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취재후] 트럭 미끄러져 초등생 중태 빠졌는데…아빠의 시간과 경찰의 시간은 달랐다
입력 2020.04.29 (14:52) 수정 2020.04.29 (14:53) 취재후
지난 주말 KBS에 제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비탈길에 세워 둔 이사용 대형 사다리차에 깔려 사망위험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고가 난 지 보름이 지났는데도 경찰은 운전자를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아이와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경찰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아이의 시간. …생사 고비는 넘겼다지만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단지에 사는 3남매의 막내, 이휘성 군은 올해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입니다. 키 163cm에 몸무게 70kg 정도로 또래보다 건장한 아이입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데 최근엔 스킨스쿠버에도 흥미를 들였습니다. 덩치는 크지만 성격은 순한 그런 아이여서 누구에게 욕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말도 착하게 하는 휘성이. 아빠는 그런 모습이 예뻐서 자주 칭찬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휘성이가 하는 예쁜 말을 아빠는 들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고가 난 건 지난 10일 정오 무렵으로 아파트 단지의 출입문 경사로 쪽에 세워져 있던 3.5톤짜리 이삿짐 사다리차가 휘성이를 덮쳤습니다. 사다리차 운전자는 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세워두고 떠났는데, 이 사다리차가 몇 분 뒤 구르면서 단지 바깥의 횡단보도를 건너던 휘성이를 그대로 친 겁니다.


목격자 신고로 소방이 출동해 사다리차에 낀 휘성이를 구조했지만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대학병원에 옮겨진 휘성이는 사고 당일 2,500mL가 넘는 수혈과 응급수술을 받았는데, 간 및 신장 파열, 골절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름을 중환자실에서 보냈고 생명의 고비가 자주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져 한고비는 넘겼다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섬망 증상'이라고 하는 큰 수술 후의 후유증까지 나타나 환각처럼 발작을 일으키고 '아빠', '엄마'라는 말 외에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연관기사] 트럭 미끄러져 초등생 중태…"운전자 수사해주세요" 탄원 (2020.04.28. KBS1TV 뉴스9)
■ 아빠의 시간. …여관방에서 뜬 눈으로 기도하는 나날

'그날' 아빠는 지방에서 외근 중이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나선 잠시 멍했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지방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 서울로 올라왔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휘성이의 혈압은 20㎜Hg까지 떨어진 상태였고 의료진 10여 명이 붙어 응급수술을 했습니다. 의료 수술 동의서를 쓸 틈도 없이 긴박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나마 체격이 있어 목숨을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휘성이의 사고 이후 가족의 삶은 180도 변했습니다. 아이는 중환자실에 있는데 부모가 집 침대에서 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아빠는 병원과 가까운 여관방을 빌렸습니다. 좁은 방에서 기도하면서 선잠에 듭니다. 하지만 잠이 올 리 없고 2~3시간 뒤면 깨서 또 기도했습니다. 아침이 밝으면 다시 병원으로 가 의사를 만나 상담을 하고 수술일정을 잡고 아이를 지켜봅니다. 아빠는 그렇게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며 버텨내고 있습니다.


■ 경찰의 시간. …"다 계획이 있는 겁니다. 시간이 걸리죠"

이렇게 아이 병원 치료만으로도 힘겨운 아빠는 사고 보름 뒤 언론사 문을 두드려야 했습니다. 아빠는 "설마 이 정도로 경찰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다시 사고 경위로 돌아가 봅니다. 경사진 도로에 주정차할 땐 고임목 설치 또는 조향장치를 도로의 가장자리 방향으로 돌려놓는 등의 사고 발생을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해야 합니다. 핸드브레이크를 거는 것 역시 기본입니다. 사고를 낸 운전자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고 처벌을 하려면 이런 부분이 파악돼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휘성이 아빠는 경찰이 이런 기초적인 조사조차 제대로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휘성이 아빠는 직접 운전자에게 전화해 조사를 받았는지 물었고, '경찰 조사관이 천천히 조사해도 된다고 했다'는 얘기를 운전자에게서 들었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 경찰은 사고가 난 지 보름이 지나도록 운전자에 대한 대면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빠는 경찰과 불편한 상황이 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따져 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 계획에 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경찰의 소극적인 자세에 휘성이 아빠는 명백한 피해자임에도 수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휘성이 아빠는 "무슨 계획이 20일이 가까이 되도록 가해자도, 가해 차량도, 출동한 소방대원에 대한 조사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계획이 있는거냐"라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아빠가 언론사에 제보하고, 언론사의 취재가 시작된 뒤에야 경찰은 운전자를 불러 조사했습니다.

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남양주경찰서 교통조사계 관계자는 "나름대로 수사가 다 되고 있다, 진행이 다 되고 있는데 검토할 기록들이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린다"라고 취재진에게 해명했습니다.


■ 의사 대신 변호사 만나러 가는 아빠…그리고 후속 보도를 묻는 경찰

아이 아빠는 민사에 관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운전자에 대한 신속 정확한 조사와 그에 따른 합당한 형사처분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수사기관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도 아이 아빠는 제대로 이뤄질지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병원에 다시 가는지를 묻자 서초동에 변호사를 만나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하는지 믿을 수 없어 변호사를 알아보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떠나는 한 손에는 사고 당시 아이가 입었던 옷을 병원에서 건네받은 큰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어제(28일) 보도가 나간 뒤 기자에게는 오늘(29일) 이른 아침 경찰로부터 2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 통은 경찰 측 입장을 추가로 보도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거였고, 다른 한 통은 추후 후속 보도가 있는지를 묻는 전화였습니다. 당연히 물을 수 있지만, 안타까웠습니다. 사고 조사가 왜 지연됐는지, 어떻게 개선할지 보다는 보도 여부를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시간과 경찰의 시간은 여전히 다르게 흐르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 [취재후] 트럭 미끄러져 초등생 중태 빠졌는데…아빠의 시간과 경찰의 시간은 달랐다
    • 입력 2020-04-29 14:52:53
    • 수정2020-04-29 14:53:13
    취재후
지난 주말 KBS에 제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비탈길에 세워 둔 이사용 대형 사다리차에 깔려 사망위험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고가 난 지 보름이 지났는데도 경찰은 운전자를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아이와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경찰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아이의 시간. …생사 고비는 넘겼다지만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단지에 사는 3남매의 막내, 이휘성 군은 올해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입니다. 키 163cm에 몸무게 70kg 정도로 또래보다 건장한 아이입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데 최근엔 스킨스쿠버에도 흥미를 들였습니다. 덩치는 크지만 성격은 순한 그런 아이여서 누구에게 욕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말도 착하게 하는 휘성이. 아빠는 그런 모습이 예뻐서 자주 칭찬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휘성이가 하는 예쁜 말을 아빠는 들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고가 난 건 지난 10일 정오 무렵으로 아파트 단지의 출입문 경사로 쪽에 세워져 있던 3.5톤짜리 이삿짐 사다리차가 휘성이를 덮쳤습니다. 사다리차 운전자는 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세워두고 떠났는데, 이 사다리차가 몇 분 뒤 구르면서 단지 바깥의 횡단보도를 건너던 휘성이를 그대로 친 겁니다.


목격자 신고로 소방이 출동해 사다리차에 낀 휘성이를 구조했지만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대학병원에 옮겨진 휘성이는 사고 당일 2,500mL가 넘는 수혈과 응급수술을 받았는데, 간 및 신장 파열, 골절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름을 중환자실에서 보냈고 생명의 고비가 자주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져 한고비는 넘겼다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섬망 증상'이라고 하는 큰 수술 후의 후유증까지 나타나 환각처럼 발작을 일으키고 '아빠', '엄마'라는 말 외에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연관기사] 트럭 미끄러져 초등생 중태…"운전자 수사해주세요" 탄원 (2020.04.28. KBS1TV 뉴스9)
■ 아빠의 시간. …여관방에서 뜬 눈으로 기도하는 나날

'그날' 아빠는 지방에서 외근 중이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나선 잠시 멍했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지방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 서울로 올라왔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휘성이의 혈압은 20㎜Hg까지 떨어진 상태였고 의료진 10여 명이 붙어 응급수술을 했습니다. 의료 수술 동의서를 쓸 틈도 없이 긴박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나마 체격이 있어 목숨을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휘성이의 사고 이후 가족의 삶은 180도 변했습니다. 아이는 중환자실에 있는데 부모가 집 침대에서 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아빠는 병원과 가까운 여관방을 빌렸습니다. 좁은 방에서 기도하면서 선잠에 듭니다. 하지만 잠이 올 리 없고 2~3시간 뒤면 깨서 또 기도했습니다. 아침이 밝으면 다시 병원으로 가 의사를 만나 상담을 하고 수술일정을 잡고 아이를 지켜봅니다. 아빠는 그렇게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며 버텨내고 있습니다.


■ 경찰의 시간. …"다 계획이 있는 겁니다. 시간이 걸리죠"

이렇게 아이 병원 치료만으로도 힘겨운 아빠는 사고 보름 뒤 언론사 문을 두드려야 했습니다. 아빠는 "설마 이 정도로 경찰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다시 사고 경위로 돌아가 봅니다. 경사진 도로에 주정차할 땐 고임목 설치 또는 조향장치를 도로의 가장자리 방향으로 돌려놓는 등의 사고 발생을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해야 합니다. 핸드브레이크를 거는 것 역시 기본입니다. 사고를 낸 운전자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고 처벌을 하려면 이런 부분이 파악돼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휘성이 아빠는 경찰이 이런 기초적인 조사조차 제대로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휘성이 아빠는 직접 운전자에게 전화해 조사를 받았는지 물었고, '경찰 조사관이 천천히 조사해도 된다고 했다'는 얘기를 운전자에게서 들었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 경찰은 사고가 난 지 보름이 지나도록 운전자에 대한 대면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빠는 경찰과 불편한 상황이 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따져 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 계획에 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경찰의 소극적인 자세에 휘성이 아빠는 명백한 피해자임에도 수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휘성이 아빠는 "무슨 계획이 20일이 가까이 되도록 가해자도, 가해 차량도, 출동한 소방대원에 대한 조사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계획이 있는거냐"라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아빠가 언론사에 제보하고, 언론사의 취재가 시작된 뒤에야 경찰은 운전자를 불러 조사했습니다.

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남양주경찰서 교통조사계 관계자는 "나름대로 수사가 다 되고 있다, 진행이 다 되고 있는데 검토할 기록들이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린다"라고 취재진에게 해명했습니다.


■ 의사 대신 변호사 만나러 가는 아빠…그리고 후속 보도를 묻는 경찰

아이 아빠는 민사에 관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운전자에 대한 신속 정확한 조사와 그에 따른 합당한 형사처분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수사기관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도 아이 아빠는 제대로 이뤄질지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병원에 다시 가는지를 묻자 서초동에 변호사를 만나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하는지 믿을 수 없어 변호사를 알아보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떠나는 한 손에는 사고 당시 아이가 입었던 옷을 병원에서 건네받은 큰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어제(28일) 보도가 나간 뒤 기자에게는 오늘(29일) 이른 아침 경찰로부터 2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 통은 경찰 측 입장을 추가로 보도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거였고, 다른 한 통은 추후 후속 보도가 있는지를 묻는 전화였습니다. 당연히 물을 수 있지만, 안타까웠습니다. 사고 조사가 왜 지연됐는지, 어떻게 개선할지 보다는 보도 여부를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시간과 경찰의 시간은 여전히 다르게 흐르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