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문 한번 못 열어보고 집세 내요”…빈방 월세 내는 신입생

입력 2020.04.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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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학번 대학 신입생 딸을 둔 최 모 씨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월급이 평소의 절반 수준인데, 딸이 서울 노원구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딸의 원룸 보증금과 월세를 챙겨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딸이 월세방에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한 채, 월세를 내야 한다는 겁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학교 개강이 늦어지고,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듣기 때문에 딸은 당장은 서울 월세방에 갈 일이 없습니다.

짐을 들여다 놓지도 않았고, 계약 이후로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도 내야 하는 월세 45만 원이 아까워 집주인에게 하소연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최○○ / 대학 신입생 학부모. 경상남도 거주
"아는 사람 없고, 코로나19로 밖을 나갈 수도 없어서 딸을 혼자 서울에 보낼 수 없었어요."
"집주인이 '자기들도 힘들다'면서 월세 깎아주지 않더라고요. 상가들은 착한 임대료 운동이 있는데 대학생 상대 주택임대에는 이런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아들이 대학 신입생인 문 모 씨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습니다.

문 씨는 아들이 진학한 대학 근처인 서울 성동구에 원룸을 계약한 뒤 역시 아들을 서울로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증금 4천만 원에 월세 40만 원으로 적지 않은 돈이어서 공인중개사를 통해 하소연했지만, 관리비 5만 원을 면제받은 게 전부였습니다. 월세 계약 이후 문 한번 열어보지 못하고 월세를 꼬박 내는 상황입니다.

문○○ / 대학 신입생 학부모, 전라북도 전주 거주
"이삿짐도 한 번 넣지 못해본 월세방에 월세를 전부 내고 있는 거죠. 공인중개사에 전화했는데 비슷한 전화를 많이 받지만 월세를 깎아주는 집주인은 단 한 명도 못 봤다고 말하더라고요."

■ 신입생 학생·가족이 피해호소…집주인 대응은 각각 달라

지역에서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 대부분 비슷한 처지이지만, 신입생의 경우 더 많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월세 계약을 했는데, 이삿짐조차 놓지 못하고 서울 생활을 시작조차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학가 주변 공인중개사에게 물어봤습니다. 제보자들처럼 월세를 일부라도 깎아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집주인들의 반응은 다양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공인중개사는 세입자에게 전화를 많이 받은 집주인들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상담전화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성북구 'ㄹ' 공인중개사
"집주인들이 상담도 많이 하시지만, 월세를 깎아주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어요. '다른 친구를 데려와라'라고 답한 집주인도 있더라고요."

반면, 월세 절반을 깎아주거나 세입 대학생이 들어오는 시점부터 월세를 받기로 합의해준 집주인이 많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서울 성동구 'ㄱ' 공인중개사
"월세 60만 원을 30만 원으로 줄여주거나 월세 받는 시점을 1달 미뤄준 주인도 계세요. 심지어 들어오는 시점부터 월세를 받기로 한 분도 계시고요."

■ 일부 대학, 기숙사 미사용 기간 환불해주기도

일부 대학들은 기숙사를 이용하지 못한 만큼 비용을 줄여주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기숙사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사용하지 못한 기간만큼 환불을 해줄 예정이며, 중앙대의 경우 미사용 기간을 계산해 기숙사 사용료를 깎아줄 계획입니다.

기숙사 비용을 환불받은 학생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입니다. 서울에서 기숙사에 사는 학생 비중이 작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 45곳의 기숙사 수용률은 2017년 기준 평균 15.9%에 불과합니다. 100명 중 15명 정도만 기숙사에 살 수 있는 겁니다. 대학 11곳은 기숙사 수용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연관 기사] [월세의 늪⑤] 소외된 대학생·취준생…“기숙사 확충 절실”

청년 주거문제 관련 시민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 최지희 위원장은 가뜩이나 열악한 청년 주거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악화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최지희 /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상가 부분은 착한 임대료 운동이 있는데 청년 주거문제는 사각지대로 이번 사태에도 조용히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임대인 사정도 이해되지만 서로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대학가 주변의 일시적인 월세 문제뿐만 아니라 기숙사나 공공주택 확충 등 대학생과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합니다.

▶ ‘ 코로나19 확산 우려’ 최신 기사 보기
http://news.kbs.co.kr/news/list.do?icd=19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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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2 07:00:01
    취재K
20학번 대학 신입생 딸을 둔 최 모 씨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월급이 평소의 절반 수준인데, 딸이 서울 노원구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딸의 원룸 보증금과 월세를 챙겨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딸이 월세방에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한 채, 월세를 내야 한다는 겁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학교 개강이 늦어지고,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듣기 때문에 딸은 당장은 서울 월세방에 갈 일이 없습니다.

짐을 들여다 놓지도 않았고, 계약 이후로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도 내야 하는 월세 45만 원이 아까워 집주인에게 하소연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최○○ / 대학 신입생 학부모. 경상남도 거주
"아는 사람 없고, 코로나19로 밖을 나갈 수도 없어서 딸을 혼자 서울에 보낼 수 없었어요."
"집주인이 '자기들도 힘들다'면서 월세 깎아주지 않더라고요. 상가들은 착한 임대료 운동이 있는데 대학생 상대 주택임대에는 이런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아들이 대학 신입생인 문 모 씨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습니다.

문 씨는 아들이 진학한 대학 근처인 서울 성동구에 원룸을 계약한 뒤 역시 아들을 서울로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증금 4천만 원에 월세 40만 원으로 적지 않은 돈이어서 공인중개사를 통해 하소연했지만, 관리비 5만 원을 면제받은 게 전부였습니다. 월세 계약 이후 문 한번 열어보지 못하고 월세를 꼬박 내는 상황입니다.

문○○ / 대학 신입생 학부모, 전라북도 전주 거주
"이삿짐도 한 번 넣지 못해본 월세방에 월세를 전부 내고 있는 거죠. 공인중개사에 전화했는데 비슷한 전화를 많이 받지만 월세를 깎아주는 집주인은 단 한 명도 못 봤다고 말하더라고요."

■ 신입생 학생·가족이 피해호소…집주인 대응은 각각 달라

지역에서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 대부분 비슷한 처지이지만, 신입생의 경우 더 많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월세 계약을 했는데, 이삿짐조차 놓지 못하고 서울 생활을 시작조차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학가 주변 공인중개사에게 물어봤습니다. 제보자들처럼 월세를 일부라도 깎아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집주인들의 반응은 다양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공인중개사는 세입자에게 전화를 많이 받은 집주인들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상담전화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성북구 'ㄹ' 공인중개사
"집주인들이 상담도 많이 하시지만, 월세를 깎아주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어요. '다른 친구를 데려와라'라고 답한 집주인도 있더라고요."

반면, 월세 절반을 깎아주거나 세입 대학생이 들어오는 시점부터 월세를 받기로 합의해준 집주인이 많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서울 성동구 'ㄱ' 공인중개사
"월세 60만 원을 30만 원으로 줄여주거나 월세 받는 시점을 1달 미뤄준 주인도 계세요. 심지어 들어오는 시점부터 월세를 받기로 한 분도 계시고요."

■ 일부 대학, 기숙사 미사용 기간 환불해주기도

일부 대학들은 기숙사를 이용하지 못한 만큼 비용을 줄여주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기숙사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사용하지 못한 기간만큼 환불을 해줄 예정이며, 중앙대의 경우 미사용 기간을 계산해 기숙사 사용료를 깎아줄 계획입니다.

기숙사 비용을 환불받은 학생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입니다. 서울에서 기숙사에 사는 학생 비중이 작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 45곳의 기숙사 수용률은 2017년 기준 평균 15.9%에 불과합니다. 100명 중 15명 정도만 기숙사에 살 수 있는 겁니다. 대학 11곳은 기숙사 수용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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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주거문제 관련 시민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 최지희 위원장은 가뜩이나 열악한 청년 주거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악화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최지희 /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상가 부분은 착한 임대료 운동이 있는데 청년 주거문제는 사각지대로 이번 사태에도 조용히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임대인 사정도 이해되지만 서로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대학가 주변의 일시적인 월세 문제뿐만 아니라 기숙사나 공공주택 확충 등 대학생과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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