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청사’ 원년의 그림자

입력 2013.01.07 (06:14) 수정 2013.01.0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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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해 첫 출근길.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 공무원들이 하나 둘 45인승 통근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녹취> 박정준(환경부 사무관) : "(예전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나오죠. 이걸 놓치면 방법이 없다는 걸 다 알기 때문에.."

버스가 향하는 곳은 세종시 정부청사.

버스 안에선 하나같이 모자란 잠을 보충합니다.

<녹취> 허 장(기획재정부 서기관) : "갈 때 차 타는 게 한 시간 반, 올 때 한 시간 반 타고 가면서 영어같은 거 듣기도 하니까, 좀 피곤하긴 해도..."

눈길을 뚫고 두 시간 만에 다다른 정부 세종청사.

이렇게 출근 전쟁을 치르며 서울 등 수도권에서 통근버스를 이용해 세종시를 오가는 공무원은 2천여 명에 이릅니다.

전체 공무원 5천 5백여 명 가운데 3분의 1이 넘습니다.

<녹취> 권도엽(국토해양부 장관) : "올해는 세종시에서 처음맞는 새해여서 우리 마음가짐이 더욱 새롭습니다."

이런 다짐에도 공무원들의 얼굴에는 새 일터를 찾는 활기보다 낯설음과 고단함이 묻어납니다.

6백여 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 기능이 지방으로 이동하는 역사적인 장소가 된 세종청사.

이에 따라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시도 역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세종청사' 시대 원년을 맞아 안착과 성공의 조건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삿짐을 실은 화물차가 줄지어 도착합니다.

사무실 집기에 제자리를 찾아주고,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서류를 정리합니다.

직원들은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녹취> 김소희(국무총리실 주무관) : "새 청사여서 새롭고 좋고요, 또 이렇게 새 건물에서 일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녹취> 황일용(국무총리실 사무관) : "업무 추진하는데 약간의 비효율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좀 되고요."

구내식당 바깥까지 100여 미터를 길게 늘어선 줄, 점심 시간 역시 전쟁입니다.

청사 주변에 식당이 전혀 없다보니 매일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이러다보니 구내식당에선 음식이 부족한 경우마저 간혹 생깁니다.

<인터뷰> 백동섭(환경부 사무관) : "줄만 서는데 30분 이상 걸립니다. 걸어서 갈 데가 없으니까요. 전부 다 차를 이용하던지..."

오후 업무가 끝나면 곧바로 시작되는 퇴근 전쟁.

어둠 속에서 집으로 가는 통근버스를 찾기 위해 이 버스, 저 버스를 기웃거립니다.

<인터뷰> 허영락(기획재정부 주무관) : "(버스 놓치면) 대전, 이런 쪽에 여관이나 모텔이 있으니까 정 안 되면. 보통은 숙소 같이 이용하고 (동료한테) 부탁해서 들어가고 하는 것 같아요."

출퇴근용 버스는 모두 49대, 차량 임대에만 1년에 74억 원의 예산이 들어갑니다.

<녹취> 통근버스 기사 : "(낮에 보니까 차가 계속 서 있던데요?) 네, 서 있죠. 버스 기사들이 버스 운전을 해야 되는데 (공무원들) 출근시키고, 퇴근시키고, 그게 임무죠."

야근이나 회식이 사라진 풍경, 한 공무원은 하루 일과를 이렇게 말합니다.

<인터뷰> 정보미(공정거래위원회 사무관) : "아침에 출근할 걱정, 점심 먹을 걱정, 퇴근할 걱정 빼면 일 걱정, 업무 걱정은 언제 하려나?"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기획재정부와 공정위 등이 이전을 마쳤고, 올해에는 교과부와 문화부 등이 내년에는 국세청과 권익위 등이 옮기면 세종시는 정부기관 36곳에 공무원 만 2천여 명, 그리고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터전이 됩니다.

대한민국 행정 권력의 대이동, 그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녹취> 노무현(당시 대통령 후보/2002년) : "(신 행정수도는) 공약한 일이므로 의지를 가지고 반드시 실현해 내겠습니다."

<녹취> 윤영철(당시 헌법재판소장/2004년) : "신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헌법에 위반됩니다."

<녹취> 정운찬(전 국무총리/2010년 6월) : "수정안을 관철시키지 못한 데 대해서도 이번 안을 설계했던 책임자로서 전적으로 책임지겠습니다."

<녹취> 김황식(국무총리/지난달 27일) : "새로운 행정문화를 만들어간다는 긍지를 가지고 업무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렇게 건설 계획이 표류하는 사이 숙식과 교통, 여가 등 생활 기반시설 마련은 뒤로 밀렸습니다.

대형 크레인에 둘러싸여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청사 인근.

지난해 말 현재 세종시의 전체 공정률은 42.4%로, 이마저도 완공 기준이 아닌 예산 배정액까지 포함한 수치입니다.

<인터뷰> 이재홍(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됐습니다만, 준비가 일단 끝났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은 빠르게, 도시가 제대로 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사 이전 시기에 맞춰 입주가 이뤄진 유일한 아파트 단지.

<현장음> "(팀장님?) 왔어? (식사하셨어요?) 어휴, 안 먹었다. 너는 먹었어?"

국무총리실 직원 4명이 함께 동거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냉장고 안은 텅 비었고, 세간살이랄 것도 따로 없습니다.

<인터뷰> "와이프가 보면 안 되는데 이거. 정리를 잘 안 해서 이 정도죠. 속옷도 있고... (이게 지금 가지고 계신 세간살이 전부에요?) 네."

40대 후반에 서울에 부인과 두 자녀를 떼어놓고 시작한 자취 생활,

세 칸짜리 방이라 한 사람은 거실에서 잠을 청합니다.

<인터뷰> 송기진(국무총리실 서기관) : "(아내가) 세종시로 내려오는 것 자체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저한테 화도 많이 내고. 왜 공무원을 해 가지고 그렇게... 사명감에 불타고 있기 때문에 못 그만두고 있습니다."

며칠 있으면 첫째가 태어난다는 송지영 주무관은 만삭의 아내가 더욱 눈에 밟힙니다.

<인터뷰> 송지영(국무총리실 주무관) : "조금 일찍 퇴근해서 왔다갔다 하거나, 아니면 회사 중간에 잠깐 나갔다 오면 되는데 거리가 머니까 '아무래도 못갈 것 같다'고 할 때도 많고, 항상 미안합니다."

이 아파트 단지에는 6천 5백여 가구가 입주해 했지만, 상가는 물론 식당같은 편의시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아파트를 구했다면 사정이 좀 나은 편.

집을 구하지 못한 공무원들이 세종시 주변 다가구 주택 등으로 몰리면서 품귀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순형(부동산 중개업자) : "공급이 부족하고 그러다보니까 갑자기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지금은 전셋값이 거의 배로 올랐다고 볼까요."

학교 교실도 부족해 한 초등학교는 2학년부터 인근 고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선희(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 "(초등학교) 2학년들이 고등학교로 옮겨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불안하기도 해요. 얘가 내년에 2학년 되는데..."

야간 진료 병원도 거의 없어 지난 6개월 동안 세종시 환자의 90% 정도가 대전이나 천안 등 다른 지역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인터뷰> 유효림 : "제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되는데.. (왜 근처에 안 가시고 서울까지?) 아무래도 수도권 쪽으로 가야 저희가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까..."

세종청사까지 가야 하는 민원인들 입장에선 어떨까?

취재팀이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20분.

<녹취> "(세종시 세종청사 가려고 하거든요?) 오송역으로 가시는 거요?"

부산행 KTX에 오른 시각은 10시50분.

45분을 달려 충북 오송역에 도착합니다.

낮 시간대, 오송역에서 세종청사로 바로가는 BRT, 즉 셔틀버스 운행 횟수는 단 세 차례.

<녹취> 한건연(대학 교수) : "BRT 시간이 안 맞죠. 몇 번 안 다니니까. (오늘은 어떤 회의가 있으세요?) 국토해양부 회의가 있습니다."

<현장음> "일반버스 도착 (왔다 왔다!)"

버스로 다시 20여 분을 달려 마침내 도착한 행정타운.

집에서 서울역까지 걸린 시간을 빼고도 세종청사까지 꼬박 3시간이 걸렸습니다.

민원을 마치고 서울로 다시 돌아갈 경우 이동에만 6시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방에서 온 민원인들에게도 세종청사 가는 길은 지루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녹취> 정창두(경남 창원시) : "(설명회 듣고 집에까지 가시면?) 8시 되겠죠. 기차가 또 오후에 5시50분에 있더라고요. (그러면 설명회 듣는데 오늘 하루 다 보내시는 거네요?) 네. (안 좋으시겠어요?) 어쩔 수 없죠."

특히 국무회의나 국정감사에 따른 업무 비효율은 더욱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현재 장관급 이상이 참석하는 정기회의만 일주일에 네 번.

여기에 수시로 열리는 비정기 회의까지 포함해 세종청사는 '머리 따로, 몸 따로'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실제 세종청사 개청식 때도 5개 부처 기관장 가운데 유일하게 공정거래위원장 만이 모습을 보였습니다.

<녹취> 맹형규(행정안전부 장관) : "지금은 과도기라고 보면 돼요. 앞으로 우리들이 준비한 화상회의라든지, 영상 시스템이라든지 스마트 오피스를 이용하면 몸이 가지 않더라도 여기서 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세종청사 출범은 그 자체로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방 분권 실현의 첫 출발을 의미합니다.

<인터뷰> 변창흠(교수/세종대 행정학) : "수도권 중심, 서울 중심의 국토 공간 구조, 또 권력 구조가 이제 지방을 중심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원년이 됐다는 것 만으로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지 않은가."

여기에 최고의 환경도시를 지향하는 만큼 새로운 형태의 행정과 도시 모델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공무원들의 조기 정착을 위한 정주 여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변창흠(교수/세종대 행정학) : "함께 가꾸어가야 할 도시라는 점에서 국민들 전체의 애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도시가 정착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 제도적인 지원도 따라야 하고..."

세종청사 이전과 함께 하나하나 현판을 내린 과천청사.

지난 1986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처음 입주한 뒤 30년 내내 고도성장 시대의 두뇌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렇게 한국 경제의 영욕을 뒤로한 채 과천 시대는 저물고, 바톤을 이어받은 세종청사는 새로운 도약이란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인터뷰> 박재완(기획재정부 장관) : "한국 경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던 과천시대를 마감하고, 세종시에 가서 새로운 도약으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10년 논란 끝에 드디어 닻을 올린 세종청사.

불안과 걱정을 딛고 지역 균형 발전과 새로운 행정문화의 중심지로 안착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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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청사’ 원년의 그림자
    • 입력 2013-01-07 06:14:29
    • 수정2013-01-07 09:25:24
    취재파일K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해 첫 출근길.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 공무원들이 하나 둘 45인승 통근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녹취> 박정준(환경부 사무관) : "(예전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나오죠. 이걸 놓치면 방법이 없다는 걸 다 알기 때문에.." 버스가 향하는 곳은 세종시 정부청사. 버스 안에선 하나같이 모자란 잠을 보충합니다. <녹취> 허 장(기획재정부 서기관) : "갈 때 차 타는 게 한 시간 반, 올 때 한 시간 반 타고 가면서 영어같은 거 듣기도 하니까, 좀 피곤하긴 해도..." 눈길을 뚫고 두 시간 만에 다다른 정부 세종청사. 이렇게 출근 전쟁을 치르며 서울 등 수도권에서 통근버스를 이용해 세종시를 오가는 공무원은 2천여 명에 이릅니다. 전체 공무원 5천 5백여 명 가운데 3분의 1이 넘습니다. <녹취> 권도엽(국토해양부 장관) : "올해는 세종시에서 처음맞는 새해여서 우리 마음가짐이 더욱 새롭습니다." 이런 다짐에도 공무원들의 얼굴에는 새 일터를 찾는 활기보다 낯설음과 고단함이 묻어납니다. 6백여 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 기능이 지방으로 이동하는 역사적인 장소가 된 세종청사. 이에 따라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시도 역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세종청사' 시대 원년을 맞아 안착과 성공의 조건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삿짐을 실은 화물차가 줄지어 도착합니다. 사무실 집기에 제자리를 찾아주고,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서류를 정리합니다. 직원들은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녹취> 김소희(국무총리실 주무관) : "새 청사여서 새롭고 좋고요, 또 이렇게 새 건물에서 일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녹취> 황일용(국무총리실 사무관) : "업무 추진하는데 약간의 비효율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좀 되고요." 구내식당 바깥까지 100여 미터를 길게 늘어선 줄, 점심 시간 역시 전쟁입니다. 청사 주변에 식당이 전혀 없다보니 매일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이러다보니 구내식당에선 음식이 부족한 경우마저 간혹 생깁니다. <인터뷰> 백동섭(환경부 사무관) : "줄만 서는데 30분 이상 걸립니다. 걸어서 갈 데가 없으니까요. 전부 다 차를 이용하던지..." 오후 업무가 끝나면 곧바로 시작되는 퇴근 전쟁. 어둠 속에서 집으로 가는 통근버스를 찾기 위해 이 버스, 저 버스를 기웃거립니다. <인터뷰> 허영락(기획재정부 주무관) : "(버스 놓치면) 대전, 이런 쪽에 여관이나 모텔이 있으니까 정 안 되면. 보통은 숙소 같이 이용하고 (동료한테) 부탁해서 들어가고 하는 것 같아요." 출퇴근용 버스는 모두 49대, 차량 임대에만 1년에 74억 원의 예산이 들어갑니다. <녹취> 통근버스 기사 : "(낮에 보니까 차가 계속 서 있던데요?) 네, 서 있죠. 버스 기사들이 버스 운전을 해야 되는데 (공무원들) 출근시키고, 퇴근시키고, 그게 임무죠." 야근이나 회식이 사라진 풍경, 한 공무원은 하루 일과를 이렇게 말합니다. <인터뷰> 정보미(공정거래위원회 사무관) : "아침에 출근할 걱정, 점심 먹을 걱정, 퇴근할 걱정 빼면 일 걱정, 업무 걱정은 언제 하려나?"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기획재정부와 공정위 등이 이전을 마쳤고, 올해에는 교과부와 문화부 등이 내년에는 국세청과 권익위 등이 옮기면 세종시는 정부기관 36곳에 공무원 만 2천여 명, 그리고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터전이 됩니다. 대한민국 행정 권력의 대이동, 그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녹취> 노무현(당시 대통령 후보/2002년) : "(신 행정수도는) 공약한 일이므로 의지를 가지고 반드시 실현해 내겠습니다." <녹취> 윤영철(당시 헌법재판소장/2004년) : "신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헌법에 위반됩니다." <녹취> 정운찬(전 국무총리/2010년 6월) : "수정안을 관철시키지 못한 데 대해서도 이번 안을 설계했던 책임자로서 전적으로 책임지겠습니다." <녹취> 김황식(국무총리/지난달 27일) : "새로운 행정문화를 만들어간다는 긍지를 가지고 업무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렇게 건설 계획이 표류하는 사이 숙식과 교통, 여가 등 생활 기반시설 마련은 뒤로 밀렸습니다. 대형 크레인에 둘러싸여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청사 인근. 지난해 말 현재 세종시의 전체 공정률은 42.4%로, 이마저도 완공 기준이 아닌 예산 배정액까지 포함한 수치입니다. <인터뷰> 이재홍(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됐습니다만, 준비가 일단 끝났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은 빠르게, 도시가 제대로 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사 이전 시기에 맞춰 입주가 이뤄진 유일한 아파트 단지. <현장음> "(팀장님?) 왔어? (식사하셨어요?) 어휴, 안 먹었다. 너는 먹었어?" 국무총리실 직원 4명이 함께 동거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냉장고 안은 텅 비었고, 세간살이랄 것도 따로 없습니다. <인터뷰> "와이프가 보면 안 되는데 이거. 정리를 잘 안 해서 이 정도죠. 속옷도 있고... (이게 지금 가지고 계신 세간살이 전부에요?) 네." 40대 후반에 서울에 부인과 두 자녀를 떼어놓고 시작한 자취 생활, 세 칸짜리 방이라 한 사람은 거실에서 잠을 청합니다. <인터뷰> 송기진(국무총리실 서기관) : "(아내가) 세종시로 내려오는 것 자체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저한테 화도 많이 내고. 왜 공무원을 해 가지고 그렇게... 사명감에 불타고 있기 때문에 못 그만두고 있습니다." 며칠 있으면 첫째가 태어난다는 송지영 주무관은 만삭의 아내가 더욱 눈에 밟힙니다. <인터뷰> 송지영(국무총리실 주무관) : "조금 일찍 퇴근해서 왔다갔다 하거나, 아니면 회사 중간에 잠깐 나갔다 오면 되는데 거리가 머니까 '아무래도 못갈 것 같다'고 할 때도 많고, 항상 미안합니다." 이 아파트 단지에는 6천 5백여 가구가 입주해 했지만, 상가는 물론 식당같은 편의시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아파트를 구했다면 사정이 좀 나은 편. 집을 구하지 못한 공무원들이 세종시 주변 다가구 주택 등으로 몰리면서 품귀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순형(부동산 중개업자) : "공급이 부족하고 그러다보니까 갑자기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지금은 전셋값이 거의 배로 올랐다고 볼까요." 학교 교실도 부족해 한 초등학교는 2학년부터 인근 고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선희(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 "(초등학교) 2학년들이 고등학교로 옮겨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불안하기도 해요. 얘가 내년에 2학년 되는데..." 야간 진료 병원도 거의 없어 지난 6개월 동안 세종시 환자의 90% 정도가 대전이나 천안 등 다른 지역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인터뷰> 유효림 : "제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되는데.. (왜 근처에 안 가시고 서울까지?) 아무래도 수도권 쪽으로 가야 저희가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까..." 세종청사까지 가야 하는 민원인들 입장에선 어떨까? 취재팀이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20분. <녹취> "(세종시 세종청사 가려고 하거든요?) 오송역으로 가시는 거요?" 부산행 KTX에 오른 시각은 10시50분. 45분을 달려 충북 오송역에 도착합니다. 낮 시간대, 오송역에서 세종청사로 바로가는 BRT, 즉 셔틀버스 운행 횟수는 단 세 차례. <녹취> 한건연(대학 교수) : "BRT 시간이 안 맞죠. 몇 번 안 다니니까. (오늘은 어떤 회의가 있으세요?) 국토해양부 회의가 있습니다." <현장음> "일반버스 도착 (왔다 왔다!)" 버스로 다시 20여 분을 달려 마침내 도착한 행정타운. 집에서 서울역까지 걸린 시간을 빼고도 세종청사까지 꼬박 3시간이 걸렸습니다. 민원을 마치고 서울로 다시 돌아갈 경우 이동에만 6시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방에서 온 민원인들에게도 세종청사 가는 길은 지루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녹취> 정창두(경남 창원시) : "(설명회 듣고 집에까지 가시면?) 8시 되겠죠. 기차가 또 오후에 5시50분에 있더라고요. (그러면 설명회 듣는데 오늘 하루 다 보내시는 거네요?) 네. (안 좋으시겠어요?) 어쩔 수 없죠." 특히 국무회의나 국정감사에 따른 업무 비효율은 더욱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현재 장관급 이상이 참석하는 정기회의만 일주일에 네 번. 여기에 수시로 열리는 비정기 회의까지 포함해 세종청사는 '머리 따로, 몸 따로'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실제 세종청사 개청식 때도 5개 부처 기관장 가운데 유일하게 공정거래위원장 만이 모습을 보였습니다. <녹취> 맹형규(행정안전부 장관) : "지금은 과도기라고 보면 돼요. 앞으로 우리들이 준비한 화상회의라든지, 영상 시스템이라든지 스마트 오피스를 이용하면 몸이 가지 않더라도 여기서 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세종청사 출범은 그 자체로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방 분권 실현의 첫 출발을 의미합니다. <인터뷰> 변창흠(교수/세종대 행정학) : "수도권 중심, 서울 중심의 국토 공간 구조, 또 권력 구조가 이제 지방을 중심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원년이 됐다는 것 만으로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지 않은가." 여기에 최고의 환경도시를 지향하는 만큼 새로운 형태의 행정과 도시 모델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공무원들의 조기 정착을 위한 정주 여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변창흠(교수/세종대 행정학) : "함께 가꾸어가야 할 도시라는 점에서 국민들 전체의 애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도시가 정착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 제도적인 지원도 따라야 하고..." 세종청사 이전과 함께 하나하나 현판을 내린 과천청사. 지난 1986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처음 입주한 뒤 30년 내내 고도성장 시대의 두뇌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렇게 한국 경제의 영욕을 뒤로한 채 과천 시대는 저물고, 바톤을 이어받은 세종청사는 새로운 도약이란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인터뷰> 박재완(기획재정부 장관) : "한국 경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던 과천시대를 마감하고, 세종시에 가서 새로운 도약으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10년 논란 끝에 드디어 닻을 올린 세종청사. 불안과 걱정을 딛고 지역 균형 발전과 새로운 행정문화의 중심지로 안착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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