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어린이집’ 원장 3년 전 이미 잠복결핵…폐원 수순

입력 2020.07.07 (09:52) 수정 2020.07.0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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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KBS는 경기도 안양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결핵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한 달간 어린이집에 출근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역학 조사 결과, 이 어린이집 원아 4명이 잠복 결핵 '양성' 반응을 보였습니다. 양성 반응을 보인 아이 중엔 생후 23개월 된 유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결핵 의심에도 어린이집 운영한 원장…원아 4명 '양성'(2020.06.26. KBS 1TV 뉴스9)

보도 이후, 원장은 학부모들에게 다음 달까지만 어린이집을 운영하겠다고 공지했습니다. 종합병원 외래 진료지를 공개하며, 병원에서 결핵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정상 출근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원장의 종합병원 외래진료 내용을 분석해 사실관계를 따져봤습니다.


■세 차례 결핵 의심 소견…"잠복 결핵 치료 안 받아"

5월 7일, 원장은 안양의 한 종합병원 호흡기 내과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외래기록지엔 환자에게 '2주 전부터 열이 있고, 과거 잠복 결핵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원장은 학부모들과 보건당국에 2017년 잠복 결핵 진단을 받은 게 맞지만, 당시 건강 문제로 잠복 결핵 치료를 따로 받지는 않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날 담당 의사는 '결핵'이거나 '폐렴'일 수 있으니 객담검사와 CT 검사를 병행할 것을 권합니다. 일주일가량 5월 13일, CT 검사 결과 역시 '높은 확률로 결핵일 수 있다'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원장은 결핵 치료를 받지 않고, 항생제만 처방받은 뒤 어린이집에 정상 출근했습니다.

2주 뒤, 원장은 여전히 발열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을 한 차례 더 방문합니다. 내시경에선 결핵균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증상이 여전해 기관지 세포 세척액 검사를 추가로 받게 됐습니다. 최초 병원 방문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6월 10일, 원장은 결국 활동성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모든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원장은 계속해서 어린이집에 출근하며 '0살 반 담임'을 맡았습니다.

잠복결핵은 몸 안에 결핵이 있지만, 활동성 결핵으로는 발전하지 않은 경우를 말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잠복결핵 감염자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핵예방법에선 어린이집이나 학교 종사자가 잠복 결핵 진단을 받았을 경우, 전파 위험이 높아 치료를 권고한다고 명시돼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관리·감독도 '공백'

외래기록지를 분석해 준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는 "어린이집 종사자라면 잠복 결핵 치료를 반드시 할 것을 권하는데, 이 환자의 경우 초기 치료를 받은 기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병원에서 결핵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소견을 낸 걸로 보이는데 정상 출근을 했던 점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보건당국의 관리 감독에도 구멍이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종사자는 1년에 한 번 의무적으로 결핵 검사 결과가 포함된 보건증을 보건소에 제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관할 보건소에 원장의 보건증이 마지막으로 접수된 건, 지난해 1월 중순. 6개월의 공백 동안 원장은 결국 활동성 결핵에 걸렸고, 그 상태로 어린이집에 나갔습니다.

안양시청과 보건소 관계자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보건소 민원 업무가 잠시 중단돼 보건증 제출이 늦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원장은 이미 3년 전 잠복 결핵 양성 반응이 나왔고, 관할 보건소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던 상황. 적어도 감염병 고위험군에 속한 어린이집 종사자만큼은 세심히 살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에 보건소 관계자는 "잠복 결핵인 어린이집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권고 차원의 문자를 보내고 있다"면서 "특히 잠복 결핵 미치료자들에게는 예방 치료를 했으면 좋겠다고 강력히 권고하는데, 해당 원장의 경우 다른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결핵 치료를 미룬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원장이 학부모들에게 전한 공지.원장이 학부모들에게 전한 공지.

■어린이집 폐원 수순…학부모들 "집단 소송 검토"

결핵균 양성반응이 나온 4명의 원아는 현재도 매일 결핵 치료제를 먹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장기적으로 치료제를 먹으면 간 독성 등 부작용이 올 수 있습니다. 현재 결핵 치료제를 먹고 있는 3살 남아의 엄마는 "이미 잠복 결핵 진단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결핵인 걸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린이집에 나왔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지자체와 보건소의 일 처리에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습니다.

천은미 교수는 "결핵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질환이기 때문에 특히 영유아인 경우에는 전염이 더 잘될 수 있다"며 "현재 4명에게서 잠복 결핵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어린이집에서 근접하게 계속 생활을 했다는 걸 고려할 때 더 많은 아이에게서 결핵균이 발견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녔던 원아 전원은 오는 8월, 2차 검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검토 중입니다. 원장은 현재 학부모들과 취재진의 연락을 모두 피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폐원을 예고한 이 어린이집에는 이제 1명의 원아만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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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핵 어린이집’ 원장 3년 전 이미 잠복결핵…폐원 수순
    • 입력 2020-07-07 09:52:48
    • 수정2020-07-07 16:41:50
    취재K
지난달, KBS는 경기도 안양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결핵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한 달간 어린이집에 출근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역학 조사 결과, 이 어린이집 원아 4명이 잠복 결핵 '양성' 반응을 보였습니다. 양성 반응을 보인 아이 중엔 생후 23개월 된 유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결핵 의심에도 어린이집 운영한 원장…원아 4명 '양성'(2020.06.26. KBS 1TV 뉴스9)

보도 이후, 원장은 학부모들에게 다음 달까지만 어린이집을 운영하겠다고 공지했습니다. 종합병원 외래 진료지를 공개하며, 병원에서 결핵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정상 출근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원장의 종합병원 외래진료 내용을 분석해 사실관계를 따져봤습니다.


■세 차례 결핵 의심 소견…"잠복 결핵 치료 안 받아"

5월 7일, 원장은 안양의 한 종합병원 호흡기 내과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외래기록지엔 환자에게 '2주 전부터 열이 있고, 과거 잠복 결핵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원장은 학부모들과 보건당국에 2017년 잠복 결핵 진단을 받은 게 맞지만, 당시 건강 문제로 잠복 결핵 치료를 따로 받지는 않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날 담당 의사는 '결핵'이거나 '폐렴'일 수 있으니 객담검사와 CT 검사를 병행할 것을 권합니다. 일주일가량 5월 13일, CT 검사 결과 역시 '높은 확률로 결핵일 수 있다'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원장은 결핵 치료를 받지 않고, 항생제만 처방받은 뒤 어린이집에 정상 출근했습니다.

2주 뒤, 원장은 여전히 발열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을 한 차례 더 방문합니다. 내시경에선 결핵균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증상이 여전해 기관지 세포 세척액 검사를 추가로 받게 됐습니다. 최초 병원 방문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6월 10일, 원장은 결국 활동성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모든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원장은 계속해서 어린이집에 출근하며 '0살 반 담임'을 맡았습니다.

잠복결핵은 몸 안에 결핵이 있지만, 활동성 결핵으로는 발전하지 않은 경우를 말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잠복결핵 감염자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핵예방법에선 어린이집이나 학교 종사자가 잠복 결핵 진단을 받았을 경우, 전파 위험이 높아 치료를 권고한다고 명시돼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관리·감독도 '공백'

외래기록지를 분석해 준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는 "어린이집 종사자라면 잠복 결핵 치료를 반드시 할 것을 권하는데, 이 환자의 경우 초기 치료를 받은 기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병원에서 결핵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소견을 낸 걸로 보이는데 정상 출근을 했던 점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보건당국의 관리 감독에도 구멍이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종사자는 1년에 한 번 의무적으로 결핵 검사 결과가 포함된 보건증을 보건소에 제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관할 보건소에 원장의 보건증이 마지막으로 접수된 건, 지난해 1월 중순. 6개월의 공백 동안 원장은 결국 활동성 결핵에 걸렸고, 그 상태로 어린이집에 나갔습니다.

안양시청과 보건소 관계자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보건소 민원 업무가 잠시 중단돼 보건증 제출이 늦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원장은 이미 3년 전 잠복 결핵 양성 반응이 나왔고, 관할 보건소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던 상황. 적어도 감염병 고위험군에 속한 어린이집 종사자만큼은 세심히 살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에 보건소 관계자는 "잠복 결핵인 어린이집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권고 차원의 문자를 보내고 있다"면서 "특히 잠복 결핵 미치료자들에게는 예방 치료를 했으면 좋겠다고 강력히 권고하는데, 해당 원장의 경우 다른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결핵 치료를 미룬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원장이 학부모들에게 전한 공지.
■어린이집 폐원 수순…학부모들 "집단 소송 검토"

결핵균 양성반응이 나온 4명의 원아는 현재도 매일 결핵 치료제를 먹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장기적으로 치료제를 먹으면 간 독성 등 부작용이 올 수 있습니다. 현재 결핵 치료제를 먹고 있는 3살 남아의 엄마는 "이미 잠복 결핵 진단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결핵인 걸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린이집에 나왔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지자체와 보건소의 일 처리에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습니다.

천은미 교수는 "결핵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질환이기 때문에 특히 영유아인 경우에는 전염이 더 잘될 수 있다"며 "현재 4명에게서 잠복 결핵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어린이집에서 근접하게 계속 생활을 했다는 걸 고려할 때 더 많은 아이에게서 결핵균이 발견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녔던 원아 전원은 오는 8월, 2차 검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검토 중입니다. 원장은 현재 학부모들과 취재진의 연락을 모두 피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폐원을 예고한 이 어린이집에는 이제 1명의 원아만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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