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무실] ‘공무원 갑질’ 신고 8개월…가해자 아닌 피해자가 떠났습니다

입력 2020.04.07 (15:38) 수정 2020.04.07 (17:1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7월, 농식품부 직원 3명이 팀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KBS에 제보했습니다. 신고자들은 팀장의 갑질을 "바늘로 허벅지를 끊임없이 찌르는 고통을 받는 듯한 느낌"이라고 설명했는데요. 모욕적인 발언과 업무 배제, 유연근무 신청 반려, 사적 신부름 등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8월 보도 이후 7달이 흘렀는데 신고자 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습니다.

[연관기사] “애들 집에 좀 데려다줘”…부하직원 괴롭힌 농식품부 간부

신고자 A 씨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신고자 A 씨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갑질 일부 인정되는데 처벌 못한다는 농식품부

결론부터 얘기하면 신고자 3명 가운데 2명이 지난달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직에서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하는 게 무의미했다"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9월, 농식품부는 자체 조사를 마친 뒤 1차 결론을 '경징계'로 냈습니다.

팀장은 신고자가 육아 문제로 유연근무 신청을 하자 "유연근무는 원래 올려놓고 안 쓰는 것"이라며 "마음 불편해도 몸 편한 게 좋으냐"며 반려했는데요. 그런데 농식품부는 이 신청을 1회만 반려하고 이후 재차 신청하자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갑질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달라, 재산세 서류에 어머니 대신 대리 서명을 해 달라는 사적 심부름 또한 각각 한 번씩만 부탁했고 신고자가 거절했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회사 나가도 된다", "나한테 맞춰라" 등의 일종의 이직 및 퇴사 강요는 팀장과 신고자 간 대화 중에 빈번히 이뤄졌음에도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인정됐습니다.

부당한 업무배제와 모욕만 인정했는데, 농식품부는 이 2건의 갑질은 국가공무원법 및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의 징계사유에 해당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KBS 보도로 인해 공무원의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징계를 결정한 겁니다.

그러나 지난 2018년 12월 신설된 공무원 행동강령에는 "직무권한 등을 행사한 부당 행위의 금지"를 명시했고, 지난해 4월 인사혁신처는 갑질로 징계가 의결된 경우 최소 '감봉'에 처하도록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을 개정했습니다. 갑질이 일부 인정되는데 처벌할 수 없다는 농식품부의 결론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농식품부 외경과 인사혁신처 외경 아도농식품부 외경과 인사혁신처 외경 아도

■ 8달 기다렸는데 징계 결과 가르쳐 줄 수 없다?

직장을 떠난 신고자들은 아직도 팀장의 정확한 징계 수위를 모르고 있습니다. 공무원 복무제도를 담당하고, 5급 이상 공무원의 징계를 의결하는 인사혁신처에 물어봤는데 최종 처분 권한은 각 부처에 있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농식품부는 알려줬을까요? 농식품부도 징계 처분은 당사자에게만 통보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처음 결론내렸던 '경징계'에서 징계 수위가 상향됐는지, 유지됐는지에 관한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 성범죄에 관해서는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징계처분 결과를 통보하도록 한 것을 계기로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6월, 폭행과 갑질 피해자에게도 그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인사처 등에 권고했는데요.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는 겁니다.

결국 신고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전과 후, 어느 것 하나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신고자 A 씨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같이 동조해 주고 가해자도 자중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니까 오히려 괴롭힘은 흐려지고 신고 행위만 남았다"고 답했습니다.

■ 총리까지 나섰던 '직장 내 갑질 근절'…'철밥통' 공무원은 예외?

이 과정에서 농식품부가 먼저 신고자에게 보호 조치를 제안하지 않았다는 점도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신고 이후에도 두 달 동안 휴가 등의 복무 결제 라인이 바뀌지 않았고 팀장이 따로 업무 보고를 지시하기도 해 결국 신고자들이 국장과 감사실에 분리를 요청해야 했습니다. 인사혁신처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에서야 감사실에 요청해 칸막이로 공간 분리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A 씨는 감사실의 감수성과 갑질 근절 의지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물리력을 동반하지 않은 직장 내 괴롭힘이란 진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일상에서 보이지 않게 이뤄지는 것이라 정신적인 학대라고 생각하고 이 문제를 바라봤다면 결과가 조금은 바뀌지 않았겠냐는 겁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보다 앞서 정부는 2018년부터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낙연 당시 총리는 "우리 사회의 못난 갑질은 이제 세계적 수치"라는 발언을 시작으로 "공공분야부터 갑질하는 사람의 이름과 행위와 소속기관을 공개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온 정부가 팔 걷어붙였던 갑질 근절, 특히 '철밥통' 공무원 갑질 징계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걸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死무실] ‘공무원 갑질’ 신고 8개월…가해자 아닌 피해자가 떠났습니다
    • 입력 2020-04-07 15:38:01
    • 수정2020-04-07 17:15:49
    취재K
지난해 7월, 농식품부 직원 3명이 팀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KBS에 제보했습니다. 신고자들은 팀장의 갑질을 "바늘로 허벅지를 끊임없이 찌르는 고통을 받는 듯한 느낌"이라고 설명했는데요. 모욕적인 발언과 업무 배제, 유연근무 신청 반려, 사적 신부름 등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8월 보도 이후 7달이 흘렀는데 신고자 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습니다.

[연관기사] “애들 집에 좀 데려다줘”…부하직원 괴롭힌 농식품부 간부

신고자 A 씨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갑질 일부 인정되는데 처벌 못한다는 농식품부

결론부터 얘기하면 신고자 3명 가운데 2명이 지난달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직에서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하는 게 무의미했다"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9월, 농식품부는 자체 조사를 마친 뒤 1차 결론을 '경징계'로 냈습니다.

팀장은 신고자가 육아 문제로 유연근무 신청을 하자 "유연근무는 원래 올려놓고 안 쓰는 것"이라며 "마음 불편해도 몸 편한 게 좋으냐"며 반려했는데요. 그런데 농식품부는 이 신청을 1회만 반려하고 이후 재차 신청하자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갑질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달라, 재산세 서류에 어머니 대신 대리 서명을 해 달라는 사적 심부름 또한 각각 한 번씩만 부탁했고 신고자가 거절했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회사 나가도 된다", "나한테 맞춰라" 등의 일종의 이직 및 퇴사 강요는 팀장과 신고자 간 대화 중에 빈번히 이뤄졌음에도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인정됐습니다.

부당한 업무배제와 모욕만 인정했는데, 농식품부는 이 2건의 갑질은 국가공무원법 및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의 징계사유에 해당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KBS 보도로 인해 공무원의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징계를 결정한 겁니다.

그러나 지난 2018년 12월 신설된 공무원 행동강령에는 "직무권한 등을 행사한 부당 행위의 금지"를 명시했고, 지난해 4월 인사혁신처는 갑질로 징계가 의결된 경우 최소 '감봉'에 처하도록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을 개정했습니다. 갑질이 일부 인정되는데 처벌할 수 없다는 농식품부의 결론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농식품부 외경과 인사혁신처 외경 아도
■ 8달 기다렸는데 징계 결과 가르쳐 줄 수 없다?

직장을 떠난 신고자들은 아직도 팀장의 정확한 징계 수위를 모르고 있습니다. 공무원 복무제도를 담당하고, 5급 이상 공무원의 징계를 의결하는 인사혁신처에 물어봤는데 최종 처분 권한은 각 부처에 있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농식품부는 알려줬을까요? 농식품부도 징계 처분은 당사자에게만 통보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처음 결론내렸던 '경징계'에서 징계 수위가 상향됐는지, 유지됐는지에 관한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 성범죄에 관해서는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징계처분 결과를 통보하도록 한 것을 계기로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6월, 폭행과 갑질 피해자에게도 그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인사처 등에 권고했는데요.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는 겁니다.

결국 신고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전과 후, 어느 것 하나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신고자 A 씨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같이 동조해 주고 가해자도 자중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니까 오히려 괴롭힘은 흐려지고 신고 행위만 남았다"고 답했습니다.

■ 총리까지 나섰던 '직장 내 갑질 근절'…'철밥통' 공무원은 예외?

이 과정에서 농식품부가 먼저 신고자에게 보호 조치를 제안하지 않았다는 점도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신고 이후에도 두 달 동안 휴가 등의 복무 결제 라인이 바뀌지 않았고 팀장이 따로 업무 보고를 지시하기도 해 결국 신고자들이 국장과 감사실에 분리를 요청해야 했습니다. 인사혁신처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에서야 감사실에 요청해 칸막이로 공간 분리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A 씨는 감사실의 감수성과 갑질 근절 의지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물리력을 동반하지 않은 직장 내 괴롭힘이란 진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일상에서 보이지 않게 이뤄지는 것이라 정신적인 학대라고 생각하고 이 문제를 바라봤다면 결과가 조금은 바뀌지 않았겠냐는 겁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보다 앞서 정부는 2018년부터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낙연 당시 총리는 "우리 사회의 못난 갑질은 이제 세계적 수치"라는 발언을 시작으로 "공공분야부터 갑질하는 사람의 이름과 행위와 소속기관을 공개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온 정부가 팔 걷어붙였던 갑질 근절, 특히 '철밥통' 공무원 갑질 징계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걸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