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① ‘학교 자율화’ 논란 격화

입력 2008.04.20 (07:31)

<앵커 멘트>

새 정부가 천명한 교육자율화 조처의 본격적인 첫 단계로 초 중등학교에 대한 자율화 추진계획이 발표되자 교육현장이 거센 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자율화를 통해 학교교육이 다양해지고 교육경쟁력이 강화돼 공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당국의 주장과 우열반과 0교시 수업 등이 부활되는 등 교육현장의 무한경쟁으로 오히려 공교육이 더욱 황폐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김용관 해설위원 나와 있습니다.

<질문 1> 규제를 철폐해 학교운영을 자율화하겠다는게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침인데... 어떤 규제들이 철폐되나요?

<답변 1>

학교운영에 관한 규제는 그동안 학교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교육과학부는 명확한 법적인 근거가 없는 이런 규제 29가지를 이미 폐지했습니다. 중요한 몇가지를 간추려 보겠습니다. 먼저 눈에 띠는 것으로 0교시 수업에 대한 규제 폐지를 들 수 있습니다.

수업이 정식으로 시작되기전, 1교시 이전에 실시되는 수업이라는 뜻에서 0교시라고 불리는 것인데요, 학생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였습니다.

더불어 일선 학교들은 저녁 7시 이후 보충수업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방과 후 학교운영을 기업이나 학원 등 외부 영리단체에 위탁할 수도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금지돼 오던 방과후 교과수업도 가능해졌습니다.

또 지금까지 비교육적이라는 취지에서 금지돼왔던 우열반 편성과 수준별 이동수업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종교계 학교에서는 종교과목을 집중 편성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 외 학습 참고서를 선정할 수 있고 사설학원 모의고사 응시도 가능합니다. 초등학교에서 금지해 오던 어린이 신문 단체 구독도 규제를 풀었습니다.

<질문 2> 새 정부 교육 자율화 정책의 본격적인 첫 조처가 되는 셈인데, 초등학교와 중학교 운영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손을 떼고 시도교육청에 대폭 권한을 이양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답변 2>

중앙정부가 손을 떼야 학교의 자율성이 확보된다는 것이 이번 조처의 기본 논리입니다. 이를 위해서 교육부의 학교에 대한 포괄적인 장학지도권을 폐지하는 한편 교장과 시도교육청의 국장급 장학관 등에 대한 임명권을 모두 교육감에게 넘기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한 법 개정도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당국자의 말을 잠깐 들어보시죠.

<인터뷰> 우형식(교육과학부 1차관): "학교에 대한 포괄적인 관여보다는 꼭 필요한 경우 지도 감독을 통해 교육자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당국의 이런 조처는 더욱 확대될 전망인데요, 현재 관심의 촛점인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설립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목고 설립을 제한하기 위해 교과부가 갖고 있던 설립 사전협의권도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국은 앞으로 발표될 고교다양화 정책에서 이런 입장들을 정리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질문 3> 학교현장에 매우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데 어떻습니까?

<답변 3>

그동안 영어와 수학에 한해서만 수준별 수업은 허용돼 왔습니다. 하지만 수준별 수업이 전 과목으로 확대되면 사실상 석차에 따른 우열반 형태로 반편성이 운영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겠습니다만, 서울대반, 연고대반 등 대학을 목표로 하는 반편성도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0교시 수업과 보충수업이 확대될 경우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훨씬 커지겠지요.

하지만 방과후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을 학교 안으로 포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방과후 학교에 학원과 기업 등 영리단체가 참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방과후 유명 학원강사를 초빙해서 강의를 받을 수도 있게되고 학력 평가업체의 모의고사로 시험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많은 돈을 내고 좋은 교육을 이른바 '살 수 있는' 지역의 학교들과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역의 학교의 학력차가 점점 더 커질 수도 있을 겁니다.

<질문 4> 학교현장의 반응은 어떤가요?

<답변 4>

일선 학교에서는 정부가 학교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취지에는 일단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우열반 허용이나 방과후 학교에 대해 일선 학교의 고심은 매우 큽니다. 권한을 넘겨받게 된 시도교육청은 지난 16일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자율화 조처에 대한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특히 우열반과 0교시 수업에 대해서는 우려가 적지 않자, 이 두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사실상 규제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시죠.

<인터뷰> 김경회(서울시 부교육감): "총점순으로 반편성, 소위 우열반 편성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전체 성적순에 따른 반편성은 억제하는 대신 수준별 이동수업은 영어와 수학 외에 다른 과목까지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0교시 부활 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아졌지만, 심야 보충수업을 허용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설 모의고사는 허용 쪽으로 방과후 학교를 사설학원에 맡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이 대세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시도 교육청은 이런 협의결과를 바탕으로 사안별로 각 지역 실정에 맞게 세부 시행계획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질문 5> 학부모와 교원단체들에서는 대체로 우려하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죠?

<답변 5>

교육관련 단체들 사이에서는 자율화 조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학생과 학교가 무한경쟁체제로 내 몰리고 학교가 학원화 될 것이라는 것이죠. 학교가 학력만을 높이는데 치중하게 되면 학교와 학원이 무엇이 다르겠느냐, 공교육이 더욱 황폐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시죠.

<인터뷰> 전교조 대변인: "그야말로 학교와 학원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학교 자체를 학원화시킬 수밖에 없는 현상이 되지 않겠나..."

또 0교시 수업이 허용되고 보충수업 시간이 확대될 경우 학생들의 건강과 학과 편식현상이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인터뷰> 윤숙자(참교육 학부모회 회장): "건강권 때문에 0교시는 안된다고 사회적인 합의를 본 것인데 이런 부분을 규제로 봐야 되는지, 오히려 권장해야 할 지침이죠."

전교조는 시도교육청들과의 단체협약에서 0교시 수업 등을 금지하고 있는 점을 들어서 단체협약을 어기는 교육감을 고발하겠다고 밝히고 있어서 또 다른 마찰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지난 17일에는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 10여개 교육, 시민단체가 합동기자회견을 열어서 자율화 반대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이와는 상반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은 "지금까지 학교운영의 세부내용까지 각종 지침을 통해 규제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며 "이번 조처로 학교가 학생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하는 성명을 내놨습니다.

<질문 6> 정책의 성패는 결국 일선 교육현장의 당사자들에게 달린 셈이 됐죠?

<답변 6>

시도 교육청이 지역사정에 맞게 학교 운영에 대해 규제 철폐를 결정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렇게 되면 결국 공은 시도 교육청으로 넘어간 셈이 됐습니다.

당국이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한 다음날인 16일 사교육 관련 업체 주가가 일제히 급등했습니다. 방과후 학교의 학원강사 수업이라든지, 학교의 사설학원 모의고사 응시, 교과서 외 사교육 참고서 선정 등을 허용한 데 대한 기대감이 나타난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자칫 이번 조처가 사교육 시장을 오히려 확대 팽창시킬 수도 있다는 예상을 방증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쨌든 자율화와 자유경쟁이 학교 공교육을 변질시킨다든지, 공교육을 황폐화 하지 않도록 학교현장 책임자와 교육 자치 담당자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또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겠죠.

시도 교육감과 학교장의 교육철학과 소신에 따라 교육의 형태와 방향이 결정되는 셈인데, 그런만큼 그 권한에 따르는 성과와 책임만큼은 철저하게 평가하고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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