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째 죽음만에야…국토위 넘은 ‘택배법’

입력 2020.12.2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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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업 관장하는 첫 번째 법, 국회 국토위 통과

오늘(24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이른바 '택배법'이 통과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택배법'은 택배업을 관장하는 첫 번째 법으로, 택배 사업자에게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도록 의무화했고, 표준계약서 도입, 종사자 쉼터 설치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 택배업을 등록제로 바꾸고, 위탁계약 갱신청구권 6년을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변창흠 국토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국토위원들이 마찰을 빚은 만큼, '택배법'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큰 이견 없이 여야 합의로 의결됐습니다.

의결 과정에서 여야 모두 큰 이견을 보이지 않은 만큼, 법제사법위원회 등 국회 일정이 잡히는 대로 최종 통과되면 유예기간 6개월을 거쳐 시행될 예정입니다.

[연관기사]
- 뉴스9 우여곡절 ‘택배법’ 연내 처리 파란불…“핵심은 빠져”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75419
- 20대 국회 못 넘었던 ‘택배법’…이번엔 ‘배송완료’?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61838
- ‘택배법’ 기류 변화… 통과 한발 다가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52133

택배 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숨진 박 씨의 카카오톡. 지난 9월 23일에 300개 넘게 택배 물량을 배송했고, 배송은 밤 12시에 끝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택배 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숨진 박 씨의 카카오톡. 지난 9월 23일에 300개 넘게 택배 물량을 배송했고, 배송은 밤 12시에 끝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이 없는 사이…택배 노동자 올해만 16번째 사망

하지만 '택배법'이 국토위 문턱을 넘은 것을 마냥 반기기만은 어렵습니다. 어제(23일) 과로에 시달리던 택배 노동자가 또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올해만 16번째입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경기도 수원에서 택배 기사로 일하던 34살 박 모 씨가 과로로 숨졌습니다. 가족과 동료들의 증언을 따르면, 박 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14시간~15시간을 일하며, 하루 250여 건을 배송했습니다. 근무 반년 만에 체중이 20kg 빠졌다는 게 박 씨 주변인들의 공통적인 증언입니다.

박 씨는 취업하면 해야 하는 입직 신고조차 돼 있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른바 '유령 택배 노동자'였던 것입니다.

대책위는 해당 택배업체가 지난 10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으로 택배 분류 인력 투입과 택배 자동화 설비 추가 도입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박 씨가 일했던 집배 센터엔 분류 인력이 한 명도 추가 투입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택배 사업자에게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도록 한 '택배법'이 국회에서 공전되는 사이, 또 한 명의 택배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과로 원인으로 꼽히는 분류작업은 '애매한 정리'

'택배법'이 뒤늦게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택배 노동자의 연이은 과로사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대책위가 박 씨의 작업 환경을 지적하며 언급했던 '분류 인력'에 대한 논의는 이번 '택배법'에 빠져있습니다.

택배 노동자들은 '택배법'이 정한 업무 범위에서, 분류 작업이 빠지기를 원해왔습니다. 하지만 법안 통과를 위해 택배 사업자 등과 협의하며 애매한 절충안이 나왔습니다.

'택배법'은 '택배서비스종사자'를 "화물의 집하, 배송 등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분류작업이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택배 노동자의 업무에서 분류작업이 빠졌단 해석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집하, 배송 '등의 업무'"에 분류작업이 포함된다고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은 법안 의결 뒤 "분류 작업 인원들을 충분히 보충하겠다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사업장에서 사고사가 발생했다"며 국토부에 분류 작업 인원 지원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관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은 역시 "과로 방지법인지 산업업체 육성법인지 내용이 애매하다"며 "법을 실제 적용해보고 보완이 많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택배 노동자의 16번째 죽음만에야 국회 국토위를 넘은 '택배법'.

그러나 택배 노동자의 업무환경 변화를 제대로 이끌어내기까지는 시행령과 규칙 손질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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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번째 죽음만에야…국토위 넘은 ‘택배법’
    • 입력 2020-12-24 16:53:13
    취재K
■택배업 관장하는 첫 번째 법, 국회 국토위 통과

오늘(24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이른바 '택배법'이 통과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택배법'은 택배업을 관장하는 첫 번째 법으로, 택배 사업자에게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도록 의무화했고, 표준계약서 도입, 종사자 쉼터 설치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 택배업을 등록제로 바꾸고, 위탁계약 갱신청구권 6년을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변창흠 국토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국토위원들이 마찰을 빚은 만큼, '택배법'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큰 이견 없이 여야 합의로 의결됐습니다.

의결 과정에서 여야 모두 큰 이견을 보이지 않은 만큼, 법제사법위원회 등 국회 일정이 잡히는 대로 최종 통과되면 유예기간 6개월을 거쳐 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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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52133

택배 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숨진 박 씨의 카카오톡. 지난 9월 23일에 300개 넘게 택배 물량을 배송했고, 배송은 밤 12시에 끝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이 없는 사이…택배 노동자 올해만 16번째 사망

하지만 '택배법'이 국토위 문턱을 넘은 것을 마냥 반기기만은 어렵습니다. 어제(23일) 과로에 시달리던 택배 노동자가 또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올해만 16번째입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경기도 수원에서 택배 기사로 일하던 34살 박 모 씨가 과로로 숨졌습니다. 가족과 동료들의 증언을 따르면, 박 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14시간~15시간을 일하며, 하루 250여 건을 배송했습니다. 근무 반년 만에 체중이 20kg 빠졌다는 게 박 씨 주변인들의 공통적인 증언입니다.

박 씨는 취업하면 해야 하는 입직 신고조차 돼 있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른바 '유령 택배 노동자'였던 것입니다.

대책위는 해당 택배업체가 지난 10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으로 택배 분류 인력 투입과 택배 자동화 설비 추가 도입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박 씨가 일했던 집배 센터엔 분류 인력이 한 명도 추가 투입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택배 사업자에게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도록 한 '택배법'이 국회에서 공전되는 사이, 또 한 명의 택배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과로 원인으로 꼽히는 분류작업은 '애매한 정리'

'택배법'이 뒤늦게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택배 노동자의 연이은 과로사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대책위가 박 씨의 작업 환경을 지적하며 언급했던 '분류 인력'에 대한 논의는 이번 '택배법'에 빠져있습니다.

택배 노동자들은 '택배법'이 정한 업무 범위에서, 분류 작업이 빠지기를 원해왔습니다. 하지만 법안 통과를 위해 택배 사업자 등과 협의하며 애매한 절충안이 나왔습니다.

'택배법'은 '택배서비스종사자'를 "화물의 집하, 배송 등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분류작업이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택배 노동자의 업무에서 분류작업이 빠졌단 해석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집하, 배송 '등의 업무'"에 분류작업이 포함된다고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은 법안 의결 뒤 "분류 작업 인원들을 충분히 보충하겠다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사업장에서 사고사가 발생했다"며 국토부에 분류 작업 인원 지원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관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은 역시 "과로 방지법인지 산업업체 육성법인지 내용이 애매하다"며 "법을 실제 적용해보고 보완이 많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택배 노동자의 16번째 죽음만에야 국회 국토위를 넘은 '택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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