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교정’이라는 이름의 ‘폭력’

입력 2015.05.10 (23:36) 수정 2015.05.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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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녹취> "정말 운동만 가르치는 곳인줄 알았더니 그렇게 애를.. 어떻게 동네 한복판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녹취> "갈비뼈가 몇 번씩 부러졌다 붙었다.. 정말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녹취> "훈육이 아니라 육체적인 체벌인거죠."

<녹취> "전문성을 갖지 않은 사람한테 맡긴 것이고.."

<오프닝>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들의 장애극복과 사회적응을 돕기 위해서 체육활동을 많이 시킵니다.

특히 심신을 고루 단련할 수 있다고 알려진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요.

한 어머니가 장애가 있는 20대 아들을 이런 태권도장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합숙훈련을 받던 아들은 두 달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리포트>

주인을 잃은 방에서 아들의 사진을 꺼내보는 어머니.

아들 26살 고모씨는 정신지체 3급의 장애가 있었지만, 활달한 성품에, 남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키 182센티미터, 몸무게 78킬로그램으로 건장한 체격이었던 고씨.

하지만, 지난해 10월 서울 강동구의 한 태권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을 땐 앙상한 주검이었습니다.

두 달 사이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 넘게 빠졌고 온 몸에는 피멍이 가득했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어머니 : "갈비뼈 다 나가고 죽었을 때는 온몸이 괴사 다하고 눈이 퉁퉁 부어서 한쪽 눈은 감지도 못하고 갔어요. 그런 모습을 어떻게 자기들은 보고 있었냐는 말이에요. 그게 사람이냐고요."

고씨가 틱장애 교정을 위해 태권도장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7월 초순.

어렸을 때 고씨를 가르쳤던 김 모 관장이 운동으로 장애를 교정해보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어머니는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김관장의 말을 믿었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어머니 : "저는 (관장이) 장애인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믿고 맡겼거든요. 장애인지도자 자격증이 있으면 좀더 세심하게 아이의 특성을 잘 살펴서 지도를 했어야 했었는데 어떻게 폭력으로 아이를 그렇게 지도하려고 했는지.."

고씨에 대한 장애교정 훈련은 한달이 지나면서 합숙 훈련으로 바뀌었습니다.

관장 김씨는 고씨가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훈련 효과가 떨어진다면서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고씨가 외부와 단절되자 폭력이 자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을 맡았던 서울 강동경찰서의 수사기록입니다.

관장 김씨는 9월 중순부터 각목 등을 이용해 고씨를 여러 차례 때렸습니다.

고씨가 훈련을 따르지 않고 소란을 피운다는 이유였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 "틱장애라는게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난폭한 행동을 하거든요. 제지를 하는데 말을 안들으니까 엎드리게 해놓고 봉으로 때리기도 하고, 또 뺨을 때리기도 하고.."

합숙 훈련을 받는 동안 고씨의 어머니는 고씨와 사범들의 식사를 만들어 매일 가져다주었지만 사범들의 제지로 아들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안부를 물을 때 마다 매번 '잘 지내고 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고씨는 두 달동안 계속된 폭력에 온 몸에 피멍이 들었고 갈비뼈 6대가 부러진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어머니 :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이미 똥물 다 토하고 기지도 못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날 저녁에 나한테 음식을 받으면서 잘있다고 하느냐고요."

고 씨가 숨지기 나흘 전, 김 관장은 해외 출장을 떠났습니다.

다른 사범들은 크게 다친 고씨를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결국 고씨는 태권도장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서류입니다.

고씨의 직접 사인은 상처의 염증이 악화돼서 발생한 패혈증입니다.

제때 상처만 치료했어도 목숨을 건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부검 서류에는 고씨의 시신에서 신선한 출혈이 확인됐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숨지기 직전까지 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녹취> 국과수 관계자 : "신선하다는건 2,3일 이내겠죠. (폭행당한 뒤에) 시간이 오래되지 않은 출혈이라는거죠. 사망당시하고 연관된 외력의 흔적이다."

목숨까지 앗아간 폭력적인 장애 교정 훈련, 취재진은 당사자들의 해명을 들어보기 위해 태권도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도장은 지난 3월 문을 닫았습니다.

김 관장은 고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아 수감 중입니다.

유기 치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다른 관장들과 사범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녹취> "000 사범님이시죠? (네, 어디시죠 안녕하세요.) KBS 이슬기 기자라고 합니다."

취재진은 재판기록으로 제출된 관장과 사범들의 SNS 대화를 입수했습니다.

고씨가 숨지기 이틀전, 다른 관장이 해외 출장 중인 김 관장에게 고씨의 상태가 메롱이라고 보고합니다.

김 관장은 메롱이 돼야 고씨가 새로운 사람으로 되살아난다고 답합니다.

장애 교정에 대한 김 관장의 왜곡된 시각은 구속 직전 고씨 어머니와의 통화에서도 드러납니다.

<녹취> 김모 관장 : "너 진짜 맞을래. 자기가 잘못한 것은 맞겠대. 그래 이 00야 니도 남자 00니까 엎드려 00야 그래서 쳤어요. 끙끙 앓았다는 것은 나는 몰라요."

전문가들은 장애를 폭력으로 교정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유리(교수/이화여대 특수교육과) : "이해하기가 힘들고요. 육체적인 체벌로 그런 활동들이 변화될 수 있다고 하면 이 세상의 교육은 별로 필요할 것 같지 않거든요."

김 관장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자격증을 딸 수 있었을까.

장애인 태권자 지도자 자격증은 장애인태권도협회에서 발급합니다.

하루에 8시간씩 이틀 동안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하면 자격증을 딸 수 있습니다.

실기 교육은 20시간의 봉사활동 실적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교육만 받으면 장애인 지도가 가능한 것일까.

장애인태권도협회를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취재를 거부하던 협회는 시험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녹취> 장애인 태권도 협회 관계자(음성변조) : "출석이라든가 그 다음 시험을 봐서도 60점이 안 되면 떨어지고. 그건 뭐 당연한 거고.."

취재진이 입수한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시험 문제지입니다.

시험 문제는 객관식 20문항. 이 가운데 12개, 즉 백 점 만점에 60점만 넘으면 합격입니다.

전문가가 시험 문제를 분석했습니다.

장애인 올림픽의 명칭, 장애인 체육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를 묻는 등 장애인 교육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제가 절반이 넘었고 특수교육과 관련있는 문제는 7개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터뷰> 김유리(교수/이화여대 특수교육과) : "문항들이 너무 기초적인 지식이고 정말 태권도 사범으로서 장애학생을 지도하는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묻는 문항으로서는 변별력도 떨어지고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응시자 가운데 95%가 합격했고 지난 3년 동안 천 5백여명의 태권도 사범이 이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인터뷰> 김유리(교수/이화여대 특수교육과) : "(태권도 교육은) 말로 하는 설명뿐만 아니라 같이 신체적인 접촉을 하면서 해야 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학생이 상해를 당할 수도 있고.."

얼마전 태권도는 오는 2020년 도쿄 장애인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은 갖춰지지 않은 실정입니다.

장애인 태권도의 경우 장애인 태권도 대회는 있지만 장애인을 가르치는 데 대한 구체적인 교안은 없습니다.

<인터뷰> 이종갑(국기원 기획전략팀장) : "장애유형이 여러가지로 다양하다 보니까 어느 한 유형에 따라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장애인태권도도 마찬가지지만 무도 태권도(생활체육) 부분들에 조금 미흡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생활 체육을 위해 태권도장을 찾는 장애인은 늘고 있지만 정작 태권도 관장들은 어떻게 장애인을 가르쳐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녹취> 일선 태권도 관장 : "실제 여기도 조금 둔한 친구들이 있어요. 조금 정신적인 치료를 받는 친구도 있거든요. 당연히 떨어지는 애들이 (지도가) 조금 어렵죠."

아이의 몸에 시커먼 멍자국이 선명합니다.

지난 1월 지적장애 3급인 한 모군이 태권도장에서 맞은 흔적입니다.

<인터뷰> 한상윤(피해 아동 아버지) : "(지적장애가 있으면) 맞아도 웃으면서 다니고 때린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고 똑같이 행동합니다. 신고를 해야 한다 이런건 전혀 의식을 못합니다."

한군을 때린 관장 역시 훈육이 목적이었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인터뷰> 남영일(경정/대구 성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 : "아이의 몸에 손을 댄 건 사실이고 그로 인해서 멍이라는 상처가 있어서 형사적으로는 처벌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사건이었죠."

지난 2013년에도 경북 구미의 한 태권도장에서 40대 관장이 지적장애 3급인 11살 김모양을 골프채로 10여 번 때려 크게 다치게 하는 사건이 있었고..

<인터뷰> 피해학생 부모(지난 2013년) : "손이 떨려서, 저는 지금 죽을 때까지 이 기억은 안 잊혀질 것 같고, 우리 00이도 평생 갈 것 같습니다."

지난 2005년에는 태권도 관장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훈련을 받던 지적 장애 5급 23살 권모씨가 관장에게 머리를 맞아 숨졌습니다.

대소변을 제대로 못가린다는 것이 폭행의 이유였습니다.

역시, 훈육을 앞세운 폭력에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겁니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대한태권도협회가 앞장서서 사범들에게 전문적인 장애인 지도자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인터뷰> 박주한(교수/서울여대 체육학과) :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한테 부모는 장애학생을 맡겨야 되고 또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치료의 기능을 해야 되는데 사실은 그런 전문성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 맡긴 것이고...."

아들을 가슴에 묻고 지난 6개월을 눈물로 보낸 어머니.

장애에 대한 무지가 참혹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인터뷰> 피해자 어머니 : "얘 때문에 웃으며 살았는데 저는 이제 앞으로 웃을 일도 없어요. 장애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애를 맡아서 한다는 건 이제는 안되는 거에요."


[연관 기사]

☞ [디·퍼] 태권도장에서 발견된 한 장애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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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교정’이라는 이름의 ‘폭력’
    • 입력 2015-05-10 23:37:17
    • 수정2015-05-11 00:10:52
    취재파일K
<프롤로그>

<녹취> "정말 운동만 가르치는 곳인줄 알았더니 그렇게 애를.. 어떻게 동네 한복판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녹취> "갈비뼈가 몇 번씩 부러졌다 붙었다.. 정말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녹취> "훈육이 아니라 육체적인 체벌인거죠."

<녹취> "전문성을 갖지 않은 사람한테 맡긴 것이고.."

<오프닝>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들의 장애극복과 사회적응을 돕기 위해서 체육활동을 많이 시킵니다.

특히 심신을 고루 단련할 수 있다고 알려진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요.

한 어머니가 장애가 있는 20대 아들을 이런 태권도장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합숙훈련을 받던 아들은 두 달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리포트>

주인을 잃은 방에서 아들의 사진을 꺼내보는 어머니.

아들 26살 고모씨는 정신지체 3급의 장애가 있었지만, 활달한 성품에, 남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키 182센티미터, 몸무게 78킬로그램으로 건장한 체격이었던 고씨.

하지만, 지난해 10월 서울 강동구의 한 태권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을 땐 앙상한 주검이었습니다.

두 달 사이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 넘게 빠졌고 온 몸에는 피멍이 가득했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어머니 : "갈비뼈 다 나가고 죽었을 때는 온몸이 괴사 다하고 눈이 퉁퉁 부어서 한쪽 눈은 감지도 못하고 갔어요. 그런 모습을 어떻게 자기들은 보고 있었냐는 말이에요. 그게 사람이냐고요."

고씨가 틱장애 교정을 위해 태권도장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7월 초순.

어렸을 때 고씨를 가르쳤던 김 모 관장이 운동으로 장애를 교정해보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어머니는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김관장의 말을 믿었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어머니 : "저는 (관장이) 장애인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믿고 맡겼거든요. 장애인지도자 자격증이 있으면 좀더 세심하게 아이의 특성을 잘 살펴서 지도를 했어야 했었는데 어떻게 폭력으로 아이를 그렇게 지도하려고 했는지.."

고씨에 대한 장애교정 훈련은 한달이 지나면서 합숙 훈련으로 바뀌었습니다.

관장 김씨는 고씨가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훈련 효과가 떨어진다면서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고씨가 외부와 단절되자 폭력이 자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을 맡았던 서울 강동경찰서의 수사기록입니다.

관장 김씨는 9월 중순부터 각목 등을 이용해 고씨를 여러 차례 때렸습니다.

고씨가 훈련을 따르지 않고 소란을 피운다는 이유였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 "틱장애라는게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난폭한 행동을 하거든요. 제지를 하는데 말을 안들으니까 엎드리게 해놓고 봉으로 때리기도 하고, 또 뺨을 때리기도 하고.."

합숙 훈련을 받는 동안 고씨의 어머니는 고씨와 사범들의 식사를 만들어 매일 가져다주었지만 사범들의 제지로 아들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안부를 물을 때 마다 매번 '잘 지내고 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고씨는 두 달동안 계속된 폭력에 온 몸에 피멍이 들었고 갈비뼈 6대가 부러진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어머니 :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이미 똥물 다 토하고 기지도 못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날 저녁에 나한테 음식을 받으면서 잘있다고 하느냐고요."

고 씨가 숨지기 나흘 전, 김 관장은 해외 출장을 떠났습니다.

다른 사범들은 크게 다친 고씨를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결국 고씨는 태권도장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서류입니다.

고씨의 직접 사인은 상처의 염증이 악화돼서 발생한 패혈증입니다.

제때 상처만 치료했어도 목숨을 건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부검 서류에는 고씨의 시신에서 신선한 출혈이 확인됐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숨지기 직전까지 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녹취> 국과수 관계자 : "신선하다는건 2,3일 이내겠죠. (폭행당한 뒤에) 시간이 오래되지 않은 출혈이라는거죠. 사망당시하고 연관된 외력의 흔적이다."

목숨까지 앗아간 폭력적인 장애 교정 훈련, 취재진은 당사자들의 해명을 들어보기 위해 태권도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도장은 지난 3월 문을 닫았습니다.

김 관장은 고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아 수감 중입니다.

유기 치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다른 관장들과 사범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녹취> "000 사범님이시죠? (네, 어디시죠 안녕하세요.) KBS 이슬기 기자라고 합니다."

취재진은 재판기록으로 제출된 관장과 사범들의 SNS 대화를 입수했습니다.

고씨가 숨지기 이틀전, 다른 관장이 해외 출장 중인 김 관장에게 고씨의 상태가 메롱이라고 보고합니다.

김 관장은 메롱이 돼야 고씨가 새로운 사람으로 되살아난다고 답합니다.

장애 교정에 대한 김 관장의 왜곡된 시각은 구속 직전 고씨 어머니와의 통화에서도 드러납니다.

<녹취> 김모 관장 : "너 진짜 맞을래. 자기가 잘못한 것은 맞겠대. 그래 이 00야 니도 남자 00니까 엎드려 00야 그래서 쳤어요. 끙끙 앓았다는 것은 나는 몰라요."

전문가들은 장애를 폭력으로 교정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유리(교수/이화여대 특수교육과) : "이해하기가 힘들고요. 육체적인 체벌로 그런 활동들이 변화될 수 있다고 하면 이 세상의 교육은 별로 필요할 것 같지 않거든요."

김 관장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자격증을 딸 수 있었을까.

장애인 태권자 지도자 자격증은 장애인태권도협회에서 발급합니다.

하루에 8시간씩 이틀 동안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하면 자격증을 딸 수 있습니다.

실기 교육은 20시간의 봉사활동 실적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교육만 받으면 장애인 지도가 가능한 것일까.

장애인태권도협회를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취재를 거부하던 협회는 시험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녹취> 장애인 태권도 협회 관계자(음성변조) : "출석이라든가 그 다음 시험을 봐서도 60점이 안 되면 떨어지고. 그건 뭐 당연한 거고.."

취재진이 입수한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시험 문제지입니다.

시험 문제는 객관식 20문항. 이 가운데 12개, 즉 백 점 만점에 60점만 넘으면 합격입니다.

전문가가 시험 문제를 분석했습니다.

장애인 올림픽의 명칭, 장애인 체육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를 묻는 등 장애인 교육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제가 절반이 넘었고 특수교육과 관련있는 문제는 7개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터뷰> 김유리(교수/이화여대 특수교육과) : "문항들이 너무 기초적인 지식이고 정말 태권도 사범으로서 장애학생을 지도하는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묻는 문항으로서는 변별력도 떨어지고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응시자 가운데 95%가 합격했고 지난 3년 동안 천 5백여명의 태권도 사범이 이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인터뷰> 김유리(교수/이화여대 특수교육과) : "(태권도 교육은) 말로 하는 설명뿐만 아니라 같이 신체적인 접촉을 하면서 해야 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학생이 상해를 당할 수도 있고.."

얼마전 태권도는 오는 2020년 도쿄 장애인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은 갖춰지지 않은 실정입니다.

장애인 태권도의 경우 장애인 태권도 대회는 있지만 장애인을 가르치는 데 대한 구체적인 교안은 없습니다.

<인터뷰> 이종갑(국기원 기획전략팀장) : "장애유형이 여러가지로 다양하다 보니까 어느 한 유형에 따라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장애인태권도도 마찬가지지만 무도 태권도(생활체육) 부분들에 조금 미흡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생활 체육을 위해 태권도장을 찾는 장애인은 늘고 있지만 정작 태권도 관장들은 어떻게 장애인을 가르쳐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녹취> 일선 태권도 관장 : "실제 여기도 조금 둔한 친구들이 있어요. 조금 정신적인 치료를 받는 친구도 있거든요. 당연히 떨어지는 애들이 (지도가) 조금 어렵죠."

아이의 몸에 시커먼 멍자국이 선명합니다.

지난 1월 지적장애 3급인 한 모군이 태권도장에서 맞은 흔적입니다.

<인터뷰> 한상윤(피해 아동 아버지) : "(지적장애가 있으면) 맞아도 웃으면서 다니고 때린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고 똑같이 행동합니다. 신고를 해야 한다 이런건 전혀 의식을 못합니다."

한군을 때린 관장 역시 훈육이 목적이었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인터뷰> 남영일(경정/대구 성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 : "아이의 몸에 손을 댄 건 사실이고 그로 인해서 멍이라는 상처가 있어서 형사적으로는 처벌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사건이었죠."

지난 2013년에도 경북 구미의 한 태권도장에서 40대 관장이 지적장애 3급인 11살 김모양을 골프채로 10여 번 때려 크게 다치게 하는 사건이 있었고..

<인터뷰> 피해학생 부모(지난 2013년) : "손이 떨려서, 저는 지금 죽을 때까지 이 기억은 안 잊혀질 것 같고, 우리 00이도 평생 갈 것 같습니다."

지난 2005년에는 태권도 관장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훈련을 받던 지적 장애 5급 23살 권모씨가 관장에게 머리를 맞아 숨졌습니다.

대소변을 제대로 못가린다는 것이 폭행의 이유였습니다.

역시, 훈육을 앞세운 폭력에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겁니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대한태권도협회가 앞장서서 사범들에게 전문적인 장애인 지도자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인터뷰> 박주한(교수/서울여대 체육학과) :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한테 부모는 장애학생을 맡겨야 되고 또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치료의 기능을 해야 되는데 사실은 그런 전문성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 맡긴 것이고...."

아들을 가슴에 묻고 지난 6개월을 눈물로 보낸 어머니.

장애에 대한 무지가 참혹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인터뷰> 피해자 어머니 : "얘 때문에 웃으며 살았는데 저는 이제 앞으로 웃을 일도 없어요. 장애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애를 맡아서 한다는 건 이제는 안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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