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넘친 ‘공짜폰 지시 증거’, 방통위는 외면했다

입력 2020.09.1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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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단통법, 6년의 黑역사⑤] 이통사들을 위한 면죄부

[편집자 주 : 누구는 공짜폰 사고, 누구는 호갱이 되는 소비자 차별을 바로잡겠다며 지난 2014년 제정된 법 바로 '단말기유통법'(단통법)입니다. 오는 10월 시행 6주년을 맞습니다. 단통법은 그러나, 시행 이후 그 취지가 한 번도 달성된 적이 없습니다. 이통사는 오히려 불법 보조금을 맘 놓고 뿌려댔습니다. 가계 통신비 내리겠다는 목표에서도 멀어져만 갔습니다. 되레 담합을 독려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간 소비자들은 어떤 피해를 봤을까. 이통사들은 단통법 위에 군림하며 덕을 본 건 아닐까. 단통법의 실패가 방치된 이유는 무엇일까. KBS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단통법의 '흑역사'를 추적 취재했습니다.]


■ '불법보조금' 증거 확보하고도 형사고발 '포기'…이통사 대범함 키운 방통위

2014년 10월 단통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사들이 불법보조금을 지시·유도했다 적발된 사례는 올해까지 모두 9건입니다. 부과된 과징금 액수만 해도 1,500억 원에 육박합니다.


이통사가 이렇게 억대 과징금을 맞으면서도 계속해서 불법보조금을 조장하는 이유, 그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취재진은 방통위 주무부서인 단말기유통관리과에서 이통사들의 단통법 위반에 대한 제재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최근 작성한 심의·의결서(안)를 입수했습니다. 조사를 맡은 과에서 작성해 방통위원들에게 보고하면, 방통위원들이 회의를 거쳐 제재안을 결정하는 절차로 이뤄집니다.


방통위 조사관들이 확인한 이통사의 불법보조금 지시·유도 행위는 꽤 구체적이고 위법성도 상당해 보였습니다.

SKT 본사 영업팀이 한 대리점에 보냈다는 문자도 위법행위의 증거로 포함돼있었는데, 〈〈스탠다드 요금제 이상에 5~ 40만원)은 Net가가 "0원"수준이므로 지시한 쿼터량(평일 쿼터 3건, 주말 쿼터 5건)을 100% 소진하도록 해당점 밀착 관리바랍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추가 장려금으로 단말기 값이 '0원'이 되니, 장려금을 100% 소진하라 즉, 장려금을 더 줄테니 ' 공짜폰'으로 팔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 같은 불법보조금 영업을 하는 유통점, 이른바 '공짜폰 성지'는 꽃 이름 등을 붙여 은밀하게 관리했습니다.

KT는 교통비 정책(고객에게 교통비 조로 추가 보조금을 주는 행위) 등의 명목으로 특정 가입유형이나 요금제에 따라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40만 원의 차별적 장려금을 주도록 지시하고, 일일 실적을 독려했다는 내용도 조사 내역에 포함돼 있습니다.

LGU+ 역시 일부 판매점을 선별해 6만 원 이상 고가요금제 가입자를 60% 이상 모집하는 조건으로 차별적 장려금을 지시하고, 특정 판매점에 실적을 몰아주도록 관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모두 단통법에서 위법으로 규정하는 행위들입니다. 어길 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벌칙조항도 있습니다.


■"진일보한 증거 확보했지만 중대한 위반 아냐"…방통위가 놓아버린 '소비자 보호'

이통사 본사가 불법 보조금을 주도한 증거가 확인된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입니다. 방통위 조사처 스스로도 구체적으로 'Net가 0원', '쿼터량(판매 할당량)' 등을 언급한 이통사 본사의 문자는 "그동안의 조사보다 진일보한 증거"라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방통위는 어쩐 일인지 이통사들을 형사고발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7월 8일 제재안이 논의된 방통위 회의 속기록을 봐도 형사고발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김창룡 상임위원 : ...그리고 형사고발은 사무처 보고처럼 <제1안>으로 가는 것이 좋겠고...
안형환 상임위원 : ...다음에 형사고발도 과거 유사 사례 대법원에서 무죄 판례가 나온 경우도 있고, 또 상황이 5G보급을 위한 정책도 맞물린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형사고발을 제외하는 안에 대해서도 동의를 합니다...
표철수 부위원장 : ...형사고발하지 않는 것도 당연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서 동의합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방통위 김용일 전 단말기유통조사담당관은 형사고발을 의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사처는 형사고발을 하는 안과 하지 않는 안을 모두 상정했고, 결정은 방통위원들이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심의·의결서(안)에는 조사처가 이미 형사고발을 하지 않는 안을 유력한 1안으로 작성해 상임위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과거 대법원 판례가 그 이유였습니다.

2014년 단통법 시행 직후, 애플사의 아이폰6 판매를 늘리기 위해 이통사들이 고객들에게 차별적 지원금을 준 이른바 '아이폰6 대란' 당시, 방통위는 단통법 위반 혐의로 이통3사와 임원들을 고발했지만, 1, 2심은 물론 대법원까지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방통위는 이통사가 불법보조금을 직접 지시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당시 대법원 판례를 증거가 충분히 확보된 이번 조사에도 적용했습니다. 또, 적발된 행위에 대해서도 '위반 행위가 매우 중대에 해당할 정도로 현저하지 않고, 다수 이용자에게 심대한 피해를 줄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불법이지만 크게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방통위의 판단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방통위가 스스로 이통사 '불법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잡고도 처벌이 어려워 보이니 고발하지 말자는 안건을 올렸고, 방통위원들도 충분한 논의 없이 형사고발을 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 '적발→사과→적발' 무한 반복에도 '이통사 봐주기'

형사고발만 면제한 게 아닙니다. 방통위의 규제에도 같은 위반행위가 3회 이상 반복되거나, 시정명령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판단이 들면 최대 3개월까지 신규모집을 금지할 수 있습니다.

신규모집금지는 어쩌면 이통사들에는 수익과 직결되는, 형사고발보다 더욱 치명적일 수 있는 조치입니다.

그러나 방통위는 이번에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판매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고, 이통사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진 판매점들에게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는 이유로 신규모집금지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초 934억 원으로 산정된 과징금도 45%나 깎아주기로 했습니다. 위법행위가 적발될 때마다 이통사들이 입버릇처럼 반복해온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그 이유였습니다.

누구는 싸게 사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소비자 차별을 막고, 차라리 이통사들의 투자와 요금 경쟁을 유도해 이용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자는 취지로 도입된 단통법.

이통사는 법 위반을 반복하고, 이런 이통사에 방통위도 면죄부를 남발하면서 시행 6년 만에 죽은 법이 됐습니다.

취재진은 앞으로 단통법의 탄생 과정에서 이미 예견됐던 문제점과 기형적인 휴대전화 유통시장에 필요한 대안은 무엇인지 끝까지 추적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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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고 넘친 ‘공짜폰 지시 증거’, 방통위는 외면했다
    • 입력 2020-09-10 18:51:27
    취재K
[단통법, 6년의 黑역사⑤] 이통사들을 위한 면죄부
[편집자 주 : 누구는 공짜폰 사고, 누구는 호갱이 되는 소비자 차별을 바로잡겠다며 지난 2014년 제정된 법 바로 '단말기유통법'(단통법)입니다. 오는 10월 시행 6주년을 맞습니다. 단통법은 그러나, 시행 이후 그 취지가 한 번도 달성된 적이 없습니다. 이통사는 오히려 불법 보조금을 맘 놓고 뿌려댔습니다. 가계 통신비 내리겠다는 목표에서도 멀어져만 갔습니다. 되레 담합을 독려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간 소비자들은 어떤 피해를 봤을까. 이통사들은 단통법 위에 군림하며 덕을 본 건 아닐까. 단통법의 실패가 방치된 이유는 무엇일까. KBS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단통법의 '흑역사'를 추적 취재했습니다.]


■ '불법보조금' 증거 확보하고도 형사고발 '포기'…이통사 대범함 키운 방통위

2014년 10월 단통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사들이 불법보조금을 지시·유도했다 적발된 사례는 올해까지 모두 9건입니다. 부과된 과징금 액수만 해도 1,500억 원에 육박합니다.


이통사가 이렇게 억대 과징금을 맞으면서도 계속해서 불법보조금을 조장하는 이유, 그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취재진은 방통위 주무부서인 단말기유통관리과에서 이통사들의 단통법 위반에 대한 제재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최근 작성한 심의·의결서(안)를 입수했습니다. 조사를 맡은 과에서 작성해 방통위원들에게 보고하면, 방통위원들이 회의를 거쳐 제재안을 결정하는 절차로 이뤄집니다.


방통위 조사관들이 확인한 이통사의 불법보조금 지시·유도 행위는 꽤 구체적이고 위법성도 상당해 보였습니다.

SKT 본사 영업팀이 한 대리점에 보냈다는 문자도 위법행위의 증거로 포함돼있었는데, 〈〈스탠다드 요금제 이상에 5~ 40만원)은 Net가가 "0원"수준이므로 지시한 쿼터량(평일 쿼터 3건, 주말 쿼터 5건)을 100% 소진하도록 해당점 밀착 관리바랍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추가 장려금으로 단말기 값이 '0원'이 되니, 장려금을 100% 소진하라 즉, 장려금을 더 줄테니 ' 공짜폰'으로 팔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 같은 불법보조금 영업을 하는 유통점, 이른바 '공짜폰 성지'는 꽃 이름 등을 붙여 은밀하게 관리했습니다.

KT는 교통비 정책(고객에게 교통비 조로 추가 보조금을 주는 행위) 등의 명목으로 특정 가입유형이나 요금제에 따라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40만 원의 차별적 장려금을 주도록 지시하고, 일일 실적을 독려했다는 내용도 조사 내역에 포함돼 있습니다.

LGU+ 역시 일부 판매점을 선별해 6만 원 이상 고가요금제 가입자를 60% 이상 모집하는 조건으로 차별적 장려금을 지시하고, 특정 판매점에 실적을 몰아주도록 관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모두 단통법에서 위법으로 규정하는 행위들입니다. 어길 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벌칙조항도 있습니다.


■"진일보한 증거 확보했지만 중대한 위반 아냐"…방통위가 놓아버린 '소비자 보호'

이통사 본사가 불법 보조금을 주도한 증거가 확인된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입니다. 방통위 조사처 스스로도 구체적으로 'Net가 0원', '쿼터량(판매 할당량)' 등을 언급한 이통사 본사의 문자는 "그동안의 조사보다 진일보한 증거"라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방통위는 어쩐 일인지 이통사들을 형사고발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7월 8일 제재안이 논의된 방통위 회의 속기록을 봐도 형사고발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김창룡 상임위원 : ...그리고 형사고발은 사무처 보고처럼 <제1안>으로 가는 것이 좋겠고...
안형환 상임위원 : ...다음에 형사고발도 과거 유사 사례 대법원에서 무죄 판례가 나온 경우도 있고, 또 상황이 5G보급을 위한 정책도 맞물린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형사고발을 제외하는 안에 대해서도 동의를 합니다...
표철수 부위원장 : ...형사고발하지 않는 것도 당연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서 동의합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방통위 김용일 전 단말기유통조사담당관은 형사고발을 의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사처는 형사고발을 하는 안과 하지 않는 안을 모두 상정했고, 결정은 방통위원들이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심의·의결서(안)에는 조사처가 이미 형사고발을 하지 않는 안을 유력한 1안으로 작성해 상임위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과거 대법원 판례가 그 이유였습니다.

2014년 단통법 시행 직후, 애플사의 아이폰6 판매를 늘리기 위해 이통사들이 고객들에게 차별적 지원금을 준 이른바 '아이폰6 대란' 당시, 방통위는 단통법 위반 혐의로 이통3사와 임원들을 고발했지만, 1, 2심은 물론 대법원까지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방통위는 이통사가 불법보조금을 직접 지시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당시 대법원 판례를 증거가 충분히 확보된 이번 조사에도 적용했습니다. 또, 적발된 행위에 대해서도 '위반 행위가 매우 중대에 해당할 정도로 현저하지 않고, 다수 이용자에게 심대한 피해를 줄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불법이지만 크게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방통위의 판단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방통위가 스스로 이통사 '불법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잡고도 처벌이 어려워 보이니 고발하지 말자는 안건을 올렸고, 방통위원들도 충분한 논의 없이 형사고발을 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 '적발→사과→적발' 무한 반복에도 '이통사 봐주기'

형사고발만 면제한 게 아닙니다. 방통위의 규제에도 같은 위반행위가 3회 이상 반복되거나, 시정명령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판단이 들면 최대 3개월까지 신규모집을 금지할 수 있습니다.

신규모집금지는 어쩌면 이통사들에는 수익과 직결되는, 형사고발보다 더욱 치명적일 수 있는 조치입니다.

그러나 방통위는 이번에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판매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고, 이통사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진 판매점들에게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는 이유로 신규모집금지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초 934억 원으로 산정된 과징금도 45%나 깎아주기로 했습니다. 위법행위가 적발될 때마다 이통사들이 입버릇처럼 반복해온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그 이유였습니다.

누구는 싸게 사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소비자 차별을 막고, 차라리 이통사들의 투자와 요금 경쟁을 유도해 이용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자는 취지로 도입된 단통법.

이통사는 법 위반을 반복하고, 이런 이통사에 방통위도 면죄부를 남발하면서 시행 6년 만에 죽은 법이 됐습니다.

취재진은 앞으로 단통법의 탄생 과정에서 이미 예견됐던 문제점과 기형적인 휴대전화 유통시장에 필요한 대안은 무엇인지 끝까지 추적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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