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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약속이다 vs 아니다” 경기도와 장애인 단체의 쉼터 예산 공방
입력 2019.11.09 (07:01) 수정 2019.11.09 (15:16) 취재후
[취재후] “약속이다 vs 아니다” 경기도와 장애인 단체의 쉼터 예산 공방
■ 학대받은 장애인들은 어디로 갈까요.

시설에서, 가정에서, 혹은 일터에서…. 신체적・정신적・언어적・성적 폭력이나 가혹 행위, 경제적 착취를 당한 장애인들. 가까스로 경찰이나 시민단체 등의 도움으로 학대 상황에서 구조되더라도, 당장 그날 밤을 어디서 보낼지 막막한 게 피해 장애인들의 현실입니다.

2015년, 정부는 이들을 위해 '인권침해 피해장애인 쉼터' 시범 사업을 시작합니다. 서울, 경기, 전남 등 7개 도와 대구광역시에서 운영 중이고, 올해 5개 지방자치단체가 추가로 선정됐습니다. 2020년까지 17개 시·도에 적어도 한 곳씩은 쉼터를 열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모든 학대 피해 장애인들이 이곳에 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쉼터 한 곳의 수용 인원은 대개 5명 남짓. 사업 첫해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입소한 인원을 모두 합쳐도 146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장애인들은 전문 쉼터가 아닌 다른 장애인 보호 시설이나 노숙인 쉼터 등으로 갑니다. 당장 가해자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데 갈 곳이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일반 숙박시설에서 머무는 경우도 있다는 게 현장의 설명입니다.

지난달 KBS는 재활교사 30살 김 모 씨 등 모두 10명의 장애인 시설 종사자들이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김 씨가 평소 장애인들에게 '서로 때려보라'며 폭행을 강요했고,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돌려보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처음 보도한 지 8개월 만입니다. KBS의 단독 보도로 학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대적인 경찰 조사가 벌어졌고 관련 시민단체도 분노했습니다. 이제 김 씨는 구속돼 구치소 생활을 하는 중입니다. 문제가 모두 끝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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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를 당한 장애인들은 여러 시설로 흩어졌습니다. 그중 일부 피해자들이 머무는 한 시설을 찾아가 봤습니다. 어렵게 양해를 구해 시설에 도착했지만, 당사자들에게 따로 말을 걸지는 말아 달라는 부탁을 들었습니다. 햇볕 잘 드는 널찍한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장난감을 갖고 노는 여러 입소자의 얼굴이 밝고 편안해 보인다는 것만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언론의 관심보다는 치유와 재활의 시간이 더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해당 시설은 '장애인 단기 거주 시설'에 해당합니다. 6개월간 머물 수 있고, 지자체가 승인하면 기간 연장이 가능하지만, 영구 거주를 보장하진 않습니다. 학대받은 심신을 위한 전문 상담 치료나 재활 훈련을 하기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간단한 한글 교육이나 장보기 연습, 체육·미술 수업 등을 하긴 하지만, 다른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수업을 듣습니다. 피해자들을 위한 '맞춤' 교육은 없는 셈입니다.

이들에게 보다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제공하겠며, 지난 5월 경기도가 신청한 게 바로 앞서 말한 시범사업입니다. 지난 5월 경기도는 사업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경기도형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를 만들겠다며 토론회까지 열었습니다. 광주와 전북을 제치고 사업을 따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경기도 포천에 이미 학대 장애인 쉼터 한 곳이 있지만, 장애인 주간 시설과 함께 운영해 전문적인 보호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업 신청서를 낸 겁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도록 경기도의 새 쉼터는 문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위탁받아 실제 운영을 책임지기로 한 경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못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정도 예산으론 못 하겠다'는 게 연구소의 입장입니다.

5월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서 경기도는 '총 사업비 1억 2천만 원 중에 9천만 원을 도가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경기도의 쉼터 예산 규모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쉼터 임대보증금으로 쓸 돈을 제외하면, 실제 사업에 투입할 돈은 3천만 원에 불과합니다.

[연관기사] 도비 3배 내서 장애인 쉼터 짓겠다던 경기도, 이제와 ‘모르쇠’ KBS1TV ‘뉴스9’(2019.11.3)


1:1로 국비와 도비를 투입하는 매칭(Matching) 사업에서 1:3 규모의 예산을 약속해 사업을 따냈으면 이를 지켜야 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경기도 장애인복지과의 담당 팀장에게 이유를 묻자, 그는 약속을 한 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팀장의 말을 그대로 옮깁니다.

"실무자가 이런 사업에 대해서는 '도 자체 예산이 추가로 반영된다' 그런 내용을 적시한 거지. 그게 약속이 되거나 그런 건 아니죠. 노력하겠다고 한 거지. (…) 이 사업이 정말 필요한 사업이다, 급한 사업이라고 하면 그걸 우선순위로 해서 지원하겠지만 그건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예산 부서가 하는 거잖아요."

제가 행정 업무를 잘 몰라서일까요? '실무자'가 정부에 제출할 계획서에 추가 예산 반영을 '적시'했는데, 그건 약속이 아니며 자신들은 예산 부서가 아니라 책임이 없다는 논리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업무 권한이 구분되어 있는 공무 조직상, 정말로 어쩔 수 없다는 호소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경기도가 이 상황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경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최정규 소장경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최정규 소장

쉼터의 위탁 법인이 될 뻔했던, 경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최정규 소장은 '쉼터를 누가 운영하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제대로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어차피 비영리 법인인 연구소 입장에서 쉼터 운영을 도맡는다고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시민단체나 복지법인이 위탁 기관으로 선정되더라도 상관없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편성된 예산으로는 '어떤 단체가 와도 쉼터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학대를 당한 장애인들에게는 심리·정서 치료와 사회 복귀 지원 교육이 필수적이에요. 훨씬 더 세심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여성·남성 장애인이 같은 생활 공간을 써야 하는 경우도 많고요. 쉼터까지 찾아오는 가해자들 때문에 24시간 쉼터를 지켜야 하는데, 인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방송이 나간 뒤, 다시 경기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변화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추가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결정은 없었습니다. 내년에도 국비를 내려주는 만큼만, 1:1 예산을 편성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올해 안에 쉼터를 열 위탁 기관을 찾아 재공모를 추진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지금이 11월인데…. 올해 안에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 '약속'은 믿을 수 있을까요?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 [취재후] “약속이다 vs 아니다” 경기도와 장애인 단체의 쉼터 예산 공방
    • 입력 2019.11.09 (07:01)
    • 수정 2019.11.09 (15:16)
    취재후
[취재후] “약속이다 vs 아니다” 경기도와 장애인 단체의 쉼터 예산 공방
■ 학대받은 장애인들은 어디로 갈까요.

시설에서, 가정에서, 혹은 일터에서…. 신체적・정신적・언어적・성적 폭력이나 가혹 행위, 경제적 착취를 당한 장애인들. 가까스로 경찰이나 시민단체 등의 도움으로 학대 상황에서 구조되더라도, 당장 그날 밤을 어디서 보낼지 막막한 게 피해 장애인들의 현실입니다.

2015년, 정부는 이들을 위해 '인권침해 피해장애인 쉼터' 시범 사업을 시작합니다. 서울, 경기, 전남 등 7개 도와 대구광역시에서 운영 중이고, 올해 5개 지방자치단체가 추가로 선정됐습니다. 2020년까지 17개 시·도에 적어도 한 곳씩은 쉼터를 열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모든 학대 피해 장애인들이 이곳에 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쉼터 한 곳의 수용 인원은 대개 5명 남짓. 사업 첫해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입소한 인원을 모두 합쳐도 146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장애인들은 전문 쉼터가 아닌 다른 장애인 보호 시설이나 노숙인 쉼터 등으로 갑니다. 당장 가해자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데 갈 곳이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일반 숙박시설에서 머무는 경우도 있다는 게 현장의 설명입니다.

지난달 KBS는 재활교사 30살 김 모 씨 등 모두 10명의 장애인 시설 종사자들이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김 씨가 평소 장애인들에게 '서로 때려보라'며 폭행을 강요했고,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돌려보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처음 보도한 지 8개월 만입니다. KBS의 단독 보도로 학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대적인 경찰 조사가 벌어졌고 관련 시민단체도 분노했습니다. 이제 김 씨는 구속돼 구치소 생활을 하는 중입니다. 문제가 모두 끝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네가 얘 때려!”…장애인끼리 때리게 한 재활 교사 KBS 1TV ‘뉴스9’ (2019.2.21)
[단독] “스트레스 풀려고 촬영했다”…학대 영상 돌려봐 KBS1TV ‘뉴스9’ (2019.2.21)
[취재K] 학대받는 장애인 어디로…‘탈시설’ vs “자립 아닌 방치” (2019.10.30)



학대를 당한 장애인들은 여러 시설로 흩어졌습니다. 그중 일부 피해자들이 머무는 한 시설을 찾아가 봤습니다. 어렵게 양해를 구해 시설에 도착했지만, 당사자들에게 따로 말을 걸지는 말아 달라는 부탁을 들었습니다. 햇볕 잘 드는 널찍한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장난감을 갖고 노는 여러 입소자의 얼굴이 밝고 편안해 보인다는 것만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언론의 관심보다는 치유와 재활의 시간이 더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해당 시설은 '장애인 단기 거주 시설'에 해당합니다. 6개월간 머물 수 있고, 지자체가 승인하면 기간 연장이 가능하지만, 영구 거주를 보장하진 않습니다. 학대받은 심신을 위한 전문 상담 치료나 재활 훈련을 하기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간단한 한글 교육이나 장보기 연습, 체육·미술 수업 등을 하긴 하지만, 다른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수업을 듣습니다. 피해자들을 위한 '맞춤' 교육은 없는 셈입니다.

이들에게 보다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제공하겠며, 지난 5월 경기도가 신청한 게 바로 앞서 말한 시범사업입니다. 지난 5월 경기도는 사업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경기도형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를 만들겠다며 토론회까지 열었습니다. 광주와 전북을 제치고 사업을 따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경기도 포천에 이미 학대 장애인 쉼터 한 곳이 있지만, 장애인 주간 시설과 함께 운영해 전문적인 보호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업 신청서를 낸 겁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도록 경기도의 새 쉼터는 문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위탁받아 실제 운영을 책임지기로 한 경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못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정도 예산으론 못 하겠다'는 게 연구소의 입장입니다.

5월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서 경기도는 '총 사업비 1억 2천만 원 중에 9천만 원을 도가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경기도의 쉼터 예산 규모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쉼터 임대보증금으로 쓸 돈을 제외하면, 실제 사업에 투입할 돈은 3천만 원에 불과합니다.

[연관기사] 도비 3배 내서 장애인 쉼터 짓겠다던 경기도, 이제와 ‘모르쇠’ KBS1TV ‘뉴스9’(2019.11.3)


1:1로 국비와 도비를 투입하는 매칭(Matching) 사업에서 1:3 규모의 예산을 약속해 사업을 따냈으면 이를 지켜야 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경기도 장애인복지과의 담당 팀장에게 이유를 묻자, 그는 약속을 한 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팀장의 말을 그대로 옮깁니다.

"실무자가 이런 사업에 대해서는 '도 자체 예산이 추가로 반영된다' 그런 내용을 적시한 거지. 그게 약속이 되거나 그런 건 아니죠. 노력하겠다고 한 거지. (…) 이 사업이 정말 필요한 사업이다, 급한 사업이라고 하면 그걸 우선순위로 해서 지원하겠지만 그건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예산 부서가 하는 거잖아요."

제가 행정 업무를 잘 몰라서일까요? '실무자'가 정부에 제출할 계획서에 추가 예산 반영을 '적시'했는데, 그건 약속이 아니며 자신들은 예산 부서가 아니라 책임이 없다는 논리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업무 권한이 구분되어 있는 공무 조직상, 정말로 어쩔 수 없다는 호소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경기도가 이 상황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경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최정규 소장경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최정규 소장

쉼터의 위탁 법인이 될 뻔했던, 경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최정규 소장은 '쉼터를 누가 운영하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제대로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어차피 비영리 법인인 연구소 입장에서 쉼터 운영을 도맡는다고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시민단체나 복지법인이 위탁 기관으로 선정되더라도 상관없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편성된 예산으로는 '어떤 단체가 와도 쉼터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학대를 당한 장애인들에게는 심리·정서 치료와 사회 복귀 지원 교육이 필수적이에요. 훨씬 더 세심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여성·남성 장애인이 같은 생활 공간을 써야 하는 경우도 많고요. 쉼터까지 찾아오는 가해자들 때문에 24시간 쉼터를 지켜야 하는데, 인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방송이 나간 뒤, 다시 경기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변화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추가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결정은 없었습니다. 내년에도 국비를 내려주는 만큼만, 1:1 예산을 편성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올해 안에 쉼터를 열 위탁 기관을 찾아 재공모를 추진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지금이 11월인데…. 올해 안에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 '약속'은 믿을 수 있을까요?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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