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배춧값 폭락에 지금 고랭지에서는…

입력 2019.09.05 (19:17) 수정 2019.09.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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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유통인들의 극단적 선택’ 속출…우울한 고랭지

강원도 평창 대관령면이나 강릉 왕산면, 삼척 하장면은 해발 고도가 600m가 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랭지 지역입니다. 고랭지에서는 여름철 서늘한 기온을 이용해 배추와 무 등 농작물 재배가 활발합니다. 고랭지 지역의 농작물은 대개 농민에서부터 산지유통인, 중간상인, 도매시장, 소매점 등의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됩니다.

그런데. 산지 유통인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요? 고랭지의 경우 농민들이 밭에 배추나 무를 심은 뒤 어느 정도 자라면, 밭이 통째로 팔립니다. 이른바 '밭떼기' 거래입니다. 이런 '밭떼기'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산지 유통인입니다. 이들은 계약금으로 농민들에게 선금을 주고 채소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랭지 채소 가격이 크게 하락한 가운데, 자금 압박 등의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산지 유통인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농가도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해발 900m 고랭지 배추밭해발 900m 고랭지 배추밭

[연관 기사] 배춧값 폭락에…유통인·농민들 극단적 선택까지

고랭지 큰손 ‘산지 유통인’의 죽음
고랭지 배추밭을 취재하던 중이었습니다. 배추 재배 농민은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산지 유통인'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습니다. 고랭지 배추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채소를 거래했다는 A씨. 3년 전부터 채소 가격이 좋지 않아, 꾸준히 자금 압박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앞으로도 채솟값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가슴 아픈 선택을 했다고 합니다. 이름만 대면 안다는 업계의 '큰 손'으로 불리는 산지 유통인 A씨. 실제 다른 농민들도 대부분 그를 알고 있었고, 그의 죽음 또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배추 수확 중인 고랭지 농민배추 수확 중인 고랭지 농민

얼마나 떨어졌길래? 수확할수록 손해

해발고도가 높은 고랭지. 상대적으로 서늘한 날씨가 특징인 이곳의 주요 작물은 배추와 무 등 고랭지 채소입니다. 하지만 최근 고랭지 채소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한 달 동안 고랭지 배추(10kg 상품 기준)의 평균 도매가격은 8,771원입니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8월 18,682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인건비와 운임 등을 감안하면 수확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라는 게 산지 유통인과 농민들의 말입니다. 고랭지 무 역시 산지폐기를 할 정도로 가격이 급락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계약금을 주고 고랭지 채소를 사들였던 일부 산지 유통인의 경제적 부담 역시 커졌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부 산지 유통인은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고랭지 배추 평균 도매가격고랭지 배추 평균 도매가격

“한둘이 아니야”…“10명 이상 극단적 선택”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산지 유통인은 취재 결과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고랭지밭이 위치한 시군의 자치단체 관계자와 농민단체, 농협과 경찰 등을 확인한 결과 산지 유통인 다수의 죽음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단위농협 관계자는 본인이 아는 산지 유통인만 9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적 사유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상당수가 고랭지 채소 등 농작물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자금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산지 유통인 단체와 농민들은 알려지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최근 10명 이상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합니다.

고랭지 배추밭 농민과 기자고랭지 배추밭 농민과 기자

산지유통인 빈자리…농민도 연쇄적 타격

산지 유통인은 대부분 전국적으로 채소를 거래하는데, 직접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명 '화주'라고도 불립니다. 이른바 '밭떼기' 거래 방식을 두고 일부에서는 농작물 투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농민들 입장에서는 판로를 열어주는 귀한 손님이기도 합니다.

농협과 함께 고랭지 채소 거래의 큰 축을 담당했던 산지 유통인들이 잇따라 무너지자, 농민들은 당장 판로가 막혀버렸습니다. 자체적으로 시장에 출하하려다 보니, 운임 부담 등 한계가 있었습니다. 밭떼기 거래 이후 '잔금'을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연쇄적으로 농민들도 타격을 받는 겁니다.

시장 출하 고랭지 배추시장 출하 고랭지 배추

“값 오를 때만 호들갑” 빚만 남는 농사

두 달 전, 강원도 정선의 한 농민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던 이 농민은 많은 빚을 지게 된 후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비단 이 농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 농민이 영농작업을 위해 대출을 받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빚 역시 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농민 상당수는 농업에 대한 언론 시각과 정부 대응에 문제가 많다고 말합니다.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 조짐이라도 보이면, 언론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고 정부도 비축 물량을 풀어놓거나 대체 수입품목 확대 등 적극적으로 수급 조절에 나선다고 합니다.

반면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면, 그 호들갑의 온도가 상대적으로 차갑다고 합니다. 생산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지만, 적극적인 정부 대응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결과적으로 농산물 가격은 잡겠지만, 농민들은 손해만 반복된다는 얘기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가는 빚만 남게 되고 극단적 선택도 더 많아질 것이라는 게 농민들의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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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배춧값 폭락에 지금 고랭지에서는…
    • 입력 2019-09-05 19:17:40
    • 수정2019-09-05 20:17:44
    취재후·사건후
‘산지 유통인들의 극단적 선택’ 속출…우울한 고랭지

강원도 평창 대관령면이나 강릉 왕산면, 삼척 하장면은 해발 고도가 600m가 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랭지 지역입니다. 고랭지에서는 여름철 서늘한 기온을 이용해 배추와 무 등 농작물 재배가 활발합니다. 고랭지 지역의 농작물은 대개 농민에서부터 산지유통인, 중간상인, 도매시장, 소매점 등의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됩니다.

그런데. 산지 유통인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요? 고랭지의 경우 농민들이 밭에 배추나 무를 심은 뒤 어느 정도 자라면, 밭이 통째로 팔립니다. 이른바 '밭떼기' 거래입니다. 이런 '밭떼기'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산지 유통인입니다. 이들은 계약금으로 농민들에게 선금을 주고 채소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랭지 채소 가격이 크게 하락한 가운데, 자금 압박 등의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산지 유통인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농가도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해발 900m 고랭지 배추밭
[연관 기사] 배춧값 폭락에…유통인·농민들 극단적 선택까지

고랭지 큰손 ‘산지 유통인’의 죽음
고랭지 배추밭을 취재하던 중이었습니다. 배추 재배 농민은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산지 유통인'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습니다. 고랭지 배추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채소를 거래했다는 A씨. 3년 전부터 채소 가격이 좋지 않아, 꾸준히 자금 압박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앞으로도 채솟값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가슴 아픈 선택을 했다고 합니다. 이름만 대면 안다는 업계의 '큰 손'으로 불리는 산지 유통인 A씨. 실제 다른 농민들도 대부분 그를 알고 있었고, 그의 죽음 또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배추 수확 중인 고랭지 농민
얼마나 떨어졌길래? 수확할수록 손해

해발고도가 높은 고랭지. 상대적으로 서늘한 날씨가 특징인 이곳의 주요 작물은 배추와 무 등 고랭지 채소입니다. 하지만 최근 고랭지 채소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한 달 동안 고랭지 배추(10kg 상품 기준)의 평균 도매가격은 8,771원입니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8월 18,682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인건비와 운임 등을 감안하면 수확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라는 게 산지 유통인과 농민들의 말입니다. 고랭지 무 역시 산지폐기를 할 정도로 가격이 급락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계약금을 주고 고랭지 채소를 사들였던 일부 산지 유통인의 경제적 부담 역시 커졌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부 산지 유통인은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고랭지 배추 평균 도매가격
“한둘이 아니야”…“10명 이상 극단적 선택”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산지 유통인은 취재 결과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고랭지밭이 위치한 시군의 자치단체 관계자와 농민단체, 농협과 경찰 등을 확인한 결과 산지 유통인 다수의 죽음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단위농협 관계자는 본인이 아는 산지 유통인만 9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적 사유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상당수가 고랭지 채소 등 농작물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자금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산지 유통인 단체와 농민들은 알려지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최근 10명 이상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합니다.

고랭지 배추밭 농민과 기자
산지유통인 빈자리…농민도 연쇄적 타격

산지 유통인은 대부분 전국적으로 채소를 거래하는데, 직접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명 '화주'라고도 불립니다. 이른바 '밭떼기' 거래 방식을 두고 일부에서는 농작물 투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농민들 입장에서는 판로를 열어주는 귀한 손님이기도 합니다.

농협과 함께 고랭지 채소 거래의 큰 축을 담당했던 산지 유통인들이 잇따라 무너지자, 농민들은 당장 판로가 막혀버렸습니다. 자체적으로 시장에 출하하려다 보니, 운임 부담 등 한계가 있었습니다. 밭떼기 거래 이후 '잔금'을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연쇄적으로 농민들도 타격을 받는 겁니다.

시장 출하 고랭지 배추
“값 오를 때만 호들갑” 빚만 남는 농사

두 달 전, 강원도 정선의 한 농민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던 이 농민은 많은 빚을 지게 된 후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비단 이 농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 농민이 영농작업을 위해 대출을 받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빚 역시 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농민 상당수는 농업에 대한 언론 시각과 정부 대응에 문제가 많다고 말합니다.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 조짐이라도 보이면, 언론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고 정부도 비축 물량을 풀어놓거나 대체 수입품목 확대 등 적극적으로 수급 조절에 나선다고 합니다.

반면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면, 그 호들갑의 온도가 상대적으로 차갑다고 합니다. 생산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지만, 적극적인 정부 대응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결과적으로 농산물 가격은 잡겠지만, 농민들은 손해만 반복된다는 얘기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가는 빚만 남게 되고 극단적 선택도 더 많아질 것이라는 게 농민들의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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