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재의 사건 파일]산골 소녀 영자, 방송 이후

입력 2004.10.18 (20:36) 수정 2005.01.1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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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년 전 이맘때쯤 사람들의 주목을 끌던 광고 하나가 있었습니다.
산골에 살던 한 부녀가 출연한 광고였습니다.
그리고 이번달 초 광고의 주인공이었던 영자 양의 소식이 인터넷과 신문지면에 올랐습니다.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됐다는 사연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전화도, 전기도 없는 첩첩산중에서 살던 영자 양.
그러나 어느 날 들이닥친 세상의 관심은 이들 부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영자 양이 아버지와 함께 18년 동안 살았던 이 오두막집은 이제 보시는 것처럼 완전히 폐가로 변해버렸습니다.
세상에 나온 5개월 동안 영자 양이 겪었던 일은 사람들의 무책임한 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산골 소녀 영자는 지난 2000년 7월 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문명과 동떨어진 영자 부녀의 순박한 삶은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영자 양은 순식간에 유명해져 팬카페와 후원회가 생겼고 광고까지 찍었습니다.
산골 오두막에는 전화와 컴퓨터도 놓여졌습니다.
난생 처음 서울구경에 나서 새로운 세상을 접한 산골 소녀는 도시로 나와 공부를 하겠다며 산골 오두막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영자 양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이들 부녀의 광고출연료를 노린 강도에 의해 아버지 이 모씨가 살해된 것입니다.
⊙양00(살인 용의자): 광고 선전도 하고 해서 많은 돈은 없어도 조금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자: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자 양이 서울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서울생활을 보살펴주던 후원회장 김 모씨.
영자 양이 믿고 따랐던 그는 광고출연료와 후원금을 가로채고 육체적 학대까지 가했습니다.
무엇이 영자 양 부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세상은 영자 양을 산속에서 끌어내 사람들의 호기심거리로 삼았지만 그녀가 낯선 세계와의 충돌에서 받을 충격까지는 책임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영자 양은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채 안 돼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이 무섭다는 말을 남긴 영자 양은 불가의 귀의해 스님으로서의 새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영자 양이 머물고 있다는 한 절을 찾았습니다.
영자 양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간접적으로 그 근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00보살: 건강도 좋아요.
항상 명랑하고 사람이 성실하고 불경 잘 하고 염불 잘 하고...
⊙기자: 불경 외에는 뭘 합니까?
⊙00보살: 검정고시...
중학교 과정 준비해요.
⊙오화복(큰어머니): 이제 스님 됐으니까 나중에 절이라도 크게 이뤄 가지고 많은 백성들 잘 되게 해 줬으면 합니다.
⊙기자: 사람들은 영자 양의 순수함을 상품화한 방송과 상업주의를 비난했습니다.
산골 소녀 영자의 삶을 파괴한 것은 분명히 언론매체 등 상업주의의 책임이 큽니다.
그렇지만 그녀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세상 밖으로 끌어낸 우리는 책임이 없는지 공범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건파일 이석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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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석재의 사건 파일]산골 소녀 영자, 방송 이후
    • 입력 2004-10-18 20:28:46
    • 수정2005-01-19 15:38:08
    뉴스타임
⊙앵커: 4년 전 이맘때쯤 사람들의 주목을 끌던 광고 하나가 있었습니다. 산골에 살던 한 부녀가 출연한 광고였습니다. 그리고 이번달 초 광고의 주인공이었던 영자 양의 소식이 인터넷과 신문지면에 올랐습니다.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됐다는 사연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전화도, 전기도 없는 첩첩산중에서 살던 영자 양. 그러나 어느 날 들이닥친 세상의 관심은 이들 부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영자 양이 아버지와 함께 18년 동안 살았던 이 오두막집은 이제 보시는 것처럼 완전히 폐가로 변해버렸습니다. 세상에 나온 5개월 동안 영자 양이 겪었던 일은 사람들의 무책임한 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산골 소녀 영자는 지난 2000년 7월 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문명과 동떨어진 영자 부녀의 순박한 삶은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영자 양은 순식간에 유명해져 팬카페와 후원회가 생겼고 광고까지 찍었습니다. 산골 오두막에는 전화와 컴퓨터도 놓여졌습니다. 난생 처음 서울구경에 나서 새로운 세상을 접한 산골 소녀는 도시로 나와 공부를 하겠다며 산골 오두막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영자 양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이들 부녀의 광고출연료를 노린 강도에 의해 아버지 이 모씨가 살해된 것입니다. ⊙양00(살인 용의자): 광고 선전도 하고 해서 많은 돈은 없어도 조금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자: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자 양이 서울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서울생활을 보살펴주던 후원회장 김 모씨. 영자 양이 믿고 따랐던 그는 광고출연료와 후원금을 가로채고 육체적 학대까지 가했습니다. 무엇이 영자 양 부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세상은 영자 양을 산속에서 끌어내 사람들의 호기심거리로 삼았지만 그녀가 낯선 세계와의 충돌에서 받을 충격까지는 책임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영자 양은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채 안 돼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이 무섭다는 말을 남긴 영자 양은 불가의 귀의해 스님으로서의 새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영자 양이 머물고 있다는 한 절을 찾았습니다. 영자 양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간접적으로 그 근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00보살: 건강도 좋아요. 항상 명랑하고 사람이 성실하고 불경 잘 하고 염불 잘 하고... ⊙기자: 불경 외에는 뭘 합니까? ⊙00보살: 검정고시... 중학교 과정 준비해요. ⊙오화복(큰어머니): 이제 스님 됐으니까 나중에 절이라도 크게 이뤄 가지고 많은 백성들 잘 되게 해 줬으면 합니다. ⊙기자: 사람들은 영자 양의 순수함을 상품화한 방송과 상업주의를 비난했습니다. 산골 소녀 영자의 삶을 파괴한 것은 분명히 언론매체 등 상업주의의 책임이 큽니다. 그렇지만 그녀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세상 밖으로 끌어낸 우리는 책임이 없는지 공범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건파일 이석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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