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사찰 문건 실체 없다” 박형준 후보 해명 따져보니

입력 2021.03.06 (08:0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승리해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박 후보에게 제기되는 의혹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른바 ‘국정원 사찰 보고 의혹’이다.

박 후보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관·정무수석을 했었는데, 당시 있었던 국가정보원의 불법 사찰을 알고 있었는가, 보고를 받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게 문제제기의 요지다.

박 후보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국정원이 청와대 수석실에 통상적 정보 보고를 올리기는 했지만 불법 사찰 내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KBS는 2018년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이른바 ‘4대강 불법 사찰’ 내용을 담은 ‘요약 문건’을 단독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환경부의 요청으로 국정원이 제공한 1장짜리 요약 문건을 입수한 것인데, 2018년 7월과 9월 [뉴스 9], [시사기획 창]을 통해 보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숙원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교수 등 민간인들을 상대로 국정원이 어떻게 불법 사찰을 했는지 짤막하게 요약한 문건이다. 박형준 후보를 포함한 청와대 수석들에게 불법 사찰 내용이 보고되었다고 적혀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2018년 KBS가 보도한 이 문건을 토대로 올해 2월, 사찰 피해자라 할 수 있는 환경단체들이 국정원에 사찰 자료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현재 자료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달 중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박형준 후보는 이번 국민의힘 경선 결과가 나오기 직전인 3월 2일 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사찰 관련 의혹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비교적 자세히 이야기했다. 박 후보의 말을 ‘팩트체크’해 본다.


■ 팩트체크① 국정원 관계자가 흘려줘서 시작되었다?

박형준 후보에게 제기되는 ‘사찰 보고 의혹’은 크게 보면 두 줄기다. ①하나는 ‘국회의원 사찰’ ②다른 하나는 ‘4대강 사찰’이다. 박 후보가 ‘국정원 고위 관계자가 특정 언론에 흘려줬다’고 말하는 것은 ①번을 가리킨다.

지난 2월 8일 SBS는 익명의 ‘국정원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18대 여야 국회의원 299명 전원의 신상 정보를 담은 사찰 문건을 만들었고, 이 문건이 지금 국정원 자료실에 보관돼 있다고 보도했다.

익명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보도였기에 이것을 두고 박 후보가 “언론에 흘려줬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SBS가 보도한 내용의 일부는 이미 한 달쯤 전에 비슷한 맥락으로 세상에 공개된 바 있다. 지난 1월 19일 국정원은 60여 건의 불법사찰 자료를 피해자들에게 공개했다.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이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었는데, 김 교육감이 받은 사찰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포함돼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2월 민정수석실이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신상자료를 국정원이 관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SBS 보도는 김 교육감이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자료 중 일부 내용을 ‘국정원 익명의 고위 관계자’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확인받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물론 SBS가 취재를 시작할 때 김 교육감이 받은 자료를 출발점으로 삼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국회의원 사찰 문제가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국정원 관계자 말 한마디로 불쑥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정원 고위 관계자가 특정 언론에 흘려줘” 이번 논란이 시작됐다는 박 후보 주장은 적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래 팩트체크 ②번을 보면 더욱 그렇다.


■ 팩트체크② 선거공학의 냄새가 짙다?

박 후보는 선거를 앞두고 이번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을 주목해 ‘선거공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시간순으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을 상대로 불법 사찰 자료 공개 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 ‘내놔라 내파일’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이미 4년 전인 2017년 11월이다. 오랜 시간 국정원과의 법적 싸움 끝에 대법원이 ‘사찰 정보를 공개하라’고 확정 판결을 내린 시점은 지난해 11월이다.

대법원 결정에 따라 국정원이 피해자들 정보공개 청구에 응하게 된 것이었고, 올해 1월부터 사찰 자료들이 당사자들에게 건네져 관련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건네진 자료 가운데 상당 부분은 빈칸으로 처리돼 있어서 피해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KBS의 ‘4대강 사찰’ 보도는 2018년의 일이었고, ‘내놔라 내파일’의 활동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문건을 입수한 것이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순서다. ①2017년 11월 시민단체 ‘내놔라 내파일’ 활동 시작 → ②2018년 7월~9월 KBS ‘4대강 사찰’ 보도 → ③2020년 11월 대법원 ‘정보 공개’ 확정 판결 → ④2021년 1월 국정원 사찰 자료 60여 건 공개(‘국회의원 사찰’ 내용 포함) → ⑤2021년 2월 SBS의 ‘익명 관계자’ 인용 보도.

공교롭게도 4월 보궐선거와 결과적으로 맞물린 것은 맞지만, ‘내놔라 내파일’ 측은 “이 시점에 보궐선거가 있을 줄 과거에 어떻게 알았겠냐”고 반박하고 있다.


■ 팩트체크③ 4대강 사찰 문건의 실체가 불분명하다?

틀린 주장이다. 2018년 KBS가 이른바 ‘4대강 사찰 요약문건’을 처음 보도할 당시, 취재진은 이 문건을 KBS 뉴스 홈페이지에 공개해 누구나 PDF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래 사이트에 가보면 보도 시점 및 PDF 파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국정원 4대강 민간인 사찰 문건 단독 공개(2018년 7월 4일)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04029 )

물론 이 문건이 ‘정식 공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다. 요약 문건이라 그렇다. 제목부터 ‘환경부 자료 요청에 대한 국정원 회신내용’이라고 돼 있다. 국정원 자료실에 있는 수많은 4대강 사찰 ‘원 자료’를 토대로 1장으로 요약해 제공한 문건이다.

도장이 찍힌 공문의 형태는 아니지만, 2018년 KBS 보도 당시 국정원은 보도 내용을 시인했고 문건의 실체도 인정한 바 있다. 대변인이 구두로 인정한 것뿐만 아니라 [KBS 문의에 대한 답변]이라는 제목의 답변서로도 인정했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선 당시 환경부 공무원이 수많은 사찰 자료를 직접 보고 적어온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국정원 자료실에 직접 들어가서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국정원 직원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생긴 ‘국정원 개혁위원회’ 위원들조차도 직접 ‘캐비닛’을 열어볼 수는 없었다.

말하자면 이 요약문건은 (박 후보의 주장처럼) “실체가 분명치 않은” 문건이 아니라 국정원이 공식 인정한, 실체가 분명한 문건인 것이다. 최근의 논란과 무관하게 2018년 당시에 이미 공인된 문건이다.

문제의 ‘4대강 사찰 요약문건’에서 박형준 후보에게 해당하는 항목은 전체 9개 항목 가운데 4번, 5번, 7번 항목이다. 아래와 같다. 빨간색 표시가 박형준 후보를 뜻한다.



■ 팩트체크④ ‘4대강 사찰’로 기소되거나 처벌된 사람이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왜 기소하지 않았을까. 공소시효 때문이었다.

KBS가 공개한 4대강 사찰 요약문건에는 모두 9개 항목이 나열돼 있는데, 보도 시점에 이미 국정원법 위반 공소시효 7년이 지난 뒤였다.

그래서 고소고발에 참여한 환경단체·시민사회단체들은 검찰이 소극적으로 수사한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국정원이 공개한 1장짜리 문건으로만 판단할 게 아니라, 해당 시점 이후에도 불법 사찰이 계속됐을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라면, 검찰의 수사가 적극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국정원이 당초 환경부에 요약 문건을 넘겨줄 때 공소시효가 지난 것들만 추린 거라는 의심과 비판도 많았다.

2018년 당시 국정원은 KBS 보도 직후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자료 공개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19년 5월 서울중앙지검의 ‘불기소 이유 통지서’(담당 검사 정우석)를 보면 “7년의 공소시효가 완성하여 공소권 없음에 해당한다”고 짤막하게 기술돼 있을 뿐이다.


■ 팩트체크⑤ 국회의원 사찰은 금시초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박형준 후보에게 제기되는 의혹은 크게 두 줄기다. 국회의원 사찰과 4대강 사찰이 그것이다. 국회의원 사찰의 경우 뒷받침 자료가 아직 공개된 적은 없다. 당시 박 후보가 청와대 정무수석이었고, 정무수석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하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국정원이 국회의원 전원을 상대로 광범위한 불법 사찰을 했는데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추론에 기반한 의혹 제기다.

그러나 4대강 사찰은 다르다. KBS가 공개한 ‘요약 문건’에는 위에서 본 것처럼 박 후보가 사찰 내용을 보고받은 당사자로 분명히 명시되고 있다. 그리고 요약된 사찰 내용을 보면, 더욱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항목은 박 후보가 정무수석일 때(7번)보다는 ‘홍보기획관’일 때(4번과 5번)이다. 명백히 불법적인 내용들이다.


■ 팩트체크⑥ 도청과 미행이 문제다? 존안 자료는 늘 있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시점에도 국회의원 사찰이든 4대강 사찰이든 모두 다 국정원법 위반이었다. 도청이나 미행이 있었는가 하는 ‘수단 및 방법’도 중요하지만, 국정원이 자신의 직무를 벗어났느냐 하는 ‘행위의 내용’이 더 본질적이다. 국정원 스스로도 과거 사찰 행위가 불법임을 시인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도 국정원이 불법적 행위를 했었다는 박 후보의 말은, 최근 박지원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했던 발언 ‘국정원 60년 흑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많든 적든 국정원의 불법 행위는 ‘꾸준히’ 있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국정원의 ‘흑역사’와, 선출직 공무원 후보에 대한 검증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 환경단체 청구 자료 이달 중 나올 가능성 높아

KBS 공개 문건을 토대로 한 환경단체들의 정보공개 청구를 국정원이 받아들일지 여부는 조만간 결론이 날 예정이다. 그동안 국정원이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여 자료를 공개했을 때 걸렸던 시간이 통상적으로 한 달 정도였다. 따라서 3월 중에는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공개된 자료에 △박형준 후보를 가리키는 내용들이 나온다면 박 후보는 추가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런 내용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국정원은 2018년 환경부에 건넨 4대강 사찰 요약 문건에 왜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을 표기했는지 해명해야 한다. △만약 국정원이 자료를 아예 공개하지 않는다면,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왜 유독 이번 청구 자료만 공개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국정원이 설명해야 한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팩트체크K] “사찰 문건 실체 없다” 박형준 후보 해명 따져보니
    • 입력 2021-03-06 08:05:44
    팩트체크K

지난 4일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승리해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박 후보에게 제기되는 의혹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른바 ‘국정원 사찰 보고 의혹’이다.

박 후보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관·정무수석을 했었는데, 당시 있었던 국가정보원의 불법 사찰을 알고 있었는가, 보고를 받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게 문제제기의 요지다.

박 후보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국정원이 청와대 수석실에 통상적 정보 보고를 올리기는 했지만 불법 사찰 내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KBS는 2018년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이른바 ‘4대강 불법 사찰’ 내용을 담은 ‘요약 문건’을 단독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환경부의 요청으로 국정원이 제공한 1장짜리 요약 문건을 입수한 것인데, 2018년 7월과 9월 [뉴스 9], [시사기획 창]을 통해 보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숙원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교수 등 민간인들을 상대로 국정원이 어떻게 불법 사찰을 했는지 짤막하게 요약한 문건이다. 박형준 후보를 포함한 청와대 수석들에게 불법 사찰 내용이 보고되었다고 적혀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2018년 KBS가 보도한 이 문건을 토대로 올해 2월, 사찰 피해자라 할 수 있는 환경단체들이 국정원에 사찰 자료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현재 자료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달 중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박형준 후보는 이번 국민의힘 경선 결과가 나오기 직전인 3월 2일 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사찰 관련 의혹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비교적 자세히 이야기했다. 박 후보의 말을 ‘팩트체크’해 본다.


■ 팩트체크① 국정원 관계자가 흘려줘서 시작되었다?

박형준 후보에게 제기되는 ‘사찰 보고 의혹’은 크게 보면 두 줄기다. ①하나는 ‘국회의원 사찰’ ②다른 하나는 ‘4대강 사찰’이다. 박 후보가 ‘국정원 고위 관계자가 특정 언론에 흘려줬다’고 말하는 것은 ①번을 가리킨다.

지난 2월 8일 SBS는 익명의 ‘국정원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18대 여야 국회의원 299명 전원의 신상 정보를 담은 사찰 문건을 만들었고, 이 문건이 지금 국정원 자료실에 보관돼 있다고 보도했다.

익명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보도였기에 이것을 두고 박 후보가 “언론에 흘려줬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SBS가 보도한 내용의 일부는 이미 한 달쯤 전에 비슷한 맥락으로 세상에 공개된 바 있다. 지난 1월 19일 국정원은 60여 건의 불법사찰 자료를 피해자들에게 공개했다.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이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었는데, 김 교육감이 받은 사찰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포함돼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2월 민정수석실이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신상자료를 국정원이 관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SBS 보도는 김 교육감이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자료 중 일부 내용을 ‘국정원 익명의 고위 관계자’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확인받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물론 SBS가 취재를 시작할 때 김 교육감이 받은 자료를 출발점으로 삼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국회의원 사찰 문제가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국정원 관계자 말 한마디로 불쑥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정원 고위 관계자가 특정 언론에 흘려줘” 이번 논란이 시작됐다는 박 후보 주장은 적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래 팩트체크 ②번을 보면 더욱 그렇다.


■ 팩트체크② 선거공학의 냄새가 짙다?

박 후보는 선거를 앞두고 이번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을 주목해 ‘선거공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시간순으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을 상대로 불법 사찰 자료 공개 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 ‘내놔라 내파일’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이미 4년 전인 2017년 11월이다. 오랜 시간 국정원과의 법적 싸움 끝에 대법원이 ‘사찰 정보를 공개하라’고 확정 판결을 내린 시점은 지난해 11월이다.

대법원 결정에 따라 국정원이 피해자들 정보공개 청구에 응하게 된 것이었고, 올해 1월부터 사찰 자료들이 당사자들에게 건네져 관련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건네진 자료 가운데 상당 부분은 빈칸으로 처리돼 있어서 피해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KBS의 ‘4대강 사찰’ 보도는 2018년의 일이었고, ‘내놔라 내파일’의 활동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문건을 입수한 것이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순서다. ①2017년 11월 시민단체 ‘내놔라 내파일’ 활동 시작 → ②2018년 7월~9월 KBS ‘4대강 사찰’ 보도 → ③2020년 11월 대법원 ‘정보 공개’ 확정 판결 → ④2021년 1월 국정원 사찰 자료 60여 건 공개(‘국회의원 사찰’ 내용 포함) → ⑤2021년 2월 SBS의 ‘익명 관계자’ 인용 보도.

공교롭게도 4월 보궐선거와 결과적으로 맞물린 것은 맞지만, ‘내놔라 내파일’ 측은 “이 시점에 보궐선거가 있을 줄 과거에 어떻게 알았겠냐”고 반박하고 있다.


■ 팩트체크③ 4대강 사찰 문건의 실체가 불분명하다?

틀린 주장이다. 2018년 KBS가 이른바 ‘4대강 사찰 요약문건’을 처음 보도할 당시, 취재진은 이 문건을 KBS 뉴스 홈페이지에 공개해 누구나 PDF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래 사이트에 가보면 보도 시점 및 PDF 파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국정원 4대강 민간인 사찰 문건 단독 공개(2018년 7월 4일)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04029 )

물론 이 문건이 ‘정식 공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다. 요약 문건이라 그렇다. 제목부터 ‘환경부 자료 요청에 대한 국정원 회신내용’이라고 돼 있다. 국정원 자료실에 있는 수많은 4대강 사찰 ‘원 자료’를 토대로 1장으로 요약해 제공한 문건이다.

도장이 찍힌 공문의 형태는 아니지만, 2018년 KBS 보도 당시 국정원은 보도 내용을 시인했고 문건의 실체도 인정한 바 있다. 대변인이 구두로 인정한 것뿐만 아니라 [KBS 문의에 대한 답변]이라는 제목의 답변서로도 인정했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선 당시 환경부 공무원이 수많은 사찰 자료를 직접 보고 적어온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국정원 자료실에 직접 들어가서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국정원 직원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생긴 ‘국정원 개혁위원회’ 위원들조차도 직접 ‘캐비닛’을 열어볼 수는 없었다.

말하자면 이 요약문건은 (박 후보의 주장처럼) “실체가 분명치 않은” 문건이 아니라 국정원이 공식 인정한, 실체가 분명한 문건인 것이다. 최근의 논란과 무관하게 2018년 당시에 이미 공인된 문건이다.

문제의 ‘4대강 사찰 요약문건’에서 박형준 후보에게 해당하는 항목은 전체 9개 항목 가운데 4번, 5번, 7번 항목이다. 아래와 같다. 빨간색 표시가 박형준 후보를 뜻한다.



■ 팩트체크④ ‘4대강 사찰’로 기소되거나 처벌된 사람이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왜 기소하지 않았을까. 공소시효 때문이었다.

KBS가 공개한 4대강 사찰 요약문건에는 모두 9개 항목이 나열돼 있는데, 보도 시점에 이미 국정원법 위반 공소시효 7년이 지난 뒤였다.

그래서 고소고발에 참여한 환경단체·시민사회단체들은 검찰이 소극적으로 수사한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국정원이 공개한 1장짜리 문건으로만 판단할 게 아니라, 해당 시점 이후에도 불법 사찰이 계속됐을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라면, 검찰의 수사가 적극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국정원이 당초 환경부에 요약 문건을 넘겨줄 때 공소시효가 지난 것들만 추린 거라는 의심과 비판도 많았다.

2018년 당시 국정원은 KBS 보도 직후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자료 공개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19년 5월 서울중앙지검의 ‘불기소 이유 통지서’(담당 검사 정우석)를 보면 “7년의 공소시효가 완성하여 공소권 없음에 해당한다”고 짤막하게 기술돼 있을 뿐이다.


■ 팩트체크⑤ 국회의원 사찰은 금시초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박형준 후보에게 제기되는 의혹은 크게 두 줄기다. 국회의원 사찰과 4대강 사찰이 그것이다. 국회의원 사찰의 경우 뒷받침 자료가 아직 공개된 적은 없다. 당시 박 후보가 청와대 정무수석이었고, 정무수석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하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국정원이 국회의원 전원을 상대로 광범위한 불법 사찰을 했는데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추론에 기반한 의혹 제기다.

그러나 4대강 사찰은 다르다. KBS가 공개한 ‘요약 문건’에는 위에서 본 것처럼 박 후보가 사찰 내용을 보고받은 당사자로 분명히 명시되고 있다. 그리고 요약된 사찰 내용을 보면, 더욱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항목은 박 후보가 정무수석일 때(7번)보다는 ‘홍보기획관’일 때(4번과 5번)이다. 명백히 불법적인 내용들이다.


■ 팩트체크⑥ 도청과 미행이 문제다? 존안 자료는 늘 있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시점에도 국회의원 사찰이든 4대강 사찰이든 모두 다 국정원법 위반이었다. 도청이나 미행이 있었는가 하는 ‘수단 및 방법’도 중요하지만, 국정원이 자신의 직무를 벗어났느냐 하는 ‘행위의 내용’이 더 본질적이다. 국정원 스스로도 과거 사찰 행위가 불법임을 시인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도 국정원이 불법적 행위를 했었다는 박 후보의 말은, 최근 박지원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했던 발언 ‘국정원 60년 흑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많든 적든 국정원의 불법 행위는 ‘꾸준히’ 있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국정원의 ‘흑역사’와, 선출직 공무원 후보에 대한 검증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 환경단체 청구 자료 이달 중 나올 가능성 높아

KBS 공개 문건을 토대로 한 환경단체들의 정보공개 청구를 국정원이 받아들일지 여부는 조만간 결론이 날 예정이다. 그동안 국정원이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여 자료를 공개했을 때 걸렸던 시간이 통상적으로 한 달 정도였다. 따라서 3월 중에는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공개된 자료에 △박형준 후보를 가리키는 내용들이 나온다면 박 후보는 추가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런 내용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국정원은 2018년 환경부에 건넨 4대강 사찰 요약 문건에 왜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을 표기했는지 해명해야 한다. △만약 국정원이 자료를 아예 공개하지 않는다면,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왜 유독 이번 청구 자료만 공개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국정원이 설명해야 한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