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한 아비로 살고파”…간첩 몰린 지 51년 만에 무죄 받을까

입력 2020.12.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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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대법정에 베레모를 쓴 작은 체구의 노인이 들어섭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그를 “피고인”이라고 부릅니다. 군 복무 중 북한으로 도주하려다 미수에 그친 죄(도주미수)로 재판에 넘겨져 51년 전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73살 박상은 씨. 지난 3월부터 9번을 이 법정에 다녀갔습니다. 생애 네 번째 재판, 재심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관련 기사: 탈영했다 ‘간첩’ 몰린 일병…법원, 출소 30년 만에 재심 개시 결정)

■ 5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도 ‘오랜 기다림’

지난 4일, 박 씨의 재심 마지막 재판이 열렸습니다. 방청석에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띄엄띄엄 자리를 잡았습니다. 박 씨의 아들, 그리고 과거 교도소에서 박 씨와 같은 방을 썼던 故신영복 선생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박 씨의 곁을 꾸준히 지켜온 이들은 이날도 차분히 재판을 지켜봤습니다.

박 씨의 마지막 재판은 꽤 어렵게 열렸습니다. 두 가지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선 검사가, 재판 막바지에 갑자기 박 씨에 대한 공소장을 손보겠다고 나섰습니다. 당초 마지막 재판일로 예정됐던 10월 16일 이틀 전,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 신청서가 접수됐습니다. 검사는 박 씨의 기존 혐의인 도주미수에 무죄가 선고될 것을 대비해 예비적 공소사실로 군무이탈(군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부대 또는 직무를 이탈한 죄)을 추가하겠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신청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한 달 뒤인 11월 11일로 마지막 재판일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재판 하루 전인 11월 10일,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박 씨 사건을 담당하던 재판장이 갑자기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 것입니다. 결국 재판은 취소됐고, 고인의 자리를 새로운 판사가 채우고 다시 재판이 열리기까지 또 3주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 “징역 20년은 받았어야 하는 사람”…“국가의 인권침해에 삶 파괴된 피해자”

재판부는 지난 4일 재판에서 검사의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재심 대상이 된 박 씨의 공소사실과 검사가 예비적으로 추가하고자 하는 공소사실 사이에 적절한 관련성이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같은 결정으로 박 씨의 재판은 드디어 마지막 순서에 이르렀습니다. 검사가 먼저 최후 의견을 진술했습니다.

“피고인이 썼다는 유서 내용은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이 남긴 유서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 운동권 진보 지식인도 아닌 피고인이 월북 시도를 하려 했다고 (수사기관이) 날조할 이유가 없습니다. […] 수사 중에 또 다시 탈영을 하거나 월북 시도를 하는 일을 막는 것을 넘어서, 피고인을 불법으로 감금하는 등의 직권남용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피고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는 그 역할상 박 씨를 가장 마지막까지 의심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박 씨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징역 20년”이라는 단어는 박 씨의 마음도,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도 착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검사는 여전히 박 씨를 북한으로 도주하려 한 사람, 중한 죄를 저지른 위험한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같은 검사에게 맞서는 변호인의 최후변론이 이어졌습니다.

“피고인은 사건 당시 적진으로 도주한 사실도, 적진으로 도주할 의사도 없었습니다.[…] 검찰 측 증거 중 공소사실 기재 일시 장소, 이동 경로 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음이 명백한 본 사건의 경우, 무죄가 선고돼야 할 것입니다.”

변호인은 박 씨에게 유죄,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법원의 책임도 지적했습니다.

“본 재심 사건과 관련한 일차적 책임은 과거 피고인에게 불법감금과 갖은 고문, 직권남용권리행사 등 직무상 중대한 범죄행위를 가해 ‘적진에의 도주미수’ 사건으로 허위조작한 수사기관에 있다고 할 것이나, 사법부도 피고인의 읍소를 묵인한 채 국가공권력이 저지른 무차별적인 인권침해 행위를 법의 이름으로 승인한 것으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


■ "떳떳한 아버지로 살고 싶은 마음 뿐"

검사와 변호인의 최종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피고인인 박상은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박 씨는 미리 준비해 온 A4 용지 1장 반 분량의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첫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그의 눈에선 눈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북한으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북한으로 넘어가려는 어떠한 행동도 한 적이 없습니다. 군 보안대에 잡혀가서, 북한을 찬양하고 북한으로 넘어가려 했음을 시인하라고 강요 받았을 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기에 끝끝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두 달이 넘게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때 좌측 무릎을 심하게 다쳤고, 교도소에서 겨우 수술을 받았으나 여전히 통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때 당한 고문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밤마다 꿈속에서 계속되고, 고문이라는 말만 들어도… 온몸이 마비되고 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재심을 준비하면서도 매 공판 때마다 고문 받았던 기억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습니다.

[중략] 결국 저는 변호사의 도움 한 번 받지 못한 채 간첩으로 낙인찍혀 살면서, 꼭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살아 왔습니다. 이런 저의 평생 소원인 재심을 열어준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년 7개월의 형을 살며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빼앗긴 탓에, 뒤늦게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두 아들이 군 복무와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밤잠을 설치며 걱정하는 것은, 제게 붙여진 ‘적진 도주미수’라는 죄명이 아이들 미래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닐까입니다. 행여라도 아들들이 ‘빨갱이 자식’이라는 굴레에 갇혀 자신들의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면, 저는 과거에 받았던 모진 고문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으로 몸서리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부디 깊은 통찰로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이미 늙고 병들어 버린 제 남은 여생이나마, 자식들에게 떳떳한 아버지로 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감사합니다.”

1969년, 24살 청년의 호소를 변명이라고 판단했던 법원, 51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 다른 진실을 보았을까요.

박 씨 사건의 재심 판결은 모레(16일) 오후 2시 반 선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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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떳떳한 아비로 살고파”…간첩 몰린 지 51년 만에 무죄 받을까
    • 입력 2020-12-14 11:30:24
    취재K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대법정에 베레모를 쓴 작은 체구의 노인이 들어섭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그를 “피고인”이라고 부릅니다. 군 복무 중 북한으로 도주하려다 미수에 그친 죄(도주미수)로 재판에 넘겨져 51년 전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73살 박상은 씨. 지난 3월부터 9번을 이 법정에 다녀갔습니다. 생애 네 번째 재판, 재심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관련 기사: 탈영했다 ‘간첩’ 몰린 일병…법원, 출소 30년 만에 재심 개시 결정)

■ 5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도 ‘오랜 기다림’

지난 4일, 박 씨의 재심 마지막 재판이 열렸습니다. 방청석에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띄엄띄엄 자리를 잡았습니다. 박 씨의 아들, 그리고 과거 교도소에서 박 씨와 같은 방을 썼던 故신영복 선생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박 씨의 곁을 꾸준히 지켜온 이들은 이날도 차분히 재판을 지켜봤습니다.

박 씨의 마지막 재판은 꽤 어렵게 열렸습니다. 두 가지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선 검사가, 재판 막바지에 갑자기 박 씨에 대한 공소장을 손보겠다고 나섰습니다. 당초 마지막 재판일로 예정됐던 10월 16일 이틀 전,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 신청서가 접수됐습니다. 검사는 박 씨의 기존 혐의인 도주미수에 무죄가 선고될 것을 대비해 예비적 공소사실로 군무이탈(군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부대 또는 직무를 이탈한 죄)을 추가하겠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신청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한 달 뒤인 11월 11일로 마지막 재판일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재판 하루 전인 11월 10일,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박 씨 사건을 담당하던 재판장이 갑자기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 것입니다. 결국 재판은 취소됐고, 고인의 자리를 새로운 판사가 채우고 다시 재판이 열리기까지 또 3주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 “징역 20년은 받았어야 하는 사람”…“국가의 인권침해에 삶 파괴된 피해자”

재판부는 지난 4일 재판에서 검사의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재심 대상이 된 박 씨의 공소사실과 검사가 예비적으로 추가하고자 하는 공소사실 사이에 적절한 관련성이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같은 결정으로 박 씨의 재판은 드디어 마지막 순서에 이르렀습니다. 검사가 먼저 최후 의견을 진술했습니다.

“피고인이 썼다는 유서 내용은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이 남긴 유서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 운동권 진보 지식인도 아닌 피고인이 월북 시도를 하려 했다고 (수사기관이) 날조할 이유가 없습니다. […] 수사 중에 또 다시 탈영을 하거나 월북 시도를 하는 일을 막는 것을 넘어서, 피고인을 불법으로 감금하는 등의 직권남용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피고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는 그 역할상 박 씨를 가장 마지막까지 의심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박 씨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징역 20년”이라는 단어는 박 씨의 마음도,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도 착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검사는 여전히 박 씨를 북한으로 도주하려 한 사람, 중한 죄를 저지른 위험한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같은 검사에게 맞서는 변호인의 최후변론이 이어졌습니다.

“피고인은 사건 당시 적진으로 도주한 사실도, 적진으로 도주할 의사도 없었습니다.[…] 검찰 측 증거 중 공소사실 기재 일시 장소, 이동 경로 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음이 명백한 본 사건의 경우, 무죄가 선고돼야 할 것입니다.”

변호인은 박 씨에게 유죄,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법원의 책임도 지적했습니다.

“본 재심 사건과 관련한 일차적 책임은 과거 피고인에게 불법감금과 갖은 고문, 직권남용권리행사 등 직무상 중대한 범죄행위를 가해 ‘적진에의 도주미수’ 사건으로 허위조작한 수사기관에 있다고 할 것이나, 사법부도 피고인의 읍소를 묵인한 채 국가공권력이 저지른 무차별적인 인권침해 행위를 법의 이름으로 승인한 것으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


■ "떳떳한 아버지로 살고 싶은 마음 뿐"

검사와 변호인의 최종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피고인인 박상은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박 씨는 미리 준비해 온 A4 용지 1장 반 분량의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첫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그의 눈에선 눈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북한으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북한으로 넘어가려는 어떠한 행동도 한 적이 없습니다. 군 보안대에 잡혀가서, 북한을 찬양하고 북한으로 넘어가려 했음을 시인하라고 강요 받았을 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기에 끝끝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두 달이 넘게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때 좌측 무릎을 심하게 다쳤고, 교도소에서 겨우 수술을 받았으나 여전히 통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때 당한 고문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밤마다 꿈속에서 계속되고, 고문이라는 말만 들어도… 온몸이 마비되고 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재심을 준비하면서도 매 공판 때마다 고문 받았던 기억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습니다.

[중략] 결국 저는 변호사의 도움 한 번 받지 못한 채 간첩으로 낙인찍혀 살면서, 꼭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살아 왔습니다. 이런 저의 평생 소원인 재심을 열어준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년 7개월의 형을 살며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빼앗긴 탓에, 뒤늦게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두 아들이 군 복무와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밤잠을 설치며 걱정하는 것은, 제게 붙여진 ‘적진 도주미수’라는 죄명이 아이들 미래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닐까입니다. 행여라도 아들들이 ‘빨갱이 자식’이라는 굴레에 갇혀 자신들의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면, 저는 과거에 받았던 모진 고문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으로 몸서리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부디 깊은 통찰로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이미 늙고 병들어 버린 제 남은 여생이나마, 자식들에게 떳떳한 아버지로 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감사합니다.”

1969년, 24살 청년의 호소를 변명이라고 판단했던 법원, 51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 다른 진실을 보았을까요.

박 씨 사건의 재심 판결은 모레(16일) 오후 2시 반 선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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