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공작’ 냄새 풀풀 나는 문건 파문…‘브렉시트’에 득일까 실일까

입력 2019.07.13 (09:04) 수정 2019.07.1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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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테리사 메이 총리가 불명예 퇴진하는 가운데 지금 영국은 이달 말 예정된 새 총리 선거로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민감한 시기에 미국 주재 킴 대럭 영국 대사가 트럼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깎아내린 외교 문서가 유출돼 영국 언론에 보도됐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 상황을 '무능하다'고 일갈한 문서에는 주재국 대통령에 대한 대럭 대사의 증오심마저 느껴질 정도의 거친 표현들이 가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폭풍 트윗으로 대럭 대사에게 악담을 퍼부었고 메이 총리까지 비난했다.

불똥은 영국 정가로 번졌다.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지지하는지에 따라 대럭 대사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대러 대사는 브렉시트 반대론자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에 브렉시트를 부추겨왔다. 브렉시트에 대한 공약이 승패를 가를 총리 선거를 앞두고 터진 문건 유출은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유럽을 대체할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공을 들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 누군가의 '공작'으로 보인다.

대럭 대사는 결국 사임했고, 친 트럼프 인사가 그를 대신할 거라는 설이 나돌고 있다. 공작은 성공한 것인가.

■ "트럼프 무능·비정상" ... 혹평 일색 '비밀 노트'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고 150일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2017년 6월 대럭 대사는 본국으로 보고한 문서에 당시 '트럼프호'를 "비정상적"이고 "무능"하고 "예측 불가"하며 "분열"됐다고 묘사했다. 또, "외교적으로 어설프고 서투르다"고 혹평했다.


대럭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뉴스라고 조롱한 백악관 내부 칼싸움과 혼돈을 다룬 언론 보도는 대부분 사실"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기존 정치권과 관료 사회를 '늪'이라고 불러온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비서실장부터 요직들을 자기 사람으로 채워가던 때의 상황을 기술한 걸로 보인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오바마 도청’으로 반격 나선 트럼프…‘맞불 특검’ 카드로 대선판 흔든다

2017년 6월은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할 로버트 뮬러 특검이 임명된 직후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은 마녀사냥"이라며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직전 자신을 도청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럭 대사는 "트럼프의 대통령직이 불타고 붕괴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최근 뮬러 특검이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내통 혐의를 찾지 못했다'는 결론과 함께 수사를 종료함에 따라 대럭 대사의 예측은 빗나갔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자체가 조작"이라며 민주당과 주류 언론을 겨냥해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 오바마 만나 '기대' 표출했던 킴 대럭 ... 트럼프와 '삐걱'

대럭 대사는 2016년 1월 부임했다. 그는 워싱턴에 둥지를 틀면서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만난 사진을 자신의 트윗에 올렸는데 워싱턴포스트는 사진 속 대럭의 모습이 인간적이라며 호감을 보였다. 대럭 대사는 트윗에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인들과 일하는 역할을 맡게 돼 흥분된다"며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대럭은 대사 부임 이전 캐머런 전 총리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만난 인연이 있었다.

킴 대럭 대사가 부임 직후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찍은 사진 (출처: 킴 대럭 트윗) 킴 대럭 대사가 부임 직후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찍은 사진 (출처: 킴 대럭 트윗)

이번 사건이 터지고 가장 눈에 띈 점은 대럭 대사가 '브렉시트 반대론자'라는 사실이다. 영국 매체들은 그를 '유럽연합 잔류파', '세계주의자'라고 불렀다. 2011년 안보보좌관을 맡기 전까지 모두 합해 7년 동안 유럽연합 관련 일을 했다.

영국 브렉시트당 소속 의원들이 유럽의회 개회식에서 ‘유럽연합 노래’가 연주되자 등을 돌리고 서 있다. (지난 2일)영국 브렉시트당 소속 의원들이 유럽의회 개회식에서 ‘유럽연합 노래’가 연주되자 등을 돌리고 서 있다. (지난 2일)

브렉시트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에 따라 문건 유출에 대한 영국 정치권의 반응은 달랐다. 대럭 대사에게 가장 비판적인 정당은 브렉시트당이었다. 메이 총리에게 파면 조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브렉시트당은 유럽 의회에서 유럽연합 노래가 연주되자 등을 돌리는 퍼포먼스를 보였을 만큼 영국의 자주권을 중시하며 브렉시트의 필요성을 설파해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건이 공개되자 즉각 대럭 대사 교체를 요구한 트럼프 대통령은 브렉시트를 끄집어내 자연스럽게 문건 이슈와 연결시켰다. "과거 메이 총리가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고 브렉시트 협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재앙이었다"고 메이 총리에게까지 특유의 독설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과의 양자 무역협상'을 당근으로 제시하며 영국의 브렉시트를 부추겨왔다.

■ '반 브렉시트' 대럭, '브렉시트 지지' 노선 미국 자극했나

하지만 영국은 여전히 신중하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3.78% 차이로 유럽연합 탈퇴가 승리한 뒤 3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영국은 브렉시트 여부는 물론, 한다면 어떻게 할지를 놓고 혼돈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일부 EU 회원국들은 "영국이 EU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를 결정해놓고선 막상 EU를 나가려니 머뭇거린다"며 영국을 '고양이'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연관 기사] [글로벌24 오늘의 픽] ‘안갯 속 고양이, 영국’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해 영국을 방문한 존 볼턴과 이방카 (지난달). 볼턴 보좌관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브렉시트 당위성을 주장해왔다.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해 영국을 방문한 존 볼턴과 이방카 (지난달). 볼턴 보좌관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브렉시트 당위성을 주장해왔다.

이런 상황은 지난 5월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에서 양대 정당인 집권 보수당과 제1야당 노동당에 참패를 안겼다. 현지 언론은 브렉시트 해법을 찾지 못한 보수당의 무능과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한 노동당을 동시에 심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예 브렉시트를 없던 일로 하자는 국민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미국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의 통 큰 무역협정을 원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며 영국 내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왔다.

애초 올해 3월이었던 브렉시트 시한은 유럽연합에 여러 번 사정한 끝에 10월 말로 미뤄뒀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메이 정부는 유럽연합과 아무런 합의 없이 탈퇴하는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영국이 네 조각으로 분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 잔류를 주장하며 독립을 요구하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메이 총리가 총리직 사의를 표명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메이 총리가 총리직 사의를 표명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메이 총리는 원래 소신이 '브렉시트 반대'였다. 하지만 총리직에 오르면서 영국 국민의 뜻을 존중하겠다며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EU와 완벽히 결별하는 이른바 '하드 브렉시트'와 탈퇴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는 '소프트 브렉시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지도력에 타격을 입었다. 노동당의 경우,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다시 하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 가운데 메이 총리를 쫓아낸 집권 보수당 내 강경파들은 메이 총리의 '영국 분해'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는 기류다.

■ '브렉시트 강경파' 존슨 ... '옛 동료' 대신 트럼프 편들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은 최근 첫 경선 양자 토론에 출연해 '노딜 브렉시트'를 강력하게 시사했다. 그는 "유럽과 약속한 10월 31일, 협상이 되든 말든 EU를 탈퇴해야 한다. 10월 31일 브렉시트가 없다는 상상조차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를 포함한 보수당내 강경 브렉시트파는 '유럽연합 탈퇴는 시대적 흐름이며 미국·캐나다와의 무역협정으로 EU와의 관계를 대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도 부합하는 방향이다. 이제 논란을 종식하고 영국의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EU 탈퇴에 따른 불안감'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메이 총리가 EU와 협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 협상안을 갖고 왔다며 번번이 안건을 부결시켰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외무장관과 대럭 대사보리스 존슨 전 영국 외무장관과 대럭 대사

영국 언론은 존슨 전 장관을 '트럼프의 친구'라고 부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영국을 국빈방문하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존슨 전 총리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존슨 전 총리는 지난해, 이슬람 전통 복장을 입은 여성들을 '은행강도' 같은 단어로 묘사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도 막말을 쏟아내 비판을 받았다. 브렉시트에 대한 입장과 성향 모두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

존슨은 장관 시절 대럭 대사와 함께 일한 사이다. 그래서 이번 파문이 터지고 그가 어떤 발언을 할지에 영국 사회의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그는 '대럭 대사를 지지하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경질 의사'로 해석됐다. 그는 대신 "미국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런 그에게 총리 당선을 위해 옛 동료를 내팽개치고 트럼프의 편을 들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 대럭, '트럼프 압박'에 결국 사임 ... 브렉시트 '변수' 될까

반면, 존슨의 유일한 총리 후보 경쟁자인 제레미 헌트 현 외무장관은 철저히 대럭 대사를 두둔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메이에게 트럼프가 한 말들은 무례하다"며 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브렉시트에 대해서도 메이 총리와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다. 2016년 국민투표 당시 메이와 함께 EU 탈퇴를 반대했었다.

지난달 버킹엄 궁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지난달 버킹엄 궁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영국 왕실은 지난달, 여왕을 비롯한 왕실 인사들이 총출동해 버킹엄 궁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을 극진히 대접했다. 만찬 상차림에만 나흘이 걸렸다고 한다. 브렉시트 이후에 대비해 무역협상을 '잘 부탁한다'는 '트럼프 모시기'였다. 하지만 이렇게 공을 들인 무역협상은 하필 문건 파문 직후에 하는 걸로 잡혀있었고 미국 측의 불참으로 협상은 취소됐다. 이런 지경에 이르자 결국 대럭 대사는 "더이상 역할 수행이 불가능하다"며 사임했다. 그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정부 주최 만찬에 초청을 취소하면서 외교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였다.

제레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제레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

헌트 장관과 메이 총리는 문건 유출과 관련해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의 의견 전달하는 게 대사의 업무"라며 끝까지 대럭을 감쌌다. 하지만 트럼프에 대해 험담에 가까운 비난 일색인 대럭의 문건이 과연 '있는 그대로'의 의견을 전달한 건지 의문이다. 대럭은 트럼프 대통령과 사사건건 싸우는 미국 주류 언론과도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럭의 트럼프 평가'를 객관적으로 보려면, 브렉시트에 대한 대럭의 소신이나 그의 성향이 트럼프와 상극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비밀 외교 문서가 유출된 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에서는 이번 사태가 '친 브렉시트'·'친 트럼프' 인사로 대사를 바꾸기 위한 브렉시트 강경파들의 작품이라는 음모론도 나돌고 있다. 이번 사태가 정치인들이 뽑는 총리 선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공작이든 자작극이든, 어떤 이유로든 외교 전문 유출은 정당화될 수 없다. 국익 관철의 수단도 될 수 없다. 영국 정부는 "100명 정도로 추려내 색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누설자가 밝혀질 경우 누군지에 따라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누설자가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이번 사태가 브렉시트 찬반으로 나뉜 영국 민심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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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테리사 메이 총리가 불명예 퇴진하는 가운데 지금 영국은 이달 말 예정된 새 총리 선거로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민감한 시기에 미국 주재 킴 대럭 영국 대사가 트럼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깎아내린 외교 문서가 유출돼 영국 언론에 보도됐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 상황을 '무능하다'고 일갈한 문서에는 주재국 대통령에 대한 대럭 대사의 증오심마저 느껴질 정도의 거친 표현들이 가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폭풍 트윗으로 대럭 대사에게 악담을 퍼부었고 메이 총리까지 비난했다. 불똥은 영국 정가로 번졌다.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지지하는지에 따라 대럭 대사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대러 대사는 브렉시트 반대론자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에 브렉시트를 부추겨왔다. 브렉시트에 대한 공약이 승패를 가를 총리 선거를 앞두고 터진 문건 유출은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유럽을 대체할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공을 들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 누군가의 '공작'으로 보인다. 대럭 대사는 결국 사임했고, 친 트럼프 인사가 그를 대신할 거라는 설이 나돌고 있다. 공작은 성공한 것인가. ■ "트럼프 무능·비정상" ... 혹평 일색 '비밀 노트'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고 150일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2017년 6월 대럭 대사는 본국으로 보고한 문서에 당시 '트럼프호'를 "비정상적"이고 "무능"하고 "예측 불가"하며 "분열"됐다고 묘사했다. 또, "외교적으로 어설프고 서투르다"고 혹평했다. 대럭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뉴스라고 조롱한 백악관 내부 칼싸움과 혼돈을 다룬 언론 보도는 대부분 사실"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기존 정치권과 관료 사회를 '늪'이라고 불러온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비서실장부터 요직들을 자기 사람으로 채워가던 때의 상황을 기술한 걸로 보인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오바마 도청’으로 반격 나선 트럼프…‘맞불 특검’ 카드로 대선판 흔든다 2017년 6월은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할 로버트 뮬러 특검이 임명된 직후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은 마녀사냥"이라며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직전 자신을 도청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럭 대사는 "트럼프의 대통령직이 불타고 붕괴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최근 뮬러 특검이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내통 혐의를 찾지 못했다'는 결론과 함께 수사를 종료함에 따라 대럭 대사의 예측은 빗나갔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자체가 조작"이라며 민주당과 주류 언론을 겨냥해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 오바마 만나 '기대' 표출했던 킴 대럭 ... 트럼프와 '삐걱' 대럭 대사는 2016년 1월 부임했다. 그는 워싱턴에 둥지를 틀면서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만난 사진을 자신의 트윗에 올렸는데 워싱턴포스트는 사진 속 대럭의 모습이 인간적이라며 호감을 보였다. 대럭 대사는 트윗에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인들과 일하는 역할을 맡게 돼 흥분된다"며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대럭은 대사 부임 이전 캐머런 전 총리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만난 인연이 있었다. 킴 대럭 대사가 부임 직후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찍은 사진 (출처: 킴 대럭 트윗) 이번 사건이 터지고 가장 눈에 띈 점은 대럭 대사가 '브렉시트 반대론자'라는 사실이다. 영국 매체들은 그를 '유럽연합 잔류파', '세계주의자'라고 불렀다. 2011년 안보보좌관을 맡기 전까지 모두 합해 7년 동안 유럽연합 관련 일을 했다. 영국 브렉시트당 소속 의원들이 유럽의회 개회식에서 ‘유럽연합 노래’가 연주되자 등을 돌리고 서 있다. (지난 2일) 브렉시트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에 따라 문건 유출에 대한 영국 정치권의 반응은 달랐다. 대럭 대사에게 가장 비판적인 정당은 브렉시트당이었다. 메이 총리에게 파면 조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브렉시트당은 유럽 의회에서 유럽연합 노래가 연주되자 등을 돌리는 퍼포먼스를 보였을 만큼 영국의 자주권을 중시하며 브렉시트의 필요성을 설파해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건이 공개되자 즉각 대럭 대사 교체를 요구한 트럼프 대통령은 브렉시트를 끄집어내 자연스럽게 문건 이슈와 연결시켰다. "과거 메이 총리가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고 브렉시트 협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재앙이었다"고 메이 총리에게까지 특유의 독설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과의 양자 무역협상'을 당근으로 제시하며 영국의 브렉시트를 부추겨왔다. ■ '반 브렉시트' 대럭, '브렉시트 지지' 노선 미국 자극했나 하지만 영국은 여전히 신중하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3.78% 차이로 유럽연합 탈퇴가 승리한 뒤 3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영국은 브렉시트 여부는 물론, 한다면 어떻게 할지를 놓고 혼돈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일부 EU 회원국들은 "영국이 EU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를 결정해놓고선 막상 EU를 나가려니 머뭇거린다"며 영국을 '고양이'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연관 기사] [글로벌24 오늘의 픽] ‘안갯 속 고양이, 영국’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해 영국을 방문한 존 볼턴과 이방카 (지난달). 볼턴 보좌관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브렉시트 당위성을 주장해왔다. 이런 상황은 지난 5월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에서 양대 정당인 집권 보수당과 제1야당 노동당에 참패를 안겼다. 현지 언론은 브렉시트 해법을 찾지 못한 보수당의 무능과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한 노동당을 동시에 심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예 브렉시트를 없던 일로 하자는 국민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미국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의 통 큰 무역협정을 원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며 영국 내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왔다. 애초 올해 3월이었던 브렉시트 시한은 유럽연합에 여러 번 사정한 끝에 10월 말로 미뤄뒀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메이 정부는 유럽연합과 아무런 합의 없이 탈퇴하는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영국이 네 조각으로 분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 잔류를 주장하며 독립을 요구하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메이 총리가 총리직 사의를 표명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메이 총리는 원래 소신이 '브렉시트 반대'였다. 하지만 총리직에 오르면서 영국 국민의 뜻을 존중하겠다며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EU와 완벽히 결별하는 이른바 '하드 브렉시트'와 탈퇴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는 '소프트 브렉시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지도력에 타격을 입었다. 노동당의 경우,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다시 하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 가운데 메이 총리를 쫓아낸 집권 보수당 내 강경파들은 메이 총리의 '영국 분해'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는 기류다. ■ '브렉시트 강경파' 존슨 ... '옛 동료' 대신 트럼프 편들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은 최근 첫 경선 양자 토론에 출연해 '노딜 브렉시트'를 강력하게 시사했다. 그는 "유럽과 약속한 10월 31일, 협상이 되든 말든 EU를 탈퇴해야 한다. 10월 31일 브렉시트가 없다는 상상조차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를 포함한 보수당내 강경 브렉시트파는 '유럽연합 탈퇴는 시대적 흐름이며 미국·캐나다와의 무역협정으로 EU와의 관계를 대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도 부합하는 방향이다. 이제 논란을 종식하고 영국의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EU 탈퇴에 따른 불안감'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메이 총리가 EU와 협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 협상안을 갖고 왔다며 번번이 안건을 부결시켰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외무장관과 대럭 대사 영국 언론은 존슨 전 장관을 '트럼프의 친구'라고 부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영국을 국빈방문하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존슨 전 총리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존슨 전 총리는 지난해, 이슬람 전통 복장을 입은 여성들을 '은행강도' 같은 단어로 묘사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도 막말을 쏟아내 비판을 받았다. 브렉시트에 대한 입장과 성향 모두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 존슨은 장관 시절 대럭 대사와 함께 일한 사이다. 그래서 이번 파문이 터지고 그가 어떤 발언을 할지에 영국 사회의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그는 '대럭 대사를 지지하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경질 의사'로 해석됐다. 그는 대신 "미국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런 그에게 총리 당선을 위해 옛 동료를 내팽개치고 트럼프의 편을 들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 대럭, '트럼프 압박'에 결국 사임 ... 브렉시트 '변수' 될까 반면, 존슨의 유일한 총리 후보 경쟁자인 제레미 헌트 현 외무장관은 철저히 대럭 대사를 두둔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메이에게 트럼프가 한 말들은 무례하다"며 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브렉시트에 대해서도 메이 총리와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다. 2016년 국민투표 당시 메이와 함께 EU 탈퇴를 반대했었다. 지난달 버킹엄 궁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영국 왕실은 지난달, 여왕을 비롯한 왕실 인사들이 총출동해 버킹엄 궁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을 극진히 대접했다. 만찬 상차림에만 나흘이 걸렸다고 한다. 브렉시트 이후에 대비해 무역협상을 '잘 부탁한다'는 '트럼프 모시기'였다. 하지만 이렇게 공을 들인 무역협상은 하필 문건 파문 직후에 하는 걸로 잡혀있었고 미국 측의 불참으로 협상은 취소됐다. 이런 지경에 이르자 결국 대럭 대사는 "더이상 역할 수행이 불가능하다"며 사임했다. 그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정부 주최 만찬에 초청을 취소하면서 외교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였다. 제레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 헌트 장관과 메이 총리는 문건 유출과 관련해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의 의견 전달하는 게 대사의 업무"라며 끝까지 대럭을 감쌌다. 하지만 트럼프에 대해 험담에 가까운 비난 일색인 대럭의 문건이 과연 '있는 그대로'의 의견을 전달한 건지 의문이다. 대럭은 트럼프 대통령과 사사건건 싸우는 미국 주류 언론과도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럭의 트럼프 평가'를 객관적으로 보려면, 브렉시트에 대한 대럭의 소신이나 그의 성향이 트럼프와 상극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비밀 외교 문서가 유출된 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에서는 이번 사태가 '친 브렉시트'·'친 트럼프' 인사로 대사를 바꾸기 위한 브렉시트 강경파들의 작품이라는 음모론도 나돌고 있다. 이번 사태가 정치인들이 뽑는 총리 선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공작이든 자작극이든, 어떤 이유로든 외교 전문 유출은 정당화될 수 없다. 국익 관철의 수단도 될 수 없다. 영국 정부는 "100명 정도로 추려내 색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누설자가 밝혀질 경우 누군지에 따라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누설자가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이번 사태가 브렉시트 찬반으로 나뉜 영국 민심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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