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포탈 보고서]⑥ 조세포탈 천국 코리아?…미국은 징역형 80%

입력 2020.03.14 (07:00) 수정 2020.03.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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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철 도소매업에 종사하는 이 모 씨는 폐구리를 공급받지 않고도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아 부가가치세 25억여 원을 포탈했습니다. 최종심에서 이 씨는 징역 3년 9개월 및 벌금 80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이 씨가 "범행 수법과 내용 등에 비추어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다른 피고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 등 범행 후의 정황도 상당히 불량하다"며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같은 방식인데…25억 포탈은 징역 3년 9개월, 126억 포탈은 집행유예

반면 비슷한 방식으로 부가가치세 126억여 원을 포탈한 양 모 씨는 징역 2년 6개월 및 벌금 279억 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양 씨에 대해 "조세징수에 지장을 초래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가담 정도가 아주 중하지는 않다"며 징역형의 집행은 유예했습니다.

두 사람의 선고형을 결정하는데 여러 요소들이 적용됐겠지만, 포탈세액이 얼마나 많은가와는 관계없이 판결은 들쑥날쑥이었습니다. 양형기준은 기본적으로 포탈 액수에 따라 분류가 되는데 말입니다.

이 씨와 양 씨 모두 양형기준으로 보면 특가법이 적용되고 포탈세액이 10억 이상~200억 미만 구간이라 같은 2유형에 속합니다. 2유형은 기본 형량이 4~6년이라 감경요소가 적용되지 않으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습니다. 집행유예는 형량이 3년 이하일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조세 포탈죄와 함께 허위세금계산서 교부죄도 저질러 다수범죄 처리 기준에 따라 권고형은 더 상향 조정됩니다.

그런데 이 씨보다 5배나 더 많이 포탈한 양 씨는 감경요소가 적용된 뒤 권고형의 하한인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집행유예가 됐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적게 포탈한 이 씨는 감경 없이 기본 형량이 그대로 적용됐고, 실제 판결에서는 하한보다 조금 낮은 3년 9개월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10억 포탈·199억 포탈이 같은 기준?…포탈액에 상응하지 않는 형벌

포탈세액에 따른 판결이 일관적이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양형기준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은데서 비롯됩니다. 같은 유형으로 삼는 포탈세액 구간이 넓게 잡혀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200억 원 가까이 포탈한 경우와 10억 원가량 포탈한 경우는 포탈세액 규모가 20배 정도 차이가 나는데 같은 유형으로 분류해 형을 정합니다. 기본 형량은 4~6년으로 같습니다. 감경요소가 적용되느냐에 따라 집행유예 가능성이 달라지는데, 위의 사례처럼 더 고액을 포탈해도 감경요소가 적용되면 집행유예를 받기도 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 문은희 조사관은 '조세범에 대한 처벌 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10억 원에서 200억 원 상당을 동일한 양형구간으로 분류한 것은 조세포탈 규모에 상응하는 형벌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문 조사관은 "이는 법관에게 지나치게 큰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어 조세포탈 액수와 양형결과가 비례적으로 상응하지 않을 수 있고, 결국 조세범죄 처벌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했습니다.

감경영역 아닌데도 집행유예…대법원 '하한 이탈' 인정

더구나 감경영역에 해당하지 않아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가 다수 발견됐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2018 연간 보고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특가법상 조세포탈 2유형인데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9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2유형은 감경영역에 들어가야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고, 기본과 가중영역은 하한이 3년 형을 초과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집행유예를 받은 9명 가운데 감경영역에 해당하는 건 5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4명은 감경영역이 아닌데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입니다.


나머지 4명은 어떻게 집행유예를 받은 것인지 대법원에 질의하자, 대법원은 양형기준을 벗어나 하한보다 낮게 선고됐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4건의 경우 기본영역 이상이었으나 양형기준 하한을 이탈하여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통상 초범 또는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과나 동종전과가 없는 등의 경우에 양형기준 하한을 이탈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이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특정범죄가중법상 조세포탈은...제2유형은 가중영역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적어놔 판결이 엄격하게 내려지는 것처럼 기재돼 있습니다. 도표상에도 가중영역 47.6%(10명), 기본영역 28.6%(6명), 감경영역은 23.8%(5명)로 가중영역의 비중이 크게 돼 있습니다.

실상은 가중영역이나 기본영역에 속한 16명 가운데 4명, 4분의 1이 하한보다 낮게 선고가 돼 집행유예를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당초 보고서에는 하한 이탈 사례 건수와 이탈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국가 대상 조세범, 개인 대상 사기범보다 집행유예 2배

조세범 처벌법은 일반 조세포탈에 대해 징역 2~3년의 상한을 두고 있고, 특가법을 적용할 경우 징역 5년 이상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보고서를 보면, 2018년 일반 조세포탈범 가운데 71.4%, 특가법상 조세포탈범 중 51.7%가 집행유예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세포탈죄와 비슷한 재산범죄인 사기죄를 보면 일반 사기의 집행유예 비율은 43%, 조직적 사기는 21.4%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조세 포탈죄는 사기죄보다 1.7배~2.4배가량 집행유예 비율이 높은 겁니다.

사기죄는 조세 포탈죄와 범죄 구성요건이 동일한데, 피해자가 개인이냐, 국가냐의 차이가 날 뿐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피해자인 경우 처벌이 더 가볍게 내려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백혜원 변호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는 "우리나라는 사인 간의 재산범죄에 비해 국고에 대한 재산 범죄는 형벌이 낮은 편"이라며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77억 포탈' 이건희 재산관리인도 집행유예…"반성, 직접 이익 없다"

조세 포탈죄에 대해 집행유예 선고가 많은 경향은 최근 판결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수십억 원대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기소된 전용배 삼성벤처투자 대표에게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는데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14일 전 대표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벌금 77억 8천만 원에 대한 선고도 유예했습니다.

전 대표는 이 회장의 재산관리팀 총괄 임원 시절, 이 회장 소유의 삼성그룹 주식을 차명계좌를 이용해 사고팔며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 회장과 같은 대주주는 주식 거래의 시세 차익에 대해 20%의 양도세를 내야 하는데, 삼성 임원들 명의로 차명계좌를 여러 개 만들어 주식을 분산해 납세를 피했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차명계좌를 장기간 다수 사용했고, 범행으로 포탈한 세액도 77억 원에 달해 규모도 상당하다"며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했지만, "전 씨가 반성하고 있으며 범행 후 관련된 조세 등을 대부분 냈다, 직접 얻은 이익은 없다는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집행유예였습니다.

검찰은 이건희 회장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했지만, 이 회장이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의식불명 상태가 계속돼 기소중지 처분을 했습니다.

미국은 징역형 비율 80%…포탈세액 구간 세부화·형량 높여야

무분별한 집행유예를 막기 위한 방법은 뭘까요? 문은희 입법조사관은 "포탈세액이 10억 이상~200억 미만인 경우 양형구간 최하한이 2년 6개월로 집행유예가 가능해 고액 탈세범죄에 면죄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한을 3년보다 높게 정해 집행유예를 아예 받을 수 없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문 조사관은 이어 "미국과 같이 탈세액 규모와 누적범죄 건수에 따라 형량을 더 세분화시키는 것이 형벌의 책임주의 원칙에 부합하다"고 말합니다. 문 조사관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5년(2013~2017년)간 조세범죄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률이 평균 92.7%, 총 선고 중 징역형 비율도 80.1%에 이릅니다. 10억~200억 구간을 여러 구간으로 세분화해서 포탈세액에 따라 형량을 높이면 고액 포탈범들이 집행유예로 빠져나가는 길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다른 범죄보다 사람들 관심 낮다고 처벌 약해서야’

백혜원 변호사는 "근본적으로는 양형기준의 근간이 되는 법정형 자체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일반 조세범에 대한 법정형을 2~3년 이하에서 3~5년 이하 징역형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백 변호사는 "조세 포탈범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은 국민적 관심이 다른 범죄보다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지적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이와 관련해 "통상 국회에서 당해 범죄에 대한 법정형이 상향된 범죄 또는 양형실무에 대한 개선 의견이 높고, 더 엄정한 양형을 바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범죄에 관해서는 양형기준 수정을 통하여 적절한 규범적 조정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양형기준 변경은 국민적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세포탈 되풀이되면 될수록…결국 선량한 납세자가 피해’

조세 포탈죄는 말 그대로 사기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나라 곳간을 비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포탈 세금이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고액 조세 포탈범들이 양형기준상 가장 적은 형량, 나아가 기준보다도 더 적은 형량을 받아 실형을 피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벌금을 내는 대신에 하루 일당을 수백, 수천만 원으로 책정한 '황제노역'으로 대체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면, 그만큼 비게 되는 국고는 결국 성실한 납세자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터 수집·분석: 정한진, 윤지희, 이지연
데이터 시각화: 임유나

[연관기사]
[조세포탈 보고서]① 그들은 법을 두려워할까?…‘포탈세액 평균 29억, 열에 여섯은 집행유예’
[조세포탈 보고서]② 거액 조세포탈 어떻게?…‘무자료·폭탄업체·차명 거래’
[조세포탈 보고서]③ 그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나?…‘5년형 권고에 3년형 선고?’
[조세포탈 보고서]④ ‘반성합니다’로 감옥행 면했는데…‘지금도 체납이 수십억’
[조세포탈 보고서]⑤ ‘일당 7천만 원’…황제노역이 가능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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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세포탈 보고서]⑥ 조세포탈 천국 코리아?…미국은 징역형 80%
    • 입력 2020-03-14 07:00:13
    • 수정2020-03-24 17:39:16
    데이터룸
고비철 도소매업에 종사하는 이 모 씨는 폐구리를 공급받지 않고도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아 부가가치세 25억여 원을 포탈했습니다. 최종심에서 이 씨는 징역 3년 9개월 및 벌금 80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이 씨가 "범행 수법과 내용 등에 비추어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다른 피고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 등 범행 후의 정황도 상당히 불량하다"며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같은 방식인데…25억 포탈은 징역 3년 9개월, 126억 포탈은 집행유예

반면 비슷한 방식으로 부가가치세 126억여 원을 포탈한 양 모 씨는 징역 2년 6개월 및 벌금 279억 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양 씨에 대해 "조세징수에 지장을 초래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가담 정도가 아주 중하지는 않다"며 징역형의 집행은 유예했습니다.

두 사람의 선고형을 결정하는데 여러 요소들이 적용됐겠지만, 포탈세액이 얼마나 많은가와는 관계없이 판결은 들쑥날쑥이었습니다. 양형기준은 기본적으로 포탈 액수에 따라 분류가 되는데 말입니다.

이 씨와 양 씨 모두 양형기준으로 보면 특가법이 적용되고 포탈세액이 10억 이상~200억 미만 구간이라 같은 2유형에 속합니다. 2유형은 기본 형량이 4~6년이라 감경요소가 적용되지 않으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습니다. 집행유예는 형량이 3년 이하일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조세 포탈죄와 함께 허위세금계산서 교부죄도 저질러 다수범죄 처리 기준에 따라 권고형은 더 상향 조정됩니다.

그런데 이 씨보다 5배나 더 많이 포탈한 양 씨는 감경요소가 적용된 뒤 권고형의 하한인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집행유예가 됐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적게 포탈한 이 씨는 감경 없이 기본 형량이 그대로 적용됐고, 실제 판결에서는 하한보다 조금 낮은 3년 9개월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10억 포탈·199억 포탈이 같은 기준?…포탈액에 상응하지 않는 형벌

포탈세액에 따른 판결이 일관적이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양형기준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은데서 비롯됩니다. 같은 유형으로 삼는 포탈세액 구간이 넓게 잡혀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200억 원 가까이 포탈한 경우와 10억 원가량 포탈한 경우는 포탈세액 규모가 20배 정도 차이가 나는데 같은 유형으로 분류해 형을 정합니다. 기본 형량은 4~6년으로 같습니다. 감경요소가 적용되느냐에 따라 집행유예 가능성이 달라지는데, 위의 사례처럼 더 고액을 포탈해도 감경요소가 적용되면 집행유예를 받기도 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 문은희 조사관은 '조세범에 대한 처벌 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10억 원에서 200억 원 상당을 동일한 양형구간으로 분류한 것은 조세포탈 규모에 상응하는 형벌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문 조사관은 "이는 법관에게 지나치게 큰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어 조세포탈 액수와 양형결과가 비례적으로 상응하지 않을 수 있고, 결국 조세범죄 처벌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했습니다.

감경영역 아닌데도 집행유예…대법원 '하한 이탈' 인정

더구나 감경영역에 해당하지 않아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가 다수 발견됐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2018 연간 보고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특가법상 조세포탈 2유형인데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9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2유형은 감경영역에 들어가야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고, 기본과 가중영역은 하한이 3년 형을 초과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집행유예를 받은 9명 가운데 감경영역에 해당하는 건 5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4명은 감경영역이 아닌데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입니다.


나머지 4명은 어떻게 집행유예를 받은 것인지 대법원에 질의하자, 대법원은 양형기준을 벗어나 하한보다 낮게 선고됐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4건의 경우 기본영역 이상이었으나 양형기준 하한을 이탈하여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통상 초범 또는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과나 동종전과가 없는 등의 경우에 양형기준 하한을 이탈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이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특정범죄가중법상 조세포탈은...제2유형은 가중영역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적어놔 판결이 엄격하게 내려지는 것처럼 기재돼 있습니다. 도표상에도 가중영역 47.6%(10명), 기본영역 28.6%(6명), 감경영역은 23.8%(5명)로 가중영역의 비중이 크게 돼 있습니다.

실상은 가중영역이나 기본영역에 속한 16명 가운데 4명, 4분의 1이 하한보다 낮게 선고가 돼 집행유예를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당초 보고서에는 하한 이탈 사례 건수와 이탈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국가 대상 조세범, 개인 대상 사기범보다 집행유예 2배

조세범 처벌법은 일반 조세포탈에 대해 징역 2~3년의 상한을 두고 있고, 특가법을 적용할 경우 징역 5년 이상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보고서를 보면, 2018년 일반 조세포탈범 가운데 71.4%, 특가법상 조세포탈범 중 51.7%가 집행유예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세포탈죄와 비슷한 재산범죄인 사기죄를 보면 일반 사기의 집행유예 비율은 43%, 조직적 사기는 21.4%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조세 포탈죄는 사기죄보다 1.7배~2.4배가량 집행유예 비율이 높은 겁니다.

사기죄는 조세 포탈죄와 범죄 구성요건이 동일한데, 피해자가 개인이냐, 국가냐의 차이가 날 뿐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피해자인 경우 처벌이 더 가볍게 내려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백혜원 변호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는 "우리나라는 사인 간의 재산범죄에 비해 국고에 대한 재산 범죄는 형벌이 낮은 편"이라며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77억 포탈' 이건희 재산관리인도 집행유예…"반성, 직접 이익 없다"

조세 포탈죄에 대해 집행유예 선고가 많은 경향은 최근 판결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수십억 원대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기소된 전용배 삼성벤처투자 대표에게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는데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14일 전 대표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벌금 77억 8천만 원에 대한 선고도 유예했습니다.

전 대표는 이 회장의 재산관리팀 총괄 임원 시절, 이 회장 소유의 삼성그룹 주식을 차명계좌를 이용해 사고팔며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 회장과 같은 대주주는 주식 거래의 시세 차익에 대해 20%의 양도세를 내야 하는데, 삼성 임원들 명의로 차명계좌를 여러 개 만들어 주식을 분산해 납세를 피했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차명계좌를 장기간 다수 사용했고, 범행으로 포탈한 세액도 77억 원에 달해 규모도 상당하다"며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했지만, "전 씨가 반성하고 있으며 범행 후 관련된 조세 등을 대부분 냈다, 직접 얻은 이익은 없다는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집행유예였습니다.

검찰은 이건희 회장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했지만, 이 회장이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의식불명 상태가 계속돼 기소중지 처분을 했습니다.

미국은 징역형 비율 80%…포탈세액 구간 세부화·형량 높여야

무분별한 집행유예를 막기 위한 방법은 뭘까요? 문은희 입법조사관은 "포탈세액이 10억 이상~200억 미만인 경우 양형구간 최하한이 2년 6개월로 집행유예가 가능해 고액 탈세범죄에 면죄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한을 3년보다 높게 정해 집행유예를 아예 받을 수 없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문 조사관은 이어 "미국과 같이 탈세액 규모와 누적범죄 건수에 따라 형량을 더 세분화시키는 것이 형벌의 책임주의 원칙에 부합하다"고 말합니다. 문 조사관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5년(2013~2017년)간 조세범죄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률이 평균 92.7%, 총 선고 중 징역형 비율도 80.1%에 이릅니다. 10억~200억 구간을 여러 구간으로 세분화해서 포탈세액에 따라 형량을 높이면 고액 포탈범들이 집행유예로 빠져나가는 길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다른 범죄보다 사람들 관심 낮다고 처벌 약해서야’

백혜원 변호사는 "근본적으로는 양형기준의 근간이 되는 법정형 자체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일반 조세범에 대한 법정형을 2~3년 이하에서 3~5년 이하 징역형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백 변호사는 "조세 포탈범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은 국민적 관심이 다른 범죄보다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지적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이와 관련해 "통상 국회에서 당해 범죄에 대한 법정형이 상향된 범죄 또는 양형실무에 대한 개선 의견이 높고, 더 엄정한 양형을 바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범죄에 관해서는 양형기준 수정을 통하여 적절한 규범적 조정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양형기준 변경은 국민적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세포탈 되풀이되면 될수록…결국 선량한 납세자가 피해’

조세 포탈죄는 말 그대로 사기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나라 곳간을 비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포탈 세금이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고액 조세 포탈범들이 양형기준상 가장 적은 형량, 나아가 기준보다도 더 적은 형량을 받아 실형을 피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벌금을 내는 대신에 하루 일당을 수백, 수천만 원으로 책정한 '황제노역'으로 대체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면, 그만큼 비게 되는 국고는 결국 성실한 납세자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터 수집·분석: 정한진, 윤지희, 이지연
데이터 시각화: 임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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