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낙태죄’ 공청회…8명 중 2명만 “폐지”

입력 2020.12.07 (17:37) 수정 2020.12.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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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8일) 열리는 '낙태죄 첫 공청회'…헌재 결정 1년 8개월 만

내일(8일) 오전 10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낙태죄' 형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모든 낙태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린 뒤, 1년 8개월 만입니다. 당시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개선 입법을 마련하라고 국회에 주문했습니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임신 14주 이내의 여성에게만 낙태를 조건 없이 허용하고, 임신 15주에서 24주 여성은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을 때"만 낙태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정부 개정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됩니다.

또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을 삭제하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권인숙 의원안, 정의당 이은주 의원안, 임신 10주 (특별한 사정이 있을 시 임신 20주까지 허용)까지 낙태를 허용해 정부안보다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는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안도 함께 논의됩니다.

앞서 여성계는 정부안과 국민의 힘 안은 사실상 낙태죄를 존치시키는 안이라며 반대 뜻을 표명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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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추천 진술인 4명에 여당 추천 진술인 2명도 낙태죄 폐지에 부정적

이번 공청회에는 정현미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음선필 홍익대학교 법대 교수, 이흥락 변호사, 연취현 변호사 등 법조인들과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최안나 산부인과 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 등 의료인들은 물론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과 김혜령 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기독교윤리전공) 교수 등 여성계와 종교학 전문가들도 진술인으로 참여합니다.

이들은 정부와 각 의원의 법안에 대한 의견을 진술하게 되는데, 낙태죄 개정안이 국회에서 정식 논의되는 사실상 첫 절차입니다.

법 개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KBS는 8명의 진술인이 국회법에 따라 국회에 제출한 공청회 의견서를 미리 입수해 확인해봤습니다.

우선 의료계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대한산부인과 학회에선 "임신 23, 24주에서 태어나는 신생아는 충분히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경우가 많으므로, 사회 경제적 사유로 인해 일정 숙려기간을 거쳐 행하는 낙태는 태아 생명권 보장 기회를 좀 더 넓힐 수 있도록 임신 22주 미만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태아 생명권 보장을 이유로, 정부안보다 엄격한 안을 내놓은 겁니다.

산부인과 낙태법특별위원회 역시 "낙태법을 폐지하자거나 태아가 생존 가능성이 있는 시기의 낙태도 허용하자는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낙태죄'를 형법에서 완전히 삭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임신 22주 미만으로 낙태 제한" VS "낙태죄는 여성에 대한 폭력 수단"

법조계 진술인들의 입장도 낙태죄 완전 폐지에는 부정적입니다. 정현미 원장은 "국가의 생명 보호 의무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접근했다"며 정부안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음선필 교수는 "임신 24주 이내로 허용하는 정부 개정안은 헌재 입장보다도 태아의 생명권을 더 소홀히 여긴다"며 정부안보다 엄격한 안을 제시했고, 연취현·이흥락 변호사도 '태아의 인권(생명권)'을 들어 비슷한 의견을 냈습니다.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 진술인은 2명입니다. 김정혜 연구위원은 "낙태죄가 여성에 대한 폭력 수단으로 악용됐다"며 "낙태죄를 두는 것은 여성을 2등 시민의 지위에 묶어두고 여성의 삶과 건강을 위협한다"고 낙태죄 완전 폐지 의견을 냈습니다. 앞서 '낙태죄 폐지를 바라는 생명윤리학 철학 신학 연구자 연대' 성명서에 참여했던 김혜령 교수 역시 "낙태죄 존치라는 구시대적 결론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수처법' 등 현안 얽혀...'국회의 시간' 졸속 진행될 듯

여성계와 낙태죄 완전 폐지를 당론으로 한 정의당에서는 공청회 일정이 정해진 당시부터, 진술인 구성이 편향적이라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대한산부인과 학회 등 야당이 추천한 4명의 진술인뿐 아니라, 여당이 추천인 가운데도 정부안을 지지해 온 진술인이 포함돼 있어 균형 있는 공청회가 이뤄질 수 없단 것입니다.

공청회 의견서를 확인한 결과, 여성계와 정의당의 우려와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더 큰 난관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등으로 꼬여버린 국회 법사위 상황입니다. 여야가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민주당이 내일 공청회보다 앞서 열릴 법사위 안건조정위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게 되면, '낙태죄 공청회'도 야당 없는 반쪽 공청회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처음 맞이하는 '국회의 시간'이 사실상 졸속 진행될 확률이 높습니다. 앞서 '낙태죄 공청회' 일정이 잡힐 당시부터, 국회 본회의 하루 전에 개회하는 것이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논의할 의지가 있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입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해 국회가 헌재가 정한 기한인 올해 12월 31일까지 형법 개정안을 내놓지 못하면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조항 (형법 269조 1항)과 임신한 여성의 부탁 또는 승낙을 받아 임신중지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 (형법 270조 1항)은 헌재 결정에 따라 삭제돼 낙태는 범죄가 아닌 것이 됩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형법 개정안을 매듭짓지 않는 이상, 낙태한 여성을 지원하는 내용 등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는 불가능합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낙태는 허용되는데 낙태한 여성을 지원하는 법은 없는 '입법 공백'이 발생하게 됩니다.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 뒤 주어진 1년 8개월의 시간 동안 '낙태죄 개정'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까요? 첫 출발인 공청회부터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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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07 17:37:21
    • 수정2020-12-07 17:38:08
    취재K
내일(8일) 열리는 '낙태죄 첫 공청회'…헌재 결정 1년 8개월 만

내일(8일) 오전 10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낙태죄' 형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모든 낙태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린 뒤, 1년 8개월 만입니다. 당시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개선 입법을 마련하라고 국회에 주문했습니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임신 14주 이내의 여성에게만 낙태를 조건 없이 허용하고, 임신 15주에서 24주 여성은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을 때"만 낙태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정부 개정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됩니다.

또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을 삭제하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권인숙 의원안, 정의당 이은주 의원안, 임신 10주 (특별한 사정이 있을 시 임신 20주까지 허용)까지 낙태를 허용해 정부안보다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는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안도 함께 논의됩니다.

앞서 여성계는 정부안과 국민의 힘 안은 사실상 낙태죄를 존치시키는 안이라며 반대 뜻을 표명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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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추천 진술인 4명에 여당 추천 진술인 2명도 낙태죄 폐지에 부정적

이번 공청회에는 정현미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음선필 홍익대학교 법대 교수, 이흥락 변호사, 연취현 변호사 등 법조인들과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최안나 산부인과 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 등 의료인들은 물론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과 김혜령 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기독교윤리전공) 교수 등 여성계와 종교학 전문가들도 진술인으로 참여합니다.

이들은 정부와 각 의원의 법안에 대한 의견을 진술하게 되는데, 낙태죄 개정안이 국회에서 정식 논의되는 사실상 첫 절차입니다.

법 개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KBS는 8명의 진술인이 국회법에 따라 국회에 제출한 공청회 의견서를 미리 입수해 확인해봤습니다.

우선 의료계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대한산부인과 학회에선 "임신 23, 24주에서 태어나는 신생아는 충분히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경우가 많으므로, 사회 경제적 사유로 인해 일정 숙려기간을 거쳐 행하는 낙태는 태아 생명권 보장 기회를 좀 더 넓힐 수 있도록 임신 22주 미만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태아 생명권 보장을 이유로, 정부안보다 엄격한 안을 내놓은 겁니다.

산부인과 낙태법특별위원회 역시 "낙태법을 폐지하자거나 태아가 생존 가능성이 있는 시기의 낙태도 허용하자는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낙태죄'를 형법에서 완전히 삭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임신 22주 미만으로 낙태 제한" VS "낙태죄는 여성에 대한 폭력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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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에 찬성한 진술인은 2명입니다. 김정혜 연구위원은 "낙태죄가 여성에 대한 폭력 수단으로 악용됐다"며 "낙태죄를 두는 것은 여성을 2등 시민의 지위에 묶어두고 여성의 삶과 건강을 위협한다"고 낙태죄 완전 폐지 의견을 냈습니다. 앞서 '낙태죄 폐지를 바라는 생명윤리학 철학 신학 연구자 연대' 성명서에 참여했던 김혜령 교수 역시 "낙태죄 존치라는 구시대적 결론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수처법' 등 현안 얽혀...'국회의 시간' 졸속 진행될 듯

여성계와 낙태죄 완전 폐지를 당론으로 한 정의당에서는 공청회 일정이 정해진 당시부터, 진술인 구성이 편향적이라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대한산부인과 학회 등 야당이 추천한 4명의 진술인뿐 아니라, 여당이 추천인 가운데도 정부안을 지지해 온 진술인이 포함돼 있어 균형 있는 공청회가 이뤄질 수 없단 것입니다.

공청회 의견서를 확인한 결과, 여성계와 정의당의 우려와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더 큰 난관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등으로 꼬여버린 국회 법사위 상황입니다. 여야가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민주당이 내일 공청회보다 앞서 열릴 법사위 안건조정위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게 되면, '낙태죄 공청회'도 야당 없는 반쪽 공청회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처음 맞이하는 '국회의 시간'이 사실상 졸속 진행될 확률이 높습니다. 앞서 '낙태죄 공청회' 일정이 잡힐 당시부터, 국회 본회의 하루 전에 개회하는 것이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논의할 의지가 있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입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해 국회가 헌재가 정한 기한인 올해 12월 31일까지 형법 개정안을 내놓지 못하면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조항 (형법 269조 1항)과 임신한 여성의 부탁 또는 승낙을 받아 임신중지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 (형법 270조 1항)은 헌재 결정에 따라 삭제돼 낙태는 범죄가 아닌 것이 됩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형법 개정안을 매듭짓지 않는 이상, 낙태한 여성을 지원하는 내용 등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는 불가능합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낙태는 허용되는데 낙태한 여성을 지원하는 법은 없는 '입법 공백'이 발생하게 됩니다.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 뒤 주어진 1년 8개월의 시간 동안 '낙태죄 개정'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까요? 첫 출발인 공청회부터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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