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무릎 꿇리고 상습 폭행한 사회복지사…“끝까지 반성 안해”

입력 2020.11.12 (19:07) 수정 2020.11.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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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KBS 보도로 학대 사실이 드러난 제주지역 모 장애인 단기시설 전 사무국장이 징역형에 처해졌습니다. 당시 사무국장은 재판 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피해 정도가 무겁지 않다는 이유로 2년간 형 집행이 유예됐습니다.

문제의 시설을 운영하는 원장은 당시 사무국장의 어머니. 앞서 취재 과정에서 원장은 학대 행위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었는데, 관할 행정 당국은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해당 시설에 대해 아무런 행정조치를 내릴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야 이 XX야" 지적장애인 상습 폭행 사회복지사

제주지방법원 형사4단독 서근찬 부장판사는 12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48살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명령했습니다.

제주시 모 장애인 단기거주시설 전 사무국장이었던 A씨는 2018년 겨울, 시설에 입소한 10대 지적장애여성에게 "야 이 XX야" 등 욕설을 하고 무릎을 꿇게 한 뒤 머리카락을 잡고 머리를 벽으로 밀쳐 부딪히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씨는 또 이듬해 4월 지적장애여성이 화가 나 "시설을 나가겠다"고 하자 몸을 밀쳐 서랍장에 부딪히게 하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는가 하면, 아침 식사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설하며 폭행한 혐의도 있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피해자가 약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팔을 잡아 꺾고 억지로 먹이면서 얼굴에 멍이 들게 한 혐의도 있습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적 없다"고 반박하며 "얼굴과 목에 난 상처는 입소자가 학교 통학버스에서 다른 학생과 싸우다가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 판사는 "피해자의 지적 상태를 고려할 때 직접 경험하지 않고 허위로 꾸며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을 모함할 동기나 이유도 찾기 어렵다"며 "통학버스 내에서는 사고 발생 방지를 위해 학생들이 서로 떨어져 앉아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의 상처는 강제 투약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서 판사는 이어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보호해야 할 장애인에게 여러 차례 폭력을 행사해 죄질이 나쁘다"면서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며 징역형 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만 서 판사는 "피해 정도가 매우 무겁지 않고, 폭력 전과로 1회 벌금형을 받은 것 외에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건 유리한 정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특수교사 신고로 드러난 '시설 내 학대'…수사 1년 넘게 진행 중


'그들만의 세상'이었던 장애인 거주시설 내에서의 폭행이 드러난 건 지난해 5월. 한 특수학교 교사가 해당 거주시설에 사는 학생 몸에 난 상처를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해당 시설에서의 장애인 인권침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설 전체의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해당 시설 원장은 A씨와 모자(母子) 관계로, A씨의 행위를 감싸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당시 제주도 장애인 권익옹호기관이 입소자들과 생활 재활교사 등을 상대로 전수조사에 나선 결과, "바늘로 얼굴을 찔렀다.", "목을 누르며 폭행했다", "종아리를 걷어찼다"는 등 또 다른 피해자가 있었다는 진술이 이어졌는데도 말입니다.

더 심한 건 외부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20대 지적장애 여성의 호소가 묵살된 겁니다. 생활 재활교사를 통해 원장에게까지 보고됐지만, 원장은 임신테스트기를 시험하도록 한 뒤 이상이 없자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진이 '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았는지' 묻자 원장은 "우리도 눈으로 안 본 건데 어떻게 믿느냐"며 "내 눈으로 안 본 걸 증거도 없이 (신고)했다가, 만약 아니어서 내가 고발당하면 어떡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파면 팔수록 학대 정황은 쏟아졌습니다. 해당 시설에선 정신장애나 지적장애가 있는 입소자들에게 매일 문단속과 가스 밸브 단속 등 당직을 시킨 뒤 당직일지를 쓰도록 하고, 당시 사무국장 지인이 운영하는 파프리카 농장에 데려가 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입소자의 통장에서 멋대로 돈을 빼갔다는 의혹도 나왔는데, 추가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학대 의혹이 드러나자 당시 사무국장 A씨는 제주시로부터 직위해제와 직무정지 명령을 받았고, 스스로 사표를 냈습니다. 이에 대해 원장은 "잘못은 없지만, 충격으로 그만뒀다"며 A씨를 감쌌습니다. KBS 보도 이후 응급보호가 필요한 입소자 일부는 전원(다른 시설 입소) 조치 됐지만, 나머지 10여 명은 여전히 해당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혹여 2차 피해가 있진 않을지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제주시 관계자는 "A씨가 이번 판결 이외에 다른 재판도 받고 있고, 신체적 학대와 경제적 착취 등 경찰이 추가 수사 중인 내용도 있다"며 "확정판결이 된 이후에 해당 시설에 대한 행정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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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적장애인 무릎 꿇리고 상습 폭행한 사회복지사…“끝까지 반성 안해”
    • 입력 2020-11-12 19:07:21
    • 수정2020-11-12 19:07:37
    취재K

지난해 11월 KBS 보도로 학대 사실이 드러난 제주지역 모 장애인 단기시설 전 사무국장이 징역형에 처해졌습니다. 당시 사무국장은 재판 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피해 정도가 무겁지 않다는 이유로 2년간 형 집행이 유예됐습니다.

문제의 시설을 운영하는 원장은 당시 사무국장의 어머니. 앞서 취재 과정에서 원장은 학대 행위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었는데, 관할 행정 당국은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해당 시설에 대해 아무런 행정조치를 내릴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야 이 XX야" 지적장애인 상습 폭행 사회복지사

제주지방법원 형사4단독 서근찬 부장판사는 12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48살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명령했습니다.

제주시 모 장애인 단기거주시설 전 사무국장이었던 A씨는 2018년 겨울, 시설에 입소한 10대 지적장애여성에게 "야 이 XX야" 등 욕설을 하고 무릎을 꿇게 한 뒤 머리카락을 잡고 머리를 벽으로 밀쳐 부딪히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씨는 또 이듬해 4월 지적장애여성이 화가 나 "시설을 나가겠다"고 하자 몸을 밀쳐 서랍장에 부딪히게 하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는가 하면, 아침 식사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설하며 폭행한 혐의도 있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피해자가 약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팔을 잡아 꺾고 억지로 먹이면서 얼굴에 멍이 들게 한 혐의도 있습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적 없다"고 반박하며 "얼굴과 목에 난 상처는 입소자가 학교 통학버스에서 다른 학생과 싸우다가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 판사는 "피해자의 지적 상태를 고려할 때 직접 경험하지 않고 허위로 꾸며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을 모함할 동기나 이유도 찾기 어렵다"며 "통학버스 내에서는 사고 발생 방지를 위해 학생들이 서로 떨어져 앉아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의 상처는 강제 투약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서 판사는 이어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보호해야 할 장애인에게 여러 차례 폭력을 행사해 죄질이 나쁘다"면서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며 징역형 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만 서 판사는 "피해 정도가 매우 무겁지 않고, 폭력 전과로 1회 벌금형을 받은 것 외에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건 유리한 정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특수교사 신고로 드러난 '시설 내 학대'…수사 1년 넘게 진행 중


'그들만의 세상'이었던 장애인 거주시설 내에서의 폭행이 드러난 건 지난해 5월. 한 특수학교 교사가 해당 거주시설에 사는 학생 몸에 난 상처를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해당 시설에서의 장애인 인권침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설 전체의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해당 시설 원장은 A씨와 모자(母子) 관계로, A씨의 행위를 감싸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당시 제주도 장애인 권익옹호기관이 입소자들과 생활 재활교사 등을 상대로 전수조사에 나선 결과, "바늘로 얼굴을 찔렀다.", "목을 누르며 폭행했다", "종아리를 걷어찼다"는 등 또 다른 피해자가 있었다는 진술이 이어졌는데도 말입니다.

더 심한 건 외부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20대 지적장애 여성의 호소가 묵살된 겁니다. 생활 재활교사를 통해 원장에게까지 보고됐지만, 원장은 임신테스트기를 시험하도록 한 뒤 이상이 없자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진이 '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았는지' 묻자 원장은 "우리도 눈으로 안 본 건데 어떻게 믿느냐"며 "내 눈으로 안 본 걸 증거도 없이 (신고)했다가, 만약 아니어서 내가 고발당하면 어떡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파면 팔수록 학대 정황은 쏟아졌습니다. 해당 시설에선 정신장애나 지적장애가 있는 입소자들에게 매일 문단속과 가스 밸브 단속 등 당직을 시킨 뒤 당직일지를 쓰도록 하고, 당시 사무국장 지인이 운영하는 파프리카 농장에 데려가 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입소자의 통장에서 멋대로 돈을 빼갔다는 의혹도 나왔는데, 추가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학대 의혹이 드러나자 당시 사무국장 A씨는 제주시로부터 직위해제와 직무정지 명령을 받았고, 스스로 사표를 냈습니다. 이에 대해 원장은 "잘못은 없지만, 충격으로 그만뒀다"며 A씨를 감쌌습니다. KBS 보도 이후 응급보호가 필요한 입소자 일부는 전원(다른 시설 입소) 조치 됐지만, 나머지 10여 명은 여전히 해당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혹여 2차 피해가 있진 않을지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제주시 관계자는 "A씨가 이번 판결 이외에 다른 재판도 받고 있고, 신체적 학대와 경제적 착취 등 경찰이 추가 수사 중인 내용도 있다"며 "확정판결이 된 이후에 해당 시설에 대한 행정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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