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이야기② 한국은행의 탈선 ‘물가 관심 없어요?’

입력 2019.12.19 (16:25) 수정 2019.12.1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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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중앙은행 이야기① 트럼프 어깨 너머로 ‘뉴노멀’ 엿보기
(전편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45964

트럼프의 어깨너머로 시작한 이야기이지만 '뉴노멀'은 사실 미국 넘어 세계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누군가는 '뉴노멀'이라고 부르지만, '디스인플레이션 (disinflation)'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혹은 '일본화(japanification)'라는 학자도 있다. 아직 경제학적 규정이 끝나지 않은 이 현상, 직접 살펴본다.

아래는 통계시각화 전문 사이트 '하우머치'에 올라온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 인포그래픽이다. 가운데 있을수록 정부 부채의 비율이 높다. 우리나라는 하단에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40%.


이 인포그래픽의 주인공, 누가 봐도 일본이다. 정중앙. 2017년 기준 238%다. 2등은 182%인 그리스. 미국의 부채비율이 105%니까, 일본의 수치는 가히 '넘사벽'이라 할 만하다.

도쿄신문 "1944년 태평양 전쟁 말기 수준…아무도 답을 찾지 않고 있다"

일본의 엄청난 정부 부채, 안타깝게도 줄어들 가능성이 별로 없다. 올해도 내년도 일본 정부는 100조엔 규모의 슈퍼 예산을 계획하고 있는데 40%가 국채 발행 등으로 조달된다. 그리고 이 일본 정부 부채의 40% 이상은 일본의 중앙은행, BOJ가 가지고 있다.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다는 말, 쉽게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정부한테 주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의 부활을 이끌었다는 '아베노믹스'는 사실 이렇게 돈을 찍어내서 뿌리는 순환구조에 의존하고 있다.

도쿄신문은 최근 일본의 부채 규모가 막대한 전시 동원으로 빚이 극에 달했던 '1944년 태평양 전쟁 말기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이 빚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답을 찾지 않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앞다퉈 제로금리·양적 완화 나선 전 세계 중앙은행

일본 중앙은행의 제로금리는 오래됐다. 양적 완화도 오래됐다.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무제한적으로 돈을 풀겠다'라는 표현으로 설명된다.

이게 가능한 이유,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물가가 오르지 않고 있어서다. 시장에 돈이 너무 많으면 경기가 과열되고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원래는 그렇다.

일본만 예외로 취급됐다. 거품 붕괴 뒤 경기 부양을 위해 천문학적 돈을 썼지만 '잃어버린 20년'만 찾아왔다. 처음엔 5년이라 하다 10년이 됐고, 다시 20년이 됐다. 전통적으로 이런 일본을 정부, 중앙은행의 완화적 부양정책이 통하지 않는(백약이 무효인)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고도 봐 왔다.

그런데 이게 세계적 현상이 되고 있다. 경제 대국 독일의 국채금리가 마이너스인지도 오래됐다. (DLF 사태를 초래한 것도 이 독일의 마이너스 국채금리다) 성장률은 올 3분기 0.1%, 물가상승률은 1.1%에 불과하다. 다른 EU 국가들도 마찬가지. 유럽의 중앙은행인 ECB는 물가가 목표치인 2%에 이를 때까지 제로금리 혹은 그 이하를 유지하고, 양적 완화도 무제한 지속한다고 밝혔다.

6%대 성장을 유지하지만, 숫자가 계속 낮아지는 중국. 중국 중앙은행도 지준율을 인하하고 돈을 푼다. 역시 양적 완화를 하는 호주에 이르기까지, 각국 중앙은행은 앞다퉈 금리를 내리고, 양적 완화를 한다.

미국 연준은 금리를 올리다 말고 올해 3번이나 내렸다. 양적 완화 축소(Tapering)도 중지했다. 세계 경제가 발작하고, 그게 다시 미국 경제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우려해서다. 일부 미·중 무역분쟁 요인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내년엔 새해 벽두부터 금리를 한 번 더 내릴지 모른다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도 사용 가능한지 검토해보겠다'면서 양적 완화로 나아갈까, 말까도 고민하고 있다.

환율전쟁 국면도 불사하는 중앙은행들

목표는 '죽어도 살아나지 않는 성장률 살리기'. 거의 모든 선진국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자국 통화의 가치를 떨어트린다.

트럼프는 이게 못마땅하고, 그리니 우리도 막대한 돈을 풀어야 한다고 연준을 압박한다. 보통 중국에 대한 불평이지만, 때로는 일본까지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사실상 환율전쟁 국면이지만, '나쁘다'며 질타하는 사람은 없다. (딱 한사람, 트럼프는 빼고) 중앙은행들은 침묵 속에서 계속 돈을 더 풀고 있다.

현실은 저금리, 저실업, 저물가의 '뉴노멀'

특이하게도 고용지표는 계속 예외다. 보통은 고용이 완전고용에 가까우면 임금이 올라가고 경제가 살아나서 물가가 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고용지표만 따로 놀고 있다.

저성장이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도 우리나라 실업률은 3.5% 수준으로 낮다. 고용률 지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통계 집계 사상 가장 높다. OECD 국가 대부분의 사정이 비슷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현재 OECD 국가 가운데 3분의 2 정도에서 고용률이 기록적으로 높다고 조사했다. 미국도, 일본도, 심지어 유럽도…모두 고용은 함께 좋다.

'저금리로' 시장에 막대한 돈이 풀려 '저실업'상태이지만 이상하게도 '물가'는 높아질 기미가 없고, 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세상이다.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아직 제대로 된 이론으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은행들은 국가 경제를 보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올해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발표한 통화정책 방향 참고자료다. 금통위의 경제 판단과 향후 정책 방향을 정제해 표현한다. 문구 하나가 빠지고 더해지는 것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는데, 앞서 열린 7월, 8월, 10월에도 이 구절이 붕어빵처럼 거의 같다. 완화 기조에 대한 언급이 더해지거나 빠지지만, 전체적으로 같다. 올 하반기 판단은 거의 같다는 이야기다.

물가 부분 표현이 주목할만하다. 한은이 금리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물가였다. 알다시피 올 하반기 물가상승률은 0%대에 머물러 디플레이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도 일본처럼 디플레가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었다.

문제는 몇 차례 금리 인하에도 물가는 요지부동이었다는 점이다. '수요측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중앙은행은 금리로 물가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물가가 변한 적이 없으니, 중앙은행이 물가 변화를 보고 금리 결정한 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오히려 요즘 한은 금통위를 보면 '미·중 무역협상'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같은 대외 불확실성, 그리고 이 불확실성에 대한 외국 중앙은행의 대응(특히 미국 연준), 그리고 부동산 버블 문제가 더 큰 정책 목표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부동산을 제외하면 이 불확실성은 '환율'의 문제가 된다. 이 말은 중앙은행이 우리 경제 성장의 가장 큰 버팀목 '수출'을 금리 결정에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사라진 필립스 커브…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뉴노멀'을 당면한 전 세계

1990년대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타게팅'이라는 표현으로 물가를 직접적 정책목표로 삼고 통화정책을 펴왔는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아무도 물가만 보고 통화정책 하지 않는다. 이제 '물가'는 경제지표로선 의미가 없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지금 우리는 아직 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 사는 것이다.


'물가'와 '고용' 사이의 반비례 관계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신념(?)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이제 그 '신념'이 통하던 시대가 저물었단 평가가 나온다. IMF는 '짖지 않는 개'라고 표현했고, 이코노미스트지는 '필립스 커브가 매우 평평해졌거나, 사라졌다'고 표현한다. 최소한 단기 인플레이션은 필립스 커브의 중력에서 벗어났단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8일 발표한 물가안정 목표 운영상황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저물가를 가져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물가를 통화정책만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고도 말했다.

해법은 무엇일까? 이 총재가 명확히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직 전 세계 어느 경제학자도, 중앙은행의 정책 책임자도, 정부의 정책 담당자도 답은 모른다. '뉴노멀' 현상의 원인과 작동 기제를 명확하게 풀어내지도 못하는데, 그 해법을 명확히 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뉴노멀 시대, 이제 물가는 더이상 중앙은행의 절대적인(유일한) 관심사항이 아니게 되었단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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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은행 이야기② 한국은행의 탈선 ‘물가 관심 없어요?’
    • 입력 2019-12-19 16:25:28
    • 수정2019-12-19 16:26:20
    취재K
[연관 기사] 중앙은행 이야기① 트럼프 어깨 너머로 ‘뉴노멀’ 엿보기
(전편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45964

트럼프의 어깨너머로 시작한 이야기이지만 '뉴노멀'은 사실 미국 넘어 세계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누군가는 '뉴노멀'이라고 부르지만, '디스인플레이션 (disinflation)'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혹은 '일본화(japanification)'라는 학자도 있다. 아직 경제학적 규정이 끝나지 않은 이 현상, 직접 살펴본다.

아래는 통계시각화 전문 사이트 '하우머치'에 올라온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 인포그래픽이다. 가운데 있을수록 정부 부채의 비율이 높다. 우리나라는 하단에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40%.


이 인포그래픽의 주인공, 누가 봐도 일본이다. 정중앙. 2017년 기준 238%다. 2등은 182%인 그리스. 미국의 부채비율이 105%니까, 일본의 수치는 가히 '넘사벽'이라 할 만하다.

도쿄신문 "1944년 태평양 전쟁 말기 수준…아무도 답을 찾지 않고 있다"

일본의 엄청난 정부 부채, 안타깝게도 줄어들 가능성이 별로 없다. 올해도 내년도 일본 정부는 100조엔 규모의 슈퍼 예산을 계획하고 있는데 40%가 국채 발행 등으로 조달된다. 그리고 이 일본 정부 부채의 40% 이상은 일본의 중앙은행, BOJ가 가지고 있다.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다는 말, 쉽게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정부한테 주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의 부활을 이끌었다는 '아베노믹스'는 사실 이렇게 돈을 찍어내서 뿌리는 순환구조에 의존하고 있다.

도쿄신문은 최근 일본의 부채 규모가 막대한 전시 동원으로 빚이 극에 달했던 '1944년 태평양 전쟁 말기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이 빚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답을 찾지 않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앞다퉈 제로금리·양적 완화 나선 전 세계 중앙은행

일본 중앙은행의 제로금리는 오래됐다. 양적 완화도 오래됐다.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무제한적으로 돈을 풀겠다'라는 표현으로 설명된다.

이게 가능한 이유,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물가가 오르지 않고 있어서다. 시장에 돈이 너무 많으면 경기가 과열되고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원래는 그렇다.

일본만 예외로 취급됐다. 거품 붕괴 뒤 경기 부양을 위해 천문학적 돈을 썼지만 '잃어버린 20년'만 찾아왔다. 처음엔 5년이라 하다 10년이 됐고, 다시 20년이 됐다. 전통적으로 이런 일본을 정부, 중앙은행의 완화적 부양정책이 통하지 않는(백약이 무효인)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고도 봐 왔다.

그런데 이게 세계적 현상이 되고 있다. 경제 대국 독일의 국채금리가 마이너스인지도 오래됐다. (DLF 사태를 초래한 것도 이 독일의 마이너스 국채금리다) 성장률은 올 3분기 0.1%, 물가상승률은 1.1%에 불과하다. 다른 EU 국가들도 마찬가지. 유럽의 중앙은행인 ECB는 물가가 목표치인 2%에 이를 때까지 제로금리 혹은 그 이하를 유지하고, 양적 완화도 무제한 지속한다고 밝혔다.

6%대 성장을 유지하지만, 숫자가 계속 낮아지는 중국. 중국 중앙은행도 지준율을 인하하고 돈을 푼다. 역시 양적 완화를 하는 호주에 이르기까지, 각국 중앙은행은 앞다퉈 금리를 내리고, 양적 완화를 한다.

미국 연준은 금리를 올리다 말고 올해 3번이나 내렸다. 양적 완화 축소(Tapering)도 중지했다. 세계 경제가 발작하고, 그게 다시 미국 경제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우려해서다. 일부 미·중 무역분쟁 요인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내년엔 새해 벽두부터 금리를 한 번 더 내릴지 모른다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도 사용 가능한지 검토해보겠다'면서 양적 완화로 나아갈까, 말까도 고민하고 있다.

환율전쟁 국면도 불사하는 중앙은행들

목표는 '죽어도 살아나지 않는 성장률 살리기'. 거의 모든 선진국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자국 통화의 가치를 떨어트린다.

트럼프는 이게 못마땅하고, 그리니 우리도 막대한 돈을 풀어야 한다고 연준을 압박한다. 보통 중국에 대한 불평이지만, 때로는 일본까지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사실상 환율전쟁 국면이지만, '나쁘다'며 질타하는 사람은 없다. (딱 한사람, 트럼프는 빼고) 중앙은행들은 침묵 속에서 계속 돈을 더 풀고 있다.

현실은 저금리, 저실업, 저물가의 '뉴노멀'

특이하게도 고용지표는 계속 예외다. 보통은 고용이 완전고용에 가까우면 임금이 올라가고 경제가 살아나서 물가가 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고용지표만 따로 놀고 있다.

저성장이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도 우리나라 실업률은 3.5% 수준으로 낮다. 고용률 지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통계 집계 사상 가장 높다. OECD 국가 대부분의 사정이 비슷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현재 OECD 국가 가운데 3분의 2 정도에서 고용률이 기록적으로 높다고 조사했다. 미국도, 일본도, 심지어 유럽도…모두 고용은 함께 좋다.

'저금리로' 시장에 막대한 돈이 풀려 '저실업'상태이지만 이상하게도 '물가'는 높아질 기미가 없고, 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세상이다.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아직 제대로 된 이론으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은행들은 국가 경제를 보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올해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발표한 통화정책 방향 참고자료다. 금통위의 경제 판단과 향후 정책 방향을 정제해 표현한다. 문구 하나가 빠지고 더해지는 것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는데, 앞서 열린 7월, 8월, 10월에도 이 구절이 붕어빵처럼 거의 같다. 완화 기조에 대한 언급이 더해지거나 빠지지만, 전체적으로 같다. 올 하반기 판단은 거의 같다는 이야기다.

물가 부분 표현이 주목할만하다. 한은이 금리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물가였다. 알다시피 올 하반기 물가상승률은 0%대에 머물러 디플레이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도 일본처럼 디플레가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었다.

문제는 몇 차례 금리 인하에도 물가는 요지부동이었다는 점이다. '수요측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중앙은행은 금리로 물가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물가가 변한 적이 없으니, 중앙은행이 물가 변화를 보고 금리 결정한 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오히려 요즘 한은 금통위를 보면 '미·중 무역협상'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같은 대외 불확실성, 그리고 이 불확실성에 대한 외국 중앙은행의 대응(특히 미국 연준), 그리고 부동산 버블 문제가 더 큰 정책 목표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부동산을 제외하면 이 불확실성은 '환율'의 문제가 된다. 이 말은 중앙은행이 우리 경제 성장의 가장 큰 버팀목 '수출'을 금리 결정에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사라진 필립스 커브…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뉴노멀'을 당면한 전 세계

1990년대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타게팅'이라는 표현으로 물가를 직접적 정책목표로 삼고 통화정책을 펴왔는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아무도 물가만 보고 통화정책 하지 않는다. 이제 '물가'는 경제지표로선 의미가 없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지금 우리는 아직 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 사는 것이다.


'물가'와 '고용' 사이의 반비례 관계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신념(?)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이제 그 '신념'이 통하던 시대가 저물었단 평가가 나온다. IMF는 '짖지 않는 개'라고 표현했고, 이코노미스트지는 '필립스 커브가 매우 평평해졌거나, 사라졌다'고 표현한다. 최소한 단기 인플레이션은 필립스 커브의 중력에서 벗어났단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8일 발표한 물가안정 목표 운영상황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저물가를 가져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물가를 통화정책만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고도 말했다.

해법은 무엇일까? 이 총재가 명확히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직 전 세계 어느 경제학자도, 중앙은행의 정책 책임자도, 정부의 정책 담당자도 답은 모른다. '뉴노멀' 현상의 원인과 작동 기제를 명확하게 풀어내지도 못하는데, 그 해법을 명확히 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뉴노멀 시대, 이제 물가는 더이상 중앙은행의 절대적인(유일한) 관심사항이 아니게 되었단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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