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노동자 보고서②] ‘정규직화’ 약속은 정말 지켜졌나요?

입력 2019.10.13 (10:02) 수정 2019.10.1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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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환기도 안 되는 계단 밑 휴게실에서 60대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얼마 뒤엔 학생식당과 카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30년 만에 파업에 나섰습니다. 모두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의 노동을 천대하며 정당한 대우를 거부하고 있다." … 학교의 일상을 지탱해 온 서울대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KBS는 서울대 노동자들의 싵태를 3회에 걸쳐 조명합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분절된 미래'…서울대에는 '자체 직원'이 있다
② '정규직화' 약속은 정말 지켜졌나요?
③ 직원도 교원도 아닌 '유령강사' 아직도 서울대에?


올해 68세 최분조 씨는 서울대에서 청소 일을 시작하면서 첫 월급으로 47만 원을 받았다. 1997년 여름, 그의 나이 46살이었다. 그런데, 다음 해 최 씨의 월급은 42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IMF로 온 나라가 어렵다니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1년 뒤 최 씨의 월급은 또 줄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더 줄어들었다. 최 씨는 지나가던 학생을 붙잡고 물었다. "학생, 월급이 해마다 줄어드는데 이상하지 않아요?" 그 학생은 노동조합을 만들라고 했다. 학생들의 도움으로 동료 250여 명과 함께 노조를 만들었다. 서울대에서 일한 지 3년 만이었다.

그 뒤, 최 씨가 속해 있던 용역업체는 이전엔 제한이 없던 '정년'을 65세로 못 박았다. 당시 노조위원장의 나이는 64세. 최 씨는 노조위원장을 쫓아내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항의를 이어간 끝에 정년 1년 연장을 얻어냈다.

서울대 행정관 앞에 설치된 천막에 최분조 분회장이 앉아 있다.서울대 행정관 앞에 설치된 천막에 최분조 분회장이 앉아 있다.

2019년 10월, 최 씨는 또다시 대학본부 앞에 천막을 쳤다. 주변의 만류에도 삭발을 강행했다. 조합원이었던 최 씨는 현재 서울일반노조 시설환경분회장이다.

이 천막에는 18일째 단식농성을 이어온 임민형 기계·전기분회장도 있다. 2007년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을 시작한 임 씨는 벌써 두 달 월급을 받지 못했다. 학교 측은 공과대학에서 일하던 임 씨를 대학본부로 발령내고, 노조 전임시간을 제한했다. 법이 그렇다는 이유였다. 임 씨가 반발하자 경고를 몇 차례 주더니, 임금 지급을 중단했다. 10월 1일, 학교 측과 이어오던 단체교섭도 결렬됐다. 지난해 9월부터 1년 넘게 이어온 교섭이었다. 임 씨는 단식을 택했다.

학교측 대표, 근로자측 대표, 전문가로 구성된 '노사 및 전문가협의회'는 2018년 2월 '서울대 용역·파견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사진제공 : 서울대학교)학교측 대표, 근로자측 대표, 전문가로 구성된 '노사 및 전문가협의회'는 2018년 2월 '서울대 용역·파견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사진제공 : 서울대학교)

서울대는 지난해 2월 청소·경비·시설 용역 파견 근로자 76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계약이 종료되는 노동자부터 순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올해 4월에는 모든 용역 노동자가 정규직이 된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합의식에는 최 씨도 참석했다.

최 씨는 정규직이 되면 월급도 오르고, 복지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울대 소속으로 전환되면서 '단체 협약'을 체결해야 했다.

학교 측은 최 씨를 포함한 시설관리 노동자들과의 (별도) 교섭 관행이 없었다면서 학교 자체직원과 동일한 교섭창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지노위, 중노위의 판단까지 받아야 했다. 모두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이 옳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학교는 이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갔다. 그런 한편으로 학교 측은 법원 판결 전에라도 합의하자고 했다. 재판과 별개로 협상은 계속됐다.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할 경우 자체직원과 시설관리직원 사이에 이해관계를 달리해 노조 내 갈등을 유발한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대 기계·전기·설비 노동자와 청소·경비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가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과 함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2019.9.24)서울대 기계·전기·설비 노동자와 청소·경비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가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과 함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2019.9.24)

서울대와 노동자들이 다투는 쟁점은 '차별 철폐와 처우 개선'이다. 노동자들은 명절상여금 차별 철폐를 요구했다. 법인 직원들이 기본급의 120%를 받으니, 60%만이라도 달라고 했다. 서울대는 기계·전기·설비 노동자에게는 100만 원, 청소·경비 노동자에게는 50만 원을 정액으로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달에 1시간 조합원 교육시간을 두고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최 씨는 "그동안 안전교육도 제대로 안 해줬는데, 다른 시간도 아니고 점심시간에 모여서 교육을 하겠다는 걸 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씨는 최근 동료를 잃었다. 공과대학 계단 밑 휴게실에서 쉬던 청소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환풍구도 직접 만들어야 할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다. 최 씨는 동료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동안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며 자책했다.

이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학교 측은 청소 노동자 휴게실에 대한 개선작업을 서둘렀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청소노동자 휴게실 146곳 가운데 23곳이 지하층, 12곳이 계단 밑에 있는 사실이 파악됐다. 냉난방기 미설치도 33곳, 환기설비 미설치도 9곳이었다.

지난 8월 60대 노동자가 쉬던 중 숨진 채 발견된 공과대학 휴게실.지난 8월 60대 노동자가 쉬던 중 숨진 채 발견된 공과대학 휴게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만 개선했을 뿐, 경비와 식당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은 개선되지 않았다. 기계시설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의 소음문제도 마찬가지다. 결국 학생식당과 카페 노동자들도 30년 만에 파업에 나섰다. 대학 본부 앞에서 "뼈주사를 맞아가며 일을 하고 있다"며 "열약한 근무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촉구했다.

임민형 분회장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우리를 용역업체 노동자로 취급하고 있다"면서 "서울대의 일상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을 대하는 인식은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국정감사에선 이 문제가 언급됐다. 국회 교육위의 여영국 의원(정의당)은 "이미 수년 전에 노동부에서 휴게시설 지침이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에) 놀랍고 실망스럽다"면서, 서울대 총장은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한다고 일갈했다. 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은 직급에 따른 임금의 차이는 있으나, 복리후생에 대해선 차별하지 말라는 지침"이라며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의 정신에 맞게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서울대 대학본부와 최분조, 임민형 분회장이 있는 천막 사이의 거리는 열 발자국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규직화'를 둘러싼 서울대측과 이들 노동자 사이의 생각의 거리는 너무 멀어보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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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노동자 보고서②] ‘정규직화’ 약속은 정말 지켜졌나요?
    • 입력 2019-10-13 10:02:14
    • 수정2019-10-13 1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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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환기도 안 되는 계단 밑 휴게실에서 60대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얼마 뒤엔 학생식당과 카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30년 만에 파업에 나섰습니다. 모두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의 노동을 천대하며 정당한 대우를 거부하고 있다." … 학교의 일상을 지탱해 온 서울대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KBS는 서울대 노동자들의 싵태를 3회에 걸쳐 조명합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분절된 미래'…서울대에는 '자체 직원'이 있다
② '정규직화' 약속은 정말 지켜졌나요?
③ 직원도 교원도 아닌 '유령강사' 아직도 서울대에?


올해 68세 최분조 씨는 서울대에서 청소 일을 시작하면서 첫 월급으로 47만 원을 받았다. 1997년 여름, 그의 나이 46살이었다. 그런데, 다음 해 최 씨의 월급은 42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IMF로 온 나라가 어렵다니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1년 뒤 최 씨의 월급은 또 줄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더 줄어들었다. 최 씨는 지나가던 학생을 붙잡고 물었다. "학생, 월급이 해마다 줄어드는데 이상하지 않아요?" 그 학생은 노동조합을 만들라고 했다. 학생들의 도움으로 동료 250여 명과 함께 노조를 만들었다. 서울대에서 일한 지 3년 만이었다.

그 뒤, 최 씨가 속해 있던 용역업체는 이전엔 제한이 없던 '정년'을 65세로 못 박았다. 당시 노조위원장의 나이는 64세. 최 씨는 노조위원장을 쫓아내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항의를 이어간 끝에 정년 1년 연장을 얻어냈다.

서울대 행정관 앞에 설치된 천막에 최분조 분회장이 앉아 있다.
2019년 10월, 최 씨는 또다시 대학본부 앞에 천막을 쳤다. 주변의 만류에도 삭발을 강행했다. 조합원이었던 최 씨는 현재 서울일반노조 시설환경분회장이다.

이 천막에는 18일째 단식농성을 이어온 임민형 기계·전기분회장도 있다. 2007년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을 시작한 임 씨는 벌써 두 달 월급을 받지 못했다. 학교 측은 공과대학에서 일하던 임 씨를 대학본부로 발령내고, 노조 전임시간을 제한했다. 법이 그렇다는 이유였다. 임 씨가 반발하자 경고를 몇 차례 주더니, 임금 지급을 중단했다. 10월 1일, 학교 측과 이어오던 단체교섭도 결렬됐다. 지난해 9월부터 1년 넘게 이어온 교섭이었다. 임 씨는 단식을 택했다.

학교측 대표, 근로자측 대표, 전문가로 구성된 '노사 및 전문가협의회'는 2018년 2월 '서울대 용역·파견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사진제공 : 서울대학교)
서울대는 지난해 2월 청소·경비·시설 용역 파견 근로자 76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계약이 종료되는 노동자부터 순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올해 4월에는 모든 용역 노동자가 정규직이 된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합의식에는 최 씨도 참석했다.

최 씨는 정규직이 되면 월급도 오르고, 복지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울대 소속으로 전환되면서 '단체 협약'을 체결해야 했다.

학교 측은 최 씨를 포함한 시설관리 노동자들과의 (별도) 교섭 관행이 없었다면서 학교 자체직원과 동일한 교섭창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지노위, 중노위의 판단까지 받아야 했다. 모두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이 옳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학교는 이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갔다. 그런 한편으로 학교 측은 법원 판결 전에라도 합의하자고 했다. 재판과 별개로 협상은 계속됐다.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할 경우 자체직원과 시설관리직원 사이에 이해관계를 달리해 노조 내 갈등을 유발한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대 기계·전기·설비 노동자와 청소·경비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가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과 함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2019.9.24)
서울대와 노동자들이 다투는 쟁점은 '차별 철폐와 처우 개선'이다. 노동자들은 명절상여금 차별 철폐를 요구했다. 법인 직원들이 기본급의 120%를 받으니, 60%만이라도 달라고 했다. 서울대는 기계·전기·설비 노동자에게는 100만 원, 청소·경비 노동자에게는 50만 원을 정액으로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달에 1시간 조합원 교육시간을 두고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최 씨는 "그동안 안전교육도 제대로 안 해줬는데, 다른 시간도 아니고 점심시간에 모여서 교육을 하겠다는 걸 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씨는 최근 동료를 잃었다. 공과대학 계단 밑 휴게실에서 쉬던 청소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환풍구도 직접 만들어야 할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다. 최 씨는 동료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동안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며 자책했다.

이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학교 측은 청소 노동자 휴게실에 대한 개선작업을 서둘렀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청소노동자 휴게실 146곳 가운데 23곳이 지하층, 12곳이 계단 밑에 있는 사실이 파악됐다. 냉난방기 미설치도 33곳, 환기설비 미설치도 9곳이었다.

지난 8월 60대 노동자가 쉬던 중 숨진 채 발견된 공과대학 휴게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만 개선했을 뿐, 경비와 식당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은 개선되지 않았다. 기계시설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의 소음문제도 마찬가지다. 결국 학생식당과 카페 노동자들도 30년 만에 파업에 나섰다. 대학 본부 앞에서 "뼈주사를 맞아가며 일을 하고 있다"며 "열약한 근무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촉구했다.

임민형 분회장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우리를 용역업체 노동자로 취급하고 있다"면서 "서울대의 일상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을 대하는 인식은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국정감사에선 이 문제가 언급됐다. 국회 교육위의 여영국 의원(정의당)은 "이미 수년 전에 노동부에서 휴게시설 지침이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에) 놀랍고 실망스럽다"면서, 서울대 총장은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한다고 일갈했다. 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은 직급에 따른 임금의 차이는 있으나, 복리후생에 대해선 차별하지 말라는 지침"이라며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의 정신에 맞게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서울대 대학본부와 최분조, 임민형 분회장이 있는 천막 사이의 거리는 열 발자국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규직화'를 둘러싼 서울대측과 이들 노동자 사이의 생각의 거리는 너무 멀어보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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