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공들인 한국형 날씨 예측시스템 ‘킴(KIM)’, 오보 논란 잠재울까?

입력 2019.11.2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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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날씨가 있을까요?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비평가인 존 러스킨은 나쁜 날씨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이다"
-존 러스킨(19세기 영국의 비평가)-

눈부신 아침이면 기분이 밝아지고 가끔은 비구름이 머금은 습기도 좋습니다. 예고 없이 마주치는 첫눈도 가슴을 뛰게 하지요. 날씨는 매 순간 변하고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변화하는 날씨를 100%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은 현대 과학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일기예보에는 대기의 상태를 모의하는 복잡한 미분 방정식이 사용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으로 해가 존재하지 않는 '난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신 근사해를 풀어서 대기의 흐름을 예측하는데, 그러다보니 날씨예보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은 유체를 모의하는 역학 방정식이다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은 유체를 모의하는 역학 방정식이다

[연관기사] '난제' 수학 방정식이 애니메이션으로…영화가 된 과학

일기예보에 활용되는 수학 방정식들로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을 '수치예보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관측 자료를 수치예보 모델에 입력해 슈퍼컴퓨터가 엄청난 속도로 계산하고 그렇게 나오는 결과를 바탕으로 일기예보가 생산됩니다.

우리 일기예보에는 '영국'에서 만든 수치예보 사용 중

우리나라는 영국에서 개발한 수치예보 모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국 모델(UM)은 전 세계적으로 유럽(ECMWF), 미국(GFS)과 함께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유럽 모델은 EU 회원국들만 사용할 수 있어서 영국 모델을 도입한 건데 영국에서는 수치예보가 1950년대 시작됐습니다.

당시 사용하던 모델을 업그레이드해 1991년 현재의 모델(UM)을 개발했습니다. 개발 당시 전 지구 모델의 해상도는 가로, 세로 90km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10km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계산의 단위인 격자가 촘촘해질수록 예보의 정확도는 높아집니다.

페니 앤더스비 영국 기상청장페니 앤더스비 영국 기상청장

한·영 기상기술 협력 회의를 위해 방한한 페니 앤더스비 영국 기상청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수치예보 모델 개발은 쉽지 않고 영국도 수십 년이 걸렸다며 현재 모델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럽 모델(ECMWF)이 있는데 왜 자체 모델을 개발했냐는 질문에 유럽 모델은 세계 최고의 성능을 지녔지만, 영국에서는 단기예보에서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영국 모델(UM)은 초단기 예보를 비롯해 중장기 예보에 널리 활용되는데 유럽 모델도 함께 사용하며 정확도를 더 높이고 있다고 합니다.

올여름 태풍예보 통해 '킴'의 예비 성적 메겨보니….

우리 기상청이 한국형 모델을 개발한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영국 모델이 세계적이긴 하지만 기상청 예보가 빗나갈 때마다 한반도의 지형이나 조건에 맞는 우리만의 모델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2011년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인 '킴'(KIM)의 개발이 시작됐고 8년만인 올해 마무리됐습니다. 투입된 예산은 946억 원 규모로 해상도는 영국과 비슷한 12.5km 수준입니다. 페니 앤더스비 청장은 자국의 예보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영국에는 태풍이 없기 때문에 영국 모델보다는 한국에서 개발한 모델이 태풍을 예보하는 데 좋은 성능을 발휘할 거라고 말입니다.

올여름 태풍 ‘다나스’ 경로에 대한 한국형 모델(좌)과 영국 모델(우)의 예측올여름 태풍 ‘다나스’ 경로에 대한 한국형 모델(좌)과 영국 모델(우)의 예측

실제로 '킴'(KIM)은 올여름 태풍 예보에 적용됐습니다. 영국이나 유럽 모델과 비교해 얼마나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태풍을 예측하는지 시험대에 오른 건데, 처음치고는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현 기상청 수치모델링센터 연구관은 태풍 '다나스'와 '프란스시코' 예보 결과 현재 쓰고 있는 모델과 유사한 성능을 보였고 장기예측에서는 오히려 우리 모델이 강점을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자력으로 만든 시스템이라 버그나 오류가 발생했을 때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하지현 기상청 연구관하지현 기상청 연구관

내년부터는 영국 모델과 병행해 정식으로 예보에 활용될 계획인데 전 세계적으로 수치예보 모델을 보유한 나라는 9개국입니다. 내년에 현업에서 활용하면서 보완 작업을 거쳐 유럽과 영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기상청의 목표입니다.

한국형 날씨 예측 시스템, '오보청' 악명 벗어나게 해줄까

날씨예보에 필요한 천리안 위성과 슈퍼컴퓨터를 사줘도 예보가 틀린다는 비난을 기상청은 자주 들어야 했습니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인 데다가 육지는 산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의 영향을 동시에 받기 때문에 예보가 까다로운 편이며 특히 여름철 국지성 강수에 대한 예보는 난이도가 높고 동시에 빗나가기 쉽습니다.


여름철 한반도 주변에는 북태평양 고기압과 오호츠크해 고기압, 티베트 고기압, 중국 열적 고기압까지 덩치 큰 공기 덩어리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성격이 다른 고기압 사이에서 발달하는 장마전선, 한기가 유입되며 쏟아지는 국지적인 폭우, 지형적으로 발생하는 소나기까지 다양한 강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리 상황에 맞는 수치예보 모델이 꼭 필요했습니다.

처음 개발한 한국형 모델 '킴'(KIM)을 통해 예보 정확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재난을 사전에 예고해 국민의 피해를 줄이고 싶다고 하지현 연구관은 말했습니다. 앞으로 해상도를 수km급으로 향상시켜 좁은 면적에서 발생하는 국지적 기상 현상을 정확하게 예보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온난화로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기상이변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날씨 예보 시스템을 갖추게 된 만큼 변화하는 기후에 좀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될까요? 영국이 70년에 이르는 역사를 지녔다면 우리는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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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 공들인 한국형 날씨 예측시스템 ‘킴(KIM)’, 오보 논란 잠재울까?
    • 입력 2019-11-24 08:29:44
    취재K
세상에 나쁜 날씨가 있을까요?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비평가인 존 러스킨은 나쁜 날씨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이다"
-존 러스킨(19세기 영국의 비평가)-

눈부신 아침이면 기분이 밝아지고 가끔은 비구름이 머금은 습기도 좋습니다. 예고 없이 마주치는 첫눈도 가슴을 뛰게 하지요. 날씨는 매 순간 변하고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변화하는 날씨를 100%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은 현대 과학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일기예보에는 대기의 상태를 모의하는 복잡한 미분 방정식이 사용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으로 해가 존재하지 않는 '난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신 근사해를 풀어서 대기의 흐름을 예측하는데, 그러다보니 날씨예보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은 유체를 모의하는 역학 방정식이다
[연관기사] '난제' 수학 방정식이 애니메이션으로…영화가 된 과학

일기예보에 활용되는 수학 방정식들로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을 '수치예보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관측 자료를 수치예보 모델에 입력해 슈퍼컴퓨터가 엄청난 속도로 계산하고 그렇게 나오는 결과를 바탕으로 일기예보가 생산됩니다.

우리 일기예보에는 '영국'에서 만든 수치예보 사용 중

우리나라는 영국에서 개발한 수치예보 모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국 모델(UM)은 전 세계적으로 유럽(ECMWF), 미국(GFS)과 함께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유럽 모델은 EU 회원국들만 사용할 수 있어서 영국 모델을 도입한 건데 영국에서는 수치예보가 1950년대 시작됐습니다.

당시 사용하던 모델을 업그레이드해 1991년 현재의 모델(UM)을 개발했습니다. 개발 당시 전 지구 모델의 해상도는 가로, 세로 90km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10km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계산의 단위인 격자가 촘촘해질수록 예보의 정확도는 높아집니다.

페니 앤더스비 영국 기상청장
한·영 기상기술 협력 회의를 위해 방한한 페니 앤더스비 영국 기상청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수치예보 모델 개발은 쉽지 않고 영국도 수십 년이 걸렸다며 현재 모델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럽 모델(ECMWF)이 있는데 왜 자체 모델을 개발했냐는 질문에 유럽 모델은 세계 최고의 성능을 지녔지만, 영국에서는 단기예보에서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영국 모델(UM)은 초단기 예보를 비롯해 중장기 예보에 널리 활용되는데 유럽 모델도 함께 사용하며 정확도를 더 높이고 있다고 합니다.

올여름 태풍예보 통해 '킴'의 예비 성적 메겨보니….

우리 기상청이 한국형 모델을 개발한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영국 모델이 세계적이긴 하지만 기상청 예보가 빗나갈 때마다 한반도의 지형이나 조건에 맞는 우리만의 모델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2011년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인 '킴'(KIM)의 개발이 시작됐고 8년만인 올해 마무리됐습니다. 투입된 예산은 946억 원 규모로 해상도는 영국과 비슷한 12.5km 수준입니다. 페니 앤더스비 청장은 자국의 예보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영국에는 태풍이 없기 때문에 영국 모델보다는 한국에서 개발한 모델이 태풍을 예보하는 데 좋은 성능을 발휘할 거라고 말입니다.

올여름 태풍 ‘다나스’ 경로에 대한 한국형 모델(좌)과 영국 모델(우)의 예측
실제로 '킴'(KIM)은 올여름 태풍 예보에 적용됐습니다. 영국이나 유럽 모델과 비교해 얼마나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태풍을 예측하는지 시험대에 오른 건데, 처음치고는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현 기상청 수치모델링센터 연구관은 태풍 '다나스'와 '프란스시코' 예보 결과 현재 쓰고 있는 모델과 유사한 성능을 보였고 장기예측에서는 오히려 우리 모델이 강점을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자력으로 만든 시스템이라 버그나 오류가 발생했을 때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하지현 기상청 연구관
내년부터는 영국 모델과 병행해 정식으로 예보에 활용될 계획인데 전 세계적으로 수치예보 모델을 보유한 나라는 9개국입니다. 내년에 현업에서 활용하면서 보완 작업을 거쳐 유럽과 영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기상청의 목표입니다.

한국형 날씨 예측 시스템, '오보청' 악명 벗어나게 해줄까

날씨예보에 필요한 천리안 위성과 슈퍼컴퓨터를 사줘도 예보가 틀린다는 비난을 기상청은 자주 들어야 했습니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인 데다가 육지는 산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의 영향을 동시에 받기 때문에 예보가 까다로운 편이며 특히 여름철 국지성 강수에 대한 예보는 난이도가 높고 동시에 빗나가기 쉽습니다.


여름철 한반도 주변에는 북태평양 고기압과 오호츠크해 고기압, 티베트 고기압, 중국 열적 고기압까지 덩치 큰 공기 덩어리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성격이 다른 고기압 사이에서 발달하는 장마전선, 한기가 유입되며 쏟아지는 국지적인 폭우, 지형적으로 발생하는 소나기까지 다양한 강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리 상황에 맞는 수치예보 모델이 꼭 필요했습니다.

처음 개발한 한국형 모델 '킴'(KIM)을 통해 예보 정확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재난을 사전에 예고해 국민의 피해를 줄이고 싶다고 하지현 연구관은 말했습니다. 앞으로 해상도를 수km급으로 향상시켜 좁은 면적에서 발생하는 국지적 기상 현상을 정확하게 예보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온난화로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기상이변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날씨 예보 시스템을 갖추게 된 만큼 변화하는 기후에 좀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될까요? 영국이 70년에 이르는 역사를 지녔다면 우리는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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