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무너진 ‘탈북자의 꿈’

입력 2007.02.28 (09:10)

<앵커 멘트>

전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의 여성 탈북자가 살해돼 암매장된 충격적인 사건 어제 전해드렸는데요, 숨진 이 씨는 지난 2003년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이듬해 2004년 7월 어렵게 남한 땅에 올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온지 2년 반 만에 남한에서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윤영란 기자, 이번 사건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을텐데요?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숨진 이 씨와 가깝게 지내던 한 탈북여성은 이 씨가 부잣집남자와 결혼해 잘사는 줄만 알았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남한에 빨리 정착해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데려오고 싶어하던 이씨. 하지만 결혼 생활 넉달만에 남편에게 살해당하면서 모든 꿈이 물거품이 돼 버렸습니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어야 할 이 부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광주광역시 외곽, 인적이 드문 강가입니다. 지난 26일 이곳에서 탈북여성인 27살 이 모 씨의 시신 발굴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1미터 정도 땅 속에서 나온 큰 여행가방.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이는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 김 모씨였습니다.

<인터뷰> 위성승 경사 (광주 동부경찰서) : “(이씨가) 동네 호프집 그런 술집인데, 남편입장에서는 자기 부인이 술집을 나가는 것에 대해서 의심을 했나 봐요. (그 때문에) 당일 새벽에 서로 언쟁을 하다가......”

범행 2주 만에 자신의 모든 범행을 자백하며, 경찰에 자수한 김씨. 그는 아내가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데에 불만을 품고, 부부싸움도중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인터뷰> 위성승 경사 (광주 동부경찰서) : “18일경 새벽에 약 한 시간 정도 집에서 떨어진 곳에 차 트렁크에 싣고 혼자 (시신을) 유기한 후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가족하고 상담해서 자수를 하게 된 거죠.”

사건이 일어난 지난 13일 새벽, 일을 마친 후 늦게 귀가하는 아내를 나무라며, 부부싸움을 했다는 김씨 부부. 이웃주민들은 이 부부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데요,

<인터뷰> 이웃주민 : “새벽에 싸우니까 우리는 부부싸움인 줄 알고 안 내다봤죠.”

<인터뷰> 이웃주민 : “명절(연휴) 3일전인가 크게 싸웠어요. 새벽에......”

부인 이 씨는 북한 아이스하키 대표선수 출신으로 지난 2003년 북한을 탈출해, 2004년 어렵게 남한 땅을 찾았는데요, 국내에서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새 삶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25살의 꿈 많은 탈북 처녀가 살아가기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2월 성형외과 원장이라고 접근한 사기범에게 속아 정착금 3천만 원 가량을 날려버렸고, 경제적인 이유로 선수생활도 접었습니다.

이어 이 씨는 석 달 뒤 맞선을 통해 9살 연상의 남편 김 씨를 만나게 됐는데요, 친구들은 ‘더 알아보고 결혼하라’며 말렸지만, 이미 그녀는 임신 3개월이었습니다.

<인터뷰> 이 씨 친구 (탈북여성, 음성변조) : “그 남자가 제주도에서 자영업을 조그맣게 하고, 광주의 중소기업 부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집안도 괜찮게 살고 벌이도 괜찮다. 한 달에 오백만원 넘게 번다. 사람 괜찮고, 자기한테 잘해주고......”

그렇게 이 씨가 좋은 남자를 만나 잘 살고 있겠거니 믿었던 친구들. 가끔 통화할 때도 잘 지내고 있다는 이 씨의 얘기를 그대로 믿었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이 씨친구 (탈북여성, 음성변조) : “(단칸방에 사는 거 몰랐나요?) 네. 몰랐어요. 분가했다는 것만 알고, 한옥 같은 거 시어머니가 팔아서 아파트 사준다고 얘기했었거든요.”

하지만 결혼생활도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이 씨는 올해 북한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고 오기위해 노력했고, 2004년에는 한차례 시도까지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결국 이 씨는 호프집 일을 해야 했고 이런 와중에 남편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위성승 경사 (광주 동부경찰서) : “조금 평범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가정적으로 금전적이라던가......”

한창 신혼에 단꿈에 빠져있어야 할 이들 부부, 하지만 결혼 넉 달 만에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감정을 풀지 못했고, 결국 돌이킬 수없는 비극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망 2주 만에야 차려진 고 이 씨의 빈소입니다. 고인의 빈소는 가족대신 이씨처럼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해 살고있는 이들이 그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충격에 빠져있었는데요

<인터뷰>이 씨 친구 (탈북여성, 음성변조) : “왜 죽여요. 왜 죽여. 멀쩡한 애를... 아직 앞날이 창창한 애를. 아직 삼십도 안 먹은 애를... 그것도 한평생을 믿고 살겠노라고 결혼한 지 신랑한테 그렇게 비참한 죽임을 당했으니까...얼마나 억울해요.”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이 씨와 통화를 했다는 이 친구는 아직도 이씨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터뷰>이 씨 친구 (탈북여성, 음성변조) : “2월 8일인가, 10일인가 통화를 했어요. 그때 통화하면서 이씨가 ‘3월초나 중순쯤에 서울에 올라오겠다고, 그 때 얼굴 보고, 밥이나 먹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그게 마지막 통화였어요. "

<인터뷰>이 씨 친구 (탈북여성, 음성변조) : “좋은 데로 시집간다 그래서 정말 축하해 주고, 결혼 안한 친구들은 부러워했는데, 너무 외로웠을 거라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파요, 그게 마음에 걸려요. 마지막까지도 정말 외로웠겠구나. 아무도 없고......”

이 씨의 친구들은 특히 명절까지 있었는데도 가족들이 연고도 없이 행방이 묘연한 며느리를 찾지않은 데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이 씨 친구 (탈북여성, 음성변조) : “구정이나 안 꼈으면 말을 안 해요. 13일 날 죽였다면서요. 그리고 18일 날 묻었다면서요. 얘가 오갈 데 없는 애인데, 명절에 어딜 가겠어요. 갈 데도 없는 앤데, 왜 애를 안 찾았냐는 말이에요.”

빈소를 방문한 이들 가운데는 이 씨에게 닥친 불행이 남이야기 같지 않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인터뷰>탈북여성 (음성변조) : “내 친구 같은 경우는 매를 많이 맞고 살아요. 형편없이 맞고 살아요. 그렇지만, 여기에는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매를 맞아도 할 수 없잖아요.”

<인터뷰> 탈북남성 (음성변조) : “우리도 살자고 왔거든요. 우리가 맨 처음에 믿고 생각하고 왔던 사회하고는 좀 다르더라고요. 특히 이런 일도, 가슴 아픈 일도 없었으면 좋겠고...”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넘어 온 남한 땅. 27살 이씨는 이 곳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 꿈은 끝내 이룰 수 없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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