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충성 경쟁 ‘최전선’…북한 기자단

입력 2019.09.14 (08:07) 수정 2019.09.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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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 평양 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성과와 과제를 짚어봤는데요.

지난해와 올해 있었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주요 화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남측 기자들이 무색할 정도로 과열된 취재양상을 보여주기도 했던 북한 기자들인데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왜 이렇게 열띤 취재를 했을까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의 기자단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태운 비행기가 평양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뒤이어 등장 음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위원장 내외.

북한 기자단의 움직임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남북 정상 부부를 둘러싼 북한 기자단의 열띤 취재.

그 열의는 공항을 벗어나 평양 시내로 들어서는 도로에서도, 문 대통령 부부의 숙소인 백화원에 들어서서도 이어졌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까지 나서 취재진을 물릴 정도.

[김정은/국무위원장/2018년 9월 : "우리 영철 부장이랑 다 나가자, 왜 여기까지 들어와."]

이후에도 공동선언 발표 기자회견장과, 예정에 없이 진행된 두 정상의 백두산 방문길까지.

북한 기자단은 경쟁이라도 벌이듯 가장 선두에 서서 일거수일투족을 화면 담는 데 열중했다.

그러나 취재경계선으로 불리는 포토라인을 어기는 것은 물론, 생방송 중인 중계 화면까지 가리면서 벌이는 취재방식은 정도가 심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 6월,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남북미 정상회동에선 북한 기자단을 향한 외신 기자들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취재 기준으로 북한 기자단을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이 조선중앙TV 기자 출신 탈북민의 의견이다.

이들에겐 취재의 목적보다 김정은 위원장, 즉 북한 지도자를 잘 촬영해야 하는 정치적 임무가 먼저라는 것이다.

[장진성/전 조선중앙TV 기자/2004년 탈북 : "김정은이 현지 시찰 동행할 때에도 방송인의 기자들이 못 가요. 조직지도부 산하 언론담당이죠. 1호 카메라맨들이라고 하죠. 그 사람들이 갑니다. 그러니까 방송인의 기자들이 가서 함부로 찍을 수 있는 수령이 아니에요. 당 조직지도부 시스템으로 그렇게 다 되어 있는 거죠."]

실제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하는 북한 기록영화를 살펴보면 김 위원장을 촬영하는 북한 기자단의 열성적인 모습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북한에선 지도자를 가까이에서 촬영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높은 위상을 의미하는 만큼 취재보다는 그야말로 충성 경쟁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에게 북한 기자단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공개 된 것은 1990년 개최됐던 제1차 남북 고위급 회담 때다.

서울을 방문했던 북측 대표단에는 연형묵 총리 등 주요 간부들과 함께 50명의 기자단도 포함돼 있었다.

[남한 기자 : "이번 회담 성과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1차 고위급회담 방남 기자단 : "좋게 생각하죠. 이 통일 위해서 서로 만나서 위상을 회복하고 하나의 국가로 만들고 서로 하나다……."]

당시 북한 기자단은 공식적인 회담 일정도 소화해 냈지만, 서울 일대를 둘러보고 신문사, 대학교 등을 방문하며 남한 사회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북한 기자 : "각종 신문사가 우리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인민들의 요구와 인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취재 방식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육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것은 없는가.) 저희는 서울이기(살기) 때문에 그런 건 모르는데…."]

남측의 안내 규정을 무시한 채 기습적인 취재를 벌이는가 하면, 북한 당국의 입장을 강요하는 인터뷰도 이어간 것이다.

[북한 기자 : "통일에 미군이 방해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한 대학을 방문해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을 설명하기도 했다.

[북한 기자 : "지금 사상과 제도가 서로 다른 이런 조건에서 또 그 누구도 이 제도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 이런 조건에서 통일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연방제에 의한 통일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북한 기자단의 개인적인 취재 방식이 아닌 북한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만들어 내야 하는 결과물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장진성/전 조선중앙TV 기자/2004년 탈북 : "체제의 선전 또 당 정책 선전에서 이탈할 수가 없죠. 우리 기자들 같은 경우에는 제가 남한에 와서도 많이 느끼는데 우리는 탐방 취재잖아요. 자기가 꾸준히 찾아가고 북한은 지령취재에요. 위에서 오늘 여기서 가서 해라. 그러니까 그렇게 굉장히 당 정책 위주로만 취재하죠."]

실제 당시 북한 기자들은 관람 소감 등을 묻는 남한 기자들의 질문엔 개인적인 의견을 거의 내지않았다.

시민들을 향해 거침없이 이야기 쏟아내던 모습은 사라지고 오히려 어색해하며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남한기자 : "북한에서 기자들 취재하는 거 하고 남한의 기자들 취재하는 거 차이점이 있으면 뭐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북한기자 : "그건 있다가 시간 있을 때 말해주지 뭐."]

그러나 고위급회담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리고 북한 기자단의 서울방문이 잦아질수록. 미묘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북한식 지령 취재 방법은 계속되는 듯했지만, 서울 시민들의 대답은 오히려 소탈해져만 갔다.

[3차 고위급회담 방남 기자단 : "판문점을 중심으로 해서 북과 남은 지금 각종 무기들이 집중되어 있단 말입니다. 이게 다 없어져야 하지 않아요?"]

[서울 시민 : "저는 그냥 주부니까요 정치도 모르고 군사적인 것도 몰라요. 다만 한 동포니까 빨리 만났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북한 기자단은 어색하고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서울 상인 : "자주 오셔야 돼 이제..."]

[3차 고위급회담 방남 기자단 : "(무섭지 않습니까?) 왜 무서워요 같은 사람인데요."]

북한 기자단을 향해 손을 흔드는 직장인들과, 즉석에서 취재요청까지 하는 북한 기자단.

[북한 기자 : "사장님은 꽃밭 속에 있구만!"]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남한 시민 : "이런 게 진짜 (북한)방송으로 나가고 그래요? (그럼요.) 그래요? 제가 보여요?"]

[남한 시민 :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안녕히 돌아가세요."]

[남한 시민 : "(모두 건강하세요!) 네."]

북한 기자들의 질문도 북한대표들에 대한 인상과 남북 고위급회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에 관한 것들로 채워졌다.

[5차 고위급회담 방남 기자단 : "(여러 차례 여기 왔다 갈 때마다 거리에서 좀 보긴 했지요? ) 그냥 TV에서만 보고요, 직접 이렇게 타시는 건 처음 봤어요. (아, 그래 어때요?) 저희 남한에 계신 분들하고 똑같으신 것 같아요. (그래요. 말도 같고요? ) 네."]

남한 기자들과도 아이스크림, 음료수를 나눠 먹는 등 다소 여유 있는 모습도 공개됐다.

[남한 기자 : "북한 얼음 보숭이하고 어떻게 달라요. 맛이?"]

[북한 기자 : "이거 참 잘 만들었어요."]

[남한 기자 : "북한 거보다 맛있어요?"]

[북한 기자 : "그걸 꼭 대비(비교)해야 되겠어?"]

자신들을 안내해 준 교통경찰과의 대화에선 다소 인간적인 모습도 내비쳤다.

[서울 교통경찰 : "정상회담 때 우리도 (북한) 가서 봐야지 이제. 그때 우리 콜라 좀 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줘야지."]

[북한기자 : "뭘 드릴까? 지금부터 요청해요."]

그리고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마침내 남북 방송 교류에도 새로운 장이 열렸다.

남북 최초의 합동방송이 성사된 것이다.

백두산과 한라산, 서울을 연결하며 남과 북이 공동 제작한 3원 생방송. ‘백두에서 한라까지’

[KBS 한민족 특별 기획 ‘백두에서 한라까지’/2000년 9월 : "백두산 현장부터 가 보겠습니다. 백두산 현장 나와 주십시오."]

["백두산 장군봉 정상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전인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임성민입니다.)"]

KBS와 조선중앙방송위원회가 공동으로 제작한 ‘백두에서 한라까지’는 북측 방송기자가 처음으로 남측 생방송에 출연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리현철/조선 중앙방송위원회 TV기자 : "온 민족이 우러르는 민족의 성산에서 이 나라 1,000만 산악을 거느린 산에서 남측의 방송인들을 만나서 정말 민족을 위한 좋은 일을 하게 돼서 기쁩니다."]

당시 프로그램은 방송 교류를 통해 남과 북이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는데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남과 북 방송인들을 한층 가깝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금강산 피살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며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남과 북을 오가던 취재진의 발길도 멈춰 서고 말았다.

그리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기자단이 다시 남한 땅을 밟았다.

["(취재준비는 좀 얼마나 하셨나요?) 지금 시작이죠."]

남측 기자단의 질문에 간단한 대답만 남기고,

[북한 기자 : "자~ 좀 웃으라우야!"]

자신의 맡은 역할 이외엔 한 치의 틈도 보여주지 않는 북한 기자단.

["(현수막 같은 것 많이 찍으시네요?) 취재 좀 합시다. 취재 좀."]

마치 1990년 남북 기자단의 첫 만남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이창준/KBS 촬영기자/2018 평창동계올림픽 취재 : "저희도 이제 조금 시간이 지나갈수록 취재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녹취도 하고 약간 취재진을 취재를 하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되게 경계하고 말을 걸면 약간 신경질적으로 왜 말을 거냐, 우리도 일 좀 하자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고,

[남한기자 : "많이 촬영하셨습니까? 어떤 거 주로 하셨나요? 응원단 표정하고…."]

[북한 기자 : "같은 동업자끼리 뭘 그런 걸 묻네?"]

우리가 같은 민족이자 한때 가장 가깝게 교류했던 취재원임을 북한 기자단도 잊지 않고 있었다.

[남한 기자 : "기자로서 남측사회 경험해 보시니까 어떠셨어요?"]

[북한 기자 : "우리 같은 민족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창준/KBS 촬영기자/2018 평창동계올림픽 취재 :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분들도 처음에 경계하던 모습에서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지고 저희를 처음에는 경계하던 모습에서 조금 조금씩 농담도 약간 섞어서 대화가 길지는 않지만 짧게 오고 가는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긴 했습니다."]

벌써 1년이 훌쩍 지난 평창 동계 올림픽.

그럼에도 그때의 순간들이 긴 여운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북한 기자단과의 특별한 경험 때문일 것이다.

[이창준/KBS 촬영기자/2018 평창동계올림픽 취재 : "방송을 통해서 그분들을 몇 분 봤어요. 방송에 나온 분들. 평창에서 그분이었는데 잘 계시는구나. 혹시나 다른 행사가 남북이든 북미든 저희가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면 거기에서 저희 평창에서 보지 않았느냐 잘 계셨냐 이렇게 안부를 묻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취재경쟁을 넘어 당과 지도자를 향한 충성경쟁을 벌여야 하는 북한 기자단.

북한당국의 확성기로서로서의 단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교류와 협력을 통해 그들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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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충성 경쟁 ‘최전선’…북한 기자단
    • 입력 2019-09-14 08:37:01
    • 수정2019-09-14 08:47:15
    남북의 창
[앵커]

앞서 평양 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성과와 과제를 짚어봤는데요.

지난해와 올해 있었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주요 화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남측 기자들이 무색할 정도로 과열된 취재양상을 보여주기도 했던 북한 기자들인데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왜 이렇게 열띤 취재를 했을까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의 기자단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태운 비행기가 평양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뒤이어 등장 음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위원장 내외.

북한 기자단의 움직임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남북 정상 부부를 둘러싼 북한 기자단의 열띤 취재.

그 열의는 공항을 벗어나 평양 시내로 들어서는 도로에서도, 문 대통령 부부의 숙소인 백화원에 들어서서도 이어졌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까지 나서 취재진을 물릴 정도.

[김정은/국무위원장/2018년 9월 : "우리 영철 부장이랑 다 나가자, 왜 여기까지 들어와."]

이후에도 공동선언 발표 기자회견장과, 예정에 없이 진행된 두 정상의 백두산 방문길까지.

북한 기자단은 경쟁이라도 벌이듯 가장 선두에 서서 일거수일투족을 화면 담는 데 열중했다.

그러나 취재경계선으로 불리는 포토라인을 어기는 것은 물론, 생방송 중인 중계 화면까지 가리면서 벌이는 취재방식은 정도가 심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 6월,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남북미 정상회동에선 북한 기자단을 향한 외신 기자들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취재 기준으로 북한 기자단을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이 조선중앙TV 기자 출신 탈북민의 의견이다.

이들에겐 취재의 목적보다 김정은 위원장, 즉 북한 지도자를 잘 촬영해야 하는 정치적 임무가 먼저라는 것이다.

[장진성/전 조선중앙TV 기자/2004년 탈북 : "김정은이 현지 시찰 동행할 때에도 방송인의 기자들이 못 가요. 조직지도부 산하 언론담당이죠. 1호 카메라맨들이라고 하죠. 그 사람들이 갑니다. 그러니까 방송인의 기자들이 가서 함부로 찍을 수 있는 수령이 아니에요. 당 조직지도부 시스템으로 그렇게 다 되어 있는 거죠."]

실제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하는 북한 기록영화를 살펴보면 김 위원장을 촬영하는 북한 기자단의 열성적인 모습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북한에선 지도자를 가까이에서 촬영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높은 위상을 의미하는 만큼 취재보다는 그야말로 충성 경쟁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에게 북한 기자단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공개 된 것은 1990년 개최됐던 제1차 남북 고위급 회담 때다.

서울을 방문했던 북측 대표단에는 연형묵 총리 등 주요 간부들과 함께 50명의 기자단도 포함돼 있었다.

[남한 기자 : "이번 회담 성과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1차 고위급회담 방남 기자단 : "좋게 생각하죠. 이 통일 위해서 서로 만나서 위상을 회복하고 하나의 국가로 만들고 서로 하나다……."]

당시 북한 기자단은 공식적인 회담 일정도 소화해 냈지만, 서울 일대를 둘러보고 신문사, 대학교 등을 방문하며 남한 사회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북한 기자 : "각종 신문사가 우리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인민들의 요구와 인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취재 방식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육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것은 없는가.) 저희는 서울이기(살기) 때문에 그런 건 모르는데…."]

남측의 안내 규정을 무시한 채 기습적인 취재를 벌이는가 하면, 북한 당국의 입장을 강요하는 인터뷰도 이어간 것이다.

[북한 기자 : "통일에 미군이 방해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한 대학을 방문해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을 설명하기도 했다.

[북한 기자 : "지금 사상과 제도가 서로 다른 이런 조건에서 또 그 누구도 이 제도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 이런 조건에서 통일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연방제에 의한 통일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북한 기자단의 개인적인 취재 방식이 아닌 북한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만들어 내야 하는 결과물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장진성/전 조선중앙TV 기자/2004년 탈북 : "체제의 선전 또 당 정책 선전에서 이탈할 수가 없죠. 우리 기자들 같은 경우에는 제가 남한에 와서도 많이 느끼는데 우리는 탐방 취재잖아요. 자기가 꾸준히 찾아가고 북한은 지령취재에요. 위에서 오늘 여기서 가서 해라. 그러니까 그렇게 굉장히 당 정책 위주로만 취재하죠."]

실제 당시 북한 기자들은 관람 소감 등을 묻는 남한 기자들의 질문엔 개인적인 의견을 거의 내지않았다.

시민들을 향해 거침없이 이야기 쏟아내던 모습은 사라지고 오히려 어색해하며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남한기자 : "북한에서 기자들 취재하는 거 하고 남한의 기자들 취재하는 거 차이점이 있으면 뭐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북한기자 : "그건 있다가 시간 있을 때 말해주지 뭐."]

그러나 고위급회담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리고 북한 기자단의 서울방문이 잦아질수록. 미묘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북한식 지령 취재 방법은 계속되는 듯했지만, 서울 시민들의 대답은 오히려 소탈해져만 갔다.

[3차 고위급회담 방남 기자단 : "판문점을 중심으로 해서 북과 남은 지금 각종 무기들이 집중되어 있단 말입니다. 이게 다 없어져야 하지 않아요?"]

[서울 시민 : "저는 그냥 주부니까요 정치도 모르고 군사적인 것도 몰라요. 다만 한 동포니까 빨리 만났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북한 기자단은 어색하고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서울 상인 : "자주 오셔야 돼 이제..."]

[3차 고위급회담 방남 기자단 : "(무섭지 않습니까?) 왜 무서워요 같은 사람인데요."]

북한 기자단을 향해 손을 흔드는 직장인들과, 즉석에서 취재요청까지 하는 북한 기자단.

[북한 기자 : "사장님은 꽃밭 속에 있구만!"]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남한 시민 : "이런 게 진짜 (북한)방송으로 나가고 그래요? (그럼요.) 그래요? 제가 보여요?"]

[남한 시민 :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안녕히 돌아가세요."]

[남한 시민 : "(모두 건강하세요!) 네."]

북한 기자들의 질문도 북한대표들에 대한 인상과 남북 고위급회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에 관한 것들로 채워졌다.

[5차 고위급회담 방남 기자단 : "(여러 차례 여기 왔다 갈 때마다 거리에서 좀 보긴 했지요? ) 그냥 TV에서만 보고요, 직접 이렇게 타시는 건 처음 봤어요. (아, 그래 어때요?) 저희 남한에 계신 분들하고 똑같으신 것 같아요. (그래요. 말도 같고요? ) 네."]

남한 기자들과도 아이스크림, 음료수를 나눠 먹는 등 다소 여유 있는 모습도 공개됐다.

[남한 기자 : "북한 얼음 보숭이하고 어떻게 달라요. 맛이?"]

[북한 기자 : "이거 참 잘 만들었어요."]

[남한 기자 : "북한 거보다 맛있어요?"]

[북한 기자 : "그걸 꼭 대비(비교)해야 되겠어?"]

자신들을 안내해 준 교통경찰과의 대화에선 다소 인간적인 모습도 내비쳤다.

[서울 교통경찰 : "정상회담 때 우리도 (북한) 가서 봐야지 이제. 그때 우리 콜라 좀 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줘야지."]

[북한기자 : "뭘 드릴까? 지금부터 요청해요."]

그리고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마침내 남북 방송 교류에도 새로운 장이 열렸다.

남북 최초의 합동방송이 성사된 것이다.

백두산과 한라산, 서울을 연결하며 남과 북이 공동 제작한 3원 생방송. ‘백두에서 한라까지’

[KBS 한민족 특별 기획 ‘백두에서 한라까지’/2000년 9월 : "백두산 현장부터 가 보겠습니다. 백두산 현장 나와 주십시오."]

["백두산 장군봉 정상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전인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임성민입니다.)"]

KBS와 조선중앙방송위원회가 공동으로 제작한 ‘백두에서 한라까지’는 북측 방송기자가 처음으로 남측 생방송에 출연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리현철/조선 중앙방송위원회 TV기자 : "온 민족이 우러르는 민족의 성산에서 이 나라 1,000만 산악을 거느린 산에서 남측의 방송인들을 만나서 정말 민족을 위한 좋은 일을 하게 돼서 기쁩니다."]

당시 프로그램은 방송 교류를 통해 남과 북이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는데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남과 북 방송인들을 한층 가깝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금강산 피살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며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남과 북을 오가던 취재진의 발길도 멈춰 서고 말았다.

그리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기자단이 다시 남한 땅을 밟았다.

["(취재준비는 좀 얼마나 하셨나요?) 지금 시작이죠."]

남측 기자단의 질문에 간단한 대답만 남기고,

[북한 기자 : "자~ 좀 웃으라우야!"]

자신의 맡은 역할 이외엔 한 치의 틈도 보여주지 않는 북한 기자단.

["(현수막 같은 것 많이 찍으시네요?) 취재 좀 합시다. 취재 좀."]

마치 1990년 남북 기자단의 첫 만남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이창준/KBS 촬영기자/2018 평창동계올림픽 취재 : "저희도 이제 조금 시간이 지나갈수록 취재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녹취도 하고 약간 취재진을 취재를 하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되게 경계하고 말을 걸면 약간 신경질적으로 왜 말을 거냐, 우리도 일 좀 하자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고,

[남한기자 : "많이 촬영하셨습니까? 어떤 거 주로 하셨나요? 응원단 표정하고…."]

[북한 기자 : "같은 동업자끼리 뭘 그런 걸 묻네?"]

우리가 같은 민족이자 한때 가장 가깝게 교류했던 취재원임을 북한 기자단도 잊지 않고 있었다.

[남한 기자 : "기자로서 남측사회 경험해 보시니까 어떠셨어요?"]

[북한 기자 : "우리 같은 민족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창준/KBS 촬영기자/2018 평창동계올림픽 취재 :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분들도 처음에 경계하던 모습에서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지고 저희를 처음에는 경계하던 모습에서 조금 조금씩 농담도 약간 섞어서 대화가 길지는 않지만 짧게 오고 가는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긴 했습니다."]

벌써 1년이 훌쩍 지난 평창 동계 올림픽.

그럼에도 그때의 순간들이 긴 여운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북한 기자단과의 특별한 경험 때문일 것이다.

[이창준/KBS 촬영기자/2018 평창동계올림픽 취재 : "방송을 통해서 그분들을 몇 분 봤어요. 방송에 나온 분들. 평창에서 그분이었는데 잘 계시는구나. 혹시나 다른 행사가 남북이든 북미든 저희가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면 거기에서 저희 평창에서 보지 않았느냐 잘 계셨냐 이렇게 안부를 묻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취재경쟁을 넘어 당과 지도자를 향한 충성경쟁을 벌여야 하는 북한 기자단.

북한당국의 확성기로서로서의 단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교류와 협력을 통해 그들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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