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기본소득 실험 중’…농민 기본소득까지 등장

입력 2020.01.1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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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올해 자치단체 농민 기본소득 잇따라 도입
청년 기본소득 보다는 논란 덜해
이어지는 기본소득 실험…사회적 합의 필요

한국에 '기본소득(Basic Income)'이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6년 성남시가 '청년배당(현, 청년 기본소득)'을 도입하면서부터입니다.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만 24세 청년 전원에게 연간 50만 원을 지급하는 이 정책은 당시 '현금복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격렬한 논란을 일으키며 중앙정부 차원의 반발과 자치단체 간 소송전까지 불러왔습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국내의 학술적 논의는 이것보다도 더 이른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됐지만, 학계에서조차 본격적 관심은 2010년 즈음부터 시작됐습니다. 한 마디로 기본소득은 한국에서 '핫'하기는 하지만 논의는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새로운 개념인 셈입니다.


이러한 짧은 역사에 비해 실제 정책을 집행하는 자치단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도입과 검토는 활발합니다. 성남시의 청년 배당에 이어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시기인 2016년, 청년수당을 도입했습니다. 강원도에서는 2019년부터 인구절벽과 초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육아 기본수당(최대 월 30만 원)을 신설했습니다.

[연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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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역지자체 농민수당, 기본소득 잇따라 도입

가장 도입 논의가 활발한 것은 농민 기본소득입니다.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도입돼오던 농민 수당 등을 올해 광역자치단체에서 대거 도입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농민 기본수당, 농민소득의 도입 원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라남도는 '농어민 공익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연 60만 원을, 전라북도는 '농민 공익수당'(연 60만 원)을 올해 도입합니다. 충청남도는 이미 2017년 '농업환경실천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연 36만 원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전남 강진군, 해남군, 함평군, 충남 부여군, 경북 봉화군, 경기지역 6개 시군은 이미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농민수당을 도입했습니다.


가장 기본소득에 가까운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하지만 여러 지방정부 가운데 가장 기본소득의 개념에 근접한 정책을 준비 중인 곳은 경기도입니다. 기본소득 지급은 크게 5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보편성(모두에게) ▲무조건성(조건없이) ▲개별성(개인에게) ▲정기성(일회성이 아닌 정기적으로) ▲현금지급이 그것입니다.

다른 지자체의 정책은 '농민'이 아니라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농가'를 기준으로 하거나 가구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개별성'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이와 달리 농민 전체에게 연 60만 원을 농민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농가소득과 인구 감소라는 이중고 겪는 농촌

농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고자 하는 논의가 많은 것은 한계에 직면한 농촌의 현실 때문입니다. 1993년 말 UR 타결 당시 도시근로자 가구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95%였지만 2012년에는 57.5%까지 하락하는 등 도농 간 소득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농업직불제로 농민의 소득 안정을 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농촌 사이에서 빈부격차를 키우고 있습니다. 직불금 자체가 경지면적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대농과 소농간 격차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영세 농업인들의 최저 생계를 보장하고 농민들의 농촌 이탈을 막는 수단으로 농민 기본소득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2020년 농민 기본소득 제를 설명하는 이재명 경기지사2020년 농민 기본소득 제를 설명하는 이재명 경기지사

도입까지는 많은 난관 존재

완전한 농민 기본소득 도입까지는 많은 난관이 존재합니다. 우선 '농민'의 개념입니다. 우리 법률은 '농민'을 법률적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농가경영체'라는 집합적 정의만이 법률에 존재할 뿐입니다. 만약 농민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어디까지를 농민으로 볼지가 쟁점이 됩니다.

경기도의 경우 각 시군별로 농민 기본소득위원회를 조직해 주민들이 직접 판단하게 할 계획이지만 그렇다고 자의적 기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도 "농민 기본소득 도입 자체는 환영한다"면서도 "산골 벽촌이 있을 수가 있고 도시하고 가까운 도시 인근 지역이 있을 수 있는데 각 지역마다 농민을 분류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진행될 수가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복지대타협특위 출범식 (2019. 7. 4.)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복지대타협특위 출범식 (2019. 7. 4.)

두 번째로 재원분담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가 얽힌 재정 분권의 문제가 있습니다. 매칭펀드라고 하는데요. 특정 복지사업의 소요예산을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가 모두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지자체도 부담하게 하는 것입니다. 경기도의 농민 기본소득제도도 이 매칭펀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서로 분담하는데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통계를 보면 됩니다. 일례로 경기 수원시의 사회복지비용 부담비중은 2008년 21.4%에서 2019년 36.1%로 높아졌습니다. 현금 복지 등 복지 관련 예산의 부담이 기초자치단체에 가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자 올해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회장 염태영 수원시장)가 복지대타협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현금성 복지 정책 전반에 대한 조정 권고안을 마련하자고 나서기에 이르렀습니다. 농민 기본소득도 안정된 재원을 발굴해야 기초자치단체의 재정 건전성을 해지지 않으며 안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합의 있어야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의 지점은 여기서 모두 다루기 힘들 정도로 다양합니다. '현금 복지'라는 비판과 거부감, 국가가 어디까지 시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느냐에 대한 철학적 논의,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의 혁신과 AI의 등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문제까지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의 지형은 다양합니다.

어쩌면 해법이 반드시 기본소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기본소득 실험이 속속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는 우리 한국사회가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백승호 (2017).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기본소득 모형들 무엇이 기본소득이고 무엇이 아닌가?. <월간복지동향>, 221, 14-21.
유영성·정원호·이관형 (2019). 최근 기본소득 추이와 경기도의 도전적 시도. <이슈&진단>, 경기연구원.
박경철 (2016). 농민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 <월간공공정책>, 133호, 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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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기본소득 실험 중’…농민 기본소득까지 등장
    • 입력 2020-01-15 14:59:37
    취재K
올해 자치단체 농민 기본소득 잇따라 도입 <br />청년 기본소득 보다는 논란 덜해 <br />이어지는 기본소득 실험…사회적 합의 필요
한국에 '기본소득(Basic Income)'이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6년 성남시가 '청년배당(현, 청년 기본소득)'을 도입하면서부터입니다.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만 24세 청년 전원에게 연간 50만 원을 지급하는 이 정책은 당시 '현금복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격렬한 논란을 일으키며 중앙정부 차원의 반발과 자치단체 간 소송전까지 불러왔습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국내의 학술적 논의는 이것보다도 더 이른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됐지만, 학계에서조차 본격적 관심은 2010년 즈음부터 시작됐습니다. 한 마디로 기본소득은 한국에서 '핫'하기는 하지만 논의는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새로운 개념인 셈입니다.


이러한 짧은 역사에 비해 실제 정책을 집행하는 자치단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도입과 검토는 활발합니다. 성남시의 청년 배당에 이어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시기인 2016년, 청년수당을 도입했습니다. 강원도에서는 2019년부터 인구절벽과 초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육아 기본수당(최대 월 30만 원)을 신설했습니다.

[연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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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사건건] 박원순 “청년수당은 포퓰리즘 아닌 리얼리즘…청년 믿는 게 핵심”



올해 광역지자체 농민수당, 기본소득 잇따라 도입

가장 도입 논의가 활발한 것은 농민 기본소득입니다.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도입돼오던 농민 수당 등을 올해 광역자치단체에서 대거 도입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농민 기본수당, 농민소득의 도입 원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라남도는 '농어민 공익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연 60만 원을, 전라북도는 '농민 공익수당'(연 60만 원)을 올해 도입합니다. 충청남도는 이미 2017년 '농업환경실천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연 36만 원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전남 강진군, 해남군, 함평군, 충남 부여군, 경북 봉화군, 경기지역 6개 시군은 이미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농민수당을 도입했습니다.


가장 기본소득에 가까운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하지만 여러 지방정부 가운데 가장 기본소득의 개념에 근접한 정책을 준비 중인 곳은 경기도입니다. 기본소득 지급은 크게 5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보편성(모두에게) ▲무조건성(조건없이) ▲개별성(개인에게) ▲정기성(일회성이 아닌 정기적으로) ▲현금지급이 그것입니다.

다른 지자체의 정책은 '농민'이 아니라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농가'를 기준으로 하거나 가구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개별성'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이와 달리 농민 전체에게 연 60만 원을 농민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농가소득과 인구 감소라는 이중고 겪는 농촌

농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고자 하는 논의가 많은 것은 한계에 직면한 농촌의 현실 때문입니다. 1993년 말 UR 타결 당시 도시근로자 가구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95%였지만 2012년에는 57.5%까지 하락하는 등 도농 간 소득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농업직불제로 농민의 소득 안정을 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농촌 사이에서 빈부격차를 키우고 있습니다. 직불금 자체가 경지면적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대농과 소농간 격차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영세 농업인들의 최저 생계를 보장하고 농민들의 농촌 이탈을 막는 수단으로 농민 기본소득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2020년 농민 기본소득 제를 설명하는 이재명 경기지사
도입까지는 많은 난관 존재

완전한 농민 기본소득 도입까지는 많은 난관이 존재합니다. 우선 '농민'의 개념입니다. 우리 법률은 '농민'을 법률적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농가경영체'라는 집합적 정의만이 법률에 존재할 뿐입니다. 만약 농민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어디까지를 농민으로 볼지가 쟁점이 됩니다.

경기도의 경우 각 시군별로 농민 기본소득위원회를 조직해 주민들이 직접 판단하게 할 계획이지만 그렇다고 자의적 기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도 "농민 기본소득 도입 자체는 환영한다"면서도 "산골 벽촌이 있을 수가 있고 도시하고 가까운 도시 인근 지역이 있을 수 있는데 각 지역마다 농민을 분류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진행될 수가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복지대타협특위 출범식 (2019. 7. 4.)
두 번째로 재원분담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가 얽힌 재정 분권의 문제가 있습니다. 매칭펀드라고 하는데요. 특정 복지사업의 소요예산을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가 모두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지자체도 부담하게 하는 것입니다. 경기도의 농민 기본소득제도도 이 매칭펀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서로 분담하는데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통계를 보면 됩니다. 일례로 경기 수원시의 사회복지비용 부담비중은 2008년 21.4%에서 2019년 36.1%로 높아졌습니다. 현금 복지 등 복지 관련 예산의 부담이 기초자치단체에 가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자 올해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회장 염태영 수원시장)가 복지대타협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현금성 복지 정책 전반에 대한 조정 권고안을 마련하자고 나서기에 이르렀습니다. 농민 기본소득도 안정된 재원을 발굴해야 기초자치단체의 재정 건전성을 해지지 않으며 안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합의 있어야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의 지점은 여기서 모두 다루기 힘들 정도로 다양합니다. '현금 복지'라는 비판과 거부감, 국가가 어디까지 시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느냐에 대한 철학적 논의,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의 혁신과 AI의 등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문제까지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의 지형은 다양합니다.

어쩌면 해법이 반드시 기본소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기본소득 실험이 속속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는 우리 한국사회가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백승호 (2017).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기본소득 모형들 무엇이 기본소득이고 무엇이 아닌가?. <월간복지동향>, 221, 14-21.
유영성·정원호·이관형 (2019). 최근 기본소득 추이와 경기도의 도전적 시도. <이슈&진단>, 경기연구원.
박경철 (2016). 농민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 <월간공공정책>, 133호, 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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