀드렸다"고 기자들에게 공지했습니다. 그리고 18일 KBS 9시 뉴스에서 북한 목선이 정박해 있는 사진과 함께 북한 선박이 삼척항 안에 들어와 부두에 정박하고 주민들과 대화까지 나눴다고 보도했습니다.

[연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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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군 당국은 '인근'이라는 표현을 굳이 발표에 넣어서 목선의 발견 지점이 마치 삼척항이 아니라 인근 해상인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겁니다.

발견 지점이 '삼척항 방파제'인 것과 '삼척항 인근'이라는 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차이가 큽니다. '삼척항 방파제'는 명확하게 인식이 되지만 '삼척항 인근'은 삼척항이 아니라 그 주변 어디쯤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 당국이 '인근'이라는 표현을 써서 발표한 것은 이 사건의 파문을 무마 또는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제(3일) 정부 합동조사 결과 발표에서 누가 17일 국방부 브리핑 당시 이 '인근' 표현을 넣도록 지시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습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인근'이라는 표현을 누가 지시했느냐는 기자들의 계속된 질문에도 "유관기관과 협의한 결과"라고만 반복했습니다.

국가 안보의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그 유관기관에 청와대도 포함되느냐고도 물었는데 이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6월 20일부터 7월 2일까지 13일 동안 진상을 낱낱이 파악해서 은폐와 축소 의혹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막상 핵심적인 의혹에 대해서는 발표를 하지 않은 셈입니다.


2. '은폐·축소'에 청와대 개입 있었나?

은폐와 축소 의혹은 이것 뿐이 아닙니다. 17일 브리핑 당시 합참은 "전반적인 해상·해안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브리핑 뒤 카메라가 꺼진 상태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자세히 설명하는 익명 브리핑에서는 "목선이 기동을 해줬으면 분명히 잡았을 텐데 기동을 하지 않고 해류 정도 속도로 떠내려와서 근무자들이 구별을 못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경계 작전에 큰 문제는 없었고 목선이 해류 속도로 느리게 떠내려와서 식별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경두 국방장관은 이 사건을 '경계 작전 실패'로 규정했고, 목선은 해류에 떠내려온 게 아니라 동력을 사용해 삼척항까지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군 당국이 17일 브리핑에서 사실과 다르게 설명한 것으로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날 국방부 익명 브리핑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소속 행정관이 기자들 몰래 참석했다는 겁니다. 익명 브리핑은 카메라 촬영 없이 진행돼 기자들이 편하게 묻고 정부 당국자가 익명으로 답하는 자리로 상위기관인 청와대 관계자가 참석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이 행정관의 참석에 대해 정부 합동조사에선 행정관이 일상적인 업무협조의 일환으로 언론의 관심사항인 브리핑 내용을 기자들이 충분히 이해했는지, 기자들의 관심사항은 무엇인지, 추가로 설명이 필요한 소요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 참석했다고 조사 결과를 밝혔습니다.

정말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기자들에게 사전에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브리핑에 참석하고 기자들이 궁금한 점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추가로 설명을 해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행정관은 기자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 브리핑에 참석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군 당국자들의 브리핑 내용을 지켜보는 것뿐 아니라 이 사건의 축소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이번 목선 사태와 관련해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엄중 경고' 조치를 받았습니다. 정부 조사 결과 발표에서 "청와대 안보실은 국민이 불안하거나 의혹을 받지 않게 소상히 설명했어야 함에도 경계에 관한 17일 군의 발표 결과가 ‘해상 경계태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뉘앙스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안이하게 판단한 측면이 있다"며 "대통령도 이 점을 질책했다고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문 대통령이 김유근 차장에게 전반적인 책임을 물은 건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문책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은폐나 축소에 안보실이 개입한 거 아니냐는 의혹은 증폭됐지만, 그에 대한 설명 역시 없었습니다.

해경 상황보고서해경 상황보고서

3. 해경과 손발 안 맞은 군

해경은 지난달 15일 북한 선박을 발견했다는 주민 신고 직후 상황보고서를 작성해 각 기관에 전파했습니다. 1보, 2보, 3보 이런 식으로 내용을 덧붙여서 주요 관계기관에 전달했습니다. 전달받은 기관은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총리실, 국정원, 통일부 그리고 합동참모본부와 해군 작전사령부입니다.

상황보고서를 보면 "북한 선박이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삼척항으로 입항했다는 점을 해경 삼척파출소에서 확인했다"고 돼 있고, 이 내용이 각 기관에 공유된 겁니다. 군 당국도 북한 선박 발견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건데, 이틀 뒤인 17일 브리핑에서 '삼척항 인근'으로 바꿔서 발표한 겁니다.

해경은 15일 오후에 지역 기자들에게 해당 내용을 문자로 공지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어선(톤수 미상, 승조원 4명)이 조업 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자체 수리하여 삼척항으로 옴으로써 6.15.(토) 06:50경 발견되어 관계기관에서 조사 중임"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군 당국의 17일 브리핑에서 삼척항이 삼척항 인근으로 바뀐 건데 이에 대해 군은 해경의 발표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해경과 군 당국의 말이 다르게 된 건데 저간의 사정을 취재해보니 합참이 해경과 '삼척항 인근'으로 말을 통일해 맞추려 한 정황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15일 목선 발견 직후인 오전 8시부터 군 수뇌부는 북한 목선 발견에 대한 상황평가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 뒤 군은 해경과 상황을 공유하며 '삼척항 인근'으로 표현을 하자고 말을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정보 소식통은 "해경에서 15일 오전에 발송하려던 언론대응문자-PG(Press Guide)에는 '삼척항 인근'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삼척항 인근으로 해경이랑 같이하기로 했었는데 해경이 국방부에 이야기하지 않고 삼척항으로 바꿔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냈고 그걸 국방부가 모른 상태에서 17일에 브리핑을 해 뭔가 안 맞는 것처럼 비쳐졌다'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해경이 15일 오후 2시쯤 지역 기자들에게 발송한 문자에는 '삼척항으로 옴'으로 표현돼 있습니다. 하지만 해경은 15일 오전에 작성됐다는, '삼척항 인근' 표현이 들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PG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합참과 해경이 아닌, 윗선이 PG 작성에 개입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정경두 국방부장관 대국민사과정경두 국방부장관 대국민사과

북한 목선 사건은 해안, 해상 경계에 실패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두 차례나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합동조사 결과를 내놓았는데도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사건 은폐·축소 의혹이 가시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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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선’ 조사 결과 나왔지만…가시지 않은 의문 왜?
    • 입력 2019-07-05 07:00:26
    취재K
지난달 18일부터 이 사진 한 장이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KBS 취재진이 입수한 사진입니다.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정박해 있는 모습과 선원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삼척항 인근'에서 목선이 발견됐다는 군 당국의 발표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머쓱해지게 됐습니다.

이후 국방부가 부랴부랴 합동조사단을 꾸려서 목선 경계 태세 과정과 은폐·축소 의혹을 조사했고, 13일 동안 조사한 뒤 "경계에는 실패했지만, 은폐나 축소 의도는 없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짚어봤습니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
1. '삼척항 인근' 표현 누가 지시했나?

은폐와 축소 의혹의 발단이 된 건 '삼척항 인근'이라는 이 표현입니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목선 발견 이틀 뒤인 지난달 17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소형선박 1척이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된 경위를 조사하였습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KBS는 9시 뉴스에서 북한 선박을 목격한 어민들이 "배가 항구 방파제 안쪽까지 진입했고, 사실상 부두에 정박한 상태였다"고 증언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군 당국은 이튿날인 18일 오전 "군이 해경으로부터 목선의 발견 지점을 '삼척항 방파제'로 상황을 전파받았고 어제(17일) 설명 때 '삼척항 인근'으로 말씀드렸다"고 기자들에게 공지했습니다. 그리고 18일 KBS 9시 뉴스에서 북한 목선이 정박해 있는 사진과 함께 북한 선박이 삼척항 안에 들어와 부두에 정박하고 주민들과 대화까지 나눴다고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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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군 당국은 '인근'이라는 표현을 굳이 발표에 넣어서 목선의 발견 지점이 마치 삼척항이 아니라 인근 해상인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겁니다.

발견 지점이 '삼척항 방파제'인 것과 '삼척항 인근'이라는 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차이가 큽니다. '삼척항 방파제'는 명확하게 인식이 되지만 '삼척항 인근'은 삼척항이 아니라 그 주변 어디쯤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 당국이 '인근'이라는 표현을 써서 발표한 것은 이 사건의 파문을 무마 또는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제(3일) 정부 합동조사 결과 발표에서 누가 17일 국방부 브리핑 당시 이 '인근' 표현을 넣도록 지시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습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인근'이라는 표현을 누가 지시했느냐는 기자들의 계속된 질문에도 "유관기관과 협의한 결과"라고만 반복했습니다.

국가 안보의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그 유관기관에 청와대도 포함되느냐고도 물었는데 이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6월 20일부터 7월 2일까지 13일 동안 진상을 낱낱이 파악해서 은폐와 축소 의혹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막상 핵심적인 의혹에 대해서는 발표를 하지 않은 셈입니다.


2. '은폐·축소'에 청와대 개입 있었나?

은폐와 축소 의혹은 이것 뿐이 아닙니다. 17일 브리핑 당시 합참은 "전반적인 해상·해안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브리핑 뒤 카메라가 꺼진 상태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자세히 설명하는 익명 브리핑에서는 "목선이 기동을 해줬으면 분명히 잡았을 텐데 기동을 하지 않고 해류 정도 속도로 떠내려와서 근무자들이 구별을 못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경계 작전에 큰 문제는 없었고 목선이 해류 속도로 느리게 떠내려와서 식별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경두 국방장관은 이 사건을 '경계 작전 실패'로 규정했고, 목선은 해류에 떠내려온 게 아니라 동력을 사용해 삼척항까지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군 당국이 17일 브리핑에서 사실과 다르게 설명한 것으로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날 국방부 익명 브리핑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소속 행정관이 기자들 몰래 참석했다는 겁니다. 익명 브리핑은 카메라 촬영 없이 진행돼 기자들이 편하게 묻고 정부 당국자가 익명으로 답하는 자리로 상위기관인 청와대 관계자가 참석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이 행정관의 참석에 대해 정부 합동조사에선 행정관이 일상적인 업무협조의 일환으로 언론의 관심사항인 브리핑 내용을 기자들이 충분히 이해했는지, 기자들의 관심사항은 무엇인지, 추가로 설명이 필요한 소요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 참석했다고 조사 결과를 밝혔습니다.

정말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기자들에게 사전에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브리핑에 참석하고 기자들이 궁금한 점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추가로 설명을 해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행정관은 기자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 브리핑에 참석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군 당국자들의 브리핑 내용을 지켜보는 것뿐 아니라 이 사건의 축소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이번 목선 사태와 관련해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엄중 경고' 조치를 받았습니다. 정부 조사 결과 발표에서 "청와대 안보실은 국민이 불안하거나 의혹을 받지 않게 소상히 설명했어야 함에도 경계에 관한 17일 군의 발표 결과가 ‘해상 경계태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뉘앙스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안이하게 판단한 측면이 있다"며 "대통령도 이 점을 질책했다고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문 대통령이 김유근 차장에게 전반적인 책임을 물은 건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문책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은폐나 축소에 안보실이 개입한 거 아니냐는 의혹은 증폭됐지만, 그에 대한 설명 역시 없었습니다.

해경 상황보고서
3. 해경과 손발 안 맞은 군

해경은 지난달 15일 북한 선박을 발견했다는 주민 신고 직후 상황보고서를 작성해 각 기관에 전파했습니다. 1보, 2보, 3보 이런 식으로 내용을 덧붙여서 주요 관계기관에 전달했습니다. 전달받은 기관은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총리실, 국정원, 통일부 그리고 합동참모본부와 해군 작전사령부입니다.

상황보고서를 보면 "북한 선박이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삼척항으로 입항했다는 점을 해경 삼척파출소에서 확인했다"고 돼 있고, 이 내용이 각 기관에 공유된 겁니다. 군 당국도 북한 선박 발견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건데, 이틀 뒤인 17일 브리핑에서 '삼척항 인근'으로 바꿔서 발표한 겁니다.

해경은 15일 오후에 지역 기자들에게 해당 내용을 문자로 공지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어선(톤수 미상, 승조원 4명)이 조업 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자체 수리하여 삼척항으로 옴으로써 6.15.(토) 06:50경 발견되어 관계기관에서 조사 중임"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군 당국의 17일 브리핑에서 삼척항이 삼척항 인근으로 바뀐 건데 이에 대해 군은 해경의 발표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해경과 군 당국의 말이 다르게 된 건데 저간의 사정을 취재해보니 합참이 해경과 '삼척항 인근'으로 말을 통일해 맞추려 한 정황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15일 목선 발견 직후인 오전 8시부터 군 수뇌부는 북한 목선 발견에 대한 상황평가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 뒤 군은 해경과 상황을 공유하며 '삼척항 인근'으로 표현을 하자고 말을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정보 소식통은 "해경에서 15일 오전에 발송하려던 언론대응문자-PG(Press Guide)에는 '삼척항 인근'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삼척항 인근으로 해경이랑 같이하기로 했었는데 해경이 국방부에 이야기하지 않고 삼척항으로 바꿔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냈고 그걸 국방부가 모른 상태에서 17일에 브리핑을 해 뭔가 안 맞는 것처럼 비쳐졌다'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해경이 15일 오후 2시쯤 지역 기자들에게 발송한 문자에는 '삼척항으로 옴'으로 표현돼 있습니다. 하지만 해경은 15일 오전에 작성됐다는, '삼척항 인근' 표현이 들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PG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합참과 해경이 아닌, 윗선이 PG 작성에 개입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정경두 국방부장관 대국민사과
북한 목선 사건은 해안, 해상 경계에 실패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두 차례나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합동조사 결과를 내놓았는데도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사건 은폐·축소 의혹이 가시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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