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굽이굽이 잠든 마을, 예술로 깨어나다

입력 2021.02.15 (19:31) 수정 2021.02.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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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래된 도시라면 낡은 집과 거리가 떠오르지만, 그 속에는 시간이 쌓인 만큼 많은 이야기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주인공이었던 앞선 세대가 사라지고, 또 주민들이 점차 떠나가면서 이야기들은 잠들었는데요.

잠들었던 이야기들이 예술가들의 손에서 살아나면서 동네를 깨우는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마산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원시 성호동.

사람들과 이야기가 넘쳐나던 마을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마을의 이야기들은 점점 잊혀져갔는데요.

마산의 대표적인 구도심이 된 성호동의 옛이야기가 예술인의 손을 거쳐 애틋한 이야기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이 빽빽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거리도 시원하게 뻗은 길은 찾아보기 힘들고 사람이 다니는 대로 생겨난 듯 굽이굽이 이어집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동.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동네입니다.

조선시대 3대 항구도시였던 마산포와 일제강점기 추산정은 만세 운동의 중심이 된 역사의 현장인데요.

1980년대에는 철길을 중심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유동인구가 드나들며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이었습니다.

40년째 이 자리에서 땅콩을 판매하는 송영순 씨.

쉴 새 없이 땅콩을 팔아 딸 네 명을 다 키웠을 정도로 성호동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렸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마산수출자유지역의 쇠퇴와 함께 상권이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송영순/74/40년 땅콩 판매 : "옛날에는 사람도 많이 다니고 장사도 잘했고, 이제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시절은 없을 거예요. 옛날에는 말도 못 했어요."]

마을 입구에서 30년 넘게 이발관을 운영하는 김종원 씨.

세련된 미용실이 생기면서 이발관도 하나둘 사라졌지만, 그는 자리를 지키며 손님을 맞이합니다.

열여섯에 이발 일을 시작해 1988년 이곳, 성호동에 터를 잡았습니다.

가게 안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이발사와 함께 나이 먹은 이발 도구들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입니다.

팔순의 이발사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이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데요.

손님은 뜸하지만, 여전히 이발관을 운영하는 건 아직도 그를 찾는 손님들 때문입니다.

[김종원/81/이발사 : "어릴 때 첫 머리카락부터 깎아준 사람이 몇십 년 동안 나한테 이발해요. 아무리 멀어도 와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하는 거지요."]

성호동을 천천히 걷는 서양화 작가 신미란 씨.

성호동의 담장마다 깃든 사연을 상상해 봅니다.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현장을 다니며 그림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신미란/서양화 작가 : "이 건물들은 어땠을까, 모습은 어땠을까, 이런 것들도 상상하기도 하고 꼬부랑길의 높이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골목길 중심으로 삶에 대한 어떤 느낌을 받기 위해서 수차례 방문합니다."]

신미란 작가는 그림에 더해 특별한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성호동 마을과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엮었는데요.

마을 활동가와 함께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 하고, 작가의 상상력을 그림에 더해 한편의 책을 완성했습니다.

[신미란/서양화 작가 : "다양한 어떤 시대성을 담은 내용과 설명서들이 있는데, 그림과 글이 만나서 풍속 화첩으로 남는 것이 또 남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성호화첩을 구현했어요."]

마을의 역사적 장소와 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은 성호동 생활문화센터에서 전시되는데요,

다음 세대를 위해 마을을 기록으로 남긴 소중한 작업이 됐습니다.

[김경년/창원도시재생지원센터 마을활동가 : "작은 이야기지만 사람의 구전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의 교육이죠. 마을을 조금 더 애정 있게 바라보는 원천이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이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여기에 판소리와 무용으로 마을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자리도 마련됐습니다.

모두가 함께 성호동의 기억을 추억했습니다.

[김종찬/창원문화도시지원센터 사무국장 : "마창진 원도심에 녹아 있는 문화자원을 전문예술인의 시각으로 포착해서 기록하고 예술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해서 기획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사업은 창원시 전역에 있는 원도심으로 확대해서 추진해 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호동에는 골목따라, 세월따라, 사람들이 이야기가 켜켜이 쌓였는데요,

소중한 삶의 흔적이 문화의 향기로 남아 다음 세대까지 널리 퍼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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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속으로] 굽이굽이 잠든 마을, 예술로 깨어나다
    • 입력 2021-02-15 19:31:34
    • 수정2021-02-15 20:08:52
    뉴스7(창원)
[앵커]

오래된 도시라면 낡은 집과 거리가 떠오르지만, 그 속에는 시간이 쌓인 만큼 많은 이야기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주인공이었던 앞선 세대가 사라지고, 또 주민들이 점차 떠나가면서 이야기들은 잠들었는데요.

잠들었던 이야기들이 예술가들의 손에서 살아나면서 동네를 깨우는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마산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원시 성호동.

사람들과 이야기가 넘쳐나던 마을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마을의 이야기들은 점점 잊혀져갔는데요.

마산의 대표적인 구도심이 된 성호동의 옛이야기가 예술인의 손을 거쳐 애틋한 이야기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이 빽빽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거리도 시원하게 뻗은 길은 찾아보기 힘들고 사람이 다니는 대로 생겨난 듯 굽이굽이 이어집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동.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동네입니다.

조선시대 3대 항구도시였던 마산포와 일제강점기 추산정은 만세 운동의 중심이 된 역사의 현장인데요.

1980년대에는 철길을 중심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유동인구가 드나들며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이었습니다.

40년째 이 자리에서 땅콩을 판매하는 송영순 씨.

쉴 새 없이 땅콩을 팔아 딸 네 명을 다 키웠을 정도로 성호동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렸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마산수출자유지역의 쇠퇴와 함께 상권이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송영순/74/40년 땅콩 판매 : "옛날에는 사람도 많이 다니고 장사도 잘했고, 이제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시절은 없을 거예요. 옛날에는 말도 못 했어요."]

마을 입구에서 30년 넘게 이발관을 운영하는 김종원 씨.

세련된 미용실이 생기면서 이발관도 하나둘 사라졌지만, 그는 자리를 지키며 손님을 맞이합니다.

열여섯에 이발 일을 시작해 1988년 이곳, 성호동에 터를 잡았습니다.

가게 안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이발사와 함께 나이 먹은 이발 도구들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입니다.

팔순의 이발사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이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데요.

손님은 뜸하지만, 여전히 이발관을 운영하는 건 아직도 그를 찾는 손님들 때문입니다.

[김종원/81/이발사 : "어릴 때 첫 머리카락부터 깎아준 사람이 몇십 년 동안 나한테 이발해요. 아무리 멀어도 와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하는 거지요."]

성호동을 천천히 걷는 서양화 작가 신미란 씨.

성호동의 담장마다 깃든 사연을 상상해 봅니다.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현장을 다니며 그림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신미란/서양화 작가 : "이 건물들은 어땠을까, 모습은 어땠을까, 이런 것들도 상상하기도 하고 꼬부랑길의 높이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골목길 중심으로 삶에 대한 어떤 느낌을 받기 위해서 수차례 방문합니다."]

신미란 작가는 그림에 더해 특별한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성호동 마을과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엮었는데요.

마을 활동가와 함께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 하고, 작가의 상상력을 그림에 더해 한편의 책을 완성했습니다.

[신미란/서양화 작가 : "다양한 어떤 시대성을 담은 내용과 설명서들이 있는데, 그림과 글이 만나서 풍속 화첩으로 남는 것이 또 남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성호화첩을 구현했어요."]

마을의 역사적 장소와 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은 성호동 생활문화센터에서 전시되는데요,

다음 세대를 위해 마을을 기록으로 남긴 소중한 작업이 됐습니다.

[김경년/창원도시재생지원센터 마을활동가 : "작은 이야기지만 사람의 구전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의 교육이죠. 마을을 조금 더 애정 있게 바라보는 원천이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이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여기에 판소리와 무용으로 마을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자리도 마련됐습니다.

모두가 함께 성호동의 기억을 추억했습니다.

[김종찬/창원문화도시지원센터 사무국장 : "마창진 원도심에 녹아 있는 문화자원을 전문예술인의 시각으로 포착해서 기록하고 예술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해서 기획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사업은 창원시 전역에 있는 원도심으로 확대해서 추진해 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호동에는 골목따라, 세월따라, 사람들이 이야기가 켜켜이 쌓였는데요,

소중한 삶의 흔적이 문화의 향기로 남아 다음 세대까지 널리 퍼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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