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머리카락 대신 얼굴이”…천연염색이라더니 책임은 누가?

입력 2019.12.03 (09:05) 수정 2019.12.0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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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염색을 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머리카락 손상입니다. 염색약에 포함된 화학성분이 머릿결을 상하게 하거나 심지어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머리카락 손상을 최소화한다는 천연 염색, '헤나'가 주목받은 이유입니다. 열대 식물을 말려 만들었다는 이 염색약은 '천연 염색제' '부작용이 없다'는 입소문을 타고 사용자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헤나 염색약을 사용했다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기미가 끼듯 얼굴 전체가 검게 변해버렸다는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피해자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헤나 염색약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검게 변한 60대 여성 A 씨헤나 염색약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검게 변한 60대 여성 A 씨

"천연이라 믿었는데 검게 변한 얼굴…일상이 지옥"

60대 여성 A 씨는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미용실에서 헤나 염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염색을 하고 일주일 뒤부터 A 씨의 이마 부분이 조금씩 검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A 씨는 이게 부작용인지 몰랐습니다.

평소 헤나 염색은 천연 염색이라 부작용이 없다고 들었고, 당시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서울에 와 있던 터라 산후조리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연관기사] ‘천연 염색약’ 부작용…“가렵고, 따갑고, 검게 변했다” KBS1TV ‘뉴스9’(2019.12.01.)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부위가 얼굴 전체를 넘어 목까지 퍼지고, 검게 변한 부위가 가렵고 따갑자 부작용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A 씨에게 염색을 해준 원장은 A 씨의 개인적인 부작용이라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A 씨의 일상은 지옥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도 못하고, 자주 나가던 모임도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친한 친구의 자녀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A 씨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고 말했습니다.

헤나 염색약 부작용으로 얼굴이 검게 변한 50대 여성 B 씨헤나 염색약 부작용으로 얼굴이 검게 변한 50대 여성 B 씨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질 곳은 없어요"…피해자 분통

2년 전 헤나 염색약을 사용한 뒤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B 씨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취재진을 만난 B 씨는 "일상이 헤나 염색 전과 후로 나뉜다"라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문제는 검게 변한 얼굴을 치료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들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B 씨는 2년 가까이 치료에 8백여만 원을 썼습니다. 그런데도 B 씨의 피부는 부작용이 일어나기 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비슷한 피해를 본 이들이 모인 SNS 단체 대화방에는 60여 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까지 부작용의 고통 속에 살고 있다"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헤나 염색약 부작용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피해자들은 여전히 헤나 염색약 부작용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검게 변한 얼굴뿐만이 아닙니다.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명확한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을 물을 곳도 마땅히 없다는 사실이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이들은 헤나 염색약 업체들의 '잘못이 없다'는 당당한 태도가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고 호소했습니다.

피해자 B 씨는 업체 측에 피해 보상에 대해 문의했지만 업체는 '우리 업체의 제품을 쓰고 피해를 본 사람이 (당신) 한 사람뿐이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다'라는 식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B 씨는 "당시 피해자는 이미 여러 명이었는데, 회사에 연락한 다른 피해자에게도 똑같이 답변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서 "업체가 피해자들과 제대로 대화에 나서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품 사용 후 부작용이 있었다며 홈페이지에 남긴 후기는 임의로 삭제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도 해당 업체에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B 씨는 피부과에서 헤나 염색약으로 인한 ‘색소성 접촉피부염’ 진단을 받았다 B 씨는 피부과에서 헤나 염색약으로 인한 ‘색소성 접촉피부염’ 진단을 받았다

천연이지만, 천연 아닌 '천연 염색약' 때문?

천연 염색약을 썼는데, 이렇게 부작용이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염색약에 섞인 화학약품'을 꼽습니다. '천연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맞지만, 색을 더 잘 내는 등의 기능을 위해 첨가한 화학약품이 피부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겁니다.

'천연 100%'라는 식의 문구는 '모든 첨가물이 천연 재료로 이루어졌다'는 소비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해당 재료가 천연 100%로 이뤄졌다는 뜻이지 염색약 그 자체가 천연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염색약을 머리에 사용하기 전 피부에 먼저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 현재로써는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말합니다.

"5년 간 피해 350여 건"…정부 "원인 조사 중"

최근 5년 동안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헤나 염색약 관련 피해 사례는 모두 351건입니다. 이 가운데 얼굴이 착색되는 등의 피해 사례만 80%에 달하는 268건입니다.

문제가 커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초 실태조사에 착수했고, 지난 3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개 제품에서 미생물이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성분 함량 기준 미달인 1개 제품도 적발됐습니다. 식약처는 이 제품들에 대해 일시적 판매 정지 처분을 내리고, 부작용 원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원인을 규명하는 사이 제품에 대해 규제나 피해자 보상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헤나 염색약은 여전히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천연 염색약이라던 '헤나 염색약'의 예기치 않은 부작용, 피해자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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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머리카락 대신 얼굴이”…천연염색이라더니 책임은 누가?
    • 입력 2019-12-03 09:05:34
    • 수정2019-12-03 09:06:35
    취재후·사건후
머리 염색을 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머리카락 손상입니다. 염색약에 포함된 화학성분이 머릿결을 상하게 하거나 심지어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머리카락 손상을 최소화한다는 천연 염색, '헤나'가 주목받은 이유입니다. 열대 식물을 말려 만들었다는 이 염색약은 '천연 염색제' '부작용이 없다'는 입소문을 타고 사용자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헤나 염색약을 사용했다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기미가 끼듯 얼굴 전체가 검게 변해버렸다는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피해자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헤나 염색약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검게 변한 60대 여성 A 씨
"천연이라 믿었는데 검게 변한 얼굴…일상이 지옥"

60대 여성 A 씨는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미용실에서 헤나 염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염색을 하고 일주일 뒤부터 A 씨의 이마 부분이 조금씩 검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A 씨는 이게 부작용인지 몰랐습니다.

평소 헤나 염색은 천연 염색이라 부작용이 없다고 들었고, 당시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서울에 와 있던 터라 산후조리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연관기사] ‘천연 염색약’ 부작용…“가렵고, 따갑고, 검게 변했다” KBS1TV ‘뉴스9’(2019.12.01.)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부위가 얼굴 전체를 넘어 목까지 퍼지고, 검게 변한 부위가 가렵고 따갑자 부작용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A 씨에게 염색을 해준 원장은 A 씨의 개인적인 부작용이라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A 씨의 일상은 지옥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도 못하고, 자주 나가던 모임도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친한 친구의 자녀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A 씨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고 말했습니다.

헤나 염색약 부작용으로 얼굴이 검게 변한 50대 여성 B 씨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질 곳은 없어요"…피해자 분통

2년 전 헤나 염색약을 사용한 뒤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B 씨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취재진을 만난 B 씨는 "일상이 헤나 염색 전과 후로 나뉜다"라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문제는 검게 변한 얼굴을 치료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들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B 씨는 2년 가까이 치료에 8백여만 원을 썼습니다. 그런데도 B 씨의 피부는 부작용이 일어나기 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비슷한 피해를 본 이들이 모인 SNS 단체 대화방에는 60여 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까지 부작용의 고통 속에 살고 있다"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헤나 염색약 부작용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검게 변한 얼굴뿐만이 아닙니다.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명확한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을 물을 곳도 마땅히 없다는 사실이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이들은 헤나 염색약 업체들의 '잘못이 없다'는 당당한 태도가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고 호소했습니다.

피해자 B 씨는 업체 측에 피해 보상에 대해 문의했지만 업체는 '우리 업체의 제품을 쓰고 피해를 본 사람이 (당신) 한 사람뿐이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다'라는 식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B 씨는 "당시 피해자는 이미 여러 명이었는데, 회사에 연락한 다른 피해자에게도 똑같이 답변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서 "업체가 피해자들과 제대로 대화에 나서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품 사용 후 부작용이 있었다며 홈페이지에 남긴 후기는 임의로 삭제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도 해당 업체에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B 씨는 피부과에서 헤나 염색약으로 인한 ‘색소성 접촉피부염’ 진단을 받았다
천연이지만, 천연 아닌 '천연 염색약' 때문?

천연 염색약을 썼는데, 이렇게 부작용이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염색약에 섞인 화학약품'을 꼽습니다. '천연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맞지만, 색을 더 잘 내는 등의 기능을 위해 첨가한 화학약품이 피부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겁니다.

'천연 100%'라는 식의 문구는 '모든 첨가물이 천연 재료로 이루어졌다'는 소비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해당 재료가 천연 100%로 이뤄졌다는 뜻이지 염색약 그 자체가 천연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염색약을 머리에 사용하기 전 피부에 먼저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 현재로써는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말합니다.

"5년 간 피해 350여 건"…정부 "원인 조사 중"

최근 5년 동안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헤나 염색약 관련 피해 사례는 모두 351건입니다. 이 가운데 얼굴이 착색되는 등의 피해 사례만 80%에 달하는 268건입니다.

문제가 커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초 실태조사에 착수했고, 지난 3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개 제품에서 미생물이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성분 함량 기준 미달인 1개 제품도 적발됐습니다. 식약처는 이 제품들에 대해 일시적 판매 정지 처분을 내리고, 부작용 원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원인을 규명하는 사이 제품에 대해 규제나 피해자 보상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헤나 염색약은 여전히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천연 염색약이라던 '헤나 염색약'의 예기치 않은 부작용, 피해자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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