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분 산 ‘장애인 팝니다’…그 안에 숨긴 불편함

입력 2020.11.0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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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온라인으로 중고 거래를 하는 '당근마켓'에 충격적인 글이 올라왔습니다. 제목은 '장애인 팝니다', '가격은 무료'에 한 남성의 사진이 첨부돼있었습니다. 부적절한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요, 게시자는 이를 제지하는 한 네티즌을 향해 자신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받아치기까지 합니다. 대화 내용이 알려지자 온라인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접속하는 위치를 기반으로 주변 사람들과 사고팔 물건의 사진과 가격을 제시해 소통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딱히 필요는 없지만, 아직 제 기능을 하는 물건을 올리면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잠재적 구매자가 돼 판매자와 연결이 되는 구조입니다. 앞서 이 앱을 통해 '신생아를 판다'는 글이 올라와 한 차례 공분이 일기도 했었죠.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이 중고 거래 대상으로 가볍게 여겨지는 충격적인 일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이 나섰습니다. 전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누가 '장애인을 판다'는 글을 올렸는지, 그 게시자를 잡기 위해 해당 사이트 운영사 측과 공조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게시자 특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게시글을 본 네티즌이 항의한 공간은 일대일 대화가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에 모욕죄가 성립하긴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공격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인데요. 다만 올라와 있는 사진 속 남성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게시자 말대로 만약 법의 처벌을 면하는 '촉법소년'이라면 보호처분만 받게 됩니다. 촉법소년은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으로, 법을 어겼지만 형사 책임 능력이 인정되지 않아 형벌 대신 감호위탁이나 사회봉사, 소년원 송치 등의 처분을 받습니다. 아직 자신의 언행을 통제할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를 법으로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 거죠. 말 그대로 '미성숙함'을 인정해주는 겁니다.

하지만 이 게시글, 한순간의 실수거나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요,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배상훈 프로파일러(전 범죄심리분석 수사관)는 당근마켓과 같은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이 청소년들에게는 새로운 자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는데요, 신원을 숨기고 온라인에 접속해 부적절한 언행을 하더라도 제재받지 않기 때문에 자아가 다시 형성된다는 겁니다. 이런 걸 '거울 자아' 또는 '영상 자아'라고 하는데, 이렇게 사이버 공간에서 그릇된 행동을 벌이면서 마치 대단한 사람,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적절한 글에 달리는 댓글과 반응으로 일종의 '관심'을 받는 것에만 주목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를 사전에 막을 수는 없느냐 의문이 드는데요. 규제가 미비해 그 또한 쉽지 않습니다. 김동근 전북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장애인 팝니다'와 같은 사건을 두고 명예훼손, 감금죄와 같은 특정 범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정확한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면 처벌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있다는 겁니다. 법망을 더 촘촘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온라인 공간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고 정부나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체가 사전 차단 활동에 나설 것도 주문했습니다.


한편, 이전에 사회에 충격을 줬던 디지털 범죄가 제대로 단죄되지 않아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이른바 'N번방'과 같은 성 착취물 게시자, 이용자들에 대한 처벌이 국민감정과 달리 비교적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면서 청소년들에게 또 다른 범죄를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토대를 제공했다는 주장입니다.


채민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디지털 범죄들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난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약한 처벌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이 정도는 처벌받지 않을 거야'라는 안일한 인식을 심어줬다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인권의 가치나 기준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상황에서 당근마켓과 같은 온라인 공간이 그 역기능을 펼치는 장으로 쓰였다는 건데, '인간의 존엄성'이 온·오프라인에서 동일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고 존엄한 가치인 생명을 팔겠다는 글.
이제는 장난으로라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R)'장애인 팝니다' 게시 뒤 잠적…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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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분 산 ‘장애인 팝니다’…그 안에 숨긴 불편함
    • 입력 2020-11-05 18:16:21
    취재K

지난달 30일. 온라인으로 중고 거래를 하는 '당근마켓'에 충격적인 글이 올라왔습니다. 제목은 '장애인 팝니다', '가격은 무료'에 한 남성의 사진이 첨부돼있었습니다. 부적절한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요, 게시자는 이를 제지하는 한 네티즌을 향해 자신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받아치기까지 합니다. 대화 내용이 알려지자 온라인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접속하는 위치를 기반으로 주변 사람들과 사고팔 물건의 사진과 가격을 제시해 소통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딱히 필요는 없지만, 아직 제 기능을 하는 물건을 올리면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잠재적 구매자가 돼 판매자와 연결이 되는 구조입니다. 앞서 이 앱을 통해 '신생아를 판다'는 글이 올라와 한 차례 공분이 일기도 했었죠.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이 중고 거래 대상으로 가볍게 여겨지는 충격적인 일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이 나섰습니다. 전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누가 '장애인을 판다'는 글을 올렸는지, 그 게시자를 잡기 위해 해당 사이트 운영사 측과 공조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게시자 특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게시글을 본 네티즌이 항의한 공간은 일대일 대화가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에 모욕죄가 성립하긴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공격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인데요. 다만 올라와 있는 사진 속 남성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게시자 말대로 만약 법의 처벌을 면하는 '촉법소년'이라면 보호처분만 받게 됩니다. 촉법소년은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으로, 법을 어겼지만 형사 책임 능력이 인정되지 않아 형벌 대신 감호위탁이나 사회봉사, 소년원 송치 등의 처분을 받습니다. 아직 자신의 언행을 통제할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를 법으로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 거죠. 말 그대로 '미성숙함'을 인정해주는 겁니다.

하지만 이 게시글, 한순간의 실수거나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요,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배상훈 프로파일러(전 범죄심리분석 수사관)는 당근마켓과 같은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이 청소년들에게는 새로운 자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는데요, 신원을 숨기고 온라인에 접속해 부적절한 언행을 하더라도 제재받지 않기 때문에 자아가 다시 형성된다는 겁니다. 이런 걸 '거울 자아' 또는 '영상 자아'라고 하는데, 이렇게 사이버 공간에서 그릇된 행동을 벌이면서 마치 대단한 사람,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적절한 글에 달리는 댓글과 반응으로 일종의 '관심'을 받는 것에만 주목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를 사전에 막을 수는 없느냐 의문이 드는데요. 규제가 미비해 그 또한 쉽지 않습니다. 김동근 전북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장애인 팝니다'와 같은 사건을 두고 명예훼손, 감금죄와 같은 특정 범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정확한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면 처벌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있다는 겁니다. 법망을 더 촘촘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온라인 공간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고 정부나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체가 사전 차단 활동에 나설 것도 주문했습니다.


한편, 이전에 사회에 충격을 줬던 디지털 범죄가 제대로 단죄되지 않아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이른바 'N번방'과 같은 성 착취물 게시자, 이용자들에 대한 처벌이 국민감정과 달리 비교적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면서 청소년들에게 또 다른 범죄를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토대를 제공했다는 주장입니다.


채민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디지털 범죄들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난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약한 처벌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이 정도는 처벌받지 않을 거야'라는 안일한 인식을 심어줬다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인권의 가치나 기준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상황에서 당근마켓과 같은 온라인 공간이 그 역기능을 펼치는 장으로 쓰였다는 건데, '인간의 존엄성'이 온·오프라인에서 동일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고 존엄한 가치인 생명을 팔겠다는 글.
이제는 장난으로라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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