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정상이 본다면? 할 말 많을 영화 ‘강철비2’

입력 2020.07.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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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남북미 세 정상이 역사적인 첫 회동을 한 건 불과 일 년 전입니다. 2019년 6월 30일 남북미 정상은 판문점에서 만났습니다. 정전 66년 만에 이뤄진 '사건'이었죠.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다시 극적으로 판문점 북미 회담, 남북미 회동까지 성사되면서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를 찾은 듯 보였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북미, 남북 관계는 또다시 안갯속입니다. 영화 '강철비2'는 이런 한반도 상황을 정공법으로 들여다본 문제작입니다.

■ 북미 "못 믿겠다" 남한 대통령 "싸우지 좀 말고..."

2019년 6월 30일엔 남북미 정상들의 '회담'이 아닌 악수를 하고 잠시 대화를 나눈 '회동'에 그쳤지만, 영화 속에선 회담을 합니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 장면, 어땠을까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경제 발전을 돕는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데, 협상의 '디테일'을 놓고 북미는 서로 싸우고, 남한 대통령은 이 둘을 중재하느라 바쁩니다. 한때 북한이 비아냥댔던 '오지랖 넓은 중재자' 역할이 영화 속에서도 반복되는 셈이죠.

이 고비만 넘기면 '평화 협정' 체결로 이어지나 싶었는데, 이때 북한의 강경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세 정상을 납치해 핵잠수함에 가둬버립니다. 간이 화장실 한 곳만 있는 비좁은 공간에 갇힌 세 정상은 서로의 방귀 냄새까지 맡아가며 티격태격하면서도 허심탄회한, 진짜 회담을 시작합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북미 정상은 서로 '못 믿겠다' 싸우고, 남한 대통령은 싸움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 미·중 '한반도 갈등' 이용…北강경파 "개혁, 개방 안돼"

세 정상이 갇혀 있는 동안 북한의 강경파 호위총국장은 끝내 핵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합니다. 북한 강경파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죠. 총국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개혁 개방 잘못하면 나라가 망하고 남조선에 흡수되는 겁니다."

미, 중, 일의 속내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 내 정치적 이득을 위해 한반도 갈등을 이용하려 하고, 일본의 우익 정권은 호시탐탐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 협정을 논의하다 갇혀버린 남북미 정상은 어떻게 해서든 일단 핵전쟁을 막아야 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국제 정세를 담아내면서도, 영화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습니다. 세트 제작에만 20억 원을 들이고 전문가들의 꼼꼼한 자문을 거쳐 만든 후반부 잠수함 전투 장면은 복잡한 국제 정세를 다 잊고 그냥 봐도 긴장감 넘치고, 흥미롭습니다. 자타공인 '밀리터리 덕후'인 양우석 감독이 "잠수함 영화로서 최대치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작정하고 제대로 구현해낸 완성도 높은 장면이죠.


■ 40대 정우성이 대통령?!…논쟁 피하지 않은 영화

사실 이 영화는 뜨거운 논쟁을 피하지 않은, 어찌 보면 기꺼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려고 작정하고 만든 작품입니다. 미국 대통령을 대놓고 희화화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매우 날씬(?)하게 그렸으며, 특히 남한 대통령은 40대 잘생긴 배우, 정우성이 맡았습니다. 게다가 늘 주변국을 설득하고, 양보하고, 중재하는 영웅적인 면모가 부각됩니다. 일본의 우익 세력은 절대 악으로 묘사됐으며, 독도 앞에서 벌어지는 심해 전투는 이른바 '국뽕'을 대놓고 자극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현재 남북미가 처해 있는 상황을 축약하거나 대충 건너뛰지 않고 정공법으로 보여주면서, 거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너무 복잡해서 잊고 싶은 한반도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게 하는 묵직한 힘이 있습니다.


정부가 주구장창 말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지만,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흠뻑 빠진 시청자들이 현빈과 손예진의 애틋한 로맨스를 보면서 분단의 현실을 자각하게 되듯이 때때로 문화의 힘은 정치보다 더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용감한' 영화를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일 년 전 판문점에서 만났던 세 정상이 보시면 좋겠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를 보고 가장 할 말이 많을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연관 기사][개봉영화] 남북미 정상이 갇혔다…문제적 상상력 ‘강철비2’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06147

그래픽: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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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미 정상이 본다면? 할 말 많을 영화 ‘강철비2’
    • 입력 2020-07-31 05:00:15
    취재K
지금은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남북미 세 정상이 역사적인 첫 회동을 한 건 불과 일 년 전입니다. 2019년 6월 30일 남북미 정상은 판문점에서 만났습니다. 정전 66년 만에 이뤄진 '사건'이었죠.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다시 극적으로 판문점 북미 회담, 남북미 회동까지 성사되면서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를 찾은 듯 보였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북미, 남북 관계는 또다시 안갯속입니다. 영화 '강철비2'는 이런 한반도 상황을 정공법으로 들여다본 문제작입니다.

■ 북미 "못 믿겠다" 남한 대통령 "싸우지 좀 말고..."

2019년 6월 30일엔 남북미 정상들의 '회담'이 아닌 악수를 하고 잠시 대화를 나눈 '회동'에 그쳤지만, 영화 속에선 회담을 합니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 장면, 어땠을까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경제 발전을 돕는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데, 협상의 '디테일'을 놓고 북미는 서로 싸우고, 남한 대통령은 이 둘을 중재하느라 바쁩니다. 한때 북한이 비아냥댔던 '오지랖 넓은 중재자' 역할이 영화 속에서도 반복되는 셈이죠.

이 고비만 넘기면 '평화 협정' 체결로 이어지나 싶었는데, 이때 북한의 강경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세 정상을 납치해 핵잠수함에 가둬버립니다. 간이 화장실 한 곳만 있는 비좁은 공간에 갇힌 세 정상은 서로의 방귀 냄새까지 맡아가며 티격태격하면서도 허심탄회한, 진짜 회담을 시작합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북미 정상은 서로 '못 믿겠다' 싸우고, 남한 대통령은 싸움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 미·중 '한반도 갈등' 이용…北강경파 "개혁, 개방 안돼"

세 정상이 갇혀 있는 동안 북한의 강경파 호위총국장은 끝내 핵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합니다. 북한 강경파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죠. 총국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개혁 개방 잘못하면 나라가 망하고 남조선에 흡수되는 겁니다."

미, 중, 일의 속내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 내 정치적 이득을 위해 한반도 갈등을 이용하려 하고, 일본의 우익 정권은 호시탐탐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 협정을 논의하다 갇혀버린 남북미 정상은 어떻게 해서든 일단 핵전쟁을 막아야 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국제 정세를 담아내면서도, 영화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습니다. 세트 제작에만 20억 원을 들이고 전문가들의 꼼꼼한 자문을 거쳐 만든 후반부 잠수함 전투 장면은 복잡한 국제 정세를 다 잊고 그냥 봐도 긴장감 넘치고, 흥미롭습니다. 자타공인 '밀리터리 덕후'인 양우석 감독이 "잠수함 영화로서 최대치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작정하고 제대로 구현해낸 완성도 높은 장면이죠.


■ 40대 정우성이 대통령?!…논쟁 피하지 않은 영화

사실 이 영화는 뜨거운 논쟁을 피하지 않은, 어찌 보면 기꺼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려고 작정하고 만든 작품입니다. 미국 대통령을 대놓고 희화화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매우 날씬(?)하게 그렸으며, 특히 남한 대통령은 40대 잘생긴 배우, 정우성이 맡았습니다. 게다가 늘 주변국을 설득하고, 양보하고, 중재하는 영웅적인 면모가 부각됩니다. 일본의 우익 세력은 절대 악으로 묘사됐으며, 독도 앞에서 벌어지는 심해 전투는 이른바 '국뽕'을 대놓고 자극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현재 남북미가 처해 있는 상황을 축약하거나 대충 건너뛰지 않고 정공법으로 보여주면서, 거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너무 복잡해서 잊고 싶은 한반도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게 하는 묵직한 힘이 있습니다.


정부가 주구장창 말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지만,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흠뻑 빠진 시청자들이 현빈과 손예진의 애틋한 로맨스를 보면서 분단의 현실을 자각하게 되듯이 때때로 문화의 힘은 정치보다 더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용감한' 영화를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일 년 전 판문점에서 만났던 세 정상이 보시면 좋겠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를 보고 가장 할 말이 많을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연관 기사][개봉영화] 남북미 정상이 갇혔다…문제적 상상력 ‘강철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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